[자치단체장 선거공약 평가] 18. 지자체 내실보다 ‘복지 퍼주기’… 풀뿌리 민주 미래가 없다
겉만 번지르르한 공약 남발… 임기 내 달성 못할 사업 수두룩, 정치 성향만 좇는 주민들 무관심… 지방자치 후진성 못 면해
민진규 대기자
2022-11-02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나라 정부의 안전사고 대응 매뉴얼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수도인 서울특별시 한복판에서 불과 몇 시간 만에 15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지만 정부의 대응은 부실했다. 세월호 사건 당시 대다수 국민은 ‘이게 나라냐’라는 자조 섞인 한탄을 쏟아냈지만 그 때뿐이었다.

이태원을 관할하는 용산구와 서울시, 국민안전을 책임진 행정안전부·경찰청도 본연의 역할을 다 수행했지만 ‘불가항력’이었다는 입장을 견지해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다. 현 시점에서 사고 수습이 최우선이지만 머지않아 정치적 후폭풍이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2020년 초부터 시작된 코로나19 대유행으로 글로벌 공급망 붕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유가 급등, 미국발 금리인상으로 초래된 금융시장 혼란 등은 국내 경제의 기반을 흔들고 있다. 6·1 지방선거에서 16개 광역자치단체 후보가 제시한 선거공약을 국가정보전략연구소(국정연)가 개발한 ‘오곡(五穀)밸리혁신(5G Valley Innovation)-선거공약’ 모델을 적용해 평가해 봤다. 

◇ 지역 실정에 부합하지 않은 공약 다수

6·1 지방선거는 문재인정부의 실정을 심판한 20대 대통령선거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진보 정당이 몰표를 받은 것과 정반대 현상이 일어났다. 출마한 후보도 좋은 선거공약을 개발하기보다는 정치 바람을 어떻게 잘 활용할 것인지만 고심했다. 선거공약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부실했다.

우선 지역의 미래 먹거리를 개발하는 과학기술·경제 공약보다는 소모성 예산을 요구하는 사회·문화·정치 공약의 비중이 높았다. 사회 공약은 각종 복지수당을 지급하거나 대규모 인프라를 구축하는 사업을 모두 포함한다. 일반도로·고속도로·철도·산업단지 건설 등을 경제 공약으로 포장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회 공약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217개 과제를 공약으로 제시했는데 사회 공약이 101개로 46.5%를 점유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104개 세부 과제 중 사회 공약이 64개로 전체의 61.5%에 달했다. 김진태 강원도지사는 낙후된 강원도 인프라를 구축하겠다는 일념으로 철도·광역급행열차(GTX) 건설 공약을 많이 내걸었다.

다음으로 과학기술 공약은 임기 내에 완료가 불가능한 사업을 제시하거나 지역의 실정에 많지 않는 내용이 많았다. 다수 후보가 도심항공교통(UAM) 기반을 구축하거나 실증사업을 추진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했지만 향후 4년 이내에 UAM 관련 기술이 실용화 단계에 도달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홍준표 대구광역시장은 주변도시 직통 연결·지역 거점 버티포트(Vertiport) 조성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UAM 실증사업도 완료되기 전에 버티포트를 건설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의문이다. UAM 실증사업이 성공적으로 완료되더라도 인구가 적은 대구시의 UAM 수요가 경제성을 확보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마지막으로 지역주민의 정치 참여를 이끌고 행정 수요를 충족할 정치 공약이 지역 실정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김태흠 충청남도지사는 서울에 있는 육군사관학교·국방부를 유치하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밝혔지만 해당 기관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혔다. 이들 기관이 2026년까지 충남으로 옮겨질 가능성은 아주 낮다.

김영환 충청북도지사는 △기업 현장에 맞는 중대재해처벌법 실행 기준 보완 △전기차·수소차 확대 등 생활미세먼지 저감대책 강화 등과 같은 지역실정과 동떨어진 공약을 선보였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실행 기준을 보완하는 것이 충북도의 업무인지도 불분명하다. 시골 지역이 다수인 충북에서 생활미세먼지를 줄이는 것이 우선 과제라고 보기도 어렵다.


▲ 16개 광역자치단체의 ‘오곡(五穀)밸리혁신(5G Valley Innovation)-선거공약’ 모델의 평가 결과[출처 = iNIS]


◇ 공약 달성하려면 주민·공무원 협력 절실

광역자치단체장이 취임한지 4개월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공약의 완료 여부를 정확하게 진단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다고 명약관화하게 예측이 가능한 결말을 보고 그냥 지나친다는 것은 양심 있는 전문가의 자세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16개 광역자치단체장의 선거공약을 국정연이 개발한 갑옷(ARMOR) 즉 달성 가능성(Achievable)·적절성(Relevant)·측정 가능성(Measurable)·운영성(Operational)·합리성(Rational) 지표를 적용해 도출한 주요 시사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16개 광역자치단체장 중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사람은 오영훈 제주도지사다. 오 도지사는 공약의 달성 가능성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주민참여예산을 배정하고 예산편성 과정에 도민을 참여시키는 것은 달성이 어렵지 않다.

또한 △원도심에 청년창업밸리 조성 △읍면에 생활문화복합센터 건립 △예술인을 위한 창작소 지원 등도 예산만 투입하면 얼마든지 달성이 가능한 사업이다. △창업기반 조성을 통한 일자리 창출 △맞춤형 건강관리시스템 구축 △공공보건의료 서비스질 개선도 예산과 행정만으로 완료할 수 있다.

둘째, 김태흠 충남도지사의 선거공약이 250점 만점에 80점으로 16개 광역자치단체장 중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다. 공약 대부분이 달성할 가능성이 낮았으며 △수소에너지 융·복합 산업 벨트 △충남형 탄소 중립화 모델 수산식품 클러스터 △한국 해양바이오 클러스터 등에 대한 운영성은 50점 만점에 12점에 불과했다.

각종 산업 벨트·클러스터는 예산 투입만으로 완료할 수 있는 사업이 아니다. 사업을 추진할 공무원이 사업 전반에 걸쳐 충분한 지식과 경험을 축적해야 하며 민간기업의 적극적인 협조가 요구된다. 메타버스 도청 설치도 시류에 편승한 뜬금없는 공약에 속한다.

셋째, 250점 만점에서 90점 이하를 받은 광역자치단체장은 충남·충북·강원도·경북도지사와 인천시·서울시장 등 6명에 달한다. 80점을 획득한 충남에 이어 △충북·강원 82점 △경북 83점 △서울시 84점 △인천시 85점을 각각 받았다.

서울시장은 대통령에 버금가는 권력을 행사하는 자리인데도 유권자가 공약보다는 정치 바람에 따라 후보자를 선출했다는 점에서 아쉽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디자인산업을 육성하고 재건축·재개발에 올인하는 것이 서울시 발전에 도움이 될 가능성도 낮다.

넷째, 가장 우호적인 평가를 받은 제주도를 포함해 전라남도·광주광역시만 겨우 100점을 넘겼다. 전남과 광주시는 공천이 당선을 보장하기 때문에 무리하게 공약을 개발할 필요성이 낮았기 때문이라고 판단된다. 김영록 전남도지사의 공약 중 △해양 관광벨트 △복지기동대 확대 △청년 문화복지소통센터 설립 △교통약자 바우처 택시 확대 △행복여행 지원금 지급 등은 공무원의 행정 역량만으로도 추진이 가능한 사업이다.

강기정 광주시장은 △민관 거버넌스 위원회 실효성 강화 △청년 참여형 예산제 운영 △탄소중립 거버넌스 구축 △스타트업 창업밸리 조성 △군복무 청년 상해보험 지원 등 달성이 상대적으로 쉬운 공약을 제시했다. △인공지능(AI) 집적단지 △AI 기반 헬스케어산업 육성 △미래 모빌리티 특화산단 조성 등은 임기 내 완료가 불가능하다.

다섯째, 5가지 평가 지표 중 가장 높은 점수를 획득한 영역은 적절성이다. 적절성은 공약이 지역의 여건에 적합한지 여부를 평가하는 지표이다. 박완수 경남도지사의 공약 중 △일자리 중심 경제 △제4차 산업혁명 대응 △원전 및 방산 중소기업 클러스터 조성 등은 침체된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이장우 대전광역시장은 △청년 지역금융 지원체계 강화 △대전 맞춤형 일자리 사업 재구조화 △소상공인 온라인 플랫폼 구축 활성화 △영세 소상공인 경영안정자금 지원 등과 같은 경제 공약을 제시했다. 대전시도 주력 산업이 뚜렷하지 않고 신규 일자리 창출에 한계가 있어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여섯째, 5가지 평가 지표 중 가장 낮은 점수를 획득한 영역은 운영성이며 지역 공무원이 단체장이 제안한 공약을 수행할 역량을 갖췄는지 평가한다. 유정복 인천시장의 문화 공약 중 △대한민국 문화·예술의 전초기지 마련 △K-콘텐츠 월드 조성 등은 4년 임기를 넘겨서도 완료하기 어렵다.

김영환 충북도지사의 중소·중견기업 5000개 수출 전략화 육성 공약도 충북도 소속 공무원이 추진할 역량을 충분하게 갖췄다고 볼 수 없다. △바이오 신약·소재·나노기술 등 첨단과학산업 육성 △반도체·배터리 초격차 유지 △AI·바이오기술(BT)·수소경제 생태계 등 신산업 육성 등 공약도 비슷한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종합적으로 16개 광역자치단체장이 6·1 지방선거에서 제시한 공약의 최대 절반 이상은 임기 내에 완료가 불가능할 정도로 부실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지역 주민도 후보자의 공약을 면밀하게 검토하지 않고 단순 정치성향에 따라 투표하지 않았는지 반성해 봐야 한다. 지난 30여년 동안 지방자치가 후진성을 극복하지 못한 이유도 주민의 무관심에서 찾아야 한다. 

오곡(五穀)밸리혁신(5G Valley Innovation)-선거공약=국가정보전략연구소가 중앙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선거공약을 평가하기 위해 국내외 전문가들과 협력해 개발한 모델이다. 5G는 오곡(五穀·다섯 가지 곡식), 밸리(Valley)는 계곡을 의미한다. 문명은 ‘오곡백과’가 풍성한 계곡에서 탄생해 발전했기 때문에 국가·지자체가 번성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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