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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시장에서 금융은 인체의 혈액과 같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시장 경제 자체가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며 돈이라는 매개체가 유기적으로 조합돼야 효율적으로 작동하게 된다.근대 산업사회에서 자본가와 노동자로 구분되고 노동자는 블루칼라, 화이트칼라, 골드칼라 등으로 변신했지만 자본가는 그냥 자본가일 뿐이다.자본가는 돈으로 장사를 하거나 기업을 설립할 수도 있지만 투자나 대출 제공으로 이익을 얻는 것을 가장 선호한다. 이른바 금융업이 가장 선진화되어 있을 뿐 아니라 단기간에 쉽게 큰 돈을 벌 수 있는 산업이다.중세 이후 유럽에서 금융업으로 크게 성공한 민족이 유대인이라면 현대 금융업에서 막대한 부를 축적하는 사람은 투자자문이나 사모펀드를 운영하는 기업이다. 버크셔 해서웨이와 워렌 버핏을 다루려는 이유다.▲ 서학개미 투자가이드 버크셔 해서웨이 기업분석 [출처=iNIS]◇ 주식중개회사를 운영한 아버지로부터 금융 지식 전수받아... 어린 시절부터 돈버는 일에 관심 많아버크셔 해서웨이의 최고경영자(CEO)인 워렌 버핏은 1930년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태어났는데 훗날 그는 '오마하의 현인'이라는 타이틀을 얻는다.그의 아버지는 주식중개회사를 운영하며 금융업에 종사했다. 6살이었던 어린 버핏에게 주식 통장을 선물하기도 했을 정도로 자식에게 금융을 가르치기 위해 노력했다.버핏의 자서전에 따르면 어린 시절 <1000달러를 버는 1000가지 방법(One Thousand Ways to Make $1000)>이라는 책에서 상당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당시 껌, 코카콜라, 주간잡지를 판매하러 집집마다 방문하거나 할아버지의 식료품점에서 일을 돕는 것부터 시작했다.그가 주식 투자를 시작한 나이는 11세였다. 아버지가 팔았던 시티즈서비스 6주를 38달러에 산 후 40달러에 팔았는데 이후 주가가 200달러까지 올랐다. 이 경험은 장기 투자의 중요성을 깨닫게 한 계기였다.고등학생 때는 신문을 배달하거나 골프공, 우표 등을 팔았다. 17세 때 친구와 함께 오마하 지역 이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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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크셔 해서웨이(Berkshire Hathaway)의 CEO이자 회장인 워렌 버핏(Warren Buffett)은 1930년 8월 30일 미국 네브레스카주 오마하(Omaha, Nebraska, U.S.)에서 태어났다.본명은 워렌 에드워드 버핏(Warren Edward Buffett)으로 하원의원을 지낸 아버지 하워드 버핏 과 어머니 레일라 사이에서 둘째로 탄생했다.돈을 벌고, 저축하는데 관심이 많았던 워렌 버핏은 어렸을 때부터 껌, 코카콜라 판매, 주간지 방문판매, 신문배달, 골프공 및 우표, 차량판매 등의 일을 했으며, 할아버지 채소가계에서도 일을 했다. 부모의 권유로 11세때 주식에 100달러를 투자하면서 투자 인생의 길을 걷기 시작한 워렌 버핏은 부친회사 버핏 포크사(Buffett-Falk & Co), 뉴욕 투자전문회사 그레이엄 뉴먼(Graham-Newman Corp)에서 투자감각을 키웠다.투자조합 버핏 파트너십(Buffett Partnership Ltd.)을 설립해 본격적인 투자를 시작했다. 제 1차 세계대전 종료 후 섬유산업의 침체로 경영난을 겪고 있던 버크셔 해서웨이를 인수해 M&A와 지분투자를 통해 부를 형성했다. 버크셔 해서웨이를 통해 부를 축척한 워렌 버핏은 2008년 포브스 선정 세계 최고 부자 순위에 올랐으며, 2011년에는 3위에 올랐다. 2012년에는 타임지에 의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선정되기도 했다.지난 2013년에는 순자산액 582억 달러(약 64조 6000억원)로 4위, 2014년에는 719억 달러(약 79조 8000억원)로 3위에 올랐다. 자선단체 빌 & 멜린다 게이츠 재단의 공동회장을 맡고 있는 워렌 버핏은 자신의 재산 99% 이상을 자선단체에 기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일선에서 물러난 빌게이츠나 카를로스 슬림과는 달리 현장에서 수많은 기업에 투자하며,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워렌 버핏의 개인 프로파일(Profile)을 간단하게 살펴보면 아래 표1과 같다.▲ 워렌 버핏의 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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