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내부고발과 경영혁신] 38. 해외 내부고발 사례연구-일본 도시바... 비뚤어진 엘리트의식과 동료애가 내부고발 막아
2011년 동일본대지잔으로 원전 사업 몰락하며 대규모 손실 발생... 정부 정책과 지니친 밀착은 경영 실패로 귀결돼
민진규 대기자
2025-01-28
2023년 12월20일 일본 거대전자업체인 도시바(Toshiba)가 도쿄증권거래소에서 상장폐지됐다. 1949년 상장된지 74년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대규모 구조조정을 통해 5년 후에 재상장을 목표로 삼았지만 달성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도시바는 가전제품, 반도체, 컴퓨터, 원자력발전소 등 다양한 업종에서 세계 최고 기술력을 자랑했다.

도시바는 일본 정부가 관심을 갖는 사업에 주력하며 좋은 유대관계를 쌓았다. 이른바 '일본주식회사'의 대명사로 불릴 정도로 성공가도를 달릴 수 있었던 이유다.

재계의 대표기관인 일본경제단체연합회(日本経済団体連合会)을 이끄는 주요 대기업이었다. 2008년~2014년 7년 동안 이어져온 도시바의 회계부정 내부고발을 살펴보자.


▲ 일본 도시바의 내부고발 진행 내역 [출처=국가정보전략연구소(iNIS)]



◇ 미국 웨스팅하우스 인수해 원자력발전에 올인... 2011년 동일본대지잔으로 원전 사업 몰락하며 손실 발생

도시바는 1875년 일본의 에디슨으로 불리던 다나카 히사시게(田中久重)가 설립한 다나카제작소가 모태다. 다나카는 일본 최초 증기기관차를 개발했다. 1949년 일본 도쿄증권거래소에 상장했으며 1959년 트랜지스터 TV를 개발했다.

1985년 세계 최초 노트북인 PC를 만들었으며 1986년 세계 최초로 낸드 플래시 메모리 상용화에 성공했다. 2006년 미국 원자력발전소 설계기업인 웨스팅하우스(WH)를 인수했다.

웨스팅하우스의 인수 금액이 시가보다 3배나 비싸게 매입하면서 원자력발전소에 사업을 초점을 맞췄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이 터지며 원자력발전은 침체의 늪에 빠졌다. 손실을 메우기 위해 회계부정은 불가피했다.

2014년 도시바의 직원은 실명으로 회사가 2008년부터 2014년까지 7년 동안 2248억 엔의 회계부정을 저질렀다고 고발했다. 반도체와 사회간접자본 등에서 손실이 발생했지만 이익을 부풀리는 방법을 활용했다.

2015년 2월 증권개래 등 감시위원회는 감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도시바 경영진은 2015년 5월 '사내조사로 일부 부정은 있었지만 크게 우려되는 점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회사의 기자회견은 직원들은 반도체와 사회간접자본 뿐 아니라 TV, PC 등 가전사업에서도 이익을 과대계상하는 방식으로 회계부정을 저질렀다고 고발했다.

경영진이 사업 부문별로 수익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회계부정을 강요한 사실마저 드러났다. 특히 재무 부문의 직원이 부적절한 회계 처리를 파악해도 동료를 고발할 수 없었다.

일본 기업 특유의 동료의식과 집단주의가 회계부정을 단절할 기회를 상실하게 만들었다. 또한 도시바는 다른 기업보다 상명하복(上命下服)의 풍토가 강했다.

도시바의 회계부정은 내부고발보다 더 심각한 수준으로 판명됐다. 사장이 책임을 지고 물러났으며 이사 16인 중 8인, 집행력 1인이 사임했다.

일본 금융청은 유가증권 허위기재 혐의로 73억7350만 엔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도시바는 회계부정 사태를 극복하지 못하고 침몰했다.

경영학자들은 도시바의 경영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사장의 임기는 4년이지만 퇴임 이후에도 회장, 고문, 상담역 등의 직책을 맡아 경영에 관여하는 원정(院政) 체계를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장기간 경영에 개입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 때문에 사장에서 퇴임하더라도 자신의 실수나 문제를 덮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이번 사태의 핵심으로 꼽히는 니시다 아쓰토시( )는 사장에서 물러난 이후 10년 동안 권력의 핵심으로 자신이 저지른 회계부정을 숨겼다.

도시바는 도요타자동차, 신일본제철, 소니 등과 같은 일본 재계의 핵심 기업이기 때문에 퇴임 이후에도 게이단련의 회장과 같은 자리를 맡을 기회가 적지 않다.

퇴임 이후에도 사회 각계각층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면 사장으로 재임시에 실적이 좋아야 한다. 성과를 부풀려서라도 성공한 경영자라는 평가를 받고자 하는 욕망이 강해지는 이유다.

◇ 비뚤어진 엘리트의식과 동료애가 내부고발 막아... 정부 정책과 지니친 밀착은 경영 실패로 귀결돼

토나미운수(トナミ運輸)에서 내부고발을 단행한 쿠시오카 히로아키(串岡 弘昭)의 사건을 계기로 일본 정보는 2004년 공익통보자보호법을 제정했다.

이번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도록 계기를 제공한 도시바 직원은 실명으로 공익통보제도를 활용했다. 내부고발을 한 근로자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도시바 내부고발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첫째, 도시바의 경영시스템의 문제로 회계부정을 중지시키지 못했다. 일본은 오너가 경영을 책임지는 우리나라 재벌시스템과 달리 미국과 마찬가지로 전문경영인을 선호한다.

기업 소유주나 주주가 경영진의 전횡이나 독단을 막을 내부통제시스템도 충분하지 않다. 일본 기업에는 강력한 권한으로 조직을 철저하게 장악하는 것이 리더립이라고 착각하는 문화가 팽배해 있다.

한국 재벌의 오너경영도 문제점이 적지 않지만 전문 경영자의 대리인 비용(agency cost)를 해결할 방안을 찾을 필요가 있다. 가장 확실한 방안은 경영자와 독립적인 내부통제시스템을 구축해 운영하는 것이다.

둘째, 도시바 내부에 팽배해진 비뚤어진 엘리트의식과 동료애가 내부고발을 막았다. 도시바는 일본 최고 기업 중 하나이므로 우수한 인재가 몰려든다.

특히 성과지상주의로 매몰된 엘리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 욕망에 사로잡힌다. 이번 사태의 핵심인 니시다 아쓰토시도 이런 유형에 속했다.

집단주의를 선호하는 일본 사회는 동료나 선후배의 허물을 덮는 것이 동료애라고 착각한다. 자신의 일이 아니면 모른체 하는 것이 좋은 동료라고 믿는 것도 타파해야 한다.

셋째, 기업이 정부의 정책에 너무 예속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봐야 한다. 도시바는 정부 관료가 추진하는 정책에 영합하는 방식으로 사회적 영향력을 키우길 바랬다.

일본의 관료도 1950~80년대 경제발전을 위한 정책수립에는 능했다. 미국의 기술과 산업만 열심히 베끼면 충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90~2010년대 일본의 강점이 사라진 경제구조로 창의적 산업을 찾아내는데 실패했다.

도시바가 몰락하게 만든 원자력발전사업도 동일본대지진이라는 천재지변이 핵심 요인으로 작용했지만 전 세계적인 친환경운동도 그에 못지 않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결론적으로 도시바 내부고발은 조직 내부의 견제와 균형이 무너진 상태에서 내부통제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아 일어난 사건이다. 조기에 발견해 대처했다면 조직 괴멸 수준으로 커지지 않았을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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