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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이나 일부 기업전문가들은 두산을 국내 최고(最古)의 기업이라고 추켜 세운다. 한자를 정확하게 보지 않으면 두산이 삼성그룹보다 더 뛰어난 기업이라고 착각을 할 수 있지만 뛰어난 기업이라기보다는 가장 오래된 기업이라는 의미다.두산의 창업자인 박두병 회장의 아버지인 박승직이 시작한 박승직 상점까지 포함하면 틀린 말은 아니지만, 실질적으로 박승직 상점과 두산은 전혀 다른 별개라고 봐야 한다.두산이 사업중심을 소비재에서 인프라로 옮기면서도 중후장대(重厚長大)형으로 바뀌었다는 찬사를 받는다. 두산이 사업구조 재편이나 급격한 성장 측면에서 나름대로 선전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 내용보다 홍보가 잘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두산의 기업문화를 마감하면서 든 느낌이 그렇다는 말이다. ◇ 소비재사업에서 얻은 마케팅 감각은 우수하나 본질을 고민해야 한다두산은 박두병 초대회장이 일본이 패망한 후 동양맥주의 경영권을 쥐게 되면서 사업적 기반을 구축했다. 동양맥주는 설립 당시 규모로는 동양최대 맥주회사였다.일본이 침략전쟁을 가속화하고 물자배급을 하면서 맥주도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했다. 내수용으로 배급을 받아도 바로 동이 날 정도로 쥐꼬리만한 맥주공급이 수요를 충족시켜주지 못한 것이다. 6∙25전쟁 와중에 동양맥주를 정부로부터 불하 받았지만 맥주는 여전히 고급 사치재였고, 공급은 늘 부족했다. 박두병 회장이 동양맥주를 기반으로 병 제조, 맥아재배 등 맥주관련 분야에 사업영역을 확장하고, 연관분야인 식∙음료까지 손을 댔다. 주로 소비재를 위주로 사업을 확장했으며 소비재산업은 1980년대 이후 공급이 초과되면서 경쟁이 치열해졌다.공급자 위주의 시장이 소비자 위주의 시장으로 바뀐 것이다. 대규모 제조설비와 허가권을 확보해 땅 짚고 헤엄치는 식의 사업을 벌이던 기업들이 새로운 시장변화를 맞추지 못해 많이 사라진 시기이기도 하다.두산이 비록 1990년대 중반 사업침체로 선제적 구조조정을 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지만 소비재시장에서 축적한 노하우가 있었다. 시장의 흐름이나 소비자의 니즈를 읽는 능력을 갖추게 된 것이다. 중화학공업이나 건설업을 하던 기업들이 갖추지 못한 재능이다.구미에 있던 두산전자의 낙동강 페놀유출사태도 회장의 2선 후퇴, 사회출연금, 대규모 사과광고 등으로 쉽게 덮을 수 있었다. 이 방식은 이후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대기업들이 사태를 해결하는 교과서로 활용했다. IMF외환위기로 기업의 강제구조조정이 불가피할 때는 선제적 구조조정의 경험을 십분 활용했다. 사업확장경험만 있던 대기업과 정부관료들에게 훈수를 두면서 매물로 나온 알짜 기업을 인수했다.이미 구조조정을 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부실하거나 망한 기업을 살릴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 준 것이다. 오너의 형제가 여러 명이라 서로 역할을 분담한 것도 좋은 결과를 낳았다. 예를 들어 당시 박용오 회장은 경영을 책임지고, 동생인 박용성 회장은 외부에서 정부에 쓴 소리를 하면서 대립각을 세워 존재감을 키웠다.박용성 회장은 정권을 향해 특별한 내용은 없었지만 목소리를 높이면서 나라를 걱정하고 시대흐름을 예견하는 유능한 경영자라는 이미지를 얻었다. 두산이 그룹의 규모에 비해 지난 10여 년 동안 대규모 M&A를 주도하고 시장에서 굳건한 이미지를 쌓는 기반이 됐다. 형제의 난 이후 부도덕한 기업이라는 여론 때문에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몰렸지만 경영경험이 일천한 박용현 회장을 선임해 부정적인 여론을 무마하는 기지를 발휘했다. 한국에서는 시간이 약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나쁜 일을 한 정치인이나 경영자는 소위 말하는 ‘잠수타기’로 난관을 헤쳐나간다. 두산도 언론 노출이 전혀 없었던 박용현 회장을 새로운 간판으로 내세워 신선한 이미지를 부각시켰다.사람들이 형제의 난을 잊을만하자 막내인 박용만이 회장으로 취임했다. 박용만 회장은 미리 트위터와 같은 SNS를 사용하면서 좋은 이미지를 쌓고 있었다.두산의 사업연혁을 보면서 문제를 본질적으로 해결하기보다는 시류에 잘 편승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소비재사업을 하면서 광고를 하고, 여론몰이를 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는 것이다. 국민 전체를 마케팅의 대상으로 보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적당하게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문제를 덮을 수도 있고, 국민들도 특정 이슈에 대해 오래 관심을 유지하지 않는 다는 것도 너무 잘 알고 있다. 정권도 5년에 불과해 정치인들도 정책사업에 대하 관심을 크게 가지지 않고, 관료가 정책에 대한 책임감이 없는 점도 간파하고 있다. 기업경영이 너무 약삭빠르고 시류에 민감하면 오래 살아남기 어렵다. 초대 회장은 인재를 중시하고, 기업이 국가경제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지만 2세로 넘어 오면서 퇴색된 것으로 보인다.기업정보를 일부 언론이나 사회 오피니언 리더가 독점하던 시대는 이미 끝났다. 몇 사람을 만족시키고 정보를 통제하면서 여론을 움직일 수 있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눈에 보이는 가식적인 행동으로 사회구성원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 두산이 진정으로 글로벌 기업이 되고자 한다면 기업경영에 대한 본질을 다시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사회가치를 존중해야 오래 존속할 수 있다최근 몇 년 사이에 두산의 역동성이 사라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거침없이 하던 M&A도 멈췄고, 무리하게 인수한 기업들의 실적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승자의 저주라는 말을 한다.미국식 경영에서 M&A가 기업확장과 사업구조전환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는 하지만 기업경영의 본질이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얻어야 하는 것이라는 동양식 경영에는 맞지 않는다. 망한 기업을 인수해 살리는 것은 해당 기업의 이해관계자나 사회에도 좋은 일이다. 문제는 망한 기업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모든 이해관계자가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망한 기업의 주주가 가장 큰 피해자이고, 종업원, 협력업체의 순으로 넘어 간다.주주는 경영부실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종업원이나 협력업체는 전혀 다른 얘기다. 속된 말로 경영진이 시키는 대로 죽도록 열심히 일만 했는데, 어느 날 회사가 망했다면 황당한 것이다. 협력업체도 부당하고 불공정한 거래라도 참고 견뎌왔는데, 망하지 않을 정도로 받는 납품대금마저도 받지 못하면 자신의 집이라도 팔아야 한다.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부를 유지한 가문 중 하나인 경주 최부자집의 가훈 중 흉년에 재산을 늘리지 말라는 것이 있다. 흉년이 들면 가난한 사람들은 굶어 죽지 않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과 같은 토지와 집을 헐값에 팔아 넘겨야 한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이때 대부분의 부자들은 마구잡이로 재산을 불린다. 갑부는 평화로운 시기나 풍년이 들 때보다 세상이 어지럽거나 흉년이 들 때 탄생한다. 이렇게 막대한 부를 축적하면 세상사람들로부터 시기와 질투를 받고, 피해를 입은 사람들로부터는 원한을 산다. 대부분의 부자들이 3대를 넘기지 못하는 것과는 달리 최부자집이 격동의 근세사에서도 굳건하게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이다. 두산이 주변의 유리한 환경을 잘 활용해 사업구조전환이나 규모확대에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많은 M&A를 했지만 두산의 체질을 확실하게 바꾸고, 기반을 튼튼하게 만들어 준 것은 한국중공업의 인수다.한국중공업은 담수화설비와 발전장비 부문에서 세계적이 경쟁력을 확보한 초우량 공기업이었다. 정부가 팔 필요가 없었던 공기업이었는데, 무리하게 민영화했다. 한국중공업의 민영화는 정부의 실패한 정책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두산은 한국중공업을 인수해 기존의 부실계열사를 지원하는데 사업분할이나 자금을 총동원했다. 특히 두산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는 두산건설을 지원하는 데는 시장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이며 반복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다.두산중공업의 알짜 사업을 떼어 주고, 유상증자 등 계열사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활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산건설이 살아남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두산건설의 재무구조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힌 일산의 위브더제니스는 부동산시장의 막차를 탄 프로젝트다. 분양가를 조금 깎아 준다고 분양율이 급격하게 올라갈 가능성도 높지 않다.부실계열사를 무리하게 지원하면서 우량 계열사마저 동반부실화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초우량기업이었던 두산중공업이 지난해 연결제무제표로 보면 적자를 냈다. 두산중공업이 본업에 충실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토목이나 골프장 사업과 같은 건설사업까지 진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부실계열사들을 지원하기 위한 목적에서 우량기업인 두산중공업을 끌어 들인 것으로 보인다.두산중공업의 주주들이 반발함에도 불구하고 두산의 경영진들은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말만 반복하면서 잘못된 의사결정을 내린다.대기업들이 오너의 주식이 얼마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계열사 순환출자를 통해 과도한 경영전횡을 일삼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계열사의 부실경영은 월급쟁이 임원들에게 떠 넘기고 정작 오너와 오너일가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다.법적으로 보면 문제가 없지만 이런 약삭빠른 경영행태로는 기업을 오래 유지할 수 없다. 사회가치를 존중하지 않는 기업이나 부자가 오래 살아남은 사례는 전무하다. 잠깐 편하자고 편법에 길들여져 있으면 무엇이 옳은지조차 판단할 수 없다. 두산의 오너와 경영진이 사회본질의 문제에 대해 다시 한번 더 심사숙고하기를 바란다.-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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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그룹(이하 두산)은 재계 서열 10위권 기업으로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두산의 창업자는 박두병 회장이지만, 그의 아버지 박승직이 운영하던 ‘박승직상점’까지 포함할 경우 약 110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다.한때 ‘물장수’기업이라는 별명이 어울리는 사업을 했지만 현재는 중공업, 기계 등 인프라관련 사업군으로 재편했다. 두산은 설립초기부터 형제간의 우애가 돈독했고, 창업자의 자식들도 형제간 경영권 승계를 원칙으로 삼았다.현재 다른 그룹과는 달리 50대의 젊은이(?)인 박용만 회장이 그룹 경영을 책임지고 있어 새로운 혁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 식산재산 불하로 대기업의 기틀 마련 두산의 창업자인 박두병은 보부상으로 장사를 시작한 아버지 박승직과 달리 정규교육과정을 거쳤다. 박두병 회장이 은행원으로도 근무를 했지만 아버지 장사에 동참하면서 근대적 형태의 기업경영이 시작됐다는 평가를 받는다.두산이라는 이름은 창업자인 박두병 회장의 ‘두’자에 뫼 ‘산’자를 합쳐 두산이라는 사명을 짓게 됐다. 박두병 회장의 아버지인 박승직이 사업을 시작하는 아들에게 ‘한 말(斗), 한 말 차근차근 쉬지 않고 쌓아 올려 산(山)같이 커져라’고 작명했다.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재산을 일군 사업가, 출세를 한 관료, 정치인, 언론인, 예술인 등에게 항상 따라 붙는 것이 ‘친일행적’이다. 일본이 한반도에 산업화라는 ‘선물’을 줬다고 주장하는 일부 전문가도 있지만 약탈과 폭압의 식민지 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는 무리가 따른다.특히 일본이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을 시작하면서 조선을 병참기지화, 군수물자보급창고 등으로 여기면서 약탈은 거세진다. 1930년대 중반 이후 식민지 조선에서 변절자가 수도 없이 나왔다. 일본이 ‘내선일체’라는 구호를 떠들면서 광기 어린 전쟁놀음에 조선인을 동원하면서 변절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두산은 일본 소화기린맥주의 지분을 투자해 국내 판매권을 보유해 맥주사업에도 참여했다. 당시 소화기린맥주는 동양 최대규모로 일제가 만주, 중국 주둔군의 전쟁물자를 보급하기 위해 만든 기업이다.두산의 박두병 회장이 소화기린맥주의 지분에 참여한 것이 일본의 강압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맥주판매업으로 많은 돈을 번 것은 사실이다. 일본이 패망한 후 주식을 보유하고 있어 사업을 주도했다.소화기린맥주를 동양맥주로 상호를 변경했고, ‘OB’라는 상표를 만들었다. 이후 1952년 정부로부터 동양맥주를 불하 받았다.한국의 대기업 중 대부분이 일본 식민지 유물인 식산재산을 불하 받아 성장했다. 두산도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된 것은 박승직 상점이 아니라 동양맥주였다. 일제의 식산재산의 불하는 정치적 특혜에 가까웠다.SK그룹도 선경직물을 불하 받아 섬유관련 기업으로 성장했다. 한화그룹도 한국화약이라는 식산재산을 불하 받아 화약전문기업으로 출발해 현재의 대기업으로 성장한 것이다. 쌍용그룹, 애경그룹 등도 식산재산을 불하 받아 대기업이 됐다. 당시 정치적 상황이 복잡했고, 경제를 정상화하기 위해 식산재산을 불하할 수 밖에 없었지만 국가자산을 헐 값에 처분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한다. 당시의 가치를 잘 평가해서 불하했다고 하지만 각종 특혜를 받은 것은 부인할 수 없다.식산의 불하로 받은 돈의 사용처도 문제가 있다. 정부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쌈짓돈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쌈짓돈처럼 사용됐다.일제가 수탈을 통해 만든 기업이기 때문에 기업을 처분한 돈은 식민지 시대에 희생당한 사람들을 보상하는 데 사용됐어야 했다. 하지만 희생당한 일반 국민이 아니라 눈치가 빠른 기업이나 정치인들의 배만 불렸다.일제 식민지 역사청산에 대한 요구는 많지만 명확하게 정리하지 못했다. 시대가 그래서 어쩔 수 없었다거나 식민지 시대에 배운 지식과 경험이 한국의 경제발전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고 하는 주장이 끊이지 않고 나온다.모두가 상황논리이고, 결과를 갖고 과정과 동기를 합리화하는 것에 불과하다. 독일은 2차 대전에서 희생당한 유태인에 대한 보상을 하고 있지만 일본은 지나간 역사를 왜곡하고 미화하는데 급급하다.일본이 남기고 간 재산을 통해 배를 불린 사람들은 일본을 비판하기를 주저한다. 후손들이 역사의 평가에 인색하면 억울한 역사가 반복된다. ◇ 공동소유와 공동경영의 원칙을 지키는 중장사를 하든 사업을 하든 인건비가 들지 않는 가족들을 동원해 시작하는 것이 원칙이다. 가족들은 신뢰가 있고 열심히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동업보다 유리하다.두산의 박두병 회장도 형제들과 사업을 했고, 자식들도 ‘인화’를 강조하면서 기업을 공동소유, 공동경영하고 있다. 그룹의 회장직도 형제간에 나이 순으로 승계를 해 가족경영의 모범을 보여 준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5년 박용오 전 회장의 폭탄선언이 나오기 전까지 해당되는 평가다.2005년 박용오 전 회장의 내부고발은 그룹내부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줬다. 다른 그룹들이 창업자의 사망과 유산분쟁으로 원수가 되는 것과 달리 유달리 형제애를 강조하던 기업이라 의외의 사건으로 받아들였다.한진그룹도 창업자의 사망 이후 재산분쟁으로 체면을 구기고 있고, 형제간의 우애를 강조하던 금호아시아나그룹도 경영실패에 대한 책임소재 논란으로 갈등을 겪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그룹 분리작업이 진행 중이다.박용오 회장이 내부고발을 하게 된 이유는 그룹회장직에서 물러나라는 것과 이에 대한 보상으로 재산분할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박용오 회장은 형이 그룹 회장직을 동생인 박용성 회장에게 물려주라는 가족회의 결정에 반발했다고 한다.박용오 회장은 물장사 위주의 사업을 중공업으로 성공적인 전환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던 사람이다. 박용성 회장은 한때 ‘미스터 쓴소리’라는 닉네임을 얻었을 정도로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하는데 앞장섰다. 박용성 회장도 형의 내부고발로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받아 재기가 불투명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두산의 공동소유에 대한 개념은 매우 좋은 것으로 보인다. 다른 그룹들이 창업자의 사망 이후 자식들이 분할해 경영하면서 망한 사례가 많다.한진그룹도 한진중공업이 분리되고, 한진해운 마저 분리하려고 하면서 종합물류기업이라는 목표가 흔들리고 있다. 삼성그룹도 이병철 회장의 사망 이후 CJ그룹, 신세계, 한솔그룹, 새한그룹 등으로 분할됐다.새한그룹은 IMF외환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사라졌고, 한솔그룹도 두드러진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신세계도 유통업을 전문으로 하지만 경영성과가 좋지는 않다. 현대그룹도 정주영 회장의 사망 이후 현대그룹, 현대차그룹, 현대중공업그룹, 현대백화점 등으로 나눠졌다. 현대차그룹과 현대중공업그룹이 잘 나가고 있지만 다른 그룹들은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다.구씨와 허씨의 아름다운 동업관계로 칭송을 받던 LG그룹도 GS그룹, LS그룹, LIG그룹 등으로 분할됐다. 다른 그룹들과는 달리 LG그룹의 분할은 외부적으로 불평불만이 나오지 않아 시작이 좋았던 기업이라 끝도 좋다는 칭찬을 받고 있다. LG가 현재까지 국내 대기업 중에서 재산권분쟁이 발생하지 않은 유일한 그룹이지 않을까 생각된다.두산의 경우 지분이 복잡하고 자식들이 많아 분할을 할 경우 기업의 경쟁력이 훼손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현명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다만 형제간의 우애가 돈독하고 인원 수가 많지 않으면 문제가 없지만 형제간의 우애가 사라지거나 인원 수가 많아지면 합의가 매우 어렵다. 두산도 서로 큰 욕심 부리지 않고 적정하게 이익을 나눠가질 때는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자식들인 2세는 기업의 성장과정을 곁에서 지켜볼 수 있었고, 나이 많은 형이 기업발전에 더 기여했다고 봐야 한다. 자연스럽게 형의 권위를 인정하고 따를 수 밖에 없다.두산은 형제의 난이 발생한 후 2세 경영이 급격하게 쇠퇴하고 있다. 현재 2세인 박용만 회장이 경영을 하고 있지만 3세들이 전면에 나서고 있다. 2세들과는 달리 3세들은 입장이 다르다고 봐야 한다. 두산도 형제들이 많아 3세는 더 많아졌다. 조용하게 주어진 역할에 만족하는 3세들도 있지만, 자신의 뜻대로 사업을 펼쳐보고 싶은 자식들도 있을 수 있다. 형제간에는 큰 형의 결정이나 가족회의의 권위가 잘 먹히지만 3세로 넘어오면 다르다고 봐야 한다.나이가 많다고 경영을 잘 하는 것도 아니고, 공부를 잘했다고 기업을 잘 이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능력도 서로 다르기 때문에 기업실적 기여도도 다르다.후계자들의 경영능력이 과대 포장된 경우도 많고, 능력도 규모의 경제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뛰어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박용오 회장의 경우에도 두산에서 나온 후 건설회사를 시작했지만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다.박용오 회장의 아들도 코스닥 기업을 인수하고 나름 경영능력을 보여주는 듯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현재 두산의 3세들도 활발하게 일선에서 뛰고 있지만 경영능력이 있는지 판단하기 쉽지 않다. 자식을 이기는 부모는 없다. 아무리 아버지 세대의 우애가 좋더라도 사촌이 되고, 6촌이 되면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어렵다. 두산도 3세들의 경영능력이 두드러지지 않기 때문에 공동경영의 필요성은 크지만 2세 때처럼 가족회의가 권위를 가질 수 있을지 미지수다.공동소유, 공동경영은 말은 좋지만 실천하기 어렵다는 것이 이미 2005년 내부고발사건으로 증명됐다고 봐야 한다. 그룹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새로운 경영방식을 고민할 필요가 높다.-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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