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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현재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으로 우리나라 경제계를 이끌고 있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창업자인 최종건과 아버지인 최종현에 이어 2대째 그룹을 이끌고 있다.1.5세 경영자인 최종현은 최종건의 동생으로 노태우정부 당시 대한석유공사와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해 섬유 중심이던 사업을 석유화학·통신으로 재편했다.최종현의 아들인 최태원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인 노소영과 결혼했다. 노태우정부가 출범하며 최고 권력자와 혼맥을 형성한 SK그룹은 섬유업체에서 종합 그룹으로 성장 가도를 달렸다.최태원 회장은 2003년 분식회계와 2011년 횡령 혐의로 사법 처벌을 받으며 사회적 논란을 초래했다. 최 회장은 오랜 별거 끝에 노소영과 이혼소송을 벌여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권력과 밀착해 성장한 한국식 재벌시스템은 2~3세로 넘어오면서 수명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신호가 곳곳에서 감지된다. 창업자는 여론 동향을 주시하며 사회 가치를 훼손하는 의사결정은 최대한 자제했지만 후계자들은 반대로 행동한다. 2003년 일어난 분식회계 사건은 내부고발자에 의해 수사가 진행됐지만 20년이 지난 현재까지 내부고발자의 신원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2006년 촉발된 현대자동차그룹의 내부고발 사건과 마찬가지로 드물게 내부고발자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SK그룹의 내부고발 사건을 분석해 보자.▲ SK그룹의 내부고발 진행 내역 [출처=국가정보전략연구소(iNIS)] ◇ 경영권 분쟁이 내부고발의 단초 의심... 비밀금고의 위치와 비밀번호 파악해 증거물 압수2003년 2월27일 노무현정부가 출범한지 3일째 검찰은 SK그룹 계열사를 압수수색했다. 새 정부가 출범하며 시도하는 전형적인 사정정국 조성용이라는 평가가 나왔다.하지만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검찰은 내부고발로 비밀금고의 위치와 비밀번호, 금고 속의 장부 등에 관한 정보를 파악하고 있었다. SK그룹 내부고발 사건의 진행 과정을 정리해 보자.우선 SK그룹은 당시 오너가 아니라 전문 경영인 회장이 이끌고 있었다. 1965년 선경직물에 입사한 손길승은 최종현 회장이 사망한 이후인 1998년 SK그룹 회장으로 추대됐다.최종현 회장의 큰 아들인 최태원도 지주회사 SK의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견제 장치를 마련했지만 대외적으로 손길승이 대표성을 띄었다.손길승이 회장으로 추대된 이유는 최 회장의 나이가 30대로 젊었고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로 우리나라 경제가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울 정도로 험난했기 때문이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최 회장과 손길승 회장의 자연스러운 권력 분점이 이뤄지게 됐다.다음으로 내부고발자의 제보를 받은 검찰이 압수수색하는 과정이다. 검찰 관계자는 SK그룹이 분식회계 관련 자료를 숨긴 비밀 금고의 위치와 내용물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대기업이 각종 비밀장부를 만들어 보관하는 비밀금고는 오너와 최측근 소수 직원 외에는 알기 어렵다. 2003년 당시 세간에는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2006년 일어난 현대자동차그룹의 내부고발과 유사한 상황이 SK그룹에서 먼저 발생한 셈이다.2007년 삼성그룹의 전 법무팀장이던 김용철 변호사도 소수 내부인만 파악하고 있던 비밀금고의 존재를 공개했다. 하지만 검찰이 압수수색을 계속 미루는 바람에 정작 비밀금고를 확인하지는 못했다. 삼성그룹이 증거물을 은폐했기 때문이다.마지막으로 비밀금고에 보관된 회계장부를 확인한 검찰은 전광석화(?)처럼 최 회장을 포함한 경영진에 대한 수사를 진행했다.2003년 3월 검찰은 SK글로벌이 1조5587억 원의 이익을 부풀리는 분식회계를 자행했다며 최 회장과 직원 1명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배임 등) 혐의로 구속기소했다.2003년 6월 최 회장은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지만 보석으로 풀려났다. 최 회장이 석방된지 얼마 지나지 않은 2004년 1월 손길승 회장이 1조 원 규모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혐의를 받고 구속됐다.손길승 회장은 2008년 이명박정부에서 8·15 특사로 사면을 받은 후 SK텔레콤 명예회장으로 추대됐지만 별다른 활동을 하지 못하고 영향력을 잃었다. ◇ 분식회계·비밀장부로 경영권 유지 만연... 담당자가 복사본이나 음성 파일 저장해 관리우리나라 재벌은 재무와 인사 관련 직원을 임명할 때 엄격한 신원조사를 거친다. 가급적이면 혈연을 우선하고 다음으로 지연·학연이 있는지 확인한다.재무와 인사는 기업경영의 핵심이고 고급 내부정보를 많이 다루기 때문에 배신할 가능성이 0.1%라도 있는 직원은 제외한다. 내부정보는 불법이나 비법적인 경영 정보를 포함한다.인사권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오너의 최측근이 된다는 것은 출세가 보장된다는 의미다. 삼성그룹·LG그룹·SK그룹 등 주요 그룹의 임원이나 계열사 사장이라도 한번 하려면 능력도 갖춰야 하지만 진정한 패밀리에 포함돼야 한다. SK그룹 내부고발이 주는 사회적 시사점은 다음과 같다.첫째,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에도 국내 대기업에서 분식회계가 만연해 있었다는 점이 드러났다. 외환위기가 재벌의 불투명 경영으로 대외 신인도가 하락해 발생했지만 정작 재벌 오너는 제대로 반성조차 하지 않았다.2000년 공중 분해된 대우그룹은 20조 원대의 분식회계를 저질렀다. 한때 재계 서열 10위에 오르며 샐리리맨의 신화를 일궜던 STX그룹도 2조 원대의 분식회계로 좌초됐다. 2018년 삼성바이오로직스도 분식회계 혐의가 수면 위로 드러나며 수사가 진행됐고 2020년 9월 기소됐다.둘째, 기업이 분식회계, 비자금 조성, 뇌물 공여 등을 기록하고 관리하는 관행이 사라지지 않았다. 이른바 범행 일기를 쓴다고 볼 수 있는데 위기 사태가 발생하면 뇌물을 받은 정치인·공무원과 협상하기 위한 목적이다.장부가 아니더라도 현장을 사진으로 촬영하거나 음성을 녹음하는 것도 일상화돼 있다. 정치인이 내뱉는 말은 숨 쉬는 것만 빼고 모두 거짓말이라고 하지만 공무원도 비슷하다.고위직 공무원으로 권력을 가진 사람은 자신이 저지른 불법행위조차 정당화하는데 익숙하다. 어렵게 번 돈으로 뇌물을 제공하는 사업가의 입장에서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필요한 이유다.셋째, 기업 경영에 있어서도 권력의 분점은 바람직하지 않으면 시도하지 않는 것이 유리하다.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이 존재하지 않듯이 권력은 자식 혹은 부인과도 나누기 어렵다. 최고 권력자가 마음대로 전횡하는 것이 용인되는 동양에서 더욱 그러하다.2003년 당시 SK그룹은 창업자인 최종건의 자녀, 1.5세인 최종현의 자녀, 전문 경영인 등이 경영권을 분점하며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했다.능력이나 성과로 리더십을 발휘했던 창업자와 달리 후계자는 혈통을 기반으로 무임승차해 공격의 대상으로 전락하기 쉽다. 전문가의 평가에 따르면 외견상 SK그룹의 권력투쟁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 계속 -▲ 민진규 국가정보전략연구소 소장 [출처=iNIS]*칼럼 내용 문의 : 민진규 국가정보전략연구소 소장(stmi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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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기업역사는 재벌의 역사와 일치하며, 일본의 강압적 식민지 지배시대에서 연원이 시작된다. SK그룹의 기원인 선경직물은 1939년 조선의 선만(鮮滿)주단과 일본의 경도(京都)직물이 합작해서 설립된 회사다.해방 당시 이 회사에 근무하던 SK그룹의 창업주 최종건 회장이 1953년 정부로부터 선경직물을 불하 받으면서 SK그룹의 역사는 시작됐다. 1980년 (주)선경은 1962년 설립된 대한석유공사를 인수했다.1998년 3월 27일 현재와 같은 SK주식회사로 상호를 변경했고 2007년 6월 에스케이 홀딩스(이하 SK 홀딩스)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다. 재벌의 순환출자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지주회사 설립을 요구했고, 기업들도 어쩔 수 없이 따랐다.SK홀딩스의 주요 사업은 자회사의 주식이나 지분을 통해 자회사의 사업내용을 지배와 경영을 지도하는 지주사업이다.계열사로는 에너지와 화학 분야의 SK이노베이션(주)·SK케미칼 등 29개 기업, 정보통신 분야에는 SK텔레콤(주) 등 24개 기업, 건설·물류 분야의 SK네트웍스(주) 등 21개 기업 등 총 81개의 기업이 있다. 2013년 글로벌 포춘 500대 기업 중 57위, 한국기업 중 2위를 차지했다. SK홀딩스의 기업개요는 표 1과 같다.▲ SK홀딩스의 개요 [출처=iNIS]◇ ‘따로 또 같이’라는 구호로 계열사 역량을 집중SK홀딩스는 계열사들의 역량을 한 곳에 집중시켜 추진하는 모습을 올해에도 활발히 보여주고 있다. 특히 에너지 분야를 살펴보면 전세계 전기차 시장 공략 진출을 계열사의 핵심 역량을 모으고 있다.석유화학과 에너지 분야에 강점이 있는 SK이노베이션을 비롯 SK케미칼, SK C&C, SK네트웍스 등 각 분야의 장점을 통합해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SK그룹은 ‘따로 또 같이’라는 구호로 계열사의 사업을 조율하고 있다.SK홀딩스가 이끌고 있는 SK그룹의 경영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각 부문별 특징, 경쟁력, 매출, 영업이익, 순이익 등을 살펴봤다.첫째, SK그룹은 세계 최고의 에너지 관련 기업이 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고 있다. 다른 계열사 중 SK이노베이션이 대표적이다.SK이노베이션은 최근 고유의 초고점도지수(VHVI, Very High Viscosity Index)의 윤활기유 공정기술을 개발해 상업화에 성공했다. 이 기술로 프리미엄 윤활기유와 고품질 윤활유를 생산하고 있다.뿐만 아니라 윤활기유 탈왁스(De-wax) 촉매를 독자 개발함으로써 고급 윤활기유 생산을 위한 전 기술을 모두 갖추게 됐다. 관련 기술은 현재 울산CLX의 3개 LBO 공장에 적용하고 있으며, 인도네시아와 스페인 공장에도 적용 중이다.올해 1월 SK이노베이션은 베이징자동차 등과 합작해 베이징 BESK 테크놀러지를 설립해 중국 공략에 나섰으며 베이징 현지에 올해 말까지 연간 전기차 1만대에 공급할 수 있는 배터리 팩 제조라인을 만드는 둥 중국 전기차 시장을 선점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서산공장에 전기차 1만대에 공급 가능한 200MWh 규모의 양산 설비를 갖춘 생산라인 증설이 올해 1분기 완료됐다. SK케미칼은 최근 일본 데이진과 합작해 이니츠를 설립해 금속을 대체할 경량화 소재인 PPS(폴리페닐렌 설파이드)를 생산하고 있다. PPS는 무게가 가벼울 뿐만 아니라 내열성과 내화학성이 우수하다.▲ SK홀딩스의 주요지표 [출처=iNIS]둘째, SK주식회사의 작년 실적은 2012년에 비해 매출, 영업이익, 순이익이 급감했다. 매출은 표2에서와 같이 2013년 약 111조7773억 원을 기록해, 전년 대비 약 6.4%가 감소했다.영업이익 역시 2013년 약 3조 6152억 원으로, 전년 대비 20.8% 감소했다. 또한 순이익은 2013년 약 1조 1449억 원으로, 전년대비 약 56.5%나 감소했다.매출의 감소폭보다는 영업이익과 순이익의 감소폭은 더욱 커 미래사업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이는 최근 석유제품의 수요 감소와 국내외 경쟁 심화 등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국내를 살펴보면 올해에 들어서도 석유제품의 소비수요는 계속 감소하고 있는데2014년 3월 누적 석유제품 소비는 전년 동기대비 0.1% 줄었다.국내 석유제품 가격의 안정세와 차량등록대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해 휘발유, 경유 등 수송용 수요 및 산업용 수요는 전년 동기대비 증가는 했지만 LPG차량 감소에 따른 LPG소비 감소, 및 도시가스 보급 및 보일러등유 폐지 등 다른 연료로 전환됨에 따라 난방용 등유 소비 감소, 중질중유 등 비수송용 유종 소비감소 등 전년과 대비해 수요가 감소했다.SK에너지의 경우 연결기준으로 2014년 1분기말 누적기준 11조 782억원의 매출을 기록해, 525억원의 영업이익이 발생했다.하지만 2013년 4분기에는 영업손실을 기록했고, 업황이 점차 개선됨에 따라 2014년 1분기에는 다시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국내 최대 Refinery 운영을 통해 시너지 극대화를 추구하고 있고 Trading 사업 강화, 글로벌 시장 허브 구축 등의 지속적인 사업구조 개선을 추진 중에 있다.구조조정을 위해 작년 7월에는 인천 CLX와 트레이딩 사업부를 각각 SK인천석유화학(주)와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주)로 인적 분할을 했다.셋째, SK홀딩스의 경쟁력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SK그룹의 사업구조를 살펴봐야 한다. SK계열사들은 에너지와 통신에 주력하고 있다.에너지는 SK에너지, SK이노베이션 등이 주도하고 있으며, SK에너지는 국내시장 점유율 1위를 유지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차세대 자동차산업의 핵인 전기자동차 배터리개발에 주력하고 있다.세계 자동차 메이저 업체들과 협력관계를 맺어 다양한 자동차용 배터리를 개발 중에 있다. 독일 다임러 그룹의 미쓰비시 후소(Mitsubishi Fuso) 하이브리드 트럭 및 메르세데스 벤츠(Mercedes-Benz) 전기 슈퍼카의 배터리 공급업체로 선정되었고 북경 전공과의 합작 법인 설립을 통해 글로벌화를 가속하고 있다.통신사업은 적극적인 M&A로 국내시장을 50%이상 압도적으로 점유하고 있지만 경쟁력은 더욱 약화되고 있다. 2위업체인 KT, 3위 업체인 LG U+가 적극적인 마케팅을 추진하면서 SK텔레콤 만의 강점은 사라지고 있다.SK텔레콤은 국내시장의 경험과 자금력을 바탕으로 미국, 중국, 동남아시아 등 해외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했지만 실적은 초라하다.국내에서 벌어 들인 막대한 이윤을 낭비했을 뿐만 아니라 지속가능 성장을 위한 신성장동력을 개발하는 기회조차 잃었다는 평가를 받는다.아직 정부의 규제와 정책으로 인해 글로벌 통신기업이 국내 시장에 진출하지 않고 있지만, 시장진출이 결정되는 순간 국내시장이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결과적으로 에너지와 통신 모두 국내 1위 사업자라는 자만 속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는 성공하지 못해 로컬 기업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생존이라는 과제를 해결하는데 애로를 겪을 것으로 판단된다. ◇ 윤리경영을 하지 않는다면 그룹해체 가능성도 높아지난 2월 27일 대법원에서 실형이 확정된 뒤 SK그룹 최태원 회장과 최재원 부회장이 계열사의 등기·비등기 임원직에서 모두 물러났다.오너의 지배구조가 강한 국내 대기업의 경영관행을 감안하면 이에 따른 경영공백 여파가 클 것으로 보인다. 일부 전문가들은 머지않은 장래에 SK그룹의 소유·지배구조에도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을 하고 있다.전혀 새롭지 않은 이야기이지만 유사한 사건이 자주 발생하고 있어 오너 리스크가 SK그룹의 성장에 가장 큰 위협요인으로 부상했다.최태원 회장은 지난 2003년 2월에도 워커힐호텔 주식 변칙증여 혐의로 검찰에 구속되어 1심에서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 받았지만 수감 7개월 만에 병 보석으로 풀려났다. 항소심과 상고심 형량은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이었다.이때 SK그룹은 최태원 회장이 수감된 이후 신규 사업 진출, 대규모 인수합병 등에 어려움을 겪었다. 지난해에도 STX에너지 인수 의향서를 제출했다가 9월 항소심 선고가 나온 뒤 인수의향을 철회한 바 있다.SK에너지 또한 지난해 11월 호주의 유나이티드 페트롤리엄 지분 인수 예비 입찰에 참여하려다가 번복하기도 했다.뿐만 아니라 SK 이노베이션의 경우 최회장의 범죄행위와는 관련이 없지만 자회사 SK에너지 주식회사의 계열회사 부당지원과 주유소 원적관리 합의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시정명령 및 과징금이 부과됐다.자회사 SK종합화학 주식회사의 외국환거래법 위반에 대한 서울본부세관의 과태료 부과가 있는 등 그룹사 전체가 각종 법 위반 행위가 끊이지 않고 있다.경영전문가들은 SK그룹이 기존의 경영관행을 포기하고 윤리경영을 하지 않는다면 그룹 오너의 다양한 비리행위로 인해 그룹 해체 수순을 밟고 있는 LIG그룹의 전철을 밟게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재벌기업의 비리행위를 바라보는 국민의 인식이 예전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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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재계 서열 3위로 안정적인 사업구조를 갖춘 SK그룹(이하 SK)이 외우내환에 시달리고 있다. 2011년 검찰은 최태원 회장과 동생 최재원 SK E&S 부회장을 회자자금을 빼 돌려 선물투자로 수 천억 원을 날렸다고 횡령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최재원 부회장은 구속 기소되었다가 관절염을 이유로 2012년 6월 1일 보석으로 석방되었다가 6월 6일 한강변에서 자전거를 타다가 앞 사람을 친 혐의로 입건됐다. 병으로 보석이 된 사람이 병원에 입원한 것이 아니라 대낮에 한강변에서 자전거를 탔다는 사실에 여론은 부정적이다. 국민들은 대기업의 오너라 병이 심각한 것도 아닌데 2억 원이라는 거금을 내고 보석결정을 받았다고 본다.재판이 진행 중이기는 하지만 ‘유전무죄’라는 말처럼 당연히 무죄나 벌금형이 선고되리라고 지레짐작하게 된다. 돈으로 면죄부를 받는 재벌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는데 정작 본인들은 심각성을 느끼지 못한다. 기업문화 대해부를 시작하면서 대기업을 가장 먼저 다루는 이유다. 다른 기업에 비해 SK를 먼저 다루는 것은 SK의 성장역사가 매우 특이하고, 다른 국내 대기업과 달리 대규모 M&A를 통해 성장했기 때문에 이질적인 구성원을 어떻게 통합하고 있는지, 실제 이런 기업문화 통합 노력이 기업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해볼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SK 성장의 역사SK는 선경(鮮京)의 영문명칭이다. SK는 1953년 고 최종건 1대 회장이 선경직물을 창업하면서 공식적으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 그 보다 오래 되었다. 선경직물은 1939년 조선의 선만(鮮滿)주단과 일본의 경도(京都)직물이 합작해서 설립했다.선경직물의 선은 선만주단에서, 경자는 경도직물에서 따온 것이다. 선만에서 선은 조선이고, 만은 만주를 지칭한다. 일본이 만주제국을 수립하고, 중일전쟁을 치르던 중 조선반도를 병참기지화하는 식민지정책의 일환으로 설립된 기업이 선경직물이다.1대 회장인 최종건은 경성직업학교 기계과를 졸업하고 선경직물 수원공장의 견습기사로 입사했다. 해방 이후 일본이 물러가면서 정부 귀속자산이 되었지만, 6∙25전쟁으로 공장은 폐허가 되었다. 직원으로서 공장정상화 노력을 기울이던 최종건이 1953년 정부의 귀속재산을 불하 받으면서 SK의 역사가 시작되었다.맨 몸으로 창업을 한 것이 아니라 귀속재산의 불하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은 창업주가 맨바닥에서 시작한 삼성, LG, 현대 등 다른 대기업과는 차이가 있다.선경직물은 1950~60년대 전쟁복구로 인한 섬유산업의 호황, 저가 노동력을 활용한 해외수출로 섬유산업의 기반을 확고하게 구축했다. 1970년대 들어서면서 섬유의 원료인 석유화학, 정유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1976년 선경그룹으로 상호를 변경했다.1980년 공기업인 대한석유공사를 인수해 유공으로 개명하면서 명실상부한 대기업의 반열에 올랐다. 1994년에는 정치적 특혜 의혹 속에서도 한국이동통신의 대주주가 되면서 이동통신사업까지 진출했다.1998년 선경그룹에서 SK그룹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소위 말하는 브랜드관리 차원에서 한 것이지만 매우 성공적이다. 선경이라는 기업이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조선, 만주, 일본 국가명칭의 조합이고 적산재산이라는 역사적 잔재를 털어버리고 싶었을 것이다.지식인조차도 선경의 이름에 대한 유래도 모르고, 선경을 일제 잔재와 연결하지 못한다. 영어명칭이 글로벌 기업의 이미지도 주고, 세련되어 보인다. 이후 다른 그룹들도 앞 다퉈 명칭을 변경하게 된다. 2007년부터 시작한 지주회사 전환을 성공적으로 마쳤고 이제는 안정적인 구조를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2년 2월에는 자회사인 SK텔레콤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하이닉스를 인수했다.SK텔레콤의 사업전망이 어두울 뿐만 아니라 하이닉스가 독자적인 생존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여부도 불투명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었지만 강행했다.SK에 성장역사를 평가하려면 정치적 유착이나 특혜라는 단어를 빼 놓을 수가 없다. 섬유와 비디오 테이프나 만들던 회사가 몇 차례의 정부자산의 특혜적 분양으로 몸짓을 불려왔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 형제간의 그룹승계와 분할분쟁최종건은 폐허에 가까운 선경직물을 정상화했을 뿐만 아니라 섬유산업에 주력해 기업을 확장했다. 1950년대 전후 복구 특수와 1960년대 경제발전에 따른 의복소재 변화가 결정적인 성장동인이었다.기업이 안정적인 기반에 돌입하고 2차 도약을 위해 석유화학산업에 진출한 1973년 최종건이 사망한다. 기계공이었던 최종건은 자신의 동생인 최종현을 미국유학을 보냈고, 그의 사망 이후 최종현은 회장으로 취임했다.최종현은 미국 유학 중 새로운 학문을 배웠을 뿐만 아니라 SK가 도약을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던 인맥도 형성하게 된다. 형의 기업을 물려받은 최종현은 1.5세대 경영자로서 1975년 제 2의 창업을 선언하고 건설, 목재, 금속, 기계, 화학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했다. 최종건이 기업의 기반을 마련했다면 최종현이 사업을 폭발적으로 성장시켰다고 보면 맞다.특히 그는 미국 유학까지 한 지식인에다 엘리트로서 국내∙외의 인적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1, 2차 오일쇼크를 극복하면서 SK를 대기업으로 성장시켰다. SK가 자체적으로 진행한 사업이 성공을 거두었다기 보다는 정치적 결단에 의한 사업인수가 더 도움이 되었다.IMF 외환위기가 닥치고, 1998년 사업을 재조정하는 과정에서 선경그룹에서 SK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이해 최종현이 타계하고, 이제 38세에 불과한 아들 최태원과 최측근 심복인 손길승이 회장이 된다. 손길승은 2003년 2월 전경련 회장까지 되면서 그룹을 좌지우지하였다.그러나 그 해 3월 SK글로벌 사태가 터지고 둘이 구속되면서 손길승은 권력을 잃고 퇴장을 하게 된다. 감옥에서 출소한 최태원은 실질적인 영향력을 회복하고 그룹을 장악한다. 현재 SK의 실질적인 주인은 최태원 회장이지만, 최종건 회장의 자녀들도 어느 정도 인정을 받을 여지는 있다. 최종현이 SK를 비약적으로 성장시킨 것은 맞지만 그 기반은 형 최종건에서 시작했으므로 최종건의 자녀들도 최태원 형제 못지 않게 재산분배를 받아야 하는 것이 순리이지만 이들간의 재산분쟁은 세간에 알려지지 않았다.현재 최종건의 둘째 아들 최신원이 SKC 회장을 하고 있고, 셋째 아들 최창원은 SK케미컬의 부회장을 맡고 있다. 최신원과 최창원은 지분정리를 통해 SK그룹과 계열 분리를 진행하고 있다.이들의 분쟁이 표면화된 것은 2003년 SK글로벌 사태라는 설이 있다. 표면적으로 노무현 정부의 클린 컴퍼니(clean company)정책, 전경련을 견제하기 위한 일환으로 터졌지만 실제 원인은 SK그룹 내부의 투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최태원을 견제하기 위한 손길승 측의 음모론, 1998년 정당하게 재산분할을 받지 못한 최종건 자녀들과의 분쟁 등이 촉발했다는 것이다. 최근 최태원 형제의 선물투자 손실사건도 내부 권력투쟁에 의해 수사기관에 제보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재산분쟁은 국내 대기업의 주요 아킬레스건이다. 삼성의 창업주 이병철도 큰아들 이맹희 대신 3남인 이건희에게 그룹을 물려주었고, 최근 이맹희 측이 재산분할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소송을 제기하였다. 모범적인 형제애로 재산분쟁이 없다고 하던 두산도 2005년 전 회장 박용오의 내부고발도 3세들의 재산다툼이 원인이었다.SK도 현재 최종건 자녀들이 계열분리를 진행 중이지만 양측이 원만하게 합의하지는 못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LG가 GS, LS 등으로 조용하게 재산분할을 한 것은 불가사의하다고 볼 수 있다.◇ 정치적 영향력으로부터 몸부림SK의 최태원 회장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사위이다. SK가 급격하게 성장한 배경에는 대규모 M&A를 통한 사업다각화이다. 특히 유공, 한국이동통신 등 두 번의 인수는 특혜라고 봐도 지나치지 않다. 특혜로 성장했지만, 걸림돌도 정치적 처신이라고 본다.2012년 2월에 인수한 하이닉스도 최태원 회장 형제가 검찰의 수사를 받으면서 어쩔 수 없이 정권의 골치덩어리를 안았다는 소리를 듣는다. 아직 최태원 회장의 장인인 노태우 전 대통령이 살아 있기 때문에 그나마 정치적 영향을 덜 받는다고 하지만 다른 그룹에 비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정치바람을 타고 있다.그래도 그나마 정치바람에도 버티고 있는 것은 계열사별 독립경영과 사외이사 비율이 높은 점 때문이다. 먼저 계열사의 독립경영은 ‘따로 또 같이’라는 용어로 표현된다. ‘따로’는 계열사들이 BOD 중심으로 독립, 자율경영을 해서 자체적인 경쟁력을 확보한다.그리고 ‘같이’는 그룹 계열사끼리 브랜드를 공유하고 네트워크를 통해 시너지(synergy)를 낸다. SK가 이런 전략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최태원 회장이 나이가 어릴 뿐만 아니라 경영에 대한 경험이 부족해 나이 많은 공신들에게 권한을 위임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서 출발한다. 다음으로 사외이사 비율이 높은 것은 2003년 SK글로벌 사태 이후 투명경영을 통해 기업이미지를 제고하고, 주가를 관리하기 위해 선택한 것이다. 다른 그룹에 비해 투명경영을 실천하고 있는 SK는 사외이사 비율이 평균 60%수준으로 매우 높은 편이다.기업의 중요 안건에 대해서는 소위원회에서 사전심의를 하도록 하고, 소위원회 위원장은 100% 사외이사로 선임하는 정책을 취하고 있다. 정치권, 정부 등으로부터 외풍을 막을 수 있는 장치에 해당된다. SK텔레콤이 하이닉스를 인수할 당시에도 적극적인 반대의견을 제시하고 여론을 형성한 것이 사외이사들이다. SK는 앞으로도 사회적으로 명망을 가지고 있거나 정치적으로 영향력을 가진 인사를 위주로 사외이사를 영입해 정치적 외풍으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할 것으로 본다.기업을 정치권력으로 착취하는 정치권도 비난을 받아 마땅하지만, 그보다도 불법, 비윤리적인 행위로 공격의 빌미를 제공하는 오너도 나쁘기는 마찬가지다. 최태원 회장 본인은 억울하다고 항변하겠지만 기소된 2003년 글로벌 사태, 2011년 선물투자 사건도 본인의 잘못에서 비롯되었다. 정치적인 영향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려면 회장 본인이 먼저 투명경영, 윤리경영을 실천하고 국민적 지지를 획득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정치적 변화에 따라 수탈과 치욕을 당하게 되는 일을 반복해 경험하게 될 것이다.-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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