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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16현대백화점그룹(이하 현대백화점)은 1968년 설립한 경일육운이 그룹의 모태다. 1971년 상호를 금강개발산업으로 변경했으며, 1977년 현대쇼핑센터를 열었다.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의 3남 정몽근 명예회장이 1999년 현대그룹에서 계열 분리하여, 2000년 현대백화점으로 상호를 변경했다.2007년 장남 정지선이 그룹 회장, 2011년 차남 정교선이 부회장에 오르면서 본격적인 3세 경영에 돌입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향후 장남은 백화점 사업부문을, 차남은 홈쇼핑 및 식품사업을 가지고 독립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 현대백화점의 주요 계열사와 평가대상 기업현대백화점은 국내 40개의 계열사를 가지고 있으며, 주요계열사는 표1와 같이 유통, 식품, 관광/기타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표1. 현대백화점의 주요 계열사와 평가대상]유통부문 계열사는 ㈜현대백화점, 현대홈쇼핑, 현대HCN, 현대H&S 등이 있다. ㈜현대백화점은 2002년 옛 현대백화점의 백화점 사업부문을 인적 분할해 설립됐다. 전국 15개의 사업장을 보유하고 있다. 현대홈쇼핑은 2001년 설립됐으며, 방송채널 사용 및 홈쇼핑 프로그램의 제작, 공급, 도소매업을 영위하는 통신 판매업체다.현대HCN의 사업은 디지털 방송, 케이블방송, 초고속인터넷, 인터넷전화, 방송광고 등이다. 현대H&S는 2009년 현대그린푸드와 법인 분할해 설립했으며, 우산, 그릇, 대량선물, 행사용품, 금강산관광 등 상품종합 도매업을 한다. 기업의 매출규모∙이익 등을 고려해 ㈜현대백화점, 현대홈쇼핑을 평가했다.식품부문 계열사는 현대그린푸드가 있다. 현대그린푸드는 1968년 설립한 경일육운이 모태로 2006년 현대에이치앤에스를 거쳐, 2010년 현재의 상호로 변경했다.현대그린푸드의 연혁을 보면 1971년 금강개발산업으로 상호 변경, 1999년 현대그룹에서 계열 분리, 2000년 현대백화점으로 상호 변경, 2001년 호텔사업을 분할한 호텔현대, 2002년 백화점 사업부문을 인적 분할한 현대백화점, 기존 현대백화점은 현대백화점H&S로 상호를 변경했다.2006년 현대H&S로 상호를 변경, 여행사업부문은 물적 분할 후 현대드림투어로 상호를 변경했다. 현대비앤피는 일반상품, 의류패션, 금강산 영업부문을 분할해 2009년 설립했다. 매출 및 영업이익, 종업원수 등을 고려해 현대그린푸드를 평가했다.관광 및 기타부문 계열사는 현대드림투어, 리바트, 한섬 등이 있다. 현대드림투어는 2006년 현대에이치앤에스에서 여행사업부문을 물적분할해 설립했으며, 주로 일반 및 국외 여행사업을 영위하고 있다.리바트는 1999년 설립되었으며, 주방용, 음식점용 목재가구를 제조∙판매하고 있으며 최근 현대백화점의 계열사로 편입되었다. 한섬은 1987년 설립돼 여성정장을 제조 판매하고 있다. 이 부문에서는 주요 계열사가 없어 평가하지 않았다. ◇ 지식인, 창조인, 행동인, 학습인의 인재상 제시현대백화점은 고객의 행복과 풍요로운 미래를 만들기 위해 고객에게 가장 신뢰받는 기업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인재상은 지식인, 창조인, 행동인, 학습인이다. 지식인은 본인 업무에서 가치와 효율을 창조하는 인재를 말한다. 창조인은 도전정신과 창의력으로 미래를 창조하는 인재다. 행동인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끊임없이 혁신하는 인재다. 학습인은 지속적으로 배움을 추구하는 인재다.인재상과 더불어 조직구성원의 의사결정과 행동에 기준이 되는 핵심가치를 열정(Passion), 자율창의(Active Creation), 지속성장(Sustainable Growth), 업무혁신(Innovation), 고객지향(Customer Oriented), 상생추구(Good Neighbor)등 6가지를 제시하고 있다.현대백화점이 역사는 오래되었지만 체계적으로 운영되는 그룹으로 부상한지는 얼마 되지 않아 인재육성프로그램은 미비한 실정이다. 그룹계열사 중 가장 좋은 평가를 받은 현대홈쇼핑의 인재상과 및 인재양성 프로그램을 중점으로 다뤘다.현대홈쇼핑은 ‘고객에게 가장 신뢰받는 Global Home Shopping Leader’와 ‘변화와 혁신을 선도하는 Creator’ 육성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창의적 인재, 열정적 인재, 네트워크형 인재, 전문가형 인재, 강한 인재가 인재상이다.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프로그램으로 Role Course, Expert Course, Self Improvement, 그룹 공통교육 등이 있다. 역할별과정(Role Course)과정에는 직원의 직급별로 구분되어 있다. 임원과 팀장은 최고경영자 과정과 미래 CEO 포럼과정을 이수해야 한다. 책임과 선임은 MD Academy, CS 접점 체험 교육, E-Learning 직무교육, 역량강화 Power 동영상교육 등이 통해 양성된다.전문가과정(Expert Course)은 Exper교육, 사외직무위탁교육, 마케팅교육, CRM교육, 방송심의교육 과정으로 구성돼 있으며, 임원, 팀장, 책임, 선임 등이 대상이다. 자기계발(Self Improvement)과정은 사이버, 전화, 학원, 사내 Class를 통한 외국어 교육, 인문예술교육을 배우는Art & Culture, 한자교육, 바른 우리말 교육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그룹 공통교육 과정은 입사교육, 서비스아카데미, 선택/필수교육, 승진자 교육, 아침광장, 유통대학∙대학원 등이 있다. 또한 신입사원의 경우 Role Course와 Expert Course를 융합한 프로그램들로 구성해 입사교육과 OJL(On the Job Learning), 멘토링프로그램, 신입사원 간담회, Refreshment Program등을 운영해 글로벌 인재를 양성하고 있다.현대백화점의 인재양성프로그램은 유통전문기업으로서 현장 중심형 인재를 육성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유통기업이 인재에 대한 투자가 인색한데, 현대백화점도 직원의 잠재역량을 키워주기 보다는 실무에 투입하기 위한 목적에서 최소한의 교육을 하고 있다. ◇ 현대홈쇼핑이 구직자에게 가장 매력적인 기업임▲ 표2. 평가대상기업의 점수비교]현대백화점은 ㈜현대백화점을 기반으로 해 유통계열사를 늘려왔다. ㈜현대백화점은 롯데백화점, 신세계백화점 등과 경쟁에서 밀려나면서 백화점업계에서 존재감이 약해지고 있다. 백화점 시장이 정체되면서 아울렛, 할인점 등으로 진출해야 하지만 이미 롯데그룹, 신세계그룹, 이랜드그룹 등이 장악하고 있어 여의치 않다.현대홈쇼핑도 GS쇼핑, CJ쇼핑 등과 선두권에서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지만 현상유지에 머물고 있다. 홈쇼핑시장도 TV홈쇼핑은 정체되어 있지만, 인터넷쇼핑은 급성장하는 영역으로 전망이 밝다.현대그린푸드도 식자재 유통과 급식서비스가 주력사업으로 덩치를 키우고 있지만 대기업이 해야 하는 사업으로 적합한지에 대한 논란이 초래되고 있다. 현대백화점, CJ그룹, 롯데그룹, LG그룹 등이 식자재 유통업에 뛰어들면서 경쟁력이 약한 중소기업과 영세상인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박근혜정부가 출범하면서 경제민주화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면서 사업확장에 대한 부담감이 커지고 있다.구직자가 궁금해하는 평균근속연수와 급여를 보면 ㈜현대백화점은 7.0년에 평균급여 5,600만 원으로 유통업체로서는 높은 편이다. 현대홈쇼핑은 평균 근속연수 7.8년에 평균급여 6,400만원으로 매우 높은 편이다.현대그린푸드는 평균근속연수 5.0년에 평균급여 3,800만원으로 낮다. 현대그린푸드는 식재재사업부, 푸드서비스, 유통사업부 등 사업부별로 차이가 있으나, 여성은 남성에 비해 급여가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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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그룹(이하 현대) 사옥에서 전 회장인 정몽헌의 사망 10주기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정몽헌 회장은 아버지인 정주영 회장이 추진하던 대북사업을 이어 받았지만, 2003년 대북송금 문제로 검찰에서 조사를 받던 중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998년 형인 정몽구 회장과 공동으로 현대 회장으로 취임하고 2001년 형제의 난으로 그룹을 장악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일어난 사건이었다.현대는 2000년 왕자의 난, 2003년 숙부의 난, 2006년 시동생의 난 등 다양한 분쟁을 겪었고 현재도 이 갈등은 지속 중으로 언제 중단될지 미지수다. ◇ 왕자의 난과 그룹의 분할정주영 회장은 다른 재벌그룹과 달리 학력이나 집안의 배경도 없이 맨 몸으로 그룹을 일구었고, 강력한 카리스마를 갖고 있었다. 라이벌 그룹인 삼성그룹의 이병철 회장이 관리자형 리더십을 발휘한 것과 달리 정주영 회장은 현장형 리더십을 바탕으로 조직을 장악했다.정주영 회장은 자식을 많이 두면서 그룹의 승계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장남의 사망 이후 특별히 자신의 마음에 들었던 자식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자신이 사망하면 자식들이 재산싸움을 할 것이라는 것이 명확하게 보이는 상황에서 그가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그룹의 분할이었다. 각종 자료를 보면 정주영 회장은 자식들에게 계열사를 골고루 나눠 줄 생각을 가졌었다. 차남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현대자동차관련 기업, 3남 정몽근은 금강개발, 5남 정몽헌은 현대상선와 현대전자 등, 6남 정몽준은 현대중공업, 7남 정몽윤은 현대해상, 8남 정몽일은 현대종합개발금융 등을 맡길 생각이었다고 한다.장남과 4남은 사망해 개별 계열사를 물려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룹을 분할해 상속하겠다는 정주영 회장의 생각은 오히려 형제간의 분란만 키웠다.정주영 회장은 1998년 그룹 회장으로 정몽구와 정몽헌을 지명하며 공동회장 체제를 구축했다. 가장 경영능력이 있다고 판단한 두 아들에게 그룹경영에 대한 경험을 체득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고 보인다.2000년 불안정한 동거를 유지하던 정몽구 회장과 정몽헌 회장은 그룹의 인사권을 두고 대립을 한다. 정몽구 회장이 정몽헌 회장의 계열로 보이는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을 인사조치하자, 정몽헌 회장이 반발을 한 것이다. 소위 말하는 왕자의 난이 일어난 것이다. 한치의 양보도 없던 싸움은 의외로 싱겁게 끝났다. 살아있던 정주영 회장이 차남인 정몽구가 아니라 5남인 정몽헌의 편을 든 것이다. 정몽헌 회장이 아버지의 뜻이라며 공동 회장인 정몽구 회장을 면직시켰다.정몽구 회장이 강력하게 반발했지만 정주영 회장은 오히려 자신과 정몽구, 정몽헌 3부자 동반퇴진이라는 카드를 제시했다. 정몽구 회장은 아버지의 제안을 거절하고 현대자동차 관련 기업들을 이끌고 그룹을 떠났다. 2001년 정주영 회장이 사망한 후 정몽준의 현대중공업도 현대에서 분리되었다. 정주영 회장이 평생을 일군 현대는 사분오열(四分五裂)되었다. 현대는 현정은 회장이 이끌고 있는 현대, 정몽구 회장의 현대기아자동차그룹, 정몽근 회장의 현대백화점그룹, 정몽준 의원의 현대중공업그룹, 정몽윤 회장의 현대해상화재보험그룹 등으로 분리되었다.개별 그룹들이 분리된 이후 각개약진으로 성장을 했지만 현대기아자동차그룹과 현대중공업그룹을 제외하면 존재감이 미약해 진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왜 정몽헌 회장에게 그룹을 넘겼을까정주영 회장은 왜 차남이지만 실질적인 장남역할을 하고 있던 정몽구 대신에 5남인 정몽헌에게 그룹을 넘길 결심을 했을까?정몽헌 회장을 평가하는 사람들은 그가 머리회전도 빨랐고, 지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어 정주영 회장이 총애했다고 말한다. 낮은 학력의 막 노동자로 그룹을 일군 정주영 회장의 입장에서는 학벌과 머리가 좋은 자식이 그룹을 잘 관리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 사람은 항상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부러워하게 마련이다. 삼성그룹이나 대우그룹 등의 창업자나 후계자들이 화려한 학력을 가진 것을 부러워했을 수도 있다. 정주영 회장이 대학을 나오고 공부를 많이 한 참모들과 토론을 하면서 학벌과 지식의 중요성도 느꼈다고 볼 수 있다.자신은 무작정 부딪히고 난관을 돌파하면서 현대를 키웠지만, 기업환경이 변화하면서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기업의 성장에 필요한 능력과 이미 성장해 대규모 기업집단이 된 기업을 관리하는 능력은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정몽헌 회장이 다른 자식들과 비교하면 외관상 지적으로 보이는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그는 지적이다는 평가와 우유부단했다는 평가를 동시에 받고 있다. 아버지 정주영 회장과는 정반대의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정주영 회장의 입장에서 자신과 상반된 캐릭터를 가진 정몽헌 회장이 현대를 잘 관리하고 유지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겠지만 현대는 이미 무모하다는 평가를 받는 정주영 회장의 현장형 리더십에 익숙한 상황이었다. 정몽헌 회장이 야생마처럼 길들여진 현대를 이끌어 가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결국 본인이 회장이 된 이후 현대는 몰락의 길을 걸었다. 정주영 회장과 함께 현대를 일군 가신과 참모들도 하나 둘씩 현대를 떠났고, 자신이 목숨처럼 여겼다고 하던 계열사들도 부실화되면서 채권단에 넘어갔다.2000년 5월 현대건설이 자금난을 이기지 못하고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2001년 현대전자도 LG반도체를 인수하면서 안은 부채를 견디지 못하고 채권단의 손으로 넘어갔다.현대종합상사, 현대투자신탁, 현대정유 등도 자금난을 견디지 못하고 현대의 품을 떠났다. 현대건설은 현대의 핵심계열사로 자존심이었고, 현대전자는 정몽헌 회장 본인이 1992년 주도적으로 설립한 회사로 단기간에 반도체 강자로 등극시켰던 기업이다.현대건설과 현대전자가 법정관리에 들어가게 된 것은 현대를 압박하기 위한 정권차원의 압력이었다는 의혹이 일었지만 부채관리에 실패한 것이 결정적인 요인이다. 일련의 사태를 계기로 대마불사(大馬不死)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무모한 차입경영의 시대가 종언을 고했다. 형인 정몽구 회장을 제치고 그룹의 승계자가 되었지만 정작 정몽헌 회장 본인의 인생은 행복하지 않았다. 본인의 피와 땀이 배인 핵심 계열사가 줄줄이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아버지의 유업을 이어받아 추진하던 대북사업은 현대의 정상화에 걸림돌이 되었다.역사서 만약이라는 말은 없지만, 만약 정몽구 회장이 현대를 물려 받고, 정몽헌 회장은 일부 계열사를 맡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현대가 분할되지 않고, 형제들도 재산싸움을 하지 않고 사이 좋게 잘 지내고 있을까? 정주영 회장은 2남인 정몽구 회장보다는 5남인 정몽헌 회장이 공룡화된 현대를 이끌 적임자로 본 것은 리더십의 변화를 원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는 현장형 리더십으로 기업을 경영하는 산업화 시대가 끝났고, 21세기 정보화시대에는 세심한 관리와 직관이 중요해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거침없이 성장하면서 한국경제를 지배하던 현대의 신화가 정보화시대가 도래하면서 퇴색된 것도 우연이 아니다. 현대가 새롭게 변신할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는 정몽헌 회장의 사망으로 사라졌다. ◇ 현정은 회장 체제는 잘 굴러가고 있는 것일까현대는 정몽헌 회장의 사후 그의 아내인 현정은을 회장으로 추대했다. 정몽헌 회장이 형제들과 승계분쟁을 거치면서 감정의 골이 깊어졌기 때문에 형제들이 전면에 나설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하지만 가정주부로 살던 사람이 갑자기 대기업의 회장으로 경영에 참여한다는 결정은 의외로 받아들여졌다. 특히 현대의 주력사업인 대북사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상황에서 과연 현정은 회장이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남편의 뒤를 이어 현대를 이끌게 된 현정은 회장에게 도전과 시련이 끊이지 않았다. 범 현대가 그룹의 적통을 이어받은 현대를 현씨에게 넘겨줄 수 없다는 절박감이 투영된 것이다.첫 번째 도전은 2003년 정주영 회장의 동생인 정상영 회장이 이끄는 KCC그룹이 현대의 지주회사역할을 하고 있는 현대엘리베이터의 경영권에 도전한 것이다.2006년에는 정몽준 의원이 이끌고 있는 현대중공업그룹이 현대의 핵심계열사인 현대상선의 경영권을 가져가기 위해 돌진했다. 이어 2008년에는 현대중공업그룹과 2010년에는 현대차그룹과 법정관리 중이던 현대건설을 인수하기 위해 전쟁을 벌였다. 현대가 현대엘리베이터와 현대상선은 어렵게 지켰지만, 현대건설은 현대차그룹에게 인수됐다. 현대엘리베이터는 부실계열사를 지원하기 위한 잘못된 의사결정 때문에 경영권 분쟁에 휘말렸고 아직도 분쟁은 진행 중이다.현대상선은 실적이 개선되지 않아 현대가 경영권을 유지할 지 의문이다. 핵심계열사인 현대아산은 대북사업이 좌초되면서 수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현정은 회장체제 10년을 평가한다면 부정적이다. 가정주부가 하루아침에 대기업의 회장이 되면서 나름 선방했다고 볼 수 있지만, 지속적으로 악화되는 경영은 정상화시키지 못했다.현정은 회장이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고군분투(孤軍奮鬪)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지만 결과를 좋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현정은 회장이 현대의 화려한 과거를 재현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한다.-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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