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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그룹(이하 현대차)은 2000년 현대그룹(이하 현대)의 분쟁과 분할로 인해 탄생한 자동차관련 기업이었지만, 전형적인 국내 대기업의 성장전략에 따라 문어발식 확장으로 전문성이 결여된 복합그룹이다.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와 모비스 등 자동차 계열사, 현대엠코, 현대건설 등 건설계열사,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 등 금융계열사, 야구구단, 서산농장 등 약 70여 개의 계열사를 가지고 있다. 정몽구 회장은 일명 ‘왕자의 난’으로 밀려났지만 정주영 회장의 장자로서 그룹의 정통성을 현대건설인수로 잇고자 했고, 표면적으로 성공한 것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 정주영 회장의 정치적 저항과 좌절대한민국의 재벌사에 빠지지 않는 것이 권력과의 유착이다. 박정희 정부가 경제개발을 추진하면서 효율성이 높은 재벌에게 특혜를 부여했고, 재벌은 개발이익을 정치권에 제공하는 정경유착의 고리를 훌륭하게 만들었다.국내 재벌은 정치와 유착하지 못하면 기업경영이 어렵고, 유착하면 기업경영이 소위 말하는 ‘땅 짚고 헤엄치기’식이라는 사실을 일찍 깨달았다. 미 군정의 식산자산 불하나 전후 미군의 원조물자 배급이나 매입은 재벌에 대한 정치적 특혜의 출발점이었고, 한국재벌의 기반을 제공했다. 정주영은 정치권과의 유착관계를 공고히 하기 위해 아들 정몽준을 국회의원으로 만들었다. 대통령 선거 때마다 단골 후보로 거론되는 정몽준 의원은 재벌의 아들이라는 것이 후광이자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하고 있다.아들을 국회의원으로 만들어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한 정주영 회장은 1992년 통일국민당을 창당해 대통령 후보로 입후보했다. 3당 합당을 한 김영삼이 대통령으로 당선됐지만, 자금력을 기반으로 한 통일국민당도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부상하는 계기가 됐다.대통령 후보로 선거에 나서고, 정치활동을 벌인 대가로 정치적 탄압은 예정돼 있었다. 세무조사를 받고 어려움을 겪었지만 정치와 거리를 둔 덕분에 YS정부를 잘 넘길 수 있었다.외환위기를 극복하고 남북긴장상태를 해소하기 원하는 DJ정부의 의도를 알아차린 정주영 회장이 대북사업을 야심 차게 벌였다. 1998년 자신이 키운 소를 몰고 방북을 하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1999년 대북사업을 벌이기 위해 현대아산을 설립해 금강산관광, 개성공단 등의 사업을 벌였지만 사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현대의 대북사업은 남북대화의 돌파구를 마련하고 싶은 DJ정부의 정치적 목적과 현대건설의 사업거리를 확보하고자 했던 현대그룹의 의욕이 합쳐진 성과물이다.DJ는 대북사업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았지만, 현대는 기업이 풍비박산(風飛雹散) 났다. 아직 현대아산이 대북사업을 총괄하고 있지만 MB정부 들어 남북긴장이 고조되면서 개점 휴업상태다.진보계열의 후보가 2012년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었다면 대북사업의 돌파구가 마련되었겠지만, 보수진영의 후보가 당선되면서 이 희망마저 물거품이 됐다. 정주영 회장의 마지막 작품인 대북사업은 장기적으로 남북통일의 주춧돌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을지 모르지만 사업적으로 철저히 실패한 프로젝트라고 볼 수 있다.◇ 후계구도의 혼란에 따른 왕자의 난 등 갈등의 연속2000년 현대의 기반을 흔든 소위 말하는 ‘왕자의 난’이 발생했다. 정몽헌 회장의 측근이 현대자동차의 회장으로 발령받으면서 시작됐다. 정몽구 그룹 공동회장은 정몽헌 회장의 측근인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을 고려산업개발로 전보 조치하면서 정몽헌 회장이 반발했다. 이익치 회장은 정주영 회장의 비서이자, 정몽헌 회장의 후견인 역할을 하던 인물이었다.인사권행사로 대립하던 형제간의 분란은 정주영 회장이 정몽헌 회장을 그룹의 후계자로 지목하면서 종료됐다. 정몽구 회장은 아버지 정주영의 결정에 반발했고, 현대자동차를 갖고 독립했다. 이후 현대는 2번의 경영권 분쟁이 발생했다. 2003년 정몽헌 회장이 사망하자 부인 현정은 회장과 정상영 KCC 명예회장이 그룹경영권을 차지하기 위한 ‘시숙의 난’이 발생했다. 현정은 회장이 그룹의 경영권을 이어 받았지만 주력인 대북사업이 침체를 거듭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06년에 정몽준 의원이 대주주인 현대중공업그룹이 현대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는 현대상성의 지분을 매입하면서 ‘시동생의 난’이 일어났다. 왕자의 난과는 달리 시숙의 난과 시동생의 난은 발생배경이 다르다. 정몽헌 회장의 사후 현정은 회장이 경영을 총괄하자 정씨의 입장에서 현씨가 현대의 정통성을 잇고 있는 현대를 경영한다는 자체에 거부감을 갖게 된 것이다.재산분쟁의 배경에는 현대가 정주영 개인의 업적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주영 회장의 형제, 자식들 모두가 그룹을 성장시키는데 일생을 바쳤기 때문이다. 서로 기여분을 정확하게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지분을 요구할 경우 분쟁조정이 어렵다. 정주영 회장의 동생인 정세영씨도 30여 년 동안 현대자동차 경영을 책임졌지만, 형의 말 한마디에 조카인 정몽구 회장에게 넘겨줬다. 현대차의 정몽구 회장은 1978년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특혜분양사건으로 아버지 정주영 대신 사법처벌을 받았다.2000년 왕자의 난 당시에 아버지가 3부자 퇴진론을 발표했을 때 강력하게 반발한 이유도 자신도 현대의 성과에 충분히 기여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장자상속이 일반적인 사회분위기라는 점도 정몽구 회장이 강력하게 항의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이제는 표면적으로 재산갈등이 나타나고 있지 않지만 언제 촉발될지 알 수가 없다. 적자라고 불리던 현대는 현대상선과 현대아산의 실적부진으로 침체일로를 걷고 있고, 서자취급을 받던 현대차와 현대중공업그룹은 승승장구(乘勝長驅)를 하고 있어 갈등의 여지가 남아 있다.현대가 정상적으로 경영실적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자발적인 M&A를 당할 가능성이 높다. 최근 현대차가 정주영 회장의 업적을 홍보하기 위한 사이트를 개설하고, 현대중공업그룹이 광고에 정주영 회장을 자주 활용하는 것도 전부 이유가 있다고 봐야 한다.◇ 정몽구 회장의 불도저식 경영의 한계에 봉착현대그룹의 창업자인 정주영 회장은 저돌적이면서 열정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런 그의 성격에 적합한 업종이 자동차산업과 건설업이었다.1946년 현대자동차공업사, 1947년 현대토건사를 설립했다. 두 기업이 합병돼 현대건설이 되었고, 현대의 모기업으로 역할을 했다. 정주영 회장이 후계자로 장가가 아닌 정몽헌 회장을 지목한 것은 자신과 달리 합리적이고 재물에 대한 욕심이 적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정주영 회장의 외양이나 성향을 가장 많이 닮은 자식은 장자인 정몽구 회장이다. 정몽구 회장도 열정적이고 저돌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전직 현대차의 직원들의 증언에 따르면 정몽구 회장의 업무추진이나 인사는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다고 한다.글로비스 비자금을 수사가 정몽구 회장의 구속까지 이어진 것도 내부고발로 구체적인 물증이 발각되었기 때문이다. 정몽구 회장의 인사에 불만을 품고 떠난 직원들이 수사기관에 비자금과 관련 서류가 보관된 비밀금고 위치와 비밀번호의 제보가 결정적이었다.그저 그런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를 이끌고, 글로벌 자동차그룹으로 성장시킨 것이 정몽구 회장의 뚝심, 불도저 경영이라는 주장을 하는 전문가도 있다.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들이 보수경영을 하던 사이 공격적인 설비투자로 시장점유율을 획기적으로 높인 것은 높이 살 만하다. 해외수출이 살 길이라고 생각하고 미국, 유럽, 중국 등지에 공장을 늘리는 노력을 통해 글로벌 Top 3에 진입할 목표를 세웠지만 달성은 하지 못했다. 과감한 설비투자로 공격경영을 했지만 국내시장마저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의 아성이 흔들리고 있다. 국내 소비자를 홀대하고, 연비조작 의혹을 받으면서 수입차 업체들이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해외시장도 미국 시장에서 대규모 리콜사태로 주춤하던 일본 업체들이 공격적인 영업을 하면서 점유율이 떨어지고 있다.정몽구 회장이 극찬했다던 기아차의 신차도 판매량이 저조하다. 고급 이미지를 가진 수입차에 대항하기 위해 개발한 K9은 판매가 부진하자 가격을 내리고 있지만 판매가 늘지는 않고 있다. 정몽구 식의 독불경영, 불도저 경영은 산업화시대에 한계점에 도달한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정주영 회장도 말년에 독불경영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자신이 물러나면 그룹회장이라는 명칭부터 없어질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정주영 회장 사후 10여 년이 흘렀지만 현대차는 여전히 회장 1인의 독단경영체제가 유지되고 있다. 수천 억 원의 개발비를 투입하고, 회장이 극찬했다던 신차가 목표량의 10%도 판매되지 않는다는 것은 의사결정과정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회장 주변에 ‘예스맨’들만 득실거리고, 회장의 판단능력에 문제가 있지 않는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현대차가 회장 1인의 직관과 판단만으로 끌고 갈 수 있을 정도로 사업구조가 단순하지 않고, 외부환경도 복잡하다. 경영자의 자질은 사업방향을 읽을 수 있느냐로 평가할 수 있는데, 시장 트렌드를 파악하지 못하면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다. 외형적인 과거 실적에 너무 매몰되면 미래를 준비할 수 없다.-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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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07과거 현대그룹에 속했다가 분리된 현대자동차그룹, 현대중공업그룹, 새로운 현대그룹(이하 현대그룹)을 범현대가 그룹으로 통칭한다. 현대그룹은 한때 국내 최고 재벌그룹으로 명성이 자자했지만 창업자인 정주영 회장의 사망 이후 후계승계 문제가 발생해 그룹이 분할되면서 퇴색되고 있다. 삼성이 과감한 혁신과 IT산업열풍을 활용해 급격하게 성장할 때 현대차와 현대중공업은 약진했고, 현대는 침몰했다.실제로는 사업이 너무 다른 그룹을 과거 현대그룹이라는 한 뿌리에서 나왔다고 범현대가로 부르는 것 자체가 모순일지도 모르지만 기업문화가 유사하기 때문에 무리가 없다고 판단된다. 현대차는 자동차산업의 활성, 제철산업의 진출로 재계 서열 2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현대중공업도 롯데에 이어 6위를 달리고 있다. 현대상선을 주축으로 하며 그룹의 정통성을 이어 받은 현대는 존립자체도 어려울 정도로 위축되어 있다. ◇ 현대자동차그룹 현대중공업그룹, 현대그룹 등 3개 그룹을 통합범현대가의 계열사를 표39과 같이 현대자동차그룹, 현대중공업그룹, 현대그룹으로 구분할 수 있다.▲ 표1. 범현대가그룹의 주요 계열사 먼저 범현대가의 맏형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현대차그룹은 완성차, 철강, 건설, 부품, 금융, 기타로 사업을 구분할 수 있다. 자동차에 특화되어 있었지만 자동차산업의 호황으로 계열사를 많이 늘렸다. 완성차 부문은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가 있고, 철강은 현대제철, 현대하이스코, 현대비앤지스틸이 있다.건설부문은 현대건설, 현대엔지니어링, 현대엠코, 현대스틸산업, 현대종합설계, 현대도시개발 등이다. 현대엠코를 갖고 있었지만, 현대그룹의 정통성을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법정관리를 받던 현대건설을 인수했다.부품 부문은 현대모비스, 현대위아, 현대파워텍, 현대다이모스, 현대케피코, 현대오트론, 현대엠엔소프트, 현대위스코, 현대엠시트, 현대메티아, 현대아이에이치엘, 현대파텍스 등의 계열사가 해당된다.현대 모비스도 매출이나 수익률 측면에서 괜찮은 회사이기는 하지만 실제 기술력을 가지고 있다기보다는 현대차의 부품을 조달하는 중간자 역할을 하고 있어 평가하지 않았다. 1, 2차 부품협력업체들이 직접 완성차에 납품하던 것을 모비스가 중간에서 납품 받아 모듈로 조립해 납품하면서 매출과 이익을 늘리고 있다.금융부문은 현대캐피탈, 현대카드, 현대커머셜, HMC투자증권, 현대라이프 등이다. 자동차판매에 필수적인 금융기업을 보유하고 있다. 기타 부문으로 현대글로비스, 현대로템, 이노션, 해비치호텔&리조트, 현대오토에버, 현대엔지비, 현대씨엔아이, 현대서산농장 등이 있다.현대글로비스는 완성된 차량을 대리점이나 고객에 배송하는 하는 단순업무를 하지만 지주회사역할을 하면서 주목을 받고 있지만 차량물류기업에 불과하다. 현대로템은 철도차량을 제작하는 기업이다. 현대차가 최근 10여 년 동안 사업영역을 과감하게 확장하고 있어 향후 행보도 주목된다.다음 현대중공업 그룹은 현대중공업, 현대삼호중공업, 현대미포조선, 하이투자증권, 현대기업금융대부, 현대종합상사, 현대오일뱅크 등의 계열사를 갖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조선과 플랜트 구조물을 제작하는 기업으로 그룹의 핵심기업이다. 현대삼호중공업은 경영난을 겪은 한라그룹에 속했던 기업을 인수한 것이다.에너지 전문기업인 현대오일뱅크도 현대중공업그룹 관련 계열사다. 불황을 모르고 거침없이 성장하던 현대중공업이 사상 최초로 명예퇴직을 받으면서 본격적인 구조조정에 들어간 것이 아닌지 의심을 받고 있다. 세계적인 불경기와 중국업체의 약진으로 국내조선과 플랜트산업 자체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을 투영하고 있다.마지막으로 현대그룹은 현대상선, 현대증권, 현대엘리베이터, 현대로지스틱스, 현대아산, 현대유엔아이, 현대경제연구원, 현대투자네트워크, 현대자산운용, 현대저축은행 등이다. 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는 현대상선은 경기불황으로 인한 물동량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세계 해운업 자체가 극심한 경영난을 겪고 있어 현대상선만의 문제가 아니지만 당분간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점에서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현대아산은 대북사업을 주도했지만 MB정부 들어 남북긴장관계가 조성되면서 경영난이 가중되었다. 현대그룹의 계열사 중 경영이 호전되거나 이익을 창출할 만한 여력이 남은 기업이 없다는 점이 고민거리다.범현대가그룹 중에서 위대한 직장의 요건을 갖췄는지 여부를 평가할 만한 계열사를 찾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한때 재계 부동의 1위 그룹으로서 위상을 갖고 있었고, 브랜드 인지도도 삼성 못지않게 높은 기업으로 구직자의 선호도가 낮지 않은 점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최소한 구직자가 관심을 가질 정도의 요건을 갖췄는지를 평가한 후 6개 계열사만 선정했다.현대자동차그룹에서는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현대제철, 현대건설 등 4개 계열사, 현대중공업그룹은 현대중공업, 현대그룹은 현대상선을 대상으로 선택했다. 다른 기업들은 선정된 기업들과 직∙간접적으로 지분이나 사업관계로 엮여 있어 독립성이 약하다는 점도 평가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은 이유다. 현대모비스도 급여나 이익측면에서 초우량기업으로 평가할 수 있으나 기술경쟁력, 사업구조 등에서 부족한 점이 많아 평가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 현대차, 현대중공업 등은 연구개발 & 엔지니어 직무에 유리▲ 표 2. 평가대상 기업의 성취도 비교 범현대가그룹의 평가 대상 6개 기업 중 가장 우량기업으로는 현대자동차, 다음으로 현대건설, 현대중공업, 기아자동차, 현대제철, 현대상선 순이었다. 현대자동차는 현재 대한민국의 수출을 이끌고 있는 3대 산업, 즉 차화정(자동차, 화학, 정유)에 포함돼 있다.현대자동차는 값싼 자동차로 미국 시장에 진출한 이후 품질문제로 고전을 하다가, 2000년대 들어 일본업체들이 엔고로 주춤하는 사이 가격경쟁력을 바탕으로 재도약하고 있다. 수출다변화를 위해 유럽, 러시아, 중국, 인도, 중남미 등의 시장개척을 하고 있다. 2013년은 국내시장에서 국내소비자 역차별, 품질문제, 글로벌 재정위기로 인해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하지만 여전히 글로벌 경쟁력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미래전망이 어둡지는 않다.현대건설도 현대그룹 위기 이후 주인 없이 떠돌아 다니다가 현대차그룹에 인수됐지만 국내대표적인 건설업체로 인지도가 높고, 해외사업부문도 경쟁력을 갖고 있는 점이 높이 평가됐다. 국내건설산업이 사양길에 접어들었고, 단순 토목위주의 사업구조로는 성장의 한계가 있다. 하지만 건설 관련학과 출신들에게는 취업을 위한 다른 대안을 찾기 어려워 건설업체 중에서 선택을 한다면 가장 좋은 기업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현대중공업도 다수의 관련 기업으로 구성됐지만 조선, 플랜트 등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았다. 다만 조선업이 불황으로 접어들었고, 현대중공업이 창사 이해 처음으로 구조조정을 했을 정도로 미래전망이 밝지 않다는 점을 감안했다.현대상선은 현대그룹의 적통을 이어 받았고, 대북사업을 주도해 인지도는 높지만 해운업의 부진, 대북사업으로 인한 손실, 명확한 리더십의 부재 등으로 앞길이 험난해 과거의 명성을 회복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범현대가그룹도 관련 계열사의 숫자에 비해 구직자에게 우량기업이나 초우량기업으로 평가 받을 수 있는 기업이 많지 않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었다.-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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