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디아스포라] 25. 북한이탈주민 현황과 이슈 ... 1990년대 초반부터 외교관 등 공무원의 탈북 급증
북한 여성 탈북자가 많은 이유와 인권 침해... 중국에서 매춘과 인신매매의 희생양으로 전락
북한 김일성은 남북분단의 책임을 남한에 전가하고 한반도의 정통성을 계승하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다. 1948년 8월 15일 남한 단독 정부가 수립된 이후 불과 1달도 되지 않아 동년 9월 9일 북한 정권을 수립한다.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북한의 경제가 남한에 비해 앞서 있었다. 컬러 TV도 북한이 먼저 개발했을 정도다. 일본의 재일동포가 남한이 아니라 북한을 고국으로 선택하고 북송선을 탄 것도 비슷한 이유다.
하지만 폐쇄적인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허구성은 1980년대 들어서며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1985년 소련 공산당 서기장으로 취임한 미하일 고르바초프(Mikhail Gorbachev) 개혁개방 정책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1978년 개혁개방 정책을 도입한 중국에 비해서 늦었지만 사회주의 종주국인 소련마저 이념을 포기하자 북한 정권은 큰 충격을 받았다. 북한이탈주민이 급증하게 된 배경을 알아보자.
▲ 북한을 건국하고 지배한 김일성 사진 [출처=위키피디아]i
◇ 북한 이탈주민의 증가... 1990년대 초반부터 외교관 등 공무원의 탈북 급증
1980년대 들어 북한의 경제도 침체의 늪에 빠져들었다. 소련마저 시장경제를 도입하고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촉진하기 위해 노력했을 정도다.
소련의 글라스노스트(glasnost)와 페레스토이카(perestroika)는 정치체제를 바꾸고 경제를 살리기 위한 목적이었지만 공산당 내 보수파의 반발과 정책 수행의 부실로 실패했다.
1987년 2월 8일 어선을 타고 북한을 탈출한 김만철씨 일가족이 ‘따뜻한 남쪽 나라로 가고 싶다’며 한국 땅에 도착했다. 이들이 동년 1월 20일 일본 후쿠이(福井)현 니쿠니((三國))항에 닻을 내린 지 24일 만이다.
탈북자는 11세 어린이부터 68세까지 11명으로 625 전쟁 이후 사상 최초의 집단 탈북으로 기록됐다.
당시 전두환 정부는 남한 체제의 우월성을 과시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판단해 이들의 한국행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김만철씨 일행은 일본 조사관에 망명지로 ‘따뜻한 남쪽 나라’라고만 지칭했을 뿐 남한을 지목하지는 않았다. 남한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김만철씨 가족의 탈북 이후 1990년대 초반부터 외교관, 군 고위직, 의사, 교수, 학자 등의 남한행이 증가했다. 일반 주민에 비해 상대적으로 좋은 대우를 받는 엘리트의 정치적 망명은 북한 체제의 허구성이 명백하게 드러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북한이탈주민은 200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해 2003년부터 2011년까지 연평균 2000~3000명을 유지했으나 2011년 이후 대폭 감소했다. 하지만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연간 1000명을 넘었을 정도로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2020년 2월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이 시작된 이후 2023년까지 통계를 집계한 이후 가장 적었다. 북한 정부는 중국이나 러시아로부터 코로나바이러스가 유입될 것을 우려해 국경을 전면적으로 폐쇄했다. 평양에 파견 중인 외국 외교관의 이동조차도 통제했다.
또한 북한 주민이 주로 탈북하는 중국의 사정도 나빠졌다. 중국 정부가 ‘제로 코로나’ 정책을 강력하게 펼치면서 이동 자체가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전염병을 차단하거나 치료할 백신을 개발하지 못해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이 어려웠던 것도 중국 정부의 선택을 제한했다.
탈북민이 가장 많은 동북 3성에서 라오스, 베트남, 태국 등으로 입국하는 남부 지역으로 가려면 코로나19에 감염되지 않았다는 건강진단서를 제출해야 한다. 불법 체류자 신분인 탈북민이 중국 당국으로부터 합법적인 건강진단서를 받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코로나19 대유행이 끝난 이후 봉쇄됐던 북중 국경선이 개방되고 중국 내 이동도 자유로워진 2023년 이후 탈북민이 늘어나고 있다. 2019년 이전 수준까지 회복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북한이 2024년 8월부터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러시아에 군수물자와 군인을 보내며 석유, 곡물 등 경제적 지원을 받고 있어 주민의 생활이 호전되고 있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북한 지도부의 급작스러운 붕괴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당분간 탈북민의 숫자가 크게 늘어날 가능성은 낮다. 탈북인은 정치적 고려보다 경제적 유인에 의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 한인 디아스포라-역사와 미래 표지 by 민진규 교수 [출처=엠아이앤뉴스]
◇ 북한 여성 탈북자가 많은 이유와 인권 침해... 중국에서 매춘과 인신매매의 희생양으로 전락
북한을 탈출하는 사람은 남성보다 여성의 비율이 매우 높은 편이다. 여성의 비중은 2002년 55%를 넘긴 이후 2019년 85.2%를 기록했을 정도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2021년 여성의 비율이 36.5%로 낮아졌지만 이후 꾸준히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2024년 말 기준 총 3만4314명의 북한이탈 주민이 한국으로 입국했으며 여성의 비율은 72.1%로 조사됐다.
남성보다 여성이 많은 이유는 북한 내부에서 여성의 이동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점, 탈북 이후 중국에서 높은 생존 가능성 등이 주요인으로 분석된다.
남성은 모두 군이나 직장에 소속돼 장기간 이탈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여성은 장마당이 활성화되면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이동이나 장기간 거주지를 이탈하는 것이 가능하다.
또한 여성은 탈북 이후 생존력에서 남성보다 월등하게 우월하다. 육로를 통해 북한 국경을 넘어서도 남성이 중국에서 생존하기란 쉽지 않다. 남자가 노동 현장에 취직하려면 언어가 필수적으로 요구되는데 중국어에 능통한 북한 남성은 많지 않다.
반면에 여성은 언어가 중요하지 않은 보통 매매혼이나 식당 등에 취업이 쉬워 살아남을 수 있다. 탈북 여성이 중국에서 생존을 위해 선택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 중국 남성과 결혼이다.
중국인 남편은 고령, 가난, 장애 등으로 중국인 여성이 결혼을 기피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결혼하고 살아도 정식으로 혼인 신고를 하지 않아 불법 체류자 신분이 유지된다.
중국인 남편은 결혼한 탈북 여성이 합법적인 신분을 얻으면 이혼을 요구하거나 도망갈 것이라고 우려한다. 북한 여성이 모성애가 강한 편이므로 출산을 서두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자녀가 생기면 이혼을 요구하거나 도주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중국 현지에 친척이나 동향인 등 연고가 없는 탈북 여성은 인신매매로 고통을 받기도 한다. 영국 민간단체 코리아미래계획(Korea Future Initiative)은 2018년 3월 수만 명의 탈북 여성이 중국에서 성노예로 인권을 유린당하고 있다는 보고서를 발간했다.
매매춘(prostitution), 사이버섹스(cybersex), 강제 결혼(foreced marriage) 등과 같은 성노예(sex slaves)로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존재에 대해 북한과 중국 정부 어느 쪽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북한은 조국을 버리고 떠난 배신자라고 보고 있으며 중국은 불법 체류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탈북 여성이 중국을 떠나 베트남, 캄보디아, 태국 등으로 이동해도 생존을 위해 성노예를 선택하기도 한다.
2019년 5월 9일 개최된 유엔 인권이사회에 참석한 북한 박광호 참사는 ‘인신매매란 공화국(북한)에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범죄행위로 공화국에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그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닐 수 있지만 북한이 탈북자의 상황을 부인하기 위해 내놓은 해명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북한에서는 인신매매가 없다고 해도 중국에서는 광범위한 사회 현상이다.
- 계속 -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북한의 경제가 남한에 비해 앞서 있었다. 컬러 TV도 북한이 먼저 개발했을 정도다. 일본의 재일동포가 남한이 아니라 북한을 고국으로 선택하고 북송선을 탄 것도 비슷한 이유다.
하지만 폐쇄적인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허구성은 1980년대 들어서며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1985년 소련 공산당 서기장으로 취임한 미하일 고르바초프(Mikhail Gorbachev) 개혁개방 정책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1978년 개혁개방 정책을 도입한 중국에 비해서 늦었지만 사회주의 종주국인 소련마저 이념을 포기하자 북한 정권은 큰 충격을 받았다. 북한이탈주민이 급증하게 된 배경을 알아보자.
▲ 북한을 건국하고 지배한 김일성 사진 [출처=위키피디아]i
◇ 북한 이탈주민의 증가... 1990년대 초반부터 외교관 등 공무원의 탈북 급증
1980년대 들어 북한의 경제도 침체의 늪에 빠져들었다. 소련마저 시장경제를 도입하고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촉진하기 위해 노력했을 정도다.
소련의 글라스노스트(glasnost)와 페레스토이카(perestroika)는 정치체제를 바꾸고 경제를 살리기 위한 목적이었지만 공산당 내 보수파의 반발과 정책 수행의 부실로 실패했다.
1987년 2월 8일 어선을 타고 북한을 탈출한 김만철씨 일가족이 ‘따뜻한 남쪽 나라로 가고 싶다’며 한국 땅에 도착했다. 이들이 동년 1월 20일 일본 후쿠이(福井)현 니쿠니((三國))항에 닻을 내린 지 24일 만이다.
탈북자는 11세 어린이부터 68세까지 11명으로 625 전쟁 이후 사상 최초의 집단 탈북으로 기록됐다.
당시 전두환 정부는 남한 체제의 우월성을 과시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판단해 이들의 한국행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김만철씨 일행은 일본 조사관에 망명지로 ‘따뜻한 남쪽 나라’라고만 지칭했을 뿐 남한을 지목하지는 않았다. 남한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김만철씨 가족의 탈북 이후 1990년대 초반부터 외교관, 군 고위직, 의사, 교수, 학자 등의 남한행이 증가했다. 일반 주민에 비해 상대적으로 좋은 대우를 받는 엘리트의 정치적 망명은 북한 체제의 허구성이 명백하게 드러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북한이탈주민은 200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해 2003년부터 2011년까지 연평균 2000~3000명을 유지했으나 2011년 이후 대폭 감소했다. 하지만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연간 1000명을 넘었을 정도로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2020년 2월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이 시작된 이후 2023년까지 통계를 집계한 이후 가장 적었다. 북한 정부는 중국이나 러시아로부터 코로나바이러스가 유입될 것을 우려해 국경을 전면적으로 폐쇄했다. 평양에 파견 중인 외국 외교관의 이동조차도 통제했다.
또한 북한 주민이 주로 탈북하는 중국의 사정도 나빠졌다. 중국 정부가 ‘제로 코로나’ 정책을 강력하게 펼치면서 이동 자체가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전염병을 차단하거나 치료할 백신을 개발하지 못해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이 어려웠던 것도 중국 정부의 선택을 제한했다.
탈북민이 가장 많은 동북 3성에서 라오스, 베트남, 태국 등으로 입국하는 남부 지역으로 가려면 코로나19에 감염되지 않았다는 건강진단서를 제출해야 한다. 불법 체류자 신분인 탈북민이 중국 당국으로부터 합법적인 건강진단서를 받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코로나19 대유행이 끝난 이후 봉쇄됐던 북중 국경선이 개방되고 중국 내 이동도 자유로워진 2023년 이후 탈북민이 늘어나고 있다. 2019년 이전 수준까지 회복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북한이 2024년 8월부터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러시아에 군수물자와 군인을 보내며 석유, 곡물 등 경제적 지원을 받고 있어 주민의 생활이 호전되고 있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북한 지도부의 급작스러운 붕괴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당분간 탈북민의 숫자가 크게 늘어날 가능성은 낮다. 탈북인은 정치적 고려보다 경제적 유인에 의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 한인 디아스포라-역사와 미래 표지 by 민진규 교수 [출처=엠아이앤뉴스]
◇ 북한 여성 탈북자가 많은 이유와 인권 침해... 중국에서 매춘과 인신매매의 희생양으로 전락
북한을 탈출하는 사람은 남성보다 여성의 비율이 매우 높은 편이다. 여성의 비중은 2002년 55%를 넘긴 이후 2019년 85.2%를 기록했을 정도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2021년 여성의 비율이 36.5%로 낮아졌지만 이후 꾸준히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2024년 말 기준 총 3만4314명의 북한이탈 주민이 한국으로 입국했으며 여성의 비율은 72.1%로 조사됐다.
남성보다 여성이 많은 이유는 북한 내부에서 여성의 이동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점, 탈북 이후 중국에서 높은 생존 가능성 등이 주요인으로 분석된다.
남성은 모두 군이나 직장에 소속돼 장기간 이탈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여성은 장마당이 활성화되면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이동이나 장기간 거주지를 이탈하는 것이 가능하다.
또한 여성은 탈북 이후 생존력에서 남성보다 월등하게 우월하다. 육로를 통해 북한 국경을 넘어서도 남성이 중국에서 생존하기란 쉽지 않다. 남자가 노동 현장에 취직하려면 언어가 필수적으로 요구되는데 중국어에 능통한 북한 남성은 많지 않다.
반면에 여성은 언어가 중요하지 않은 보통 매매혼이나 식당 등에 취업이 쉬워 살아남을 수 있다. 탈북 여성이 중국에서 생존을 위해 선택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 중국 남성과 결혼이다.
중국인 남편은 고령, 가난, 장애 등으로 중국인 여성이 결혼을 기피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결혼하고 살아도 정식으로 혼인 신고를 하지 않아 불법 체류자 신분이 유지된다.
중국인 남편은 결혼한 탈북 여성이 합법적인 신분을 얻으면 이혼을 요구하거나 도망갈 것이라고 우려한다. 북한 여성이 모성애가 강한 편이므로 출산을 서두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자녀가 생기면 이혼을 요구하거나 도주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중국 현지에 친척이나 동향인 등 연고가 없는 탈북 여성은 인신매매로 고통을 받기도 한다. 영국 민간단체 코리아미래계획(Korea Future Initiative)은 2018년 3월 수만 명의 탈북 여성이 중국에서 성노예로 인권을 유린당하고 있다는 보고서를 발간했다.
매매춘(prostitution), 사이버섹스(cybersex), 강제 결혼(foreced marriage) 등과 같은 성노예(sex slaves)로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존재에 대해 북한과 중국 정부 어느 쪽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북한은 조국을 버리고 떠난 배신자라고 보고 있으며 중국은 불법 체류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탈북 여성이 중국을 떠나 베트남, 캄보디아, 태국 등으로 이동해도 생존을 위해 성노예를 선택하기도 한다.
2019년 5월 9일 개최된 유엔 인권이사회에 참석한 북한 박광호 참사는 ‘인신매매란 공화국(북한)에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범죄행위로 공화국에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그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닐 수 있지만 북한이 탈북자의 상황을 부인하기 위해 내놓은 해명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북한에서는 인신매매가 없다고 해도 중국에서는 광범위한 사회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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