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기업문화 대전환] 63. 이건희 회장의 고민과 해결하지 못한 과제... 정경유착과 승계작업에 대한 논란 초래
아버지로부터 기반이 구축된 그룹 물려받아... 금융업에서 지배적 위치 놓쳐
2026년 들어 인공지능(AI)에 대한 열풍이 몰아치며 생성형 AI(Generative AI)와 피지컬 AI(Physical AI) 관련 기업의 실적이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반도체 제조업체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가장 핫(hot)한 기업이다. 매출액이 사상 최고치를 갱신하고 이익도 급등할 뿐만 아니라 공급이 주문을 소화하지 못할 정도다.
삼성전자는 1974년 한국반도체를 인수하며 반도체 산업에 뛰어들었다. 1983년 삼성 창업자인 이병철 회장은 반도체에 투자를 공식화했다. 중앙일보에 '우리는 왜 반도체 사업을 해야 하는가'라는 기고문을 실었다.
1987년 이병철 회장으로 사망 후 3남인 이건희는 그룹을 물려받았다.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선언과 신경영을 내세우며 기업문화 혁신을 위해 노력했다.
이건희 회장은 2020년 사망할 때까지 삼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노력했다. 경영 과정에서 다수의 흠결이 있었지만 현재 삼성그룹의 기반을 구축한 공(功)은 인정해줘야 한다.
▲ 1983년 삼성의 반도체 광고 이미지 [출처=삼성전자]
◇ 아버지로부터 기반이 구축된 그룹 물려받아... 금융업에서 지배적 위치 놓쳐
역술학자뿐만 아니라 일반인조차도 이건희 회장은 '하늘의 복을 타고 난 사람'이라고 말했다. 훌륭히 기반을 다진 기업을 아버지인 이병철 회장으로부터 물려받아 안정적인 성장이 가능햇다.
1980년대 후반의 한국은 아시안게임, 서울 올림픽 등으로 국제위상이 높아지던 시기다. 삼성전자의 가전이 해외에서 브랜드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계기로 작용했다.
국제 외부 환경요인 또한 유리하게 작용해 국내기업에 불과한 삼성을 단기간에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삼성의 광고판이 미국 뉴욕 한복판에 세워진 것도 이때다.
경영권 승계과정에서 형제들과 일부 불협화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큰 무리 없이 잘 정리했다. 평생 숙원이던 자동차 사업은 진출해 실패했지만 대부분의 사업은 잘 풀렸다.
아버지 이병철 회장 때부터 몇 번 시도했지만 좌절된,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불리는 ‘금융업’을 키우기 위해 노력했다. 삼성생명, 삼성화재, 삼성증권 등을 앞세웠지만 미완의 성공으로 끝났다.
삼성전자와 삼성전기 등 제조업체는 모두 원천 기술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삼성이 운영(operation) 혁신만으로 언제까지 제조기업으로 경쟁력을 유지할지 불투명하다고 판단했다.
이건희 회장은 제조업을 안정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투자, 여신, 증권, 보험 등을 통괄하는 종합금융업을 하고 싶어 했다고 한다.
삼성이 수출로 벌어들이는 막대한 규모의 달러와 비상장계열사의 상장으로 얻을 수 있는 차익을 동원한다면 단기간에 수십억 달러의 자금을 마련해 해외 금융시장의 주요 플레이어로 등극할 수 있다고 봤다.
하지만 금융업은 완성하지 못하고 끝났다. 금융업은 관리를 주축으로 하는 삼성의 기업문화에 적합하지 않았다. 보험과 증권시장에서 새로운 경쟁자가 나타나며 2류 기업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 김용철 변화사가 출간한 '삼성을 생각한다' 표지 [출처=사회평론]
◇ 정경유착과 승계작업에 대한 논란 초래.. 세대교체라는 막중한 과제도 해결하지 못해
사업적인 것과는 별도로 이건희 회장이 풀어야 할 남은 숙제는 자신과 영화를 함께 누린 가신(家臣)들을 교통정리해 이재용의 경영권 행사에 짐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는 현대그룹의 ‘왕자의 난’, SK그룹의 ‘ SK글로벌 사태’ 등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을 것으로 본다.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평범한 경구가 주는 말의 의미도 잘 알고 있었다.
자신과 수십 년을 동고동락(同苦同樂)한 가신을 토사구팽(兎死狗烹)이라 비난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정리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었다.
2005년 터진 안기부 X파일과 2008년 김용철 변호사의 내부고발 등으로 불명예스럽게 퇴진했다. 그룹을 이끌던 주요 가신도 동반퇴진하며 가신들의 영향력은 축소됐다.
검찰 등 권력기관에 뇌물을 제공한 안기부 X파일 사건은 독수독과(毒樹毒果) 논리를 내세워 돌파했다. 검찰과 사법부에 뿌린 뇌물과 인맥이 효과적으로 작동했다. 시민단체의 반발과 국민의 불신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김용철 변호사의 내부고발도 엄청난 역풍을 몰고왔지만 삼성공화국의 건재를 다시 확인하는 계기로 작용했을 뿐이다. 조직 내부에 팽배한 이기주의는 해소하지 못했다.
2010년 사면으로 경영 일선에 복귀해 세대교체를 주문하고 경영책임을 물어 가신을 정리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특정 파벌이 아니라 30~40대 청년층을 중용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했지만 성과는 미진했다.
2014년 쓰러질 대까지 세대교체를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지만 뚜렷한 족적(族籍)을 남기지는 못했다. ‘용인술이 뛰어나다’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세대교체라는 화두(話頭)를 풀지는 못했다.
이건희 회장이 와병하던 기간인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한 사건도 이례적이었다. 시민단체가 반발하고 검찰의 수사가 진행되며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논란까지 터졌다.
삼성은 박근혜정부의 최순실 사건에서도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다. 또한 이명박정부에서 대통령의 소송비용을 대납한 사건도 드러나며 정경유착에 대한 비판이 거세졌다.
2020년 6년 동안 뇌사상태에 있던 이건희 회장이 사망했다. 이미 승계의 방법이나 지분정리 등에 대한 합의가 있어 재산분쟁과 같은 큰 잡음은 없었다. 33년 동안 삼성을 호령하던 이건희 회장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 계속 -
국내에서는 반도체 제조업체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가장 핫(hot)한 기업이다. 매출액이 사상 최고치를 갱신하고 이익도 급등할 뿐만 아니라 공급이 주문을 소화하지 못할 정도다.
삼성전자는 1974년 한국반도체를 인수하며 반도체 산업에 뛰어들었다. 1983년 삼성 창업자인 이병철 회장은 반도체에 투자를 공식화했다. 중앙일보에 '우리는 왜 반도체 사업을 해야 하는가'라는 기고문을 실었다.
1987년 이병철 회장으로 사망 후 3남인 이건희는 그룹을 물려받았다.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선언과 신경영을 내세우며 기업문화 혁신을 위해 노력했다.
이건희 회장은 2020년 사망할 때까지 삼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노력했다. 경영 과정에서 다수의 흠결이 있었지만 현재 삼성그룹의 기반을 구축한 공(功)은 인정해줘야 한다.
▲ 1983년 삼성의 반도체 광고 이미지 [출처=삼성전자]
◇ 아버지로부터 기반이 구축된 그룹 물려받아... 금융업에서 지배적 위치 놓쳐
역술학자뿐만 아니라 일반인조차도 이건희 회장은 '하늘의 복을 타고 난 사람'이라고 말했다. 훌륭히 기반을 다진 기업을 아버지인 이병철 회장으로부터 물려받아 안정적인 성장이 가능햇다.
1980년대 후반의 한국은 아시안게임, 서울 올림픽 등으로 국제위상이 높아지던 시기다. 삼성전자의 가전이 해외에서 브랜드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계기로 작용했다.
국제 외부 환경요인 또한 유리하게 작용해 국내기업에 불과한 삼성을 단기간에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삼성의 광고판이 미국 뉴욕 한복판에 세워진 것도 이때다.
경영권 승계과정에서 형제들과 일부 불협화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큰 무리 없이 잘 정리했다. 평생 숙원이던 자동차 사업은 진출해 실패했지만 대부분의 사업은 잘 풀렸다.
아버지 이병철 회장 때부터 몇 번 시도했지만 좌절된,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불리는 ‘금융업’을 키우기 위해 노력했다. 삼성생명, 삼성화재, 삼성증권 등을 앞세웠지만 미완의 성공으로 끝났다.
삼성전자와 삼성전기 등 제조업체는 모두 원천 기술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삼성이 운영(operation) 혁신만으로 언제까지 제조기업으로 경쟁력을 유지할지 불투명하다고 판단했다.
이건희 회장은 제조업을 안정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투자, 여신, 증권, 보험 등을 통괄하는 종합금융업을 하고 싶어 했다고 한다.
삼성이 수출로 벌어들이는 막대한 규모의 달러와 비상장계열사의 상장으로 얻을 수 있는 차익을 동원한다면 단기간에 수십억 달러의 자금을 마련해 해외 금융시장의 주요 플레이어로 등극할 수 있다고 봤다.
하지만 금융업은 완성하지 못하고 끝났다. 금융업은 관리를 주축으로 하는 삼성의 기업문화에 적합하지 않았다. 보험과 증권시장에서 새로운 경쟁자가 나타나며 2류 기업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 김용철 변화사가 출간한 '삼성을 생각한다' 표지 [출처=사회평론]
◇ 정경유착과 승계작업에 대한 논란 초래.. 세대교체라는 막중한 과제도 해결하지 못해
사업적인 것과는 별도로 이건희 회장이 풀어야 할 남은 숙제는 자신과 영화를 함께 누린 가신(家臣)들을 교통정리해 이재용의 경영권 행사에 짐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는 현대그룹의 ‘왕자의 난’, SK그룹의 ‘ SK글로벌 사태’ 등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을 것으로 본다.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평범한 경구가 주는 말의 의미도 잘 알고 있었다.
자신과 수십 년을 동고동락(同苦同樂)한 가신을 토사구팽(兎死狗烹)이라 비난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정리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었다.
2005년 터진 안기부 X파일과 2008년 김용철 변호사의 내부고발 등으로 불명예스럽게 퇴진했다. 그룹을 이끌던 주요 가신도 동반퇴진하며 가신들의 영향력은 축소됐다.
검찰 등 권력기관에 뇌물을 제공한 안기부 X파일 사건은 독수독과(毒樹毒果) 논리를 내세워 돌파했다. 검찰과 사법부에 뿌린 뇌물과 인맥이 효과적으로 작동했다. 시민단체의 반발과 국민의 불신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김용철 변호사의 내부고발도 엄청난 역풍을 몰고왔지만 삼성공화국의 건재를 다시 확인하는 계기로 작용했을 뿐이다. 조직 내부에 팽배한 이기주의는 해소하지 못했다.
2010년 사면으로 경영 일선에 복귀해 세대교체를 주문하고 경영책임을 물어 가신을 정리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특정 파벌이 아니라 30~40대 청년층을 중용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했지만 성과는 미진했다.
2014년 쓰러질 대까지 세대교체를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지만 뚜렷한 족적(族籍)을 남기지는 못했다. ‘용인술이 뛰어나다’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세대교체라는 화두(話頭)를 풀지는 못했다.
이건희 회장이 와병하던 기간인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한 사건도 이례적이었다. 시민단체가 반발하고 검찰의 수사가 진행되며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논란까지 터졌다.
삼성은 박근혜정부의 최순실 사건에서도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다. 또한 이명박정부에서 대통령의 소송비용을 대납한 사건도 드러나며 정경유착에 대한 비판이 거세졌다.
2020년 6년 동안 뇌사상태에 있던 이건희 회장이 사망했다. 이미 승계의 방법이나 지분정리 등에 대한 합의가 있어 재산분쟁과 같은 큰 잡음은 없었다. 33년 동안 삼성을 호령하던 이건희 회장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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