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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4일 현재 세계 최대 항공기 제조업체인 보잉(Boeing)은 급여 인상을 요구하는 노조의 파업이 7주째 이어지며 경영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노사가 임금 38%를 인상하는 방안을 합의했지만 무산됐다.2024년 1월 알래스카 항공 소속 보잉 737 맥스(MAX)9 기종의 '도어 플러그(비상구 덮개)'가 이륙 직후 이탈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연방항공청(FAA)은 기체 결함에 대해 조사를 진행 중이다.기체 결함에 대한 내부고발이 다수 제기됐지만 부인하다가 대형 사고가 터졌다. 내부고발자와 진실 공방을 이어갔지만 추가 고발이 연이어 터지며 사면초가(四面楚歌)에 직면했다. 보잉의 내부고발을 분석해 보자.▲ 글로벌 항공기 제조업체인 보잉의 내부고발 진행 내역 [출처=iNIS]◇ 생산 일정 맞추려 불량부품 사용하며 내부고발 초래... 내부고발자는 지루한 법정공발 벌이다 사망보잉은 21세기 들어 항공산업이 호황을 누리며 고속성장을 거듭했다. 2008년 파업을 경험한 후 16년 동안 무파업 신화를 이어갔다. 미국 제조업체에서 파업이 연례행사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이다.내부고발자인 존 바넷(John Mitchell Barnett)은 2019년 항공기 제작 과정에서 생산 일정을 맞추기 위해 기준에 맞지 않는 부품을 사용한다고 언론에 폭로했다. 미국 언론이 아니라 영국 BBC 방송을 선택했다.바넷은 2010년부터 사우스캐롤리나주 노스 찰스턴 공장에서 보잉 787 드림라이너의 품질을 관리하는 업무를 수행했다. 2017년 건강상의 이유로 퇴사하기까지 32년 동안 현장을 지킨 베테랑이다.바넷은 주문이 밀려 생산일정을 맞추기 위해 기준에 맞지 않아 쓰레기 통에 버린 부품을 다시 꺼내와 제작 중인 비행기에 장착한 사례도 있다고 밝혔다.바넷의 주장에 따르면 원칙적으로 작업자는 공정 전반에 걸쳐 부품의 소재를 추적해야 하지만 결함이 있는 부품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다.비행기 기내에 설치된 산소 시스템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비상시에 산소마스크 4개 중 1개꼴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테스트 결과 산소 시스템의 고장률이 25%로 드러났다고 주장했다.2017년 미국 연방항공청(FAA)은 보잉이 불량부품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다며 시정 조치를 명령했다. 바넷은 2017년 퇴사한 후 2019년 영국 BBC 방송과 인터뷰하며 관련 사실을 수면 위로 부상시켰다.바넷은 보잉이 자신의 인격을 폄하하고 커리어를 방해했다며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대기업과의 소송은 오랫동안 지속됐다. 결국 2024년 3월 바넷은 총상을 입고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 정부기관이 신속한 수사로 내부고발 내용 검증해야... 내부고발자 스스로 보호대책 세우지 않으면 위험유례 없는 파업으로 파산 위기로까지 몰린 보잉은 내부고발을 철저히 무시하다 상황을 악화시켰다. 바넷에 이어 최대 부품공급업체의 직원인 조슈아 딘(Joshua Dean)도 내부고발을 통해 문제를 제기했지만 해고당했다.내부고발을 단행한 직원이 2명이나 사망하며 정부의 대처가 부적절한 것은 아닌지 의심을 받고 있다. 딘은 백혈병 급성 감염병 MRSA 합병증으로 죽었지만 바넷은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보잉의 내부고발이 주는 사회적 시사점은 다음과 같다.첫째, 보잉 스스로 내부고발을 엄중하게 다뤘다면 위기로 증폭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2024년 초 사우스캐롤라 공장의 현장 책임자이자 787 프로그램의 총괄 관리자인 스콧 스토커(Scott Stocker)는 내부고발을 잘 관리해 신속하게 시정 조치했다.스토커는 다수 직원이 필수 테스트를 수행하지 않고 작업을 완료한 것으로 기록함으로써 회사 정책을 위반했다고 내부고발을 접수했다.보잉은 즉시 FAA에 보고했다. 항공기의 동체와 날개가 연결되는 부분에서 적절한 접합 및 접지가 이뤄졌는지 확인한 결과 부정행위를 발견해 보완조치했다.심각한 이슈는 아니었지만 내부고발에 현명하게 대처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른 2건의 내부고발도 이런 수준으로 대응했다는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둘째, FAA나 연방 교통안전위원회는 조사를 빠르게 진행하며 내부고발자를 강력하게 보호했어야 했다. 바넷은 보잉측 변호사가 주재한 진술을 녹취하는 과정에서 생을 마감했다.사망 당일 아침에 추가 심문이 진행될 예정이었다. 바넷은 자신은 보잉과 끝까지 소송을 진행할 것이며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딘은 45세의 나이에 폐렴에 걸린 후 급작스럽게 사망했다. 딘은 스피릿 에어로시스템즈(Spriit Aerosystems)의 생산 시설이 품질관리를 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며 문제를 제기한 후 해고됐다.셋째, 내부고발자는 스스로 생명을 지키기 위해 다양한 보호장치를 확보해야 한다. 대기업은 이미지와 명성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내부고발이 발생하면 부인한 후 고소 및 고발과 소송을 제기한다.내부고발자가 수사기관과 규제기관에게 진실을 공개하고 관련 자료를 제출하겠지만 설득하기란 쉽지 않다. 정의를 중시하는 미국조차도 수사기관과 규제기관 모두 대기업을 우선해 믿기 때문이다.조사를 받기 위해 변호사를 선임해야 하고 재판 과정에서 배신자라는 비난과 멸시도 견뎌내야 한다. 언론보도도 편향적일 가능성이 높아 주변인 대부분은 내부고발자를 멀리하게 된다. 절대로 굴복하지 않겠다던 바넷은 재판의 결과가 나오기 전 62세의 나이로 죽었다. 건강한 기계공학자이며 품질관리관인 딘은 급격한 건강 악화를 극복하지 못하고 사망했다.인간은 신체에 직접적인 상해보다 스트레스로 초래되는 질병에 더욱 취약하다.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는 말이 의사의 소견을 넘어 일반 상식으로 자리매김했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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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중반 이후 전 세계적으로 유선 인터넷과 휴대폰의 보급이 확대되면서 통신시장이 급성장했다. 통신시장은 통신장비 및 통신사업자를 모두 포함한다.스웨텐 통신장비업체인 에릭슨의 사업이 호황을 누렸으며 미국 시스코, 3콤 등과 경쟁했다. 후발주자인 중국의 화웨이, ZTE 등도 국내 시장에서 납품 실적으로 앞세우며 도전했다.에릭슨은 1876년 설립돼 현존하는 통신장비 업체 중 가장 역사가 길다. 1990년대 중반 휴대전화를 제조하며 모토롤라에 이어 세계 2위를 점유했었지만 시장 변화를 따라잡지 못해 침몰했다.▲ 스웨덴 통신장비업체인 에릭슨 내부고발 진행 내역 [출처=iNIS]◇ 통신장비 납품하려 공무원 등 관계자에 뇌물 제공... 내부고발자는 천문학적인 규모 포상금 받아에릭슨은 2000년대 들어 휴대전화 사업은 일본 소니에 이관하고 통신장비에 집중했다. 세계 각국에서 인터넷과 이동전화 붐이 일면서 통신장비 시장은 전성기를 맞이했다.하지만 2000년대 후반부터 중국의 화웨이, ZTE 등이 기술력을 높인 반면 가격은 내리면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급기야 2012년 세계 1위 자리를 화웨이에 넘겨줬다. 새로운 마케팅 전략이 필요했던 이유다.2023년 5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밝힌 자료에 따르면 에릭슨은 2000년부터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쿠웨이트, 지부티 등 다수 국가에서 공무원에게 뇌물을 제공했다.이동통신사업자에 통신장비를 납품하기 위한 목적이다. 화웨이나 ZTE와 기술력은 비슷하고 가격은 큰 차이를 보여 이를 상쇄하려고 공무원이나 관계자에게 뇌물을 준 것이다.1명의 내부고발자 외에도 2명의 직원이 SEC의 조사에 협조했다. 내부고발자는 포상금으로 US$ 2억7900만 달러를 받았지만 2명의 직원은 제외됐다.SEC는 일반적으로 과징금이 100만 달러를 넘으면 내부고발자에게 제재 부과금의 10~30%를 포상금으로 지급한다. 쥐꼬리 만한 보상금을 지급하는 다른 국가와 달리 천문학적인 액수의 포상금을 지급할 수 있는 이유다.SEC와 미국 법무부의 조사가 시작되자 에릭슨은 혐의를 순순히 인정하고 벌금을 내기로 합의했다. SEC는 11억 달러의 벌금과 과징금을 부과했다.◇ 외국기업의 국내 공무원 뇌물 제공 여부 감시 필요... 내부고발자 보호 프로그램 강화해야 통신장비는 인터넷과 휴대폰 서비스를 위해 필수적인 장비이며 장기간 사용한다. 한번 채택하면 교체가 어렵고 수십 년간 동일 기기를 사용한다.통신장비를 비싸게 구매했다면 소비자에게 부과하는 통신요금이 비싸지는 것은 당연하다. 에릭슨 내부고발이 주는 사회적 시사점을 정리해보자.첫째, 미국은 미국 증권시장에 등록된 기업이나 금융시스템과 거래한다면 해외부패방지법(FCPA)에 따라 처벌한다. 자국이 아니라 외국에서 벌이진 기업의 부정행위도 동일하게 처분한다.외국 기업이라도 미국 정부나 국민에게 피해를 입는다면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나라 기업 중에서도 미국 증권시장에 등록돼 있거나 금융기관과 거라한다면 부정행위를 저지르지 않아야 한다.둘째, 국내에서도 내부고발로 기업 내부의 부정행위를 적발하려면 포상금을 대폭 상향조정해야 한다. 2024년 5월 지방은행인 대구은행은 내부고발 포상금을 기존 1억 원에서 10억 원으로 올렸다.국민권익위원회는 2023년 공익 침해 행위가 발생했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다는 사실을 신고·진정·제보·고소·고발하면 포상금으로 최대 5억 원을 지급한다. 과거 2억 원을 주다가 올린 것이다.셋째, 우리나라에서 사업을 영위하는 외국기업이 국내 공무원이나 관계자에게 뇌물을 제공하는지 철저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공무원에게 달러화나 기타 다양한 유형의 뇌물을 제공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공무원이 대형 공공사업 입찰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경우가 적지 않다. 군사정부의 부정부패를 일소하겠다고 다짐하며 문민정부가 출범했지만 공무원 사회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넷째, 미국은 SEC나 법무부 외에도 중앙정보국(CIA), 연방수사국(FBI) 등의 정보기관을 보유하고 있어 세계 어디에서 부정행위를 하더라도 탐지 및 조사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에릭슨이 내부고발이 발생하자 큰 저항 없이 10여 년 동안 이어진 부정행위의 전모를 실토한 이유다. 미국 정보기관은 이러한 정보를 자국 기업을 보호하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활용한다.다섯째, 우리나라는 내부고발자를 보호할 시스템을 철저하기 구비해야 한다. 국민권익위원회조차도 내부고발자 보호 프로그램이 부실하다는 평가를 받는다.일반 공공기관이나 기업에서 내부고발자의 신분이 노출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내부고발로 초래될 불이익 때문에 부정행위를 눈 감는 사람이 많은 것도 이러한 이유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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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5년 영국의 조지 스티븐슨이 세계 최초로 여객용 열차를 운행한 이후 열차는 근대화의 상징으로 불렸다. 철도는 제국주의 침략의 발판이자 자원 수탈의 도구로 활용되면서 200년 동안 영욕의 역사를 이어왔다.동양에서는 서양문물의 도입에 적극적이었던 일본이 처음 철도를 도입하며 근대화에 박차를 가했다. 우리나라는 1899년 한양과 인천을 연결한 경인선이 개통되며 철도가 주요 교통수단으로 떠올랐다.경인선 이후에도 경부선·경의선·경원선 등이 일제에 의해 부설되며 한반도 동서남북이 철도로 연결됐다. 일반 철도와 함께 대도시 교통망의 주축인 지하철은 1974년 서울특별시에서 1호선이 운영되며 역사가 시작됐다.2022년 7월 공정거래위원회는 2013년부터 2020년까지 현대로템·우진산전·다원시스가 2조4000억 원 규모의 철도차량 입찰을 담합했다고 발표했다. 현대로템의 자진 신고로 드러난 철도차량 담합 사건 관련 내부고발을 분석해 보자.▲ 철도차량 입찰 담합 내부고발 진행 내역 [출처=iNIS] ◇ 현대로템이 업계 리더로 입찰 담합 주도... 하청을 미끼로 경쟁업체를 유인현대자동차그룹의 계열사인 현대로템은 1976년 설립된 현대중공업 철도차량사업부가 모태다. 1999년 국제통화기금(IMF) 체제를 벗어나기 위한 정부의 산업재편 정책에 따라 현대정공·대우중공업·한진중공업이 통합해 탄생했다.국내에서 철도차량을 제작하던 3개사가 1개로 줄어들며 사실상 독점사업자로 군림했다. 하지만 2000년대 중·후반부터 경전철을 생산하는 우진산전, 열차개조사업이 주력인 다원시스가 열차 제조업에 뛰어들며 위기가 닥쳐왔다.2010년 우진산전이 부산광역시 도시철도 4호선 전동차 입찰에서 승리하자 현대로템은 담합 방안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철도차량 입찰 담합 사건의 진행 과정은 다음과 같다.우선 현대로템은 2013년 경기도 김포시 도시철도 전동차 입찰을 준비하며 우진산전에 하도급을 주기로 합의하며 담합을 요청했다. 이후 2016년까지 코레일·서울교통공사·부산교통공사 등이 진행한 철도차량 입찰 계약 6건을 수주했다.현대로템은 경쟁으로 철도차량 1칸의 가격이 평균 11억6000만 원에서 8억 원대로 떨어지자 가격을 올리기 위한 꼼수를 고안한 것이다.우진산전은 현대로템의 요구에 따라 2회 이상 유찰되면 ‘수의계약’으로 전환되는 입찰은 미응찰, 복수 업체가 필수인 입찰에는 합의된 가격으로 들러리를 서며 호응했다. 우진산전의 입장에서는 전혀 손해볼 일이 없는 협약이다.다음으로 동맹 관계를 구축했던 현대로템과 우진산전의 합의가 파기된 2017년 6월부터 냉각기가 형성됐다가 다시 복원되는 과정이다. 우진산전이 낙찰받기로 합의한 진접선 50량 입찰을 현대로템이 수주하며 양사의 신뢰가 깨졌다.1칸당 차량 가격은 2012년 신분당선 입찰에서 14억9000만 원이었지만 2018년 서울지하철 2·3호선 입찰에서 7억2000만 원까지 떨어졌다. 양사는 출혈경쟁을 지양해 수익성을 확보해야 할 처지로 내몰렸다.2019년 발주된 5건은 현대로템이 3건, 우진산전이 1건, 다원시스가 1건을 각각 할당받는 조건으로 합의했다. 전체 계약금액은 1조8101억 원에 달했다. 3사의 담합은 2019년 12월 진행된 수도권 급행철도(GTX)-A노선까지 이어졌다.마지막으로 담합을 주도했던 현대로템의 경영진이 교체되면서 표면적으로 업계의 밀월관계는 종료됐다. 2020년 1월 교체된 현대로템의 대표이사와 철도사업본부장은 담합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현대로템은 공정위에 담합을 자백해 323억600만 원의 과징금을 면제받았다.하지만 공정위는 현대로템을 검찰에 고발했으며 조달청은 6개월간 입찰 참가자격 제한조치를 내렸다. 이에 대해 현대로템 등은 입찰 제한조치에 대해 행정소송, 우진산전·다원시스는 과징금 부과에 대해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 텔레그램 등 수사기관 영향력 벗어날 수단 활용... 외국업체 진입 허용해 경쟁체제 구축해야철도차량의 수요자가 중앙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등이기 때문에 담합으로 인한 피해는 최종적으로 국민에게 돌아간다. 세금으로 더 비싸게 구입해야 하기 때문이다.현대정공·대우중공업·한진중공업은 현대로템으로 통합되기 이전에도 담합으로 입찰가격을 높여 과징금을 여러 차례 부과받았다. 현대로템의 철도차량 입찰 내부고발이 주는 사회적 시사점은 다음과 같다.첫째, 공정거래법상 담합행위가 불법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담합을 위한 합의서를 체결하는 대범함을 보였다. 공정위 자료에 따르면 현대로템과 우진산전은 2013년 2월7일 ‘김포 경전철 프로젝트 합의서’를 체결했다.합의서에 ‘전체 프로젝트 수주는 로템이 하고 우진에 하도급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공정위조차도 폐쇄적인 시장이기 때문에 담합 사실을 적발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하지만 발주업체가 입찰과정이나 업계 동향에 관한 정보를 파악하려는 노력을 조금만 기울였다면 충분히 적발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아쉽다. 공정위 퇴직자도 다양한 기업이나 단체에 낙하산으로 취업해야 하기 때문에 감독을 소홀히 한다는 비판을 받는다.둘째, 현대로템이 업계의 선도업체로 담합을 주도하며 텔레그램(Telegram)과 같은 비밀통신 수단을 활용해 국내 수사기관의 취약점이 드러났다. 국내용 메신저인 카톡과는 차이가 크다.담합에 참여한 관계자들은 업체명도 R(로템)·W(우진)·D(다원)와 같은 이니셜로 지칭하며 보안을 유지했다. 다원시스에서 현대로템의 대외비 문건이 발견됐을 정도로 밀착 관계는 깊었다.러시아 출신이 개발한 텔레그램은 해외에 서버가 있어 국내 수사기관의 영향력이 미치지 못해 은밀한 대화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이 활용한다.무차별 수색영장 집행이 일상화되면서 이른바 ‘사이버 망명’의 성지로 부상했다. 정치인뿐만 아니라 검사, 경찰관 등 수사기관 직원조차도 비밀유지를 목적으로 텔레그램을 애용한다.셋째, 우리나라 공공기관이 가격을 중시하는 입찰시스템을 유지하면서 담합의 유혹을 떨치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철도차량의 수출은 중국의 저가정책과 일본·독일·프랑스의 기술력에 밀려 해외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해 국내시장에 대한 의존도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공공기관 입장에서 저가낙찰은 단기적으로 도입 예산을 줄여주지만 장기적으로 생태계를 파괴시켜 유지·관리비용을 높인다.고속도로나 일반도로를 불문하고 건설보다 유지·관리에 더 많은 예산이 투입된다. 제조업체의 담합을 방지하려면 가격뿐만 아니라 기술·품질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입찰이 보장돼야 한다.넷째, 국내시장이 협소하고 독과점이 형성된 산업 전반에 걸쳐 광범위한 암묵적 담합이 일상화돼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이동통신·정유·은행·보험·제과·식음료·가전 등은 3~5개 이내의 대기업이 시장을 주도하는 구도가 유지되면서 경쟁이 사라졌다. 시장경제에서 독점의 폐해는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국가철도공단은 철도공단 입찰특별유의서에 따라 약 471억 원의 손해배상액을 징수할 계획이다. 정상 금액의 평균낙착률과 계약서상의 손해배상 규정을 적용할 방침이다.철도차량 제조업체에 대해 슈퍼 ‘갑’의 지위를 가진 국가철도공단은 손해배상을 받겠지만 정부가 사실상 독과점을 방치한 산업의 소비자는 보호받지 못한다.다섯째, 국내업체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외국기업의 국내시장 진입을 과도하게 제한하면 결국 피해는 전부 국가와 국민에게 전가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은행시장도 씨티은행·스탠다드차타드은행 등 외국계 은행이 발을 빼면서 5대 대형 은행의 과도한 예대마진과 고무줄 이자율이 공분의 대상으로 전락했다.급기야 운석열 대통령까지 나서서 은행의 탐욕스러운 이자 장사를 질타했지만 바뀔 가능성은 낮다. 관치금융이 판치는 국내에 진출할 외국 금융기관이 많지 않아 이미 형성된 시장 구도가 유지될 것이기 때문이다.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교훈을 얻지 못한 관료가 문제다. 기획재정부나 금융감독원, 금융위원회, 한국은행 등도 관리감독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민진규 국가정보전략연구소 소장 [출처=iNIS]*칼럼 내용 문의 : 민진규 국가정보전략연구소 소장(stmi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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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의 쌀이라고 불리는 철강은 건설·자동차·조선산업을 뒷받침하므로 국가의 기간산업에 해당된다. 철광석을 용광로에서 녹여 철강을 생산하려면 이산화탄소(CO₂)를 많이 배출해 이를 줄이기 위한 대안으로 전기로가 떠오르고 있다. 철강을 생산하면서도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목적이다.전기로는 철스크랩이라고 부르는 고철을 녹여 봉형강을 생산한다. 봉형강은 주로 건설현장에서 사용되는 철근·형강·H형강을 말한다. 국내에서 전기로를 가동하는 제강사는 현대제철·동국제강·대한제강·와이케이스틸·한국제강·한국철강·한국특수형강 등이 있다.2021년 1월 공정거래위원회는 7개 제강사가 2010~2018년 동안 철스크랩 구매 가격을 담합했다며 3000억830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한다고 밝혔다.철스크랩은 국내 수요량보다 공급량이 부족해 업체가 경쟁하면 가격이 인상될 여지가 많다. 철스크랩 가격 담합을 드러낸 내부고발을 분석해 보자. ▲ 철스그랩 가격 담합 내부고발 진행 내역 [출처=iNIS]◇ 담당자 수준에서 은밀하게 담합해 적발 애로... 영남권에서 출발해 경인권으로 확대철스크랩은 2009년 KS인증제가 도입돼 두께·길이·너비 등의 치수와 발생원별로 총 25개 등급으로 분류한다. 2021년 기준 국내 철스크랩 시장 규모는 2737만7000톤(t)이며 제강사가 국내에서 구매하는 물량은 1806만4000t에 달한다.전국에 산재한 6000여 개 고물상에서 고철을 수집해 중간 수집상에게 넘기면 이들 업체가 제강사에 공급할 권한을 가진 납품업체에 판매한다.300여 개에 달하는 납품업체가 7개의 제강사에 공급하기 위해 경쟁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제강사가 스크랩을 충분하게 확보하기 위한 유인을 제공해야 하는 처지다.현대제철과 동국제강의 시장 점유율이 50% 수준이며 7개 제강사까지 포함하면 70%대 초반에 달한다. 따라서 7개 제강사가 가격을 정하면 자연스럽게 시장 가격으로 고착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담합에 대한 유혹이 강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내부고발의 진행 과정을 정리해 보자.우선 공정위 부산사무소는 2016년 4월 영남권 제강사를 대상으로 2015년 1월부터 2016년 4월까지 철스스랩 가격이 인위적으로 결정된다는 의심을 갖고 현장 조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증거를 충분하게 확보하지 못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하지만 영남권 뿐 아니라 경인권 제강사까지 담합을 했다는 제보를 받고 공정위 본부 차원에서 조사를 다시 시작해 담합 사실을 확인했다. 1차 조사도 내부고발을 기초로 진행했지만 구체성이 부족해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을 것으로 추정된다.다음으로 2010년부터 2018년까지 담합을 실행하기 위해 진행한 모임에 관한 내용은 관계자들의 업무수첩에 기재돼 있었다.공정위의 조사결과를 보면 신분이 드러나지 않은 내부고발자도 회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정리해 공정위에 제출했을 가능성이 높다.영남권 7개 제강사의 철스크랩 구매팀장들은 2010년 6월부터 2016년 4월까지 총 120회의 모임을 가졌다. 구매가격을 조정하기 위한 목적이다.2016년 공정위 부산사무소가 조사를 시작한 이후에는 모임을 자제하고 기준가격에 관한 정보를 교환하는 방식으로 2018년 2월까지 담합 관계를 유지했다.경인권 2개 제강사의 철스크랩 구매팀장들은 2010년 2월부터 2016년 4월까지 총 35회의 모임을 통해 담합을 실행했다.영남권 제강사보다는 담합 기간이 2년 정도 짧았다. 경인권에 있는 세아베스틸, 케이지동부제철, 환경철강공업은 담합에 가담했다는 증거가 없어서 제외됐다.마지막으로 담합을 주도한 7개 제강사 철스크랩 구매팀장들은 담합한 사실이 드러나지 않도록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담합이 공정거래법 제19조 ‘부당한 공공행위의 금지’에 해당된다는 것을 알고도 추진했다는 것을 반증한다.구매팀장들은 회사 상급자에게도 모임에 대해 보고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음식점을 예약할 때도 가명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지출 내역이 추적되는 법인카드를 사용하지 않았으며 현금으로만 식사비를 결제하는 치밀함도 보였다. 모임 결과를 공식 문서로 작성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공유했다. ◇ 포상금 대폭 증액해 내부고발 장려 필요... 형식적인 교육과 기존 감사시스템은 무용지물우리나라는 국토가 좁고 인구가 많지 않은 국가라 정유·통신·금융·가전 등에서 소수 업체의 독과점이 심각해 소비자의 권리가 침해당하고 있다.특정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은 학연·지연·혈연 등으로 연결돼 있어서 은밀한 담합이 장기간 지속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철스크랩 가격 담합에 대한 내부고발이 주는 사회적 시사점은 다음과 같다.첫째, 일반적으로 공급업체가 담합을 주도하지만 수요업체가 대기업이라면 정보격차(Digital divide)를 악용해 담합을 시도할 수 있다.철스크랩을 수집해 판매하는 고물상은 영세해 국제 철스크랩 가격이나 시장 동향에 관한 정보를 확보하기 어렵다. 대기업이 제시하는 매입가격이 적정한 수준인지 판단할 수 없다.국제 철스크랩 가격은 2020년 200달러/t이었지만 현재는 400달러/t를 넘어섰다. 철스크랩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국제가격은 상승세를 보이고 있지만 국내 주요 제강사가 매입가격을 인하하고 있다. 하지만 포스코가 전기로를 확대하며 철스크랩 가격은 오를 가능성이 높다.둘째, 공정위가 기업의 부정행위에 대한 적발을 늘리려면 포상금 기준을 수정해야 한다. 현재 포상금은 과징금이 50억 원까지는 10%, 50~200억 원은 5%, 200억 원 이상은 5%로 기본금이 정해져 있다. 제보자가 제출한 증거의 수준을 4단계로 구분해 기본액 한도 내에서 일정 금액을 지급한다.이번 사건에서 부과한 과징금은 3000억 원이 넘었는데 포상금은 20억5000만 원으로 0.68%에 불과하다. 포상금이 직장인의 급여를 기준으로 보면 많지만 기본금 기준인 5%만 적용해도 150억 원이 넘는다.자신이 몸을 담고 있는 기업에서 퇴출되고 사회적 냉대를 감수한 내부고발 위험을 감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셋째, 시정조치가 향후 행위 금지 명령, 정보교환 금지 명령, 교육명령 등으로 요식적이라 기대 효과는 미미한 수준이다.유사한 담합 행위가 재발하지 않도록 최고경영자, 철스크랩 구매부서 임직원에 대해 공정거래법 관련 교육을 실시하도록 한 것도 효과가 의심스럽다.교육의 내용과 시간, 교육 대상자의 이해도 측정 등에 관한 기준을 구체적으로 마련해 적용해야 한다. 형식적인 교육과 명령만으로 부정행위를 중단하겠다고 각오를 다질 직장인은 많지 않다.특히 부정행위로 얻을 이익이 크고 발각될 가능성이 낮다면 유혹은 더욱 커진다. 기존의 형식적인 교육으로 시정될 가능성은 매우 낮으므로 효율적인 내부통제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민진규 국가정보전략연구소 소장 [출처=iNIS]*칼럼 내용 문의 : 민진규 국가정보전략연구소 소장(stmi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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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내세운 전쟁의 명분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가입하는 것을 막는다는 논리였다.1991년 소비에트연방공화국이 붕괴된 직후 동유럽 공산권 국가와 결성한 바르샤바조약기구가 해체되며 동유럽에서 힘의 공백이 생겼다. 엄밀하게 살펴 보면 나토의 동진이 러-우 전쟁의 단초를 제공한 셈이다.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하며 한반도에 진주한 미군은 군정기와 6·25 전쟁이 종료된 후에도 계속 주둔하고 있다. 1953년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법적인 근거다.70년 전인 1953년이나 2024년 현재에도 러시아의 극동 군사력 증강, 중국의 한반도 영향력 확대, 일본의 군사 재무장 등 한반도 안보를 위협하는 요소가 사라지지 않았다.국내 정유사들이 2005년 4월부터 2016년 7월까지 주한미군이 사용하는 유류를 공급하면서 담합한 사례가 내부고발로 드러났다.낙찰 예정자와 투찰 가격을 사전에 합의하는 방식이 동원됐다. 주한미군에 유류를 공급하는 입찰에서 국내 4대 정유사가 담합한 사건을 분석해 보자. ▲ 주한미군 유류입찰 담합에 대한 내부고발 진행 내역 [출처=iNIS]◇ 10년간 담합해 1000억 원 이익 실현... GS 칼텍스 직원이 내부 고발자로 밝혀져2020년 12월 공정거래위원회는 주한미군용 유류공급을 담합한 SK에너지,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에쓰오일, 지어신코리아, ㈜한진 등 6개 업체에 시정명령을 내렸다.미국 법무부가 이들 업체에 민사 배상금 2300억 원, 형사벌금 1700억 원을 부과한 것에 대한 사후 조치다. 주한미군 유류 납품 담합에 관한 내부고발의 진행 과정을 정리해 보자.우선 남품업자의 담합은 주한미군이 2005년부터 유류공급 입찰에서 납품 지역 유류탱크의 잔고를 40% 이상으로 유지 및 관리하라는 의무를 도입하며 시작됐다.다수 지역에 위치한 유류탱크의 잔고를 수시로 확인하고 충전하기 위해서는 계약기간 동안 소요되는 유지관리비를 추정해야 하지만 쉽지 않다.납품업체들이 입찰 시점에 유지관리비를 산정하고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지역을 배분하기로 합의한 이유다. 업체 담당자들이 모여 공급가격과 계약이행 방안을 논의했다. 미국 국방부 산하 국방조달본부가 입찰을 진행하기 때문에 국내 사정을 파악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도 작용했다.다음으로 미국 국방조달본부가 진행한 3차례 정기입찰과 추가입찰에서 담합이 실행됐다. 정기 입찰은 2005·2008·2013년 3회, 추가 입찰은 2006·2011년 2회가 진행됐다. 입찰 과정에서 공급 물량과 납품 지역은 내수시장 점유율 등을 고려해 균등하게 배분했다.업체들은 사전에 합의한 내용대로 입찰에 참여해 원하는 결과를 얻었다. 계약기간은 3~4년으로 길어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미국 법무부는 한국 업체들이 담합해 주한미군이 10여 년 동안 US$ 1억 달러 이상의 비용을 추가 지급했다고 주장했다.마지막으로 2014년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한국 국적의 내부고발자의 제보를 토대로 법무부와 연방수사국(FBI)이 수사를 진행해 진실을 밝히는 과정이다.FBI는 미국 정부와 거래하는 전 세계 모든 기업과 개인을 대상으로 부정행위를 조사하며 주한미군 유류 입찰 담합 사건도 담당했다.미국 연방 검찰에 따르면 내부고발자는 GS칼텍스 직원이며 GS칼텍스는 내부고발 사실을 파악해 담합 증거를 은폐하려 시도했다.또한 GS칼텍스는 제보자가 미국 검찰에 증언하지 못하도록 협박했으며 돈으로 회유하려 시도했다. 법무부가 GS칼텍스에게 형사 벌금을 가장 많이 부과한 이유다.내부고발자의 제보를 기반으로 조사를 진행한 결과 모두 사실로 드러났다. 담당자의 모임 일시 및 장소, 참석자, 토의 내용 등 내부자가 아니면 파악하기 어려운 사실이 포함됐을 것으로 추정된다.미국 법무부가 처음 조사결과를 발표했을 때 SK에너지·GS칼텍스·현대오일뱅크·에스오일 등이 반발했다가 수긍한 것도 발뺌하기 어려운 증거가 많았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 담합행위로 이익금보다 4배 이상 손실액 발생... 공정위 전속고발권 폐지 및 징벌적 손해배상금 부과 필요미국 법무부가 국내 정유업체의 담합 사실을 발표한 2018년 11월은 미국 정부와 우리나라 정부가 주한미군 주둔비용에 대해 협상을 진행하고 있던 시기였다.미국 트럼프 전 대통령은 주한미군 철수를 거론하며 분담금을 대폭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한미군 유류 담합 사건의 내부고발이 주는 사회적 시사점은 다음과 같다.첫째, 미국은 한국과 달리 담합에 대해 엄격하게 처벌한다는 점이다. 담합에 참여한 6개 업체가 10년간 올린 매출액은 약 7500억 원인데 벌금과 민사합의금으로 4000억 원 이상 냈다.미국은 담합한 회사가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면 처벌을 합의해주는 플리바게닝 제도를 운영하지만 벌금은 담합해 올린 매출액의 20%를 넘는다.반면에 2018년 당시 한국은 공정거래법에서 담합 과징금의 한도를 관련 매출의 10%로 정해 최대 750억 원 정도만 내면 해결할 수 있다.담합에 따른 피해 범위, 부당이득의 규모, 담합에 이르게 된 사유 등을 고려하지만 10%보다 낮은 3~5% 정도로 결정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2021년 담합 과징금은 매출액의 20%로 상향 조정됐다.둘째, 미국 정부와 합의한 형사 벌금은 1700억 원인데 민사배상금은 2300억 원으로 더 많아 담합으로 얻은 이익금을 전부 토해내도 충당이 불가능하다. 법무부가 형사소송을 시작하면 피해자도 민사소송으로 피해복구를 위한 노력을 진행한다.미국은 기업의 반독점 행위를 제재하기 위해 1890년 셔먼법(Sherman Act)과 1914년 클레이튼법(Clayton Act)을 제정했다.클레이튼법에 따르면 반독점 행위로 입은 피해의 손해배상 한도가 3배에 달한다. 민사배상금이 이익보다 2배 이상 많았던 이유다. 한국은 민사배상금도 미국에 비하면 쥐꼬리 수준에 불과하다.셋째, 미국은 법무부가 직접 기소를 결정하고 벌금도 부과하지만 한국은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행정적 제재인 과징금을 산정한다.미국의 법무부는 기업의 담합 사건을 직접 수사해 기소한다. 유류 담합 사건에서 피해자가 미국 정부였기 때문에 법무부가 민사와 형사소송을 모두 담당했다.1980년 제정된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담합을 적발했다고 하더라도 공정위의 고발이 있어야만 검찰이 공소를 제기할 수 있다.이른바 전속고발권인데 2018년 사회적 비난이 큰 가격담합입찰담합 등 부당한 공동행위(경성담합)에 한해 폐지할 계획이었지만 무산됐다.수사능력이 부족한 공정위가 암묵적으로 행해진 담합까지 밝혀내지 못하면서 전속고발권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담합은 형사 처벌보다 과징금을 높이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지적도 있다.공정위가 정권의 눈치를 보고 재벌의 비위나 맞추며 처벌 수위를 낮춘다면 담합과 같은 불공정행위가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민진규 국가정보전략연구소 소장 [출처=iNIS]*칼럼 내용 문의 : 민진규 국가정보전략연구소 소장(stmi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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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무고한 민간인을 살상하거나 항복한 적군을 즉결 처형하는 등 반인도적 살상행위기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국가간 운명을 건 전장에서 안전한 인도적 구호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1864년 체결된 제네바협정에 따라 만들어진 단체가 국제적십자사다.조선을 계승한 대한제국은 1903년 제네바협약에 가입하고 1905년 대한적십자사를 발족했지만 국권 침탈과 함께 1909년 폐지됐다.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19년 독립군과 재외거주동포를 위한 인도적 활동을 재개하기 위해 대한적십자회를 설립했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이 상해 임시정부에서 시작됐다고 봐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1949년 대한적십자사조직법이 공포됐으며 1955년 국제적십자사연맹에 가입했다. 1965년 우리나라 최초로 헌혈운동이 시작되며 헌혈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고조됐다.2003년 9월 대한적십자사(적십자사) 직원인 김용환은 혈액사업본부가 에이즈(AIDS)·간염·말라리아 바이러스에 감염된 혈액을 유통한 사실을 언론과 부패방지위원회(부방위)에 제보했다.이후 제보는 사실로 드러났고 정부는 2004년 혈액안전관리개선을 위한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적십자사 내부고발을 분석해 보자. ▲ 대한적십자사의 내부고발 진행 내역 [출처=iNIS]◇ 부실 혈액관리로 피해자 양산해 신뢰 하락... 혈액관리시스템 업그레이드한 공로로 표창 수상의학기술이 발전하며 인공뼈와 인공장기의 제조는 가능하지만 아직도 혈액을 만드는 기술을 개발하지 못했다. 사고로 피를 많이 흘렸거나 수술로 부족해진 피를 보충하려면 헌혈을 통해 확보한 피를 수혈 받아야 한다.혈액을 통해 다양한 질병이 감염될 수 있으므로 체계적인 관리가 중요하다. 적십자사 내부고발 사건의 진행 과정을 정리해 보자.우선 2003년 초 중앙혈액원 운영과에서 근무 중이던 김용환은 전산시스템 교체 과정에서 혈액이 부실하게 관리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동료인 임재광·이강우·최덕수와 함께 관련 증거들을 수집하며 내부고발을 진행할 것인지 고민했다.김용환은 내부에서 문제를 제기해 문제점을 고칠 것인지 혹은 외부 내부고발로 자신과 동료에게 어떤 불이익이 발생할 것인지 등을 고심했다.1990년 감사원에 근무하던 이문옥 감사관이 재벌의 비업무용 토지에 대해 감사원의 감사 중단 사실을 공익 제보한 사건을 반추하며 용기를 얻었다.가족과 친지, 주변인이 감염된 혈액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자신에게 다가올 불이익에 대한 공포를 극복할 수 있었다.혈액사업은 공공사업이므로 적십자사가 경각심을 가질 수 있도록 외부에 제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내부 스스로 해결할 역량이나 의지가 없다고 생각했다.다음으로 2003년 9월 김용환이 언론과 부방위에 제보하자 적십자사가 대응한 조치를 살펴보자. 적십자사는 김용환을 포함한 제보자를 정보 유출 혐의로 고발했다. 경찰은 이들을 체포한 후 48시간 동안 감금하며 조사를 벌였지만 무혐의로 석방했다.감사원은 감사에 돌입해 2003년 12월 오염된 혈액 수혈로 질병에 감염된 피해자 20여 명을 확인했다. 적십자사는 2004년 3월 내부고발한 직원 2명을 처벌하기 위해 징계위원회를 구성했다.언론에 혈액사업에 대한 과장·왜곡된 내용을 제보해 회사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근무기강을 문란케 했다는 것이 징계 사유다.시민단체인 참여연대는 적십자사의 징계위원회 구성 방침에 반발하는 논평을 발표했다. 공익제보자에 대한 보복행위를 중단해야 한다는 것이 요지다. 결국 2004년 4월 적십자사는 내부고발자에 대한 징계 논의를 철회했다.마지막으로 정부 차원에서 적십자사의 혈액 관리에 대한 대대적인 보완 조치와 내부고발자 포상이 이어졌다. 2004년 7월 보건복지부는 감염 검사오류로 양성혈액을 음성으로 잘못 판정한 사례를 적발했다.간염검사에서 양성반응을 보인 부적격 혈액 7만6677건이 시중에 유통됐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김용환의 제보가 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임이 밝혀진 것이다. 2004년 4월 총리실은 혈액안전관리기획단을 설치했고 보건복지부는 혈액안전관리 전담부서를 신설했다. 혈액관리 전반을 관리하는 장비와 시스템이 개선됐다. 적십자사는 내부고발자가 아니라 혈액 유통 과정에 관여된 책임자 10여 명을 징계했다.김용환은 2004년 12월 반부패국민연대로부터 투명사회 기여상을 받았다. 또한 노무현정부와 박근혜정부에서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내부고발로 우리나라 혈액관리시스템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데 기여한 공로 때문이다. ◇ 내부 문제 해결할 의지·역량 부족해 파괴적 혁신 요망... 경찰의 직원남용을 처벌해야 내부고발 활성화 가능 김용환이 내부고발을 추진해야 할 것인지 심리적으로 갈등할 때 용기를 얻었다고 주장한 이문옥 감사관 내부고발도 아름다운 사례는 아니다.감사원은 정부기관과 공기업의 부정행위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지만 정작 내부에서 일어난 내부고발에 대해서는 내로남불로 대처해 비난을 받았다. 적십자사 내부고발이 주는 사회적 시사점은 다음과 같다.첫째, 정부조직과 공기업 조직은 외부의 충격이 없는 한 문제점을 개선할 여력이 전혀 없다. 20년 전 김용환은 내부에서 문제점을 고치자고 주장한들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내부통제시스템 1단계인 내부 조직계통이나 2단계 감사실을 뛰어 넘어 곧바로 3단계인 외부로 내부고발을 단행했다. 적십자사는 이 사건 이후에도 다수 내부고발을 경험했지만 반성하지 않았다.2020년 사무총장의 법인카드 유용 사태가 터지고 이를 언론에 제보한 것으로 의심을 받던 직원 2명에 대해 보복성 인사를 단행했다.2022년 국정감사에서 사무총장·혈액관리본부장·감사실장 등 고위직의 근태기록이 없다는 사실이 드러나 의원들의 질타를 받았다. 내부고발로 교훈조차 얻지 못한 적십자에 대해 공익사업을 맡기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이다.둘째, 공익제보자가 내부고발 과정에서 경미한 실수를 저지르거나 위법사항이 있다고 하더라도 공익이 더 크다면 처벌하지 않아야 한다.적십자는 내부고발자의 주장이 사실로 드러났음에도 과장 및 왜곡했다며 징계를 추진했다. 회사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근무기강을 훼손했다는 주장도 빠뜨리지 않았다.이문옥 감사관은 직무상 비밀누설죄로 구속됐지만 무죄를 받았다. 민간인 사찰을 고발한 윤석양 이병은 특수군무이탈죄를 적용해 처벌했다. 군부재자 투표 부정행위를 고발한 이지문 중위는 명예훼손 혐의로 구속됐었다.이들 덕분에 대기업의 부동산 투기, 불법 민간인 사찰, 투표 부정행위 등이 중단돼 민주주의가 진전됐다. 특정 권력자나 정권이 공익제보자를 처벌하지 못하도록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사회정의를 구현하는데 기여한 내부고발자에게 일방적 희생을 요구하는 것은 불공정하다. 공정한 사회를 원하는 MZ(밀레니얼+Z세대) 세대를 포용하지 못하면 우리 사회의 발전도 요원해진다.셋째, 경찰이나 검찰은 내부고발의 내용을 면밀하게 검토한 후에 내부고발자에 대한 조사에 돌입해야 한다. 적십자사 내부고발에서도 경찰은 김용환을 48시간 동안 감금해 조사를 진행했다.긴급 체포의 필요성이 있었는지, 내부고발이 적십자사의 이익을 침해한다고 판단한 근거는 무엇인지 등을 고심하지 않았다.경찰은 적십자사의 일방적인 주장을 신뢰했을 가능성이 높다. 평소에 수사기관과 밀착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에 신속한 수사라는 편의를 제공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감금 조사를 진행하며 폭언·협박 등 비인권적 상황도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경찰·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나 권력자 옹호는 조직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지름길이다. 인류의 역사는 무도한 권력자보다 민중의 의지에 따라 발전해왔다.1979년 반유신 투쟁에 앞장서다가 국회의원직을 제명당한 김영삼 전 대통령은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박정희 정권에게 호통을 쳤다.- 계속 -▲ 민진규 국가정보전략연구소 소장 [출처=iNIS]*칼럼 내용 문의 : 민진규 국가정보전략연구소 소장 (stmi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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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현재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으로 우리나라 경제계를 이끌고 있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창업자인 최종건과 아버지인 최종현에 이어 2대째 그룹을 이끌고 있다.1.5세 경영자인 최종현은 최종건의 동생으로 노태우정부 당시 대한석유공사와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해 섬유 중심이던 사업을 석유화학·통신으로 재편했다.최종현의 아들인 최태원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인 노소영과 결혼했다. 노태우정부가 출범하며 최고 권력자와 혼맥을 형성한 SK그룹은 섬유업체에서 종합 그룹으로 성장 가도를 달렸다.최태원 회장은 2003년 분식회계와 2011년 횡령 혐의로 사법 처벌을 받으며 사회적 논란을 초래했다. 최 회장은 오랜 별거 끝에 노소영과 이혼소송을 벌여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권력과 밀착해 성장한 한국식 재벌시스템은 2~3세로 넘어오면서 수명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신호가 곳곳에서 감지된다. 창업자는 여론 동향을 주시하며 사회 가치를 훼손하는 의사결정은 최대한 자제했지만 후계자들은 반대로 행동한다. 2003년 일어난 분식회계 사건은 내부고발자에 의해 수사가 진행됐지만 20년이 지난 현재까지 내부고발자의 신원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2006년 촉발된 현대자동차그룹의 내부고발 사건과 마찬가지로 드물게 내부고발자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SK그룹의 내부고발 사건을 분석해 보자.▲ SK그룹의 내부고발 진행 내역 [출처=국가정보전략연구소(iNIS)] ◇ 경영권 분쟁이 내부고발의 단초 의심... 비밀금고의 위치와 비밀번호 파악해 증거물 압수2003년 2월27일 노무현정부가 출범한지 3일째 검찰은 SK그룹 계열사를 압수수색했다. 새 정부가 출범하며 시도하는 전형적인 사정정국 조성용이라는 평가가 나왔다.하지만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검찰은 내부고발로 비밀금고의 위치와 비밀번호, 금고 속의 장부 등에 관한 정보를 파악하고 있었다. SK그룹 내부고발 사건의 진행 과정을 정리해 보자.우선 SK그룹은 당시 오너가 아니라 전문 경영인 회장이 이끌고 있었다. 1965년 선경직물에 입사한 손길승은 최종현 회장이 사망한 이후인 1998년 SK그룹 회장으로 추대됐다.최종현 회장의 큰 아들인 최태원도 지주회사 SK의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견제 장치를 마련했지만 대외적으로 손길승이 대표성을 띄었다.손길승이 회장으로 추대된 이유는 최 회장의 나이가 30대로 젊었고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로 우리나라 경제가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울 정도로 험난했기 때문이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최 회장과 손길승 회장의 자연스러운 권력 분점이 이뤄지게 됐다.다음으로 내부고발자의 제보를 받은 검찰이 압수수색하는 과정이다. 검찰 관계자는 SK그룹이 분식회계 관련 자료를 숨긴 비밀 금고의 위치와 내용물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대기업이 각종 비밀장부를 만들어 보관하는 비밀금고는 오너와 최측근 소수 직원 외에는 알기 어렵다. 2003년 당시 세간에는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2006년 일어난 현대자동차그룹의 내부고발과 유사한 상황이 SK그룹에서 먼저 발생한 셈이다.2007년 삼성그룹의 전 법무팀장이던 김용철 변호사도 소수 내부인만 파악하고 있던 비밀금고의 존재를 공개했다. 하지만 검찰이 압수수색을 계속 미루는 바람에 정작 비밀금고를 확인하지는 못했다. 삼성그룹이 증거물을 은폐했기 때문이다.마지막으로 비밀금고에 보관된 회계장부를 확인한 검찰은 전광석화(?)처럼 최 회장을 포함한 경영진에 대한 수사를 진행했다.2003년 3월 검찰은 SK글로벌이 1조5587억 원의 이익을 부풀리는 분식회계를 자행했다며 최 회장과 직원 1명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배임 등) 혐의로 구속기소했다.2003년 6월 최 회장은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지만 보석으로 풀려났다. 최 회장이 석방된지 얼마 지나지 않은 2004년 1월 손길승 회장이 1조 원 규모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혐의를 받고 구속됐다.손길승 회장은 2008년 이명박정부에서 8·15 특사로 사면을 받은 후 SK텔레콤 명예회장으로 추대됐지만 별다른 활동을 하지 못하고 영향력을 잃었다. ◇ 분식회계·비밀장부로 경영권 유지 만연... 담당자가 복사본이나 음성 파일 저장해 관리우리나라 재벌은 재무와 인사 관련 직원을 임명할 때 엄격한 신원조사를 거친다. 가급적이면 혈연을 우선하고 다음으로 지연·학연이 있는지 확인한다.재무와 인사는 기업경영의 핵심이고 고급 내부정보를 많이 다루기 때문에 배신할 가능성이 0.1%라도 있는 직원은 제외한다. 내부정보는 불법이나 비법적인 경영 정보를 포함한다.인사권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오너의 최측근이 된다는 것은 출세가 보장된다는 의미다. 삼성그룹·LG그룹·SK그룹 등 주요 그룹의 임원이나 계열사 사장이라도 한번 하려면 능력도 갖춰야 하지만 진정한 패밀리에 포함돼야 한다. SK그룹 내부고발이 주는 사회적 시사점은 다음과 같다.첫째,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에도 국내 대기업에서 분식회계가 만연해 있었다는 점이 드러났다. 외환위기가 재벌의 불투명 경영으로 대외 신인도가 하락해 발생했지만 정작 재벌 오너는 제대로 반성조차 하지 않았다.2000년 공중 분해된 대우그룹은 20조 원대의 분식회계를 저질렀다. 한때 재계 서열 10위에 오르며 샐리리맨의 신화를 일궜던 STX그룹도 2조 원대의 분식회계로 좌초됐다. 2018년 삼성바이오로직스도 분식회계 혐의가 수면 위로 드러나며 수사가 진행됐고 2020년 9월 기소됐다.둘째, 기업이 분식회계, 비자금 조성, 뇌물 공여 등을 기록하고 관리하는 관행이 사라지지 않았다. 이른바 범행 일기를 쓴다고 볼 수 있는데 위기 사태가 발생하면 뇌물을 받은 정치인·공무원과 협상하기 위한 목적이다.장부가 아니더라도 현장을 사진으로 촬영하거나 음성을 녹음하는 것도 일상화돼 있다. 정치인이 내뱉는 말은 숨 쉬는 것만 빼고 모두 거짓말이라고 하지만 공무원도 비슷하다.고위직 공무원으로 권력을 가진 사람은 자신이 저지른 불법행위조차 정당화하는데 익숙하다. 어렵게 번 돈으로 뇌물을 제공하는 사업가의 입장에서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필요한 이유다.셋째, 기업 경영에 있어서도 권력의 분점은 바람직하지 않으면 시도하지 않는 것이 유리하다.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이 존재하지 않듯이 권력은 자식 혹은 부인과도 나누기 어렵다. 최고 권력자가 마음대로 전횡하는 것이 용인되는 동양에서 더욱 그러하다.2003년 당시 SK그룹은 창업자인 최종건의 자녀, 1.5세인 최종현의 자녀, 전문 경영인 등이 경영권을 분점하며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했다.능력이나 성과로 리더십을 발휘했던 창업자와 달리 후계자는 혈통을 기반으로 무임승차해 공격의 대상으로 전락하기 쉽다. 전문가의 평가에 따르면 외견상 SK그룹의 권력투쟁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 계속 -▲ 민진규 국가정보전략연구소 소장 [출처=iNIS]*칼럼 내용 문의 : 민진규 국가정보전략연구소 소장(stmi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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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의 폐허 속에서 우리나라를 세계 10위 경제대국으로 끌어 올인 최고 공신으로 재벌이 꼽히지만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초래해 국가를 풍전등화로 내몬 것도 재벌이다. 재벌은 정경유착을 통해 사업을 확장한 기업집단으로 사회 전반에 걸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해방 이후 내우외환의 모진 풍파를 견디고 살아남은 재벌은 삼성·현대·LG·SK 등으로 많지 않다. 부모의 재산이나 식산재산의 불하와 같은 방식으로 기반을 닦은 다른 그룹과 달리 현대는 창업자인 정주영이 맨손으로 일군 그룹이다.2000년 정주영 회장이 5남인 정몽헌을 후계자로 지목하면서 장남인 정몽구는 자동차 관련 계열사 10개로 독립해 승승장구했다.현대자동차그룹은 2011년 현대건설을 인수하며 이른바 범현대가의 맏형으로서 입지를 구축했다. 2016년 시작된 현대차그룹의 내부고발을 분석해 보자.▲ 김광호 부장의 내부고발 진행 내역 [출처=국가정보전략연구소(iNIS)] ◇ 조직 은폐 시도가 그룹 전체 위기 사태 촉발2021년 11월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은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미국 법인에 관한 정보를 제공한 내부고발자에게 2430만달러(약 308억7300만원)의 포상금을 지급한다고 발표했다.26년간 현대자동차에 근무했던 김광호 전 부장의 내부고발이 드디어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김 부장의 주장에 따라 구성한 내부고발 진행 과정은 다음과 같다.먼저 현대차그룹은 자체적으로 개발한 세타-2 엔진의 결함이 드러났지만 미온적으로 대처했다. 2015년 6월 미국에 판매한 현대자동차의 엔진에서 화재가 발생하자 NHTSA는 리콜을 요청했다. 현대차그룹은 엔진 결함을 최대한 축소하고 문제 차량의 일부만 리콜해 사태를 수습하려 시도했다.일반적으로 대부분의 기업은 리콜이 회사 입장에서 막대한 비용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이미지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은폐 혹은 축소하는 경향이 있다. 현대차그룹에서 리콜 업무를 맡고 있는 품질전략팀도 비슷한 방식으로 대응했다.김 부장은 엔진 결함은 운전자의 생명을 위협하는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적절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내부 경영진은 김 부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무시했다.다음으로 김 부장은 리콜을 은폐하려는 조직의 시도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내부고발을 진행한다. 엔진 결함에 관련된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해 감사실에 내부고발을 시도했다.감사실이 제보 내용을 해결할 의지를 보이지 않자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비공개 제보를 받은 외부 전문기관인 자동차안전연구원도 미온적으로 대응했다.한국교통안전공단 산하 자동차안전연구원은 자동차 안전을 위해 필요한 자동차 성능을 시험하는 기관이다. 교통사고에 의한 사회적 손실을 줄이고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됐지만 지나친 친 기업 성향으로 비판을 받고 있다. 현대차그룹 감사실과 동일하게 내부고발을 처리할 용기가 없었다.김 부장은 각종 인맥이 칡덩굴처럼 얽힌 국내 자동차업계가 엔진 결함문제를 밝혀낼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해 2016년 미국 NHTSA에 관련 자료를 넘겼다.한국 국토교통부에 제보하기 이전에 언론에 관련 사실을 폭로했다. 시민단체에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현대차그룹은 2016년 11월 김 부장이 영업비밀의 유출 등 사내 보안규정을 위배했다는 이유로 해임했다. 현대차그룹은 김 부장을 업무상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소해 입막음을 시도했다.마지막으로 미국 NHTSA가 현대차·기아차에 천문학적인 규모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현대차·기아차가 미국 정부와 민사위약금을 합의하는 과정이다.2020년 11월 NHTSA는 현대·기아차에 8100만달러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안전 성능 측정의 강화 및 품질 데이터 분석시스템 개발 등에 5600만달러를 투자하라고 요구했다. NHTSA는 법에 따라 과징금의 30%를 김 부장에게 지급했다.미국 정부와 현대차·기아차 북미법인은 리콜을 지연해 손해를 끼친 차량 소유주에게 2억1000만달러의 위약금으로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2021년 10월 미국 비영리단체인 ‘기만에 맞선 납세자 교육펀드(TAFEF)’는 김 부장을 '올해의 공익제보자’로 선정했다. ◇ 오너의 황제경영이 감사실 임무와 기능 약화시켜자동차는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현대인의 일상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다. 전기자동차와 함께 드론(Drone)·도심항공교통(UAM)·전동 킥보드(quick board) 등을 포함한 모빌리티 산업이 4차 산업혁명의 총아로 떠오르고 있다. 글로벌 모빌리티 산업을 주도하려는 현대차그룹에서 발생한 내부고발이 주는 사회적 시사점은 다음과 같다.첫째, 내부 감사실이 부여된 역할을 잘 수행하도록 권한과 독립성을 보장하지 않으면 조직에 치명적인 위기가 다가온다. 내부고발자인 김 부장이 엔진 결함 관련 자료를 수집해 전달했지만 감사실은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황제경영에 취한 재벌 오너는 계열사의 최고경영자(CEO)를 포함한 이사, 사외이사, 감사의 역할과 권위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인사권을 독점한 오너에게 기업 내부 문제점을 보고하거나 충언을 제기할 임직원은 없다. 현대차그룹의 감사와 감사실 직원도 오너 및 CEO에게 진실을 보고할 용기가 없었다.감사실이 본연의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했더라면 김 부장이 미국 NHTSA나 국토교통부 등에 내부고발을 제기할 이유가 없었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는다’는 속담이 잘 들어맞는 상황이 현대차그룹에서 일어난 셈이다.둘째, 퇴직 이후 전관예우로 경제적 이득을 얻고자 하는 공무원이 많아 기업의 불법행위를 제대로 감시 및 규제하기 어렵다.감사실의 직무유기에 실망한 김 부장이 자동차안전연구원의 문을 두드렸지만 반갑게 맞이해 주는 직원은 없었다. 직원 모두 직·간접적으로 현대차그룹과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특히 자동차 관련 업무를 담당하던 공무원이 퇴직 후에 동일 영역에서 일자리를 구하길 원한다면 현대차그룹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어렵다.현대차그룹이 월급이 높은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으며 업계 전반에 걸쳐 막강한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2014년 12월 발생한 이른바 대한항공의 땅콩회항 사건 당시에도 국토교통부 공무원들은 한진그룹 관계자의 로비에 무너져 진실을 덮기에 급급했다. 일반 공무원뿐만 아니라 공명정대해야 하는 판검사도 대형 로펌이 던지는 다양한 유형의 당근에 무너졌을 정도다.황금만능주의가 판치는 세상에서 공무원이 가져야 할 투철한 사명감과 자부심은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헌신짝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다. 오늘도 재벌과 기득권은 학연·지연·혈연 등 각종 연고주의로 얽은 부패 고리로 한국사회를 좌지우지하고 있다.셋째, 한국 법은 사회정의를 위해 목숨을 걸고 내부고발을 제기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하지 못해 대폭 개선이 필요하다.김 부장은 내부고발을 제기한 공로로 2019년 국민권익위원회로부터 포상금 2억원을 받았다. 동일한 사건에 대해 NHTSA는 국민권익위의 포상금보다 150배나 많은 돈을 지급했다.평범한 일반인조차 외국인인 김 부장에게 천문학적인 규모의 돈을 지급하는 미국의 법에 주목했다. 현대차·기아차가 받은 과징금이 많았기 때문에 가능했지만 내부고발이 없었다면 사회가 감당해야 할 피해를 냉정하게 추산한 결과다. 목숨을 건 용기에 대한 보상이 충분해야 내부고발을 활성화시킬 수 있다.김 부장은 2021년 포상금을 받은 후 언론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내부고발이 현대차가 안전을 개선하는 계기를 되기를 바란다고 소회를 밝혔다.포상금을 받기 위해 국가 대표기업인 현대차그룹을 궁지에 몰아넣은 것은 아니라는 점은 명확한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국뽕(국가+히로뽕)에 취한 사람들이 기업의 내부고발자를 배신자·이단자로 낙인찍지 못하도록 법적인 보호가 절실하게 요구된다. - 계속 -▲ 민진규 국가정보전략연구소 소장 [출처=iNIS]*칼럼 내용 문의 : 민진규 국가정보전략연구소 소장(stmi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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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제약회사 중 하나인 화이자의 2022년 매출액은 1003억3000만달러(약 125조3800억원)로 전년 대비 23% 증가하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코로나19 백신인 코미나티(Cominaty)와 치료제인 팍스로비드(Paxlovid)의 매출이 호실적을 견인했다. 1894년 설립된 화이자는 식품첨가물을 제조하다가 2차 세계대전 때 페니실린을 대량으로 생산하며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글로벌 제약산업은 존슨앤드존슨, 화이자. 머크 등이 주도하고 있으며 이들 기업은 신약 개발에 막대한 규모의 연구개발(R&D)비를 투자한다.인간이 지구에 살기 시작한 이후 가장 화려한 호황기를 누리고 있는 인류가 질병을 치료하고 생명을 연장하는 약품을 구입하는데 돈을 아까지 않기 때문이다.피 한 방울로 수십 종의 질병을 진단할 기술을 개발했다고 주장한 미국 바이오기업 테라노스(Teranos)는 실리콘밸리의 초혁신 기업으로 꼽혔다.창업자인 엘리자베스 홈즈는 2003년 테라노스를 설립한 이후 기업 가치를 90억달러에 달할 정도로 키웠다가 범죄자로 전락했다. 테라노스의 흥망과 내부고발을 분석해 보자.▲ 테라노스의 내부고발 진행 내역 [출처=국가정보전략연구소(iNIS)] ◇ 언론의 우호적 보도로 막대한 투자금 유치해 고속 성장‘여자 스티브 잡스’라는 별칭으로 실리콘밸리의 가장 성공한 여성 억만장자로 꼽히던 홈즈는 2015년 10월 월스트리트 저널(WSJ)의 존 캐리루(John Carreyrou)가 취재를 시작하며 추악한 거짓말의 전모가 낱낱이 드러났다. 내부고발자는 타일러 슐츠(Tyler Shultz)와 에리카 정(Erika Cheung) 2명이다.먼저 홈즈가 기술을 개발했다고 주장하는 과정을 살펴보자. 홈즈는 2003년 실리콘밸리의 무수한 최고경영자(CEO)를 배출한 스탠포드대 화학과에 입학한 후 곧바로 자퇴한다. 학교를 그만둔 후 2004년 테라노스를 창업하며 본격적으로 사업가로 변신했다.많은 비용이 소요되고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는 혈액 테스트를 저렴하고 편리하게 하는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회사를 설립했다.회사 명칭인 테라노스는 치료(therapy)와 진단(diagnosis)의 합성어다. 초기 회사 이름은 '실시간 치료(Real-Time Cures)'였지만 혈액 테스트기의 개발이 치료 목적이 아니라는 이유로 바꿨다.테라노스는 자체 개발한 혈액 테스트기의 이름을 ‘에디슨’으로 정했다. 2012년 슈퍼마켓 체인인 세이프웨이는 800개 점포 내에 에디슨을 비치하려고 3억5000만 달러를 투자했다. 2013년 다른 슈퍼마켓 체인인 월그린도 동일한 목적을 갖고 테라노스와 협력 계약을 체결했다.2015년 3월 클리블랜드병원은 자사의 기술을 테스트하고 테스트 비용을 줄이기 위해 테라노스와 협력한다고 발표했다. 2015년 7월 펜실베니아 보험회사인 아메리헬스 카리타스와 캐피털 블루크로스를 위한 연구를 제공하는 회사로 계약을 체결했다.2015년 7월 미국 식품의약국(FDA)는 테라노스의 핑거스틱 혈액 테스트기를 병원 실험실 밖에서 재발성 헤르페스(HSV-1)를 진단하는 것을 허용했다. 2015년 테라노스는 애리조자바이오산업협회(AzBio)가 선정한 올해의 바이오과학회사로 선정됐다.테라노스가 자사의 혈액 테스트가 글로벌 제약회사인 글락소스미스클라인과 화이자의 약을 복용하는 환자를 위한다고 주장했지만 양사는 2015년 10월 이러한 사실을 부인했다. 월그린은 2016년 6월 테라노스와 파트너십을 종료하고 동년 11월 소송을 제기했다.다음으로 과학자들이 테라노스의 기술력에 의문을 품으면서 실체가 드러나는 과정이다. 2015년 2월 스탠포드대 존 이오어니디스(John Ioannidis) 교수가 미국의학협회저널에 동료 심사를 받은 테라노스의 연구결과가 없다고 주장했다.이어 같은 해 5월 토론토대 엘레프테리오스 디아만디스( Eleftherios Diamandis) 교수는 테라노스의 기술을 분석한 후 회사가 주장하는 내용 대부분은 과장됐다고 강조했다.과학자들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홈즈는 정치인을 끌어들였다. 당시 미국 부통령이었던 조 바이든을 초청해 회사 시설을 소개했다.바이든은 자신이 본 것에 대해 칭찬했다. 하지만 홈즈가 부통령의 방문을 대비해 가짜 실험실을 만들었다는 것이 후에 밝혀졌다.결국 2015년 10월 WSJ 캐리루 기자는 테라노스가 혈액 테스트를 위해 자체 개발한 에디슨이 아니라 전통적인 혈액 테스트 기기를 사용했으며 에디슨은 부정확한 결과를 도출했다고 보도했다. 캐리루는 내부고발자인 타일러 슐츠로부터 핵심 정보를 제공받았다.특히 테라노스의 이사진 중 1명인 조오지 슐츠 전 국무부 장관의 손자인 타일러 슐츠는 경영진에게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무시당했다고 주장했다.회사가 자신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자 캐리루에게 제보했을 뿐만 아니라 뉴욕 보건부에도 알렸다. 이후 FDA가 공식적으로 조사에 개입했다.마지막으로 테라노스에 대한 처벌과 소송이 잇따르며 파산한 이력을 살펴보자. 2016년 4월 미국 증권거래위원(SEC)는 테라노스가 투자자와 정부 관계자에게 기술 관련 정보를 잘못 전달했을 가능성에 대해 조사를 진행했다. 2016년 6월 테라노스는 에디슨의 검사 결과의 약 1%만 유효하거나 정확하다고 실토했다.2017년 1월 정부에 의해 테라노스가 운영하던 모든 연구소는 폐쇄됐다. 2017년 4월 투자자인 파트너 인베스트먼트와 다른 2개 펀드가 투자금 반환 소송을 제기했다.2018년 3월 SEC는 창업주인 홈즈의 의결권을 박탈하고 향후 10년간 어떤 상장사의 관리자도 될 수 없다는 중징계를 내렸다.2018년 6월15일 홈즈는 기소됐으며 2020년 7월 28일 재판이 시작됐다. 당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재판은 1년 후인 2021년 8월31일에서야 재개됐다.2022년 1월3일 홈즈는 11년3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홈즈가 기소된 후인 2018년 9월4일 테라노스는 투자자에게 이메일을 보대 사업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 전문가보다 정치인의 평판으로 기술 허점 방어테라노스는 검증되지 않은 기술로 막대한 투자금을 유치했으며 한 때 시가총액이 90억달러에 달할 정도로 총망을 받던 유니콘이었다.하지만 실험결과를 조작해 덩치를 키운 기업은 철옹성이 아니라 모래성에 불과했다. 테라노스 내부고발이 주는 사회적 시사점은 다음과 같다.첫째, ‘영웅 만들기’에 급급한 언론보도와 허술한 검증시스템이 대참사를 초래했다. 미국인은 불의와 고난을 피하지 않고 부딪히는 사람을 영웅으로 받드는 경향이 있다. 홈즈는 회사 창업 당시 19세로 젊었고 명문 스탠포드 화학과 중퇴생이었다.스탠포드대는 실리콘밸리의 유명 CEO를 다수 배출한 대학이며 중퇴라는 프리미엄도 컸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는 하버드대를 중퇴했고 애플의 스티브잡스도 리드 칼리지는 중도에 그만두고 대성공을 거뒀기 때문에 중퇴자에 대해 환상을 갖고 있다. 졸업할 때까지 시간이 아까워 기다리기지 못했다는 설명도 빠지지 않는다.또한 실리콘밸리의 창업자가 대부분 남성인데 반해 여성일 뿐만 아니라 백인이라는 점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외모를 평가해 투자를 결정하는 것은 올바른 방식은 아니지만 준수한 외모와 지적인 인상은 투자자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둘째, 테라노스는 타일러 슐츠가 1단계 내부고발을 제기했을 때 수습방안을 찾기 위해 노력했어야 했지만 오히려 비밀유지서약서(NDA)로 협박했다.에디슨은 미국의 비싼 의료시스템을 보완할 수 있는 의료기기임에는 틀림없기 때문에 실현 가능한 수준의 기능으로 시장을 개척할 여지는 있었다.피 한 방울로 250가지 질병을 진단하기는 어렵지만 몇 가지는 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 에디슨은 10여개 이상의 질병을 진단할 수 있었다. 막대한 투자금으로 다른 대기업이 개발한 진단기를 벤치마킹하는 R&D를 진행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또한 현장에서 기초적인 진단을 시행하고 정밀진단은 의료기관을 방문해 처리하는 방식의 서비스 모델을 제시하는 것도 가능했다.내부 R&D를 수행하는 직원에게조차도 문제를 정확하게 알리지 않았다. 에리카 정도 연구원으로 부실을 적나라하게 파악해 내부고발자가 됐다.미국의 병원 치료비가 비싸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에 진단과 치료가 늦어 100만명 이상이 사망했을 정도다. 미국이 아니더라고 의료 후진국에서는 숙련된 의료진이 부족해 간단한 혈액진단키트에 대한 수요가 높다. R&D는 화려한 말보다는 지치지 않는 열정과 오랜 시간을 투입해야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셋째, 의학계와 생명공학계 관련자가 아니라 일반 유명인이 테라노스의 기술력을 신뢰하는 어처구니없는 검증시스템이 부실을 키웠다.홈즈는 기술력을 증명할 실험 결과를 전혀 공개하지 않았다. 에디슨 혈액진단키트에 적용된 기술은 영업비밀로 공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기술력에 대한 논란이 제기될 때마다 홈즈는 유명 인사와 투자자의 후광으로 무마했다. 유명인은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 조지 슐츠 전 국방장관이 대표적이며 언론 재벌인 루퍼트 머독도 투자자 대열에 동참했다. 버락 오마바 대통령은 홈즈를 백악관으로 초청했고 조 바이든 당시 부통령은 테라노스를 직접 방문했다.투자자 중 의학계와 관련된 인사는 한 명도 없었으며 실험 데이터로 기술력을 입증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WSJ의 캐리루 기자가 아니었다면 테라노스의 진실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일각에서는 테라노스라는 언론이 키웠고 테라노스를 망하게 만든 것도 언론이라는 자조 섞인 비판을 제기한다.마지막으로 내부고발자인 타일러 슐츠와 에리카 정은 ‘Ethics In Entrepreneurship'이라는 비영리 단체를 발족해 운영하고 있다.이 단체는 스타트업을 창업한 기업가에게 윤리경영을 우선적으로 실천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목적이다. 교육과 전문가의 자문을 제공하고 있다. - 계속 -▲ 민진규 국가정보전략연구소 소장 [출처=iNIS] *칼럼 내용 문의 : 민진규 국가정보전략연구소 소장(stmi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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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에 있는 열대우림인 아마존은 ‘지구의 허파’라고 불릴 정도로 흡수하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와 배출하는 산소량이 막대하다.하지만 목재와 농경지 확보 목적으로 벌목을 강행하면서 본래의 기능을 점차 상실하고 있다. 탄소 배출량이 증가하면 지구온난화는 더욱 가속화된다.인류의 가장 소중한 자연자원 중 하나인 아마존과 동일한 명칭을 가진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은 기후 변화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고 공표했다.그러나 막대한 양의 화물을 배송하고 대량의 전기가 필요한 클라우드 서비스를 영위하면서 표면적으로만 환경을 위한다는 그린 워싱(Green Washing)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아마존은 메타·트위터·구글과 마찬가지로 내부고발로 홍역을 치뤘지만 여전히 환경 관련 경영전략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특히 내부고발이 비법이나 윤리적인 이슈와 연관되면 적극적으로 반박하며 부정적인 여론을 희석시키는데 주력하고 있다. 아마존에서 발생한 내부고발을 분석해 보자.▲ 아마존의 내부고발 진행 내역 [출처=국가정보전략연구소(iNIS)]◇ 해고한지 1년 6개월 만에 내부고발자 요구 수용아마존은 2020년 4월 사용자경험 디자이너로 근무하던 에일리 커닝햄(Emily Cunningham)과 마렌 코스타(Maren Costa)를 해고했다.이들이 기자회견과 집회 등을 통해 아마존의 경영방침을 비난했기 때문이다. 아마존의 내부고발 진행과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먼저 커닝햄과 코스타는 근무하다가 내부 직원과 토론과정을 거치며 회사의 경영방침이 잘못됐다고 판단했다. 이들은 2018년 회사가 환경 보호를 위해 더 많은 의무를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소규모 모임에 가입했다.모임은 직원 400명이 가입한 ‘환경 정의를 위한 아마존 직원’이라는 환경단체로 성장했고 8700명 이상의 직원으로부터 지지를 획득했다. 모임이 토론하는 주제는 크게 2가지다,하나는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아마존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다. 다른 하나는 창고직원에게 더 나은 근무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기술직원과 창고직원 대화 필요성이다. 창고직원은 사무실에 근무하는 기술직원에 비해 근로 조건이 열악하기 때문이다.다음으로 내부고발자는 2019년 1월 경영진을 만나 기후 변화 계획을 발전시키기 위한 제안을 받아들이라고 요구했다. 동년 2월 아마존은 이산화탄소 감축 계획을 공개하며 직원에게 환경 제안을 철회하라고 지시했다.2019년 5월 커닝햄은 주주총회장에서 최고경영자(CEO)인 제프 베조스에게 직원의 요구를 수용하라고 말했지만 거부당했다. 아마존은 2020년 4월 커닝햄과 코스타를 해고했다. 이들은 정부 노동관계위원회(National Labor Relations Board·NLRB)에 부당 해고라며 제소했다.마지막으로 2021년 4월 NLRB는 아마존이 내부고발자를 부당하게 해고했다며 시정하라고 명령했다. 만약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아마존은 해고 사유는 근무환경에 대한 공개 발언이 아니라 내부 규정 위반이라고 반박했다.결국 2021년 11월 아마존은 NLRB의 명령을 받아들여 해고한 커닝햄과 코스타와 합의했다. 합의 내용은 크게 2가지로 구성됐다.하나는 미지급 급여를 정산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권리를 주장하거나 조직을 구성한다는 이유로 기술직원 및 창고직원을 해고하지 않겠다며 공표하는 것이다.해고된 직원에게 지급하지 않은 급여를 정산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다. 하지만 노동조합이 아닌 비공식 직원 모임조차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은 진일보된 조치라고 봐야 한다. ◇ 직원의 공적활동 범위를 제한하는 규정은 무효우리나라는 내부고발로 해고된 직원이 새로운 직장을 찾기란 매우 어렵다. 내부고발자를 배신자나 사회 부적응자로 냉대하는 경향이 많기 때문이다. 2020년 4월 아마존에서 해고된 코스타는 2021년 3월 마이크로소프트의 디자인 책임자로 입사했다.코스타는 마이크로소프트에 입사한 이후에도 환경에 관심을 갖고 다양한 활동을 벌였다. 결국 마이크로소프트 주주들은 회사가 직원 퇴직 펀드의 기후 영향에 관해 공개하라고 투표했다. 아마존의 내부고발이 주는 사회적 시사점은 다음과 같다.첫째, 직원이 근로계약서에 포함된 규정을 위반해 회사 경영방침을 공개적으로 반대할 수 있는지 여부다. 아마존의 내부 규정에 따르면 직원은 기업의 허락과 이사회의 동의를 받지 않고 자체 사업에 관해 외부에 공개적으로 의견을 표명할 수 없다.2020년 4월 아마존이 내부규정 위반을 빌미로 커닝햄과 코스타를 해고하자 민주당 소속 매세추세츠주 상원 의원인 엘리자베스 웨렌(Elizabeth Warren)이 아마존 경영진에 항의 서한을 발송했다.또한 아마존의 주력 사업 중 하나인 클라우드 컴퓨팅 그룹의 전 부회장이자 내부 혁신가인 팀 브레이(Tim Bray)가 불만을 표명하며 사직했다.NLRB가 아마존의 해고가 불법이라고 판단한 이후에서야 논란은 종결됐다. 직원도 기업의 주요 이해관계자 중 한명이기 때문에 기업의 경영전략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하거나 조언할 수 있다. 사내 모임을 결성하는 것도 근로자의 당연한 권리에 포함된다.둘째, 기술직원과 창고직원의 노동 조건의 차이에 대해 누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논란이다. 기술직원은 창고직원과 배송직원이 가장 효율적으로 업무할 수 있도록 이동 동선을 관리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한다. 창고직원의 일자리를 줄일 로봇을 개발하는 것도 기술직원의 몫이다.코로나19로 감영의 공포로 사람들이 외출을 자제하면서 배송 물량이 급증했다. 창고직원과 배송직원 모두 화장실조차 가기 힘들 정도로 격무에 시달렸다.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방역을 위해 공중화장실이 폐쇄돼 배달직원이 플라스틱병에 소변을 본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예상치 못한 교통 혼잡이라도 생기면 배송시간에 쫓겨 식사를 거르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아마존은 차량공유업체 우버, 배송업체 UPS 등도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어 자사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항변했다. 미국에서만 4만 명의 기술직원과 12만5000명의 창고직원을 고용하고 있는 아마존은 ‘지구에서 가장 좋은 고용주’라는 슬로건으로 채용을 진행하고 있다.아마존의 내부고발이 제기되기 전까지 기술직원이 창고직원의 근무조건을 감안해야 한다는 주장이 없었다. 각자의 역할이 다르기 때문에 자신의 분야에서만 효율성을 높이면 그만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노동자와 노동자 간의 갈등을 상호 호혜적인 방법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선례를 남겼다.셋째, 직원이나 내부 모임에 허용될 수 있는 공적 활동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모호해 확정할 필요가 있다. 내부고발자는 아마존이 석유·가스업체와 거래를 중단해 기후 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아마존은 글로벌 국가를 대상으로 영업을 하는 전자상거래업체로 빠른 배송이 경쟁력이다. 배송업무는 항공기, 선박, 자동차 등을 모두 동원해야 하기 때문에 연료를 공급할 에너지업체와 협력은 필수불가결하다.그렇다고 내부고발자가 실천 가능한 경제적인 대안을 제시한 것도 아니다. 재생에너지가 화석연료를 완벽하게 대체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도 고려해야 한다.기후변화와 같은 환경문제는 회사 직원의 신분을 넘어 사회 구성원으로서 비판할 수도 있기 때문에 아마존이 직원 내부 모임의 주제를 너무 제한했다고 봐야 한다. 직원의 환경 인식 강화는 기업의 ESG(환경 사회 거버넌스) 경영 측면에서도 유리하므로 적극 장려해야 한다. - 계속 -▲ 민진규 국가정보전략연구소 소장 [출처=iNIS] *칼럼 내용 문의 : 민진규 국가정보전략연구소 소장(stmi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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