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1
" ㈜코오롱"으로 검색하여,
2 건의 기사가 검색 되었습니다.
-
SK그룹과 같이 한국 섬유산업의 발전에 획기적인 공헌을 한 코오롱그룹(이하 코오롱)은 창업주 이원만 회장과 아들 이동찬 회장이 공동 창업한 그룹이라고 볼 수 있다.공기업을 제외하고 2012년 말 기준으로 재계서열 32위인 코오롱은 1996년부터 이동찬 회장의 장남인 이웅열 회장이 그룹을 이끌고 있다. 그룹규모에 비해 인지도가 매우 높은 편이지만 3세 경영자인 이웅열 회장이 맡은 이후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1998년 IMF경제위기,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주력 사업은 부진하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추진하고 있는 태양열발전, LED조명, 수처리 사업 등은 진척이 더디다. ◇ 국내 최초로 나일론을 수입하고 생산해 의복혁명 주도1953년 한국에 최초로 나일론을 공급한 이원만 회장은 한국 동포들에게 값싸고 질긴 의복을 제공하자는 일념으로 회사를 세웠다고 한다. 그는 일본에서 사업의 기반을 구축한 후 한국 동포들에게도 혜택을 제공하고자 한국에 나일론 공장을 설립했다.나일론은 1939년 미국 뉴욕 세계박람회에서 처음 소개된 합성섬유이다. 천연섬유에만 의존하면서 만성적인 부족현상에 시달리던 의복소재 문제를 해결해 준 ‘기적의 섬유’로 불린다. 2차 대전으로 패망한 일본에서 1950년대 초 나일론이 유행하는 것을 보고 이원만 회장은1951년 삼경물산㈜를 설립해 국내에 독점공급하기 시작했다. 한국도 6∙25전쟁으로 물자가 부족했기 때문에 나일론에 대한 수요는 가히 폭발적이었다.나일론을 수입판매만 할 경우 일본 업체들의 배만 불린다고 판단한 이원만 회장은 국내에 생산공장 건립을 추진했다. 1964년 한국나이론 공장의 원사공장이 정상적으로 가동되면서 한국의 섬유역사가 다시 쓰여지게 되었다. 시대흐름을 잘 파악했던 이원만 회장은 정작 기업경영보다는 정치에 더 관심을 가졌다. 1950년대 나일론 수입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했지만, 1960년 4∙19학생의거 이후 혼란한 정국의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고 잘 넘겼다.이후 박정희 대통령에게 농업과 산업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서울 구로와 경북 구미에 산업단지를 조성하도록 조언했다. 이후 정치인의 길을 걸었다. 이원만 회장은 정치인으로 나름 성공적인 인생을 살았지만 기업인으로 합성섬유산업에 끼친 영향보다는 남긴 흔적은 적다. 이런 점에서 정치인보다는 기업인으로 외길을 걸었다면 코오롱이 섬유업으로 출발한 SK그룹과 마찬가지로 대기업 반열에 오를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된다.어찌되었건 그는 창업 1세대 경영자가 대부분 그렇듯이 ‘사업보국’을 자세를 견지하면서 기업이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가와 사회에 기여를 해야 한다는 초심은 잃지 않았다. 코오롱이 원사와 패션 등 섬유산업의 외길을 걷게 된 것도 창업자의 의지가 많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 1.5세인 이동찬 명예회장은 국내 마라톤진흥을 위해 노력창업자 이원만 회장이 한국 섬유공업의 기초를 세운 인물이라면 아들인 이동찬 회장은 이를 계승 발전시킨 사람이다. 이원만 회장이 기업경영보다는 정치에 더 관심을 뒀기 때문에, 국내사업은 초기부터 이원만 회장의 동생 이원천 회장과 이동찬 회장이 주도했다.효성그룹의 창업주 조홍제 회장과 아들 조석래 회장의 관계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조홍제 회장이 청춘을 다 바친 삼성그룹과의 동업관계를 청산하고 효성그룹을 창업할 때 아들 조석래 회장의 조력이 컸다. 이동찬 회장과 조석래 회장을 2세 경영인이라기보다는 1.5세 경영인이라고 부르는 이유다.코오롱은 1964년부터 한국나이론 공장에서 원사생산을 시작했지만, 그룹으로서 면모를 갖춘 것은 1977년이다. 이 때 한국나일론과 한국포리에스텔을 합병해 ㈜코오롱을 설립했으며, 이동찬 회장이 경영전면에 나섰다.이전까지는 1957년 코오롱에 입사했던 이원만 회장의 동생인 이원천 코오롱TNS회장이 코오롱의 대표역할을 수행했었다. 당시 이원천 회장은 형인 이원만 회장의 결정에 반발해 원진레이온이라는 회사를 차려 독립했다.원진레이온은 비스코스인견을 생산하던 공장이었는데, 1980년대 노동자들이 안전 장비 없이 작업을 함으로써 인체에 치명적인 물질인 이황화탄소에 노출되어 다수가 사망한 기업이다. 이동찬 회장은 코오롱의 대표가 된 이후 섬유와 무역에 치우쳐 있던 사업구조를 건설, 화학, 전자소재, 이동통신 등으로 확대했다.이동찬 회장이 확장한 사업들은 현재 뚜렷한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했다. 건설사업은 코오롱건설에서 코오롱글로벌로 이관되었지만 무리한 PF투자로 그룹 부실의 뇌관이 되고 있다.1994년 포크코와 공동 대주주로 이동통신산업으로 시작했지만, 신세기통신의 경영에 대한 이견으로 1999년 SK텔레콤에게 대주주를 넘겼다. 당시 머리가 두 개라서 기업경영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동찬 회장은 ‘이상은 높게, 눈은 아래로’라는 말을 좋아해 마라톤을 좋아한다고 한다. 승리를 위해 일정한 페이스로 힘차게 달려가는 마라톤이 단숨에 빨리가 아니라 정돌 쉼 없이 멀리 달리는 자신의 철학과 일치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다.1977년 코오롱의 경영권을 넘겨받기 이전까지 35년 동안 삼촌인 이원천 회장 밑에서 묵묵히 참고 견디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경영철학을 현실에 접목시키기 위해 마라톤 진흥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1981년 이동찬 회장은 마라톤의 발전을 위해 2시간 10분내 1억 원, 15분 이내 5천 만원이라는 거금의 포상금을 지급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1987년에는 코오롱 마라톤팀이 발족시켰다.그의 꾸준한 지원덕분에 1992년 코오롱마라톤 팀의 황영조 선수가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다. 1936년 일제 강점기 베를린 올림픽에서 일장기를 가슴에 단 손기정 선수가 금메달을 딴 이후 처음으로 전국민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고 갔다. 코오롱이라는 그룹이 마라톤과 연상되는 이유가 이동찬 회장의 인생철학 때문이었다. 코오롱이 이동찬 회장의 경영기간 동안 사업다각화에 성공하고, 마라톤 중흥에 절대적인 기여를 했지만 사업적으로 두드러진 업적은 남기지 못했다. 1996년 이동찬 회장은 20 여년 간 경영하던 코오롱의 경영권을 건강과 관계없이 아들인 이웅열 회장에게 넘겼다. 다른 그룹의 회장들이 죽을 때까지 경영권을 고집하다가 사후에야 경영을 넘기던 관행과는 차이가 많다.이동찬 회장이 퇴임한 이후 코오롱의 마라톤에 대한 열정은 줄어들어 한국 마라톤도 침체기에 접어든 것은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 3세 경영인인 이웅열 회장은 취임 이후 내우외환에 시달려1996년 아버지로부터 경영권을 물려 받은 이웅열 회장은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다. 회장으로 취임하던 당시 나이가 만 40세로 대기업을 경영하기에는 어린 나이였다.다른 그룹의 회장들보다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대외적인 활동보다는 기업경영에 전념했지만 실적은 그렇게 좋지 못했다. 1997년 IMF외환위기가 터졌고, 2000년을 전후해 중국기업들이 부상하면서 실적악화로 국내 섬유업체들이 도산이 이어졌다. 당시 많은 섬유업체들이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2002년 한일월드컵을 계기로 추진했던 휘장사업권에 코오롱TNS가 연루되었다. 2001년 코오롱TNS가 휘장사업권을 넘겨 받기 위해 정∙관계에 불법 로비를 했다는 혐의를 받았고, 코오롱TNS는 사업부진으로 부도 처리되었다.당시 코오롱TNS는 104개 하청업체로부터 174억 원 상당의 휘장상품을 납품 받은 후 대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관련 혐의로 이동보 코오롱TNS회장과 경영진이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동보는 이동찬 회장의 동생이지만 코오롱TNS는 코오롱에서 계열분리된 기업이다. 2004년에는 코오롱캐피탈의 473억 원 규모의 횡령사건이 터졌다. 최근에도 전직 대통령의 형의 정치자금사건에 연루되어 있고, 글로벌 기업인 듀폰과 특허권 분쟁을 벌이고 있다. 1심에서 패소했고, 항소심이 진행 중이지만 재판결과를 낙관하기 어렵다.MB정권이 추진했던 4대강 사업의 수 처리 설비사업을 수주하기 위해 로비를 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으며, MB정부가 추진하다가 전국민의 반대로 접었던 상하수도 민자사업도 코오롱이 연루되었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는다. MB정부의 최고 실세였던 이상득 의원이 코오롱사장 출신이기 때문에 MB정권과 밀착해 이권을 챙겼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박근혜정부가 MB정부의 4대강 사업에 대해 조사를 강화하고 있으며, 건설공사뿐만 아니라 수질개선사업에 관련된 수 처리 회사들도 담합혐의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코오롱글로벌, 코오롱워터텍 등 관계사들도 담합, 불법로비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 이웅열 회장은 본인 스스로 21세기 비전크리에이터로 지칭하고 직함도 CVC(Chief Vision Creator)로 부른다. CVC는 궁극적으로 함께 나아가고자 하는 비전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는 코오롱을 라이프스타일을 혁신시키는 LifeStyle Innovator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고 한다.코오롱은 주력기업의 실적악화, 신성장동력의 부재, 정치사건의 연루 등으로 내우외환에 빠졌다. 취임 당시 불혹(不惑)에 불과했지만 지천명(知天命)을 넘어서 이제 이순(耳順)을 목전에 두고 있는 이웅열 회장이 하늘의 뜻을 알고, 세상의 흐름에 귀를 기울일 수 있을지 주목된다.- 계속 -
-
2013-04-08코오롱그룹(이하 코오롱)은 창업주 이원만 회장이 나이론을 수입하기 위해 1954년 설립한 개명상사에서 출발한다. 이동찬 명예회장에 이어 3세 경영인 이웅렬 회장이 1996년부터 그룹을 이끌고 있다. 2012년 9월 미국 버지니아 동부법원은 ‘코오롱이 듀폰의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며, 1조원의 배상과 20년간 아라미드로 만든 제품의 전세계 생산 및 판매 금지’라는 판결을 했다.코오롱은 항소를 했지만 판결결과에 따라 그룹의 운명이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이웅렬 회장이 자신을 21세기 비전크리에이터라고 지칭하며 창조경영을 강조하고 있지만 창의적 사업구조재편은 보이지 않는다. ◇ 코오롱의 주요 계열사와 평가대상 기업코오롱의 계열사를 표1와 같이 지주회사, 화학/소재/바이오, 건설/유통/서비스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표1. 코오롱의 주요 계열사와 평가대상]지주회사인 ㈜코오롱은 코오롱인더스트리, 코오롱글로텍 등 총 39개의 국내 자회사를 보유하고 있다. 코오롱은 2009년까지 영위하던 주요 사업을 코오롱인더스트리 이관하고, 순수지주회사로서의 역할만 하고 있어 평가 대상에서 제외했다.화학/소재/바이오 부문 계열사는 코오롱인더스트리, 코오롱패션머티리얼, 코오롱글로텍, 코오롱플라스틱, 네오뷰코오롱, 코오롱생명과학, 코오롱제약 등이 있다.코오롱인더스트리는 2009년 ㈜코오롱의 제조사업부문을 분할하여 설립한 회사로 자동차용 소재를 생산하는 산업자재군, 종합화학제품을 생산하고 있는 화학소재군, 필름과 전자재료 및 IT용 소재를 생산하는 필름/전자재료군, 패션 및 아웃도어 제품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패션군, 의류소재와 서비스를 담당하는 의류소재군 등 5개 사업군으로 구성돼 있다.코오롱글로텍은 자동차용 카시트, PP단섬유, 인조잔디를 제조하는 회사다. 기업의 매출규모, 이익 등을 감안해 코오롱인더스트리, 코오롱글로텍을 평가대상기업으로 선정했다.건설/유통/서비스 부문 계열사는 코오롱글로벌, 코오롱워터앤에너지, 코오롱베니트, 코오롱인베스트먼트, 코오롱웰케어, 스위트밀, 코리아E플래폼이다. 코오롱글로벌은 2011년 코오롱건설, 코오롱아이넷, 코오롱비앤에스를 흡수/합병해 무역, 건설, 유통사업을 하고 있다.코오롱워터앤에너지는 환경, 코오롱베니트는 계열사의 IT서비스, 코오롱인베트스먼트는 투자사업을 한다. 코오롱글로벌이 그룹의 정통성을 계승하고 역사가 오래돼 평가대상으로 선정했다. ◇ 창의적인 인재상으로 변화와 도전을 중시코오롱은 ‘우애와 인정 어린 마음과 자세’,‘기업은 곧 사람. 이상은 높게, 눈은 아래로 소수정예’, Always Faithful. 최선을 다하는 인재’라는 창업주에서 현 회장에 이르는 인재관들이 각 계열사의 인재상 곳곳에 스며든 것으로 보인다.코오롱은 즐거운 상상을 할 줄 아는 창의적인 사람, 끊임없이 새로운 목표를 추구하는 도전적인 사람, ‘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진 긍정적인 사람, 미래를 위해 현재를 투자할 줄 아는 미래지향적인 사람으로서 ‘Life Style Innovators’, 즉, ‘꿈을 꾸고 그 꿈을 실현하는 사람’을 인재상으로 하고 있다.그룹의 인재상을 바탕으로 계열사별로 사업에 적합한 인재상을 별도로 제시하고 있다. 코오롱인더스터리는 끊임없는 변화와 도전정신을 갖춘 인재, 즉, Self-development, Cooperation, Practice, Challenge 정신을 인재상으로 제시하고 있다.Self-development는 자기개발을 통해 자기분야의 최고인재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Cooperation은 기업의 목표를 향해 조직구성원 모두가 똘똘 뭉쳐야 하는 협동정신을 가진 인재를 의미한다. Practice는 한번 시작한 일은 끝장을 보는 실행정신을 가진 인재를 의미한다. Challenge는 성장을 위해 과감히 도전하는 도전정신을 가진 인재를 말한다.코오롱글로벌은 학습인, 전문인, 가치 창조인을 인재상으로 제시하고 있다. 학습인은 끊임없이 배우는 자세로 자기혁신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꾸준히 개발할 줄 아는 인재의 의미다. 전문인은 각자 맡은 바 직무에서 전문성을 갖추고 최고의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인재의 의미다. 가치창조인은 새롭고 혁신적인 발상으로 지속적으로 높은 성과와 고객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인재의 의미다.코오롱글로텍의 인재상은 신뢰를 바탕으로 도전과 혁신의 문화를 만들어 가는 사람이다. 새로운 생각과 자기혁신을 추구하는 창조적인 인재, 뜨거운 열정과 자세를 갖춘 적극적인 성과지향적인 인재, 변화와 도전 정신을 갖춘 혁신적인 인재다. 이웅렬 회장이 다른 그룹 회장들에 비해 젊고, 창의성을 강조하면서 계열사들도 창의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평가제도와 역량개발 등의 부문은 코오롱글로텍을 기준으로 정리했다. 코오롱글로텍은 선진형 전략 목표관리 시스템을 도입하고, 역량평가와 성과평가를 하여 공정하고 합리적인 보상이 되게 한다. 직원의 역량개발을 위한 교육제도는 기본과정, 핵심인재 육성과정, 실무 전문능력 과정, 특별과정, 기타과정 등이 있다.인재육성지향점은 전략지향, 차별화 지향, 직무 중심 지향, 가치 지향이다. 전략지향은 교육목표 관리제도와 부하 육성평가제도, 개인개발 지도제도의 시행으로 경영전략과 실행 역량을 갖춘 리더를 양성하는 것이다.차별화 지향은 인재평가시스템, 포상교육제도, 역할교육제도를 시행해 개인의 업적 능력을 평가하고 육성체계를 다르게 하는 것이다. 직무 중심 지향은 직무교육프로그램, 사내연구회제도, 직무Report 제도 등 실무교육을 지원해 업무능력을 향상시킨다. 가치지향은 기업문화를 전파하여 One & Only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다. ◇ 섬유, 화학소재 부문에서 연구개발 직무는 매력적▲ [표2. 평가대상기업의 점수비교]코오롱은 국내 재벌사에서 이름을 올린 기업이기는 하지만 사세가 위축되고 있는 기업이다. 다른 그룹과 달리 3세 경영이 정착됐지만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하기 어렵다. 코오롱의 계열사 중 전통적 주력사업인 섬유제조와 패션을 담당하고 있는 코오롱인더스트리, 자동차용 시트를 제작하는 코오롱글로텍, 건설/무역/유통업을 하고 있는 코오롱글로벌이 구직자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기업으로 선정해 평가했다.코오롱인더스트리는 화학소재, 전자재료 등 재료사업과 패션사업으로 구분할 수 있다. 기능성 소재를 활용한 등산복 등 아웃도어 시장의 강자로 군림했지만, 해외브랜드의 국내진출이 활발해지면 많이 위축되고 있다.다른 그룹의 우량기업에 비해 높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지만 코오롱에서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았다. 급여, 자기계발, 성장성, 수익성, 경쟁력, 브랜드 이미지 등 모든 영역에서 골고루 높은 평가를 받은 편이다.코오롱글로텍은 자동차용시트를 제조하는 기업으로서 국내 시장점유율이 높지만 시트소재의 다변화와 치열한 시장경쟁에서 고전하고 있다. 특별한 기술적 경쟁우위가 없고, 브랜드 이미지가 약하다는 맹점을 갖고 있다. 급여, 자기계발, 수익성, 경쟁력, 브랜드 이미지 등 모든 영역에서 코오롱인서스트리에 비해 낮은 평가를 받았다.코오롱글로벌은 건설/무역/유통을 하고 있으나 사명만으로 무엇을 하는 기업인지 판단이 어렵다. 사업부문 중 어느 영역도 특별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지 못하고, 주력사업이 건설도 도급순위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코오롱은 섬유업에서 출발해 다양한 사업영역을 확장했지만 사업부진으로 사업조정을 하고 있다. 회장이 창의성을 강조하고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는 있지만 구직자가 선호할 만한 직무가 눈에 바로 띄지 않는다.화학, 섬유 등의 산업영역에서 연구개발직무에 관심이 있거나, 패션디자인/제품기획 등의 직무에 관심을 가진 구직자라면 관심을 가질 만 하다. 코오롱은 이웅렬 회장의 적극적인 소통노력으로 두산의 박용만 회장과 마찬가지로 젊은이들 사이에서 호평을 받고 있어 그룹의 규모나 위상에 비해 많이 알려진 편이다. - 계속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