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기업문화 대전환] 60. 한국 기업에 없는 '경영의 신'이라는 존재... 철학·윤리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한국에서 탄생 불가능
2026년 AI 붐에 편승해 막대한 성과 낸 이재용 회장... 성과급 논란 등 해결과제 많지만 미봉책만 내놓아
미국식 자본주의가 이 땅에 이식된지도 80년이 지나며 망하지 않고 오래 살아남는 이른바 백년기업(100년 기업)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부자 3대 없고 거지 3대 없다'는 속담이 회자(膾炙)되는 사회라서 더욱 그렇다.
사실 우리나라 기업의 수명이 짧은 것은 자본주의의 도입 역사라 일천하기 때문이 아니라 경영자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에 대한 인식 부족, 시장 변화에 대응 실패, 경영 세습 시스템의 부실 등이 원인이다.
현재 국내에 생존하고 있는 대기업 중 일부가 창업한지 100년이 넘었다고 주장하지만 근거는 미약한 편이다. 각종 통계자료를 보면 대기업의 평균 수명은 약 30년, 중소벤처기업은 약 15년에도 미치지 못하는 편이다.
우리나라 역대 기업 창업자나 경영진 중에서 경영 능력이 탁월해 경영학자로부터 '경영의 신(神)'이라 불리는 사람이 없다. 하지만 이웃 국가인 일본에는 최소 3명이 뛰어난 경영자로 인정받고 있어 원인을 분석할 필요성이 높다.
▲ 일본 교세라그룹의 창업자인 가즈오 이나모리 회장 사진 [출처=홈페이지]
◇ 일본에서 '경영의 신'이라는 불리는 3명의 창업자... 철학·윤리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한국에서 탄생 불가능
일본 재계가 '경영의 신'으로 부르는 경영자는 마츠시다 고노스케(松下幸之助), 혼다 소이치로((本田宗一郎), 가즈오 이나모리(稲盛和夫) 등으로 3명이다.
먼저 마츠시다는 기업을 효율적으로 운영한 경영자로서 이름을 날렸다. 마츠시다는 초등학교 4학년을 중퇴한 가난한 소년의 몸으로 생업에 뛰어들어 파나소닉(Panasonic)을 설립했다.
마츠시다는 자신이 성공한 비결로 가난, 낮은 학력, 허약한 건강 등 3가지를 꼽았다. 가난하고 학력이 낮았지만 이를 원망하지 않고 극복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 꾸준히 실천했다.
가난하므로 먹고살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했을 뿐 아니라 배움이 부족해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며 배우려는 자세를 평생 동안 잃지 않았다. 건강이 좋지 않아 절제된 생활 수칙을 지켜 장수할 수 있었다.
경영자로 명성을 날리게 된 계기는 제품이 판매되지 않아 막대한 재고가 쌓였을 때에 대처한 방식때문이다. 다른 기업은 직원을 해고하며 비용을 줄였지만 마츠시다는 직원을 해고하지 않고 판매 현장에 재배치해 위기를 극복했다.
직원은 가족이므로 경영자가 무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믿었다. 일본식 가족주의 경영과 종신 고용의 신화가 탄생하게 된 계기를 마련하는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
다음으로 혼다는 마츠시다가 경영자로 이름을 알린 것과 달리 기술자로 혁신을 위해 현장을 누볐다. 혼다는 중학교조차 졸업하지 못한 학력에도 혼다자동차의 성장 동력인 핵심 엔진을 직접 개발했다.
15세 때 자동차 정비소에 입사해 6년 동안 일하며 엔진 관련된 기본 지식을 축적했다. 자동차 부품회사를 차려 성장하다가 자체 엔진을 개발해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자전거에 부착하는 소형 엔진의 인기를 업고 오토바이에 도전해 큰 성공을 거뒀다. 오토바이보다 더 큰 자동차를 제작한다고 시도했을 때에는 대형 자동차 제조업체와 경쟁에서 불리할 것이라는 우려를 기술력으로 불식시켰다.
혼다는 '현장에 답이 있다'는 철학을 갖고 학력보다 실력을 중시해 기술력만큼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만들었다. 고장이 나지 않는 오토바이와 자동차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 혼다는 '위대한 경영자'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가즈오는 교세라(Kyocera)를 창업해 크게 성공했지만 회사의 규모보다 독특한 경영철학으로 존경을 받았다. 기업은 단순히 이익 창출을 넘어 구성원의 행복에 기여하고 사회에 공헌해야 한다는 신념을 실천했다.
한국에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아메바경영'으로 알려졌지만 일본인이 가장 존경하는 경영자로 불린지는 매우 오래됐다. 1990년대 초부터 청년의 미래를 연구하기 위한 재단을 설립해 운영했다.
2010년 파산한 일본항공(JAL)의 경영을 맡아 1명의 직원도 해고하지 않고 1년만에 흑자로 전환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일본의 간판기업이 망하도록 버려두는 것은 국민의 한사람으로써 부끄러운 일이라며 모두가 꺼려하는 난제를 기꺼이 맡았다.
기업이 단순히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듯 직원도 급여를 받기 위해서만 일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일을 통해 영혼을 정돈하고 인생관을 정립해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일본의 뛰어난 경영자를 연구하면서 '우리나라에는 왜 이러한 경영자가 없는 것일까?'라는 의문점이 들었다. 일반적으로 경영자라면 가져야 할 사회적 책임, 기술력 확보, 이해관계자에 대한 책임 등을 고민하지 않는 이유가 궁금했다.
미국식 자본주의가 황금만능주의를 낳았고 개인주의가 이기주의로 변질된 것이 주요인으로 분석하는 경영학자도 적지 않다. 일부 전문가는 반도국가의 국민성이나 식민지배의 근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식 등을 부연하기도 한다.
하지만 경영학을 전공하고 오랜 기간 동안 기업 역사나 기업문화(corporate culture)를 연구한 전문가의 입장에서 보면 극단적 이기주의, 배금주의, 국민성, 피지배자 근성 등이 핵심이라고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
오히려 한민족 5000년 역사 동안 철학이나 직업윤리에 대해 체계적으로 연구한 학자가 없어 명확한 국가관·사회관·인생관을 정립하지 못한 결과라고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문제의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내놓는 처방마다 효과가 없었다고 본다. 재벌이나 권력자에 아첨하는 주장으로 곡학아세(曲學阿世)하는 학자나 전문가가 넘쳐나는 것도 기업경영이 개선되지 않는 이유다.
▲ 일본에 있는 혼다 전승관 전경 [출처=홈페이지]
◇ 2026년 AI 붐에 편승해 막대한 성과 낸 이재용 회장... 성과급 논란 등 해결과제 많지만 미봉책만 내놓아
2026년 현재 우리나라에서 1등 기업이라면 삼성그룹이라고 볼 수 있다. 1938년 이병철 전 회장이 창업한 이후 88년 동안 살아남아 이제 곧 100년이 되어 간다.
이병철 회장이 삼성그룹을 도약시킨 것은 섬유와 제당사업에 치우친 사업을 금융, 전자, 반도체로 확장한 결과다. 본격적인 성과가 난 것은 이병철 회장이 사망한 이후인 1990년대로 2세대인 이건희 전 회장이 성과를 누렸다.
이건희 회장은 삼성전자가 메모리 반도체를 넘어 액정표시장치(LCD)와 휴대폰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도록 만든 경영자다. 1993년 독일에서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고 주장하며 대대적인 혁신을 주도했다.
2005년 안기부 X파일 사건과 이후에 터진 김용철 변호사의 내부고발, 삼성물산과 에버랜드를 활용한 편법승계 논란 등으로 이건희 회장의 시대는 저물었다.
혁신 이후에 1등 기업이 추구한 경영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지만 기득권의 옹호로 덮을 수 있었다. 하지만 구시대적인 경영관행과 폐습을 버리지 못해 3세대 경영에서도 '악마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2014년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후 부회장으로 그룹을 이끌다가 2020년 아버지의 사망으로 회장직에 올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측근인 최순실이 자행한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된 것도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2022년 삼성전자 회장에 취임해 삼성그룹 전체를 이끌고 있지만 명확한 경영방침을 내놓지 못했다. 2025년 이재명정부가 출범한 이후 미국에서 불어온 인공지능(AI) 열풍이 반도체 품귀로 이어지며 예상치 못한 횡재(windfall)를 얻었다.
경쟁 상대로조차 여기지도 않았던 SK하이닉스가 고대역폭메모리(HBM) 열풍에 올라 사상 최고 실적을 내는 상황을 보며 부러워했다. 하지만 미국 그래픽처리장치(GPU) 개발업체인 엔비디아(Nvidia)의 구애로 AI 붐에 편승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2026년부터 폭등한 삼성전자의 주가에 이재용 회장의 경영능력이 반영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전문가는 없다. 또한 AI 붐을 이어갈 기술 개발이나 조직력을 구축하는데 지도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선뜻 믿지도 않는다.
일반인조차도 삼성전자의 현재 성과가 AI 붐과 그동안 다져놓은 거래선 및 설비로부터 큰 도움을 받았다는 점을 부인하지 못한다. 사실 이재용 회장의 경영 능력을 검증할 시간은 이제부터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
시장 흐름에 대한 정확한 판단력, AI가 요구하는 기술 진화, 성과급 논란으로 무너진 조직 재건, 다양한 이해관계자에 대한 공정한 배려 등과 같은 과제를 슬기롭게 풀어가야 한다.
쉽지 않은 과제인데 현재까지 성과를 평가하면 '우수'에는 미치지 못하고 '보통'에 불과하다. 직원의 성과급 논란도 모두가 공감할 해결책을 찾았다기보다 미봉책으로 살짝 덮었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 삼성그룹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의 붓글씨 [출처=삼성재단 홈페이지]
◇ 이병철과 이건희 회장의 경영스타일 차이점... 이건희 회장은 서구식 경영방식을 통해 한단계 도약 달성
현 이재용 회장의 아버지이며 창업자 이병철 회장의 아들인 이건희 회장은 셋째 아들이면서도 장자가 가업을 승계하는 것이 당연시되던 사회 분위기를 극복하고 삼성그룹을 물려받았다.
후계자가 된 1980년대 후반은 제조업의 중심이 서구에서 아시아로 이동하고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계기로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지던 시기였다.
이병철 회장이 무리하게 투자한 반도체산업도 싹을 틔웠고 수십 년 동안 양성해온 우수 인재도 풍부했다. 이처럼 모든 사업환경이 좋은 실적을 내기에 유리했다는 점에서 이건희 회장은 '천운이 따르는 사람'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삼성그룹이 국내 최고 기업이고 이 기업을 이끌고 있는 이건희 회장이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고 한국 젊은이의 롤모델이 되어야 한국의 미래가 밝아진다.
이병철 회장과 이건희 회장의 경영스타일은 차이가 많았다. 누구의 경영스타일이 좋고 나쁘다기보다는 삼성의 성장 단계에 따라 필요한 경영스타일이 자연스럽게 나왔다고 볼 수 있다.
이병철 회장은 일본식 경영철학을 도입해 그룹의 기반을 닦았다. 사업 초창기에는 꼼꼼한 관리와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중앙집권적 리더십을 통한 통제가 필요했다. 그는 회사 업무의 모든 것을 직접 챙기고 결정했다.
'이기기 위한 것보다는 지지 않는 싸움을 즐겼다'고 하며 ‘지지 않는 경영인’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능력과 성향덕분에 삼성은 다른 그룹에 비해 부침이 심하지 않은 식품과 금융을 중심으로 하는 사업구조를 갖췄다.
반면 이건희 회장은 현실에 안주하는 조직을 혁신해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한 경영스타일을 선보였다. 관리와 안정을 추구하는 일본식 경영철학보다 새로운 도전과 변화를 추구하는 서구식 경영철학을 수용하려고 노력했다.
아버지가 앞장서는 리더십을 선보였다면 그는 경영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자신은 오히려 일선에서 물러나 전체를 관망하며 경영 전략을 수립했다.
아버지와는 달리 계열사의 전문경영인에게 의사결정권을 대폭 위임했다. '관리' 출신 위주의 전문경영인이 편중된 구조에서 공대 출신 경영인을 중시해 ‘테크니션(technician)’ 시대를 열었다.
이병철 회장이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넌다’는 철학을 중시했다면 이건희 회장은 기회가 주어지면 과감하게 선택해 밀어붙치는 스타일을 선호했다.
그룹 내외의 모든 사람이 자동차 사업을 반대했지만 밀어붙였고 반도체와 LED 등에 대한 설비 투자에도 수십조 원을 과감하게 베팅했다.
비록 자동차 사업은 망했지만 이런 과감성 덕분에 소극적 경쟁자인 일본 전자업체를 뛰어넘는 비약적인 성장을 달성할 수 있었다. 작은 실패보다는 큰 성공을 위해 도전하는 것이 ‘혁신의 지름길이다’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산업화 시대의 삼성 건물에 정보화시대에 적합한 디자인을 입혔다는 평가를 받는다. 두 사람의 차이점은 일본식 경영과 서구식 경영, 산업화 시대와 정보화 시대의 접근법이라고 봐야 한다.
- 계속 -
사실 우리나라 기업의 수명이 짧은 것은 자본주의의 도입 역사라 일천하기 때문이 아니라 경영자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에 대한 인식 부족, 시장 변화에 대응 실패, 경영 세습 시스템의 부실 등이 원인이다.
현재 국내에 생존하고 있는 대기업 중 일부가 창업한지 100년이 넘었다고 주장하지만 근거는 미약한 편이다. 각종 통계자료를 보면 대기업의 평균 수명은 약 30년, 중소벤처기업은 약 15년에도 미치지 못하는 편이다.
우리나라 역대 기업 창업자나 경영진 중에서 경영 능력이 탁월해 경영학자로부터 '경영의 신(神)'이라 불리는 사람이 없다. 하지만 이웃 국가인 일본에는 최소 3명이 뛰어난 경영자로 인정받고 있어 원인을 분석할 필요성이 높다.
▲ 일본 교세라그룹의 창업자인 가즈오 이나모리 회장 사진 [출처=홈페이지]
◇ 일본에서 '경영의 신'이라는 불리는 3명의 창업자... 철학·윤리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한국에서 탄생 불가능
일본 재계가 '경영의 신'으로 부르는 경영자는 마츠시다 고노스케(松下幸之助), 혼다 소이치로((本田宗一郎), 가즈오 이나모리(稲盛和夫) 등으로 3명이다.
먼저 마츠시다는 기업을 효율적으로 운영한 경영자로서 이름을 날렸다. 마츠시다는 초등학교 4학년을 중퇴한 가난한 소년의 몸으로 생업에 뛰어들어 파나소닉(Panasonic)을 설립했다.
마츠시다는 자신이 성공한 비결로 가난, 낮은 학력, 허약한 건강 등 3가지를 꼽았다. 가난하고 학력이 낮았지만 이를 원망하지 않고 극복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 꾸준히 실천했다.
가난하므로 먹고살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했을 뿐 아니라 배움이 부족해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며 배우려는 자세를 평생 동안 잃지 않았다. 건강이 좋지 않아 절제된 생활 수칙을 지켜 장수할 수 있었다.
경영자로 명성을 날리게 된 계기는 제품이 판매되지 않아 막대한 재고가 쌓였을 때에 대처한 방식때문이다. 다른 기업은 직원을 해고하며 비용을 줄였지만 마츠시다는 직원을 해고하지 않고 판매 현장에 재배치해 위기를 극복했다.
직원은 가족이므로 경영자가 무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믿었다. 일본식 가족주의 경영과 종신 고용의 신화가 탄생하게 된 계기를 마련하는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
다음으로 혼다는 마츠시다가 경영자로 이름을 알린 것과 달리 기술자로 혁신을 위해 현장을 누볐다. 혼다는 중학교조차 졸업하지 못한 학력에도 혼다자동차의 성장 동력인 핵심 엔진을 직접 개발했다.
15세 때 자동차 정비소에 입사해 6년 동안 일하며 엔진 관련된 기본 지식을 축적했다. 자동차 부품회사를 차려 성장하다가 자체 엔진을 개발해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자전거에 부착하는 소형 엔진의 인기를 업고 오토바이에 도전해 큰 성공을 거뒀다. 오토바이보다 더 큰 자동차를 제작한다고 시도했을 때에는 대형 자동차 제조업체와 경쟁에서 불리할 것이라는 우려를 기술력으로 불식시켰다.
혼다는 '현장에 답이 있다'는 철학을 갖고 학력보다 실력을 중시해 기술력만큼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만들었다. 고장이 나지 않는 오토바이와 자동차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 혼다는 '위대한 경영자'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가즈오는 교세라(Kyocera)를 창업해 크게 성공했지만 회사의 규모보다 독특한 경영철학으로 존경을 받았다. 기업은 단순히 이익 창출을 넘어 구성원의 행복에 기여하고 사회에 공헌해야 한다는 신념을 실천했다.
한국에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아메바경영'으로 알려졌지만 일본인이 가장 존경하는 경영자로 불린지는 매우 오래됐다. 1990년대 초부터 청년의 미래를 연구하기 위한 재단을 설립해 운영했다.
2010년 파산한 일본항공(JAL)의 경영을 맡아 1명의 직원도 해고하지 않고 1년만에 흑자로 전환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일본의 간판기업이 망하도록 버려두는 것은 국민의 한사람으로써 부끄러운 일이라며 모두가 꺼려하는 난제를 기꺼이 맡았다.
기업이 단순히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듯 직원도 급여를 받기 위해서만 일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일을 통해 영혼을 정돈하고 인생관을 정립해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일본의 뛰어난 경영자를 연구하면서 '우리나라에는 왜 이러한 경영자가 없는 것일까?'라는 의문점이 들었다. 일반적으로 경영자라면 가져야 할 사회적 책임, 기술력 확보, 이해관계자에 대한 책임 등을 고민하지 않는 이유가 궁금했다.
미국식 자본주의가 황금만능주의를 낳았고 개인주의가 이기주의로 변질된 것이 주요인으로 분석하는 경영학자도 적지 않다. 일부 전문가는 반도국가의 국민성이나 식민지배의 근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식 등을 부연하기도 한다.
하지만 경영학을 전공하고 오랜 기간 동안 기업 역사나 기업문화(corporate culture)를 연구한 전문가의 입장에서 보면 극단적 이기주의, 배금주의, 국민성, 피지배자 근성 등이 핵심이라고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
오히려 한민족 5000년 역사 동안 철학이나 직업윤리에 대해 체계적으로 연구한 학자가 없어 명확한 국가관·사회관·인생관을 정립하지 못한 결과라고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문제의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내놓는 처방마다 효과가 없었다고 본다. 재벌이나 권력자에 아첨하는 주장으로 곡학아세(曲學阿世)하는 학자나 전문가가 넘쳐나는 것도 기업경영이 개선되지 않는 이유다.
▲ 일본에 있는 혼다 전승관 전경 [출처=홈페이지]
◇ 2026년 AI 붐에 편승해 막대한 성과 낸 이재용 회장... 성과급 논란 등 해결과제 많지만 미봉책만 내놓아
2026년 현재 우리나라에서 1등 기업이라면 삼성그룹이라고 볼 수 있다. 1938년 이병철 전 회장이 창업한 이후 88년 동안 살아남아 이제 곧 100년이 되어 간다.
이병철 회장이 삼성그룹을 도약시킨 것은 섬유와 제당사업에 치우친 사업을 금융, 전자, 반도체로 확장한 결과다. 본격적인 성과가 난 것은 이병철 회장이 사망한 이후인 1990년대로 2세대인 이건희 전 회장이 성과를 누렸다.
이건희 회장은 삼성전자가 메모리 반도체를 넘어 액정표시장치(LCD)와 휴대폰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도록 만든 경영자다. 1993년 독일에서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고 주장하며 대대적인 혁신을 주도했다.
2005년 안기부 X파일 사건과 이후에 터진 김용철 변호사의 내부고발, 삼성물산과 에버랜드를 활용한 편법승계 논란 등으로 이건희 회장의 시대는 저물었다.
혁신 이후에 1등 기업이 추구한 경영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지만 기득권의 옹호로 덮을 수 있었다. 하지만 구시대적인 경영관행과 폐습을 버리지 못해 3세대 경영에서도 '악마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2014년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후 부회장으로 그룹을 이끌다가 2020년 아버지의 사망으로 회장직에 올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측근인 최순실이 자행한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된 것도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2022년 삼성전자 회장에 취임해 삼성그룹 전체를 이끌고 있지만 명확한 경영방침을 내놓지 못했다. 2025년 이재명정부가 출범한 이후 미국에서 불어온 인공지능(AI) 열풍이 반도체 품귀로 이어지며 예상치 못한 횡재(windfall)를 얻었다.
경쟁 상대로조차 여기지도 않았던 SK하이닉스가 고대역폭메모리(HBM) 열풍에 올라 사상 최고 실적을 내는 상황을 보며 부러워했다. 하지만 미국 그래픽처리장치(GPU) 개발업체인 엔비디아(Nvidia)의 구애로 AI 붐에 편승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2026년부터 폭등한 삼성전자의 주가에 이재용 회장의 경영능력이 반영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전문가는 없다. 또한 AI 붐을 이어갈 기술 개발이나 조직력을 구축하는데 지도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선뜻 믿지도 않는다.
일반인조차도 삼성전자의 현재 성과가 AI 붐과 그동안 다져놓은 거래선 및 설비로부터 큰 도움을 받았다는 점을 부인하지 못한다. 사실 이재용 회장의 경영 능력을 검증할 시간은 이제부터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
시장 흐름에 대한 정확한 판단력, AI가 요구하는 기술 진화, 성과급 논란으로 무너진 조직 재건, 다양한 이해관계자에 대한 공정한 배려 등과 같은 과제를 슬기롭게 풀어가야 한다.
쉽지 않은 과제인데 현재까지 성과를 평가하면 '우수'에는 미치지 못하고 '보통'에 불과하다. 직원의 성과급 논란도 모두가 공감할 해결책을 찾았다기보다 미봉책으로 살짝 덮었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 삼성그룹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의 붓글씨 [출처=삼성재단 홈페이지]
◇ 이병철과 이건희 회장의 경영스타일 차이점... 이건희 회장은 서구식 경영방식을 통해 한단계 도약 달성
현 이재용 회장의 아버지이며 창업자 이병철 회장의 아들인 이건희 회장은 셋째 아들이면서도 장자가 가업을 승계하는 것이 당연시되던 사회 분위기를 극복하고 삼성그룹을 물려받았다.
후계자가 된 1980년대 후반은 제조업의 중심이 서구에서 아시아로 이동하고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계기로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지던 시기였다.
이병철 회장이 무리하게 투자한 반도체산업도 싹을 틔웠고 수십 년 동안 양성해온 우수 인재도 풍부했다. 이처럼 모든 사업환경이 좋은 실적을 내기에 유리했다는 점에서 이건희 회장은 '천운이 따르는 사람'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삼성그룹이 국내 최고 기업이고 이 기업을 이끌고 있는 이건희 회장이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고 한국 젊은이의 롤모델이 되어야 한국의 미래가 밝아진다.
이병철 회장과 이건희 회장의 경영스타일은 차이가 많았다. 누구의 경영스타일이 좋고 나쁘다기보다는 삼성의 성장 단계에 따라 필요한 경영스타일이 자연스럽게 나왔다고 볼 수 있다.
이병철 회장은 일본식 경영철학을 도입해 그룹의 기반을 닦았다. 사업 초창기에는 꼼꼼한 관리와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중앙집권적 리더십을 통한 통제가 필요했다. 그는 회사 업무의 모든 것을 직접 챙기고 결정했다.
'이기기 위한 것보다는 지지 않는 싸움을 즐겼다'고 하며 ‘지지 않는 경영인’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능력과 성향덕분에 삼성은 다른 그룹에 비해 부침이 심하지 않은 식품과 금융을 중심으로 하는 사업구조를 갖췄다.
반면 이건희 회장은 현실에 안주하는 조직을 혁신해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한 경영스타일을 선보였다. 관리와 안정을 추구하는 일본식 경영철학보다 새로운 도전과 변화를 추구하는 서구식 경영철학을 수용하려고 노력했다.
아버지가 앞장서는 리더십을 선보였다면 그는 경영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자신은 오히려 일선에서 물러나 전체를 관망하며 경영 전략을 수립했다.
아버지와는 달리 계열사의 전문경영인에게 의사결정권을 대폭 위임했다. '관리' 출신 위주의 전문경영인이 편중된 구조에서 공대 출신 경영인을 중시해 ‘테크니션(technician)’ 시대를 열었다.
이병철 회장이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넌다’는 철학을 중시했다면 이건희 회장은 기회가 주어지면 과감하게 선택해 밀어붙치는 스타일을 선호했다.
그룹 내외의 모든 사람이 자동차 사업을 반대했지만 밀어붙였고 반도체와 LED 등에 대한 설비 투자에도 수십조 원을 과감하게 베팅했다.
비록 자동차 사업은 망했지만 이런 과감성 덕분에 소극적 경쟁자인 일본 전자업체를 뛰어넘는 비약적인 성장을 달성할 수 있었다. 작은 실패보다는 큰 성공을 위해 도전하는 것이 ‘혁신의 지름길이다’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산업화 시대의 삼성 건물에 정보화시대에 적합한 디자인을 입혔다는 평가를 받는다. 두 사람의 차이점은 일본식 경영과 서구식 경영, 산업화 시대와 정보화 시대의 접근법이라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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