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기업문화 대전환] 61. 대기업 오너의 경영스타일 이슈... 이건희 회장의 경영스타일 논란
일본·중국에서는 수천 년 동안 존경받는 인물이 존재해... 우리나라는 모두가 같아 존경하는 인물은 없어
일본에는 '경영의 신'이라고 불리는 경영자가 3명이나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1명도 없다. 자본주의 도입 역사가 짧았다기보다 기업경영에 대한 철학이나 소신을 가진 경영자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보여진다.
한국의 재벌은 파괴적인 혁신(disruptive innovatoion)보다는 정경유착을 통해 성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45년 해방 이후에도 미 군정이나 군사독재정부와 협력하며 독점 사업을 확보했다.
우리나라 재벌의 역사가 100년에 가까워졌지만 경영전략이 변하지 않았다. 정부와 정치적 밀월 유지, 재벌 간 부당한 카르텔 형성, 이해관계자에 대한 배려 부족 등이 대표적인 문제점이다.
경영의 신으로 불리거나 사회적 존경은 고사하고 비난받지 않는 경영인조차 드물다. 돈을 벌기 위해 무슨 일이든 열심히 했다는 변명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아무리 결과가 좋아도 과정이 올바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대기업 오너의 경영 스타일과 삼성그룹의 2세대 경영자인 이건희 회장에 대한 다양한 이슈를 정리해보자.
▲ 삼성의 미래 표지 by 민진규 교수 [출처=구비구비]
◇ 일본·중국에서는 수천 년 동안 존경받는 인물이 존재해... 우리나라는 모두가 같아 존경하는 인물은 없어
일본인은 전국시대의 영웅인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도구카와 이에야스(徳川家康) 등의 인물을 숭상한다. 정치인이 아닌 일반인조차도 3명 중 자신의 롤모델(Role Model)이 누구인지 스스럼없이 밝힐 정도다.
3명의 성격이나 특징은 명확하며 이들을 설명하는 두견새에 관련된 이야기기 회자(膾炙)된다. 먼저 오다 노부가나는 '울지 않는 두견새는 필요 없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실력과 리더십을 갖춘 인물로 정치적 판단력이 뛰어났다.
다음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두견새가 울지 않으면 재롱을 부려서라도 울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천민 출신으로 오다 노부나가의 신임을 얻어 최고 권력자로 부상했다. 권모술수에 뛰어나고 잔인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마지막으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두견개가 울지 않으면 울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고 믿었다. 언제가는 재능을 발휘할 것이므로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봤다. 좋은 집안과 실력을 갖췄지만 자신에게 유리한 국면이 조성될 때까지 기다렸다.
일본 중세시대를 종료하는 천하통일은 오다 노부나가가 달성했지만 결국 천하의 주인으로 권력을 장악한 인물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다. 그는 '인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것과 같다. 절대 서루르면 안 된다'는 말을 남겼다.
중국에서는 삼국지에 나오는 유비(劉備)·관우(關羽)·장비(張飛)라는 3명의 인물을 자주 비교하는 편이다. 조조(曹操)의 위(魏), 손권(孫權)의 오(吳), 유비는 촉(蜀)이 천하를 재패하기 위해 싸웠지만 최후의 승자는 조조였다.
조조가 전쟁에서 승리해 천하의 주인이 되었기 때문에 그를 역사적 인물로 숭상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중국인들은 조조보다 유비·관우·장비를 더 자주 언급하며 좋아한다. 이들이 맺은 도원결의는 군자가 걸어야 할 길을 잘 보여준다고 존중한다.
유비는 망한 황족 출신으로 돗자리 장수로 생업을 유지하다가 어지러운 국가를 구하고자 군사를 일으켰다. 우유부단한 성격과 강한 질투심은 표면적으로 어진 군주로 평가받는데는 충분했지만 천하를 통일할 리더십을 갖추지 못하게 만들었다.
관우는 서당 훈장 출신으로 뛰어난 실력과 충성심으로 가장 호평을 받는 인물이다. 주군인 유비를 위해 목숨을 바쳤으며 적군의 지휘관인 조조의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았다. 중국인은 수 천년 동안 관우를 '재물의 신'으로 모시며 숭상한다.
장비는 돼지 장수로 살다가 유비·관우와 협력하며 천하의 맹장으로 변신했다. 뛰어난 무술 실력으로 인정받았지만 성급한 기질과 무지로 지휘관으로서 성공하지 못했다. 장수는 절대적 충성심 뿐 아니라 전략과 전술을 수립할 지식과 지능이 필요하다는 점을 일깨워준 인물이다.
일본과 중국의 역사적 인물을 장황하게 설명한 것은 우리나라에서 유사한 사례를 찾을 수 있을 것인지 자문하기 위함이다. 고조선을 건국한 단군부터 시작해 고구려의 장수왕·광개토대왕, 신라의 김춘추·선덕여왕, 백제의 의자왕, 고려의 광종·공양왕, 조선의 세종·영조·정조 등이 대표적인 왕이다.
단군이 뛰어난 지혜와 리더십으로 고조선을 잘 경영했다는 기록은 없다. 장수왕과 광개토왕은 영토를 넓혔다는 것외에 부하로부터 존경과 찬양받았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김춘추와 선덕여왕은 삼국의 통일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지만 특별한 인간미나 전략을 수립했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의자왕은 초기에 개혁조치를 추진하다 국가를 망하게 만든 장본인이다.
광종은 과거제를 도입하며 인재 선발에 관심을 가진 왕이었다는 점외에는 특별한 인간적 특성은 찾기 어렵다. 공양왕은 혼란한 사회를 수습하기 위해 다양한 조치를 취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세종은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한글 보급에 앞장섰을 뿐 아니라 인재 발굴에도 최선을 다했지만 리더십이 명확하지 않다. 영조는 장기간 권력을 장악했지만 자식을 죽이는 과오를 범했다. 정조는 나름 혁신적인 조치를 단행했지만 무능한 자식에게 권력을 넘겨 세도정치의 출발점으로 작용했다.
▲ 기업문화 대전환 - 삼성그룹 표지 by 민진규 교수 [출처=엠아이앤뉴스]
◇ 이건희 회장의 경영스타일 논란... 아바타경영과 혁신의 대명사로 불렸지만 사후에 논의조차 사라져
이건희 회장은 현대의 기업 경영자에게 보기 힘든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외국 언론에 ‘은둔자’로 불렸다. 대중 앞에 거의 나타나지 않았고 은둔하며 측근을 앞세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는 ‘아바타(avata) 경영’을 펼쳤다.
다른 사람 앞에 나타나거나 앞장서는 것을 싫어하는 내향적인 성격 때문이라고 주장했지만 특이한 경영 스타일인 것만은 틀림없다. 권한은 행사하되 책임을 지지 않는 경영방식이라고 비난받기도 했다.
아바타는 주인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것이나 삼성그룹의 발전이 이건희 회장의 선견지명이나 철학, 능력을 현장에서 실천한 전문 경영인의 노력이었다는 점에서 부정적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틈만 나면 삼성이 위기 국면에 있다고 주장하는 ‘위기경영’도 그의 경영스타일이었다. ‘삼성도 하루 아침에 구멍가게로 전락할 수 있다’고 주장하거나 ‘현재 삼성을 먹여 살리고 있는 사업이 전부 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건희 회장은 미국식 경영을 신봉했지만 사업모델은 일본 전자업계를 따랐다. 일본 전자업계는 1980년대 화려한 성공체험과 기술 지상주의에 빠져 한국의 후발업체인 삼성, LG에 일격을 당했다.
틈날 때마다 일본에 들르는 이 회장은 자신이 그토록 동경했던 소니(Sony)와 같은 대표 기업이 흔들리는 것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았을 것으로 본다.
삼성의 실적은 기술력보다는 시장의 외부환경에 따른 결과로 보기 때문에 방심하다간 대만, 중국, 인도 등의 제조기업에 당할 수 있다고 인식하면서 위기경영이 나왔다.
또한 직설적인 화법보다는 은유적 표현을 즐겨 경영인보다 정치인에 가까운 스타일을 보인다. 자신의 생각을 몇 마디로 요약하고 참모가 정리해 각 계열사별, 사업부별, 제품별로 행동지침을 만들어 배포한다.
똑똑한 참모가 어록까지 만들어 직원을 교육시키고 꿈보다 해몽을 잘하는 방식으로 대단한 효과를 거뒀다. 그렇게 경영을 펼치던 이 회장이 직설적인 화법으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2010년 이병철 탄생 100주년 행사장에서 그는 ‘모든 국민이 정직했으면 좋겠다. 거짓말 없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고 발언했다. 주요 언론은 보도를 자제했지만, 온라인에서 논란이 거셌다.
주요 내용은 ‘삼성이나 거짓말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주장에서부터 ‘이건희 회장을 포함한 삼성 직원이 먼저 정직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다양했다.
2011년 3월 이명박정부의 경제정책 점수가 ‘낙제점은 아니다’라고 발언해 정부와 청와대가 발끈했다. 참모들이 나서서 진화를 위해 노력했지만 정부와 불편한 관계가 유지됐다.
경영스타일에 대해 논란은 많았지만 삼성이 뛰어난 실적을 보이며 이건희식 경영은 비난보다는 칭찬을 더 받았다. 하지만 삼성의 사업 규모나 외부환경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2011년 이 회장은 경영에 전격 복귀한 후 언론도 직접 상대하고 삼성 본관에 매일 나가는 ‘출근경영’을 시작했다. 아바타경영의 한계를 느꼈고 위기경영도 예전처럼 잘 먹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1987년 삼성그룹 회장에 취임한 이후 보여준 경영스타일이 내·외부에 각인되어 새로운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출근경영 이후 임원급은 긴장한 것으로 보였지만 일반 직원은 근무 태도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퇴근 시간에 맞춰 삼성 본사에서 나오는 직원과 차량의 숫자가 전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건희 회장은 1993년 프랑크푸르트 선언 이후 조직에 혁신을 주문했지만 정작 이후에 안기부 X파일 사건, 김용철 변호사의 내부 고발, 불법 승계 논란 등은 사라지지 않았다.
2020년 이건희 회장이 사망한 이후 그의 혁신적인 경영 스타일이나 성과에 대해 언급하는 경영학자나 언론이 하나도 없다.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를 아무리 크게 불러도 돈을 줄 사람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 계속 -
한국의 재벌은 파괴적인 혁신(disruptive innovatoion)보다는 정경유착을 통해 성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45년 해방 이후에도 미 군정이나 군사독재정부와 협력하며 독점 사업을 확보했다.
우리나라 재벌의 역사가 100년에 가까워졌지만 경영전략이 변하지 않았다. 정부와 정치적 밀월 유지, 재벌 간 부당한 카르텔 형성, 이해관계자에 대한 배려 부족 등이 대표적인 문제점이다.
경영의 신으로 불리거나 사회적 존경은 고사하고 비난받지 않는 경영인조차 드물다. 돈을 벌기 위해 무슨 일이든 열심히 했다는 변명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아무리 결과가 좋아도 과정이 올바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대기업 오너의 경영 스타일과 삼성그룹의 2세대 경영자인 이건희 회장에 대한 다양한 이슈를 정리해보자.
▲ 삼성의 미래 표지 by 민진규 교수 [출처=구비구비]
◇ 일본·중국에서는 수천 년 동안 존경받는 인물이 존재해... 우리나라는 모두가 같아 존경하는 인물은 없어
일본인은 전국시대의 영웅인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도구카와 이에야스(徳川家康) 등의 인물을 숭상한다. 정치인이 아닌 일반인조차도 3명 중 자신의 롤모델(Role Model)이 누구인지 스스럼없이 밝힐 정도다.
3명의 성격이나 특징은 명확하며 이들을 설명하는 두견새에 관련된 이야기기 회자(膾炙)된다. 먼저 오다 노부가나는 '울지 않는 두견새는 필요 없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실력과 리더십을 갖춘 인물로 정치적 판단력이 뛰어났다.
다음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두견새가 울지 않으면 재롱을 부려서라도 울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천민 출신으로 오다 노부나가의 신임을 얻어 최고 권력자로 부상했다. 권모술수에 뛰어나고 잔인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마지막으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두견개가 울지 않으면 울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고 믿었다. 언제가는 재능을 발휘할 것이므로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봤다. 좋은 집안과 실력을 갖췄지만 자신에게 유리한 국면이 조성될 때까지 기다렸다.
일본 중세시대를 종료하는 천하통일은 오다 노부나가가 달성했지만 결국 천하의 주인으로 권력을 장악한 인물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다. 그는 '인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것과 같다. 절대 서루르면 안 된다'는 말을 남겼다.
중국에서는 삼국지에 나오는 유비(劉備)·관우(關羽)·장비(張飛)라는 3명의 인물을 자주 비교하는 편이다. 조조(曹操)의 위(魏), 손권(孫權)의 오(吳), 유비는 촉(蜀)이 천하를 재패하기 위해 싸웠지만 최후의 승자는 조조였다.
조조가 전쟁에서 승리해 천하의 주인이 되었기 때문에 그를 역사적 인물로 숭상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중국인들은 조조보다 유비·관우·장비를 더 자주 언급하며 좋아한다. 이들이 맺은 도원결의는 군자가 걸어야 할 길을 잘 보여준다고 존중한다.
유비는 망한 황족 출신으로 돗자리 장수로 생업을 유지하다가 어지러운 국가를 구하고자 군사를 일으켰다. 우유부단한 성격과 강한 질투심은 표면적으로 어진 군주로 평가받는데는 충분했지만 천하를 통일할 리더십을 갖추지 못하게 만들었다.
관우는 서당 훈장 출신으로 뛰어난 실력과 충성심으로 가장 호평을 받는 인물이다. 주군인 유비를 위해 목숨을 바쳤으며 적군의 지휘관인 조조의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았다. 중국인은 수 천년 동안 관우를 '재물의 신'으로 모시며 숭상한다.
장비는 돼지 장수로 살다가 유비·관우와 협력하며 천하의 맹장으로 변신했다. 뛰어난 무술 실력으로 인정받았지만 성급한 기질과 무지로 지휘관으로서 성공하지 못했다. 장수는 절대적 충성심 뿐 아니라 전략과 전술을 수립할 지식과 지능이 필요하다는 점을 일깨워준 인물이다.
일본과 중국의 역사적 인물을 장황하게 설명한 것은 우리나라에서 유사한 사례를 찾을 수 있을 것인지 자문하기 위함이다. 고조선을 건국한 단군부터 시작해 고구려의 장수왕·광개토대왕, 신라의 김춘추·선덕여왕, 백제의 의자왕, 고려의 광종·공양왕, 조선의 세종·영조·정조 등이 대표적인 왕이다.
단군이 뛰어난 지혜와 리더십으로 고조선을 잘 경영했다는 기록은 없다. 장수왕과 광개토왕은 영토를 넓혔다는 것외에 부하로부터 존경과 찬양받았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김춘추와 선덕여왕은 삼국의 통일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지만 특별한 인간미나 전략을 수립했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의자왕은 초기에 개혁조치를 추진하다 국가를 망하게 만든 장본인이다.
광종은 과거제를 도입하며 인재 선발에 관심을 가진 왕이었다는 점외에는 특별한 인간적 특성은 찾기 어렵다. 공양왕은 혼란한 사회를 수습하기 위해 다양한 조치를 취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세종은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한글 보급에 앞장섰을 뿐 아니라 인재 발굴에도 최선을 다했지만 리더십이 명확하지 않다. 영조는 장기간 권력을 장악했지만 자식을 죽이는 과오를 범했다. 정조는 나름 혁신적인 조치를 단행했지만 무능한 자식에게 권력을 넘겨 세도정치의 출발점으로 작용했다.
▲ 기업문화 대전환 - 삼성그룹 표지 by 민진규 교수 [출처=엠아이앤뉴스]
◇ 이건희 회장의 경영스타일 논란... 아바타경영과 혁신의 대명사로 불렸지만 사후에 논의조차 사라져
이건희 회장은 현대의 기업 경영자에게 보기 힘든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외국 언론에 ‘은둔자’로 불렸다. 대중 앞에 거의 나타나지 않았고 은둔하며 측근을 앞세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는 ‘아바타(avata) 경영’을 펼쳤다.
다른 사람 앞에 나타나거나 앞장서는 것을 싫어하는 내향적인 성격 때문이라고 주장했지만 특이한 경영 스타일인 것만은 틀림없다. 권한은 행사하되 책임을 지지 않는 경영방식이라고 비난받기도 했다.
아바타는 주인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것이나 삼성그룹의 발전이 이건희 회장의 선견지명이나 철학, 능력을 현장에서 실천한 전문 경영인의 노력이었다는 점에서 부정적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틈만 나면 삼성이 위기 국면에 있다고 주장하는 ‘위기경영’도 그의 경영스타일이었다. ‘삼성도 하루 아침에 구멍가게로 전락할 수 있다’고 주장하거나 ‘현재 삼성을 먹여 살리고 있는 사업이 전부 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건희 회장은 미국식 경영을 신봉했지만 사업모델은 일본 전자업계를 따랐다. 일본 전자업계는 1980년대 화려한 성공체험과 기술 지상주의에 빠져 한국의 후발업체인 삼성, LG에 일격을 당했다.
틈날 때마다 일본에 들르는 이 회장은 자신이 그토록 동경했던 소니(Sony)와 같은 대표 기업이 흔들리는 것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았을 것으로 본다.
삼성의 실적은 기술력보다는 시장의 외부환경에 따른 결과로 보기 때문에 방심하다간 대만, 중국, 인도 등의 제조기업에 당할 수 있다고 인식하면서 위기경영이 나왔다.
또한 직설적인 화법보다는 은유적 표현을 즐겨 경영인보다 정치인에 가까운 스타일을 보인다. 자신의 생각을 몇 마디로 요약하고 참모가 정리해 각 계열사별, 사업부별, 제품별로 행동지침을 만들어 배포한다.
똑똑한 참모가 어록까지 만들어 직원을 교육시키고 꿈보다 해몽을 잘하는 방식으로 대단한 효과를 거뒀다. 그렇게 경영을 펼치던 이 회장이 직설적인 화법으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2010년 이병철 탄생 100주년 행사장에서 그는 ‘모든 국민이 정직했으면 좋겠다. 거짓말 없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고 발언했다. 주요 언론은 보도를 자제했지만, 온라인에서 논란이 거셌다.
주요 내용은 ‘삼성이나 거짓말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주장에서부터 ‘이건희 회장을 포함한 삼성 직원이 먼저 정직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다양했다.
2011년 3월 이명박정부의 경제정책 점수가 ‘낙제점은 아니다’라고 발언해 정부와 청와대가 발끈했다. 참모들이 나서서 진화를 위해 노력했지만 정부와 불편한 관계가 유지됐다.
경영스타일에 대해 논란은 많았지만 삼성이 뛰어난 실적을 보이며 이건희식 경영은 비난보다는 칭찬을 더 받았다. 하지만 삼성의 사업 규모나 외부환경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2011년 이 회장은 경영에 전격 복귀한 후 언론도 직접 상대하고 삼성 본관에 매일 나가는 ‘출근경영’을 시작했다. 아바타경영의 한계를 느꼈고 위기경영도 예전처럼 잘 먹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1987년 삼성그룹 회장에 취임한 이후 보여준 경영스타일이 내·외부에 각인되어 새로운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출근경영 이후 임원급은 긴장한 것으로 보였지만 일반 직원은 근무 태도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퇴근 시간에 맞춰 삼성 본사에서 나오는 직원과 차량의 숫자가 전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건희 회장은 1993년 프랑크푸르트 선언 이후 조직에 혁신을 주문했지만 정작 이후에 안기부 X파일 사건, 김용철 변호사의 내부 고발, 불법 승계 논란 등은 사라지지 않았다.
2020년 이건희 회장이 사망한 이후 그의 혁신적인 경영 스타일이나 성과에 대해 언급하는 경영학자나 언론이 하나도 없다.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를 아무리 크게 불러도 돈을 줄 사람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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