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지방자치평가] 색깔 없는 지역특성과 무사안일 행정의 대전, 근시안적 개발공약으로 신성장 동력 찾는 것은 불가능해(1)
민진규 대기자
2019-12-10
정치색이나 출신성분이 비슷한 시장으로 지역특색 찾기 어려워, 서비스업 중심으로 경기변동에 민감하지 않지만 성장가능성도 낮아

남한의 중심에 위치해 있으면서 교통의 요지인 대전광역시(이하 대전시)는 구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한 곳이지만 일제시대인 1914년 대전군이 신설되면서 현재의 지명을 얻게 됐다. 해방 이후인 1949년 대전시로 승격됐다가 1989년 대전직할시, 1995년 대전광역시로 각각 개칭됐다.


▲국가정보전략연구소장 민진규(출처 : iNIS)

대전이 포함된 충청도는 경상도나 전라도와는 차별화된 지역 특성이 있다. 통일신라 이후 1,000년 동안 한반도의 정치사를 주도한 경상도, 백제가 멸망한 이후 현재까지 중앙정치에서 홀대 받은 전라도의 싸움을 지켜보면서 중용(中庸)을 지키는 것이 생존에 긴요하다는 점을 몸소 체득했다.

이러한 특성은 지역 출신의 정치인이나 주민들 사고와 행동에도 짙게 배여 높은 수준의 처세술로 나타났다. 어느 쪽도 옳거나 그릇되지 않았다는 유연한 사고와 서두를 필요도 없이 한발 늦은 느린 행동은 행정의 추진력을 떨어뜨려 지역발전의 발목을 잡았다.

대전시의 자치행정을 국가정보전략연구소가 개발한 오곡밸리모델을 적용해 평가해 세부 지표별 문제점과 개선방안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시정구호만 살펴보면 지역주민에게 나쁜 블랙기업

정치 충청권을 대표하는 대전은 김종필 전 총리가 1961년 5∙16 군사 쿠데타의 주역으로 중앙정치의 중심에서 머물면서 현대 정치사에 족적을 남길 수 있었지만 좋은 기회를 살리지는 못했다.

김종필이 박정희 정권에서 만년 2인자로 머물렀고, 1987년 민주화 이후에는 자유민주연합이라는 군소정당을 창당해 영남과 호남의 정치세력 다툼을 조정하는 역할에 만족했기 때문이다.

지방자치가 시작된 1995년 이후 역대 대전시장은 홍선기, 염홍철, 박성효, 권선택, 허태정 등이 맡았다. 홍선기는 6대와 7대 2회, 염홍철은 8대와 10대, 박성효는 9대, 권선택은 11대 시장이었고, 허태정이 12대 시장직책을 수행하고 있다.

홍선기, 염홍철, 박성효가 보수정당 출신이고, 권선택과 허태정은 진보정당 소속이다. 홍선기는 충청을 기반으로 급조되었던 자유민주연합 소속으로 연임했지만 별다른 정치적 업적을 남기지는 못했다.

김종필의 정치적 영향력이 위축된 2004년 19대 총선 이후 대전 지역도 보수의 아성에서 진보진영으로 권력이 서서히 이동하고 있는 중이지만 호남의 진보와는 정치적 입장이나 인물의 구성이 다르다. 대전지역 정치인은 정당의 소속은 다르지만 인물의 면면을 보면 정치색이나 출신성분이 유사하다.

역대 시장들의 시정구호를 살펴보면 홍선기는 ‘위대한 대전, 긍지 높은 시민의 시대’, 염홍철은 ‘가장 살기 좋은 대전 건설’과 ‘세계로 열린 대전, 꿈을 이루는 시민’, 박성효는 ‘함께 가꾸는 대전, 함께 누리는 행복’, 권선택은 ‘시민을 행복하게, 대전을 살 맛나게’, 허태정은 ‘새로운 대전, 시민의 힘으로’ 등을 각각 제시했다.

지역정치가 중앙정치에 종속되면서 지역 정치인들은 선거공약을 개발하기 보다는 중앙당 차원의 바람을 우선적으로 기대한다. 다른 광역지방자치단체와 달리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등식은 성립하지 않았지만 중앙정치의 판세가 지역정치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역대 당선자들도 선거에서 개인적 역량보다는 정당의 후광을 최대한 활용했다.

주 52시간을 강제하며 일과 삶의 균형(work and life balance)’ 정책을 펼치는 문재인 정부에서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는 블랙기업(black company)이라는 용어도 기업문화(corporate culture) 관점에서 연구할 수 있다. 기업문화 전문가인 필자는 블랙기업에 관해 다수의 칼럼을 기고했는데 블랙기업의 비전(vision)이나 미션(mission)이 대전시의 시정구호와 유사한 특성을 보인다.

블랙기업은 ‘위대한’, ‘긍지’, ‘꿈(dream)’, ‘행복(happiness)’, ‘세계’ 등의 단어는 많이 사용하는데 대전시의 역대 시정구호도 비슷하다. 대전시가 지역 정치인과 공무원들에게는 블랙기업은 아니지만 지역 주민들에게는 블랙기업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지방자치시대가 열린 지도 25년이 지났지만 지방자치가 제대로 정착했다는 평가를 내리기는 어려운 이유도 선거공약이나 행정이 구호만 난무했기 때문이라고 판단된다.

개념조차 명확하게 정의하기 어려운 용어를 무차별적으로 사용하고 이를 측정할 지표는 전혀 제시하지 않은 것도 행정이 낙후되게 만들었다. 지역 공무원들도 행정서비스의 질(quality)을 개선하기 보다는 지역 정치인에게 줄을 서는 것이 승진에 유리하다는 것을 파악해 행동하는 것도 블랙기업의 특징이다.

지방자치가 정상화되기 위해서는 지역주민의 정치의식 수준이 높아져야 하지만 바뀌는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 대전시는 구도심과 유성구, 대덕구 등 신도심이 인구구성 측면에서 극명하게 구분된다.

구도심은 토착민의 비중이 높고, 신도심은 학력이 높은 외지인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대전시의 정치가 선진화되기 위해서는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지만 변화를 위한 자체 동인(driver)을 확보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 대덕연구단지라는 천혜의 자원을 확보하고도 살리지 못해

경제 2019년 대전시 세입은 3조8,455억원으로 전년 3조4,887억원에 비해 3,567억원이 증가했다. 지방세는 1조5,043억원으로 전체 예산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해 재정자립도가 열악한 것으로 드러났다. 2019년 전체 예산은 5조7,530억원이고, 2020년 예산은 6조7,822억원으로 18% 증액해 편성했다.

대전시의 지역내총생산(GRDP)는 2017년 기준 2,436만원으로 2015년 2,208만원, 2016년 2,341만원 등에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전국 평균인 3,365만원에 비해서는 한참 낮은 편이다. 서울특별시의 3,806만원, 울산광역시의 6,441만원, 충청남도의 5,149만원, 전북의 3,965만원, 충청북도의 3,803만원, 경북의 3,699만원, 경남의 3,226만원 등과 비교해도 적다.

하지만 2017년 기준 1인당 개인소득은 서울이 가장 높은데 2,081만원, 울산이 2,018만원, 경기도가 1,790만원, 대전이 1,776만으로 전국에서 4번째로 높다. 개인당 소비도 많은 도시답게 제조업보다는 서비스업이 76% 이상을 차지하는 경제구조를 갖고 있다. 울산광역시 등과 달리 제조업의 비율은 18%에 불과할 정도로 낮다.

중앙정부기관, 공기업, 연구소, 금융기관, 대기업 지역 본부 등이 일자리의 대부분을 제공하는데 대덕연구단지 내 국책연구소, 민간연구소에 근무하는 직원만 7만명을 상회한다. 정부대전청사에도 7,000명 정도가 근무하고, 수자원공사, 조폐공사, 철도공사 등의 본사에도 많은 직원이 일하고 있다.

조선, 자동차, 화학 등 제조업의 급격한 위축으로 도시가 황폐화되고 있는 울산광역시와 달리 서비스업이 위주인 대전시의 경제는 경기변동에 민감한 구조는 아니지만 급격한 성장세를 유지하기도 어렵다. 석∙박사 출신의 고급 연구원이 일하는 연구소, 정부부처, 공기업 등은 일자리를 급격하게 늘리기도 어렵고, 급여의 변동도 크지 않다.

대전시의 발전에 아쉬운 점 중 하나가 정부대전청사를 확보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세종시로 중앙부처 이전지를 빼앗긴 점이다. 부동산 투기를 하는 사람들이나 건설업체의 입장에서는 개발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지역을 선호하겠지만 집적효과를 감안했다면 정부대전청사를 확대하는 것이 합리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세종시도 다른 행정기능 도시와 마찬가지로 주말에는 유령의 도시로 전락했고, 대전시도 인구가 감소하면서 점점 쇠락하는 중이다.

2020년부터 신규 일자리 창출, 4차산업혁명 가속화, 바이오 메디컬산업 육성 등 융∙복합 혁신 생태계를 육성할 계획이다. 생활 SOC사업, 원도심 활성화 사업 등 도시기반 확충, 환경, 안전 등도 개선해 지역발전의 기반도 구축할 방침이다.

제조업 기반이 약하고 서비스업이 주력인 지역 산업구조를 감안하면 4차산업혁명이나 바이오 메디컬산업을 발전시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대전시는 인구의 감소에 더불어 지역의 경제도 서서히 침몰하고 있다. 지하철을 운영하고 도시철도 2호선으로 트램을 도입한다고 지역의 경제가 살아날 가능성은 없다. 대덕연구단지라는 천혜의 자원을 확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는 것도 아쉽다.

대덕연구단지는 1974년 조성되기 시작해 1992년 연구단지로 확장됐고, 1999년부터 대덕연구단지관리법을 통해 연구성과의 실용화, 벤처기업의 유치 등을 추진하고 있다.

국가연구소는 기초 원천기술을 개발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지만 대기업들이 자체 연구소를 통해 기술을 확보하고 있어 기술이전 실적이 매우 저조한 수준으로 존립기반조차 흔들리고 있다.

공급자 중심의 연구개발의 틀어 넘어 수요자 중심의 혁신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적응하지 못하면 대덕연구단지의 미래도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보수적인 국가연구소는 혁신을 터부시하기 때문에 종국적으로 대전시의 핵심 경제동력도 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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