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인천·울산·여수광양항만공사 노동조합, 정부의 일방적인 통합 결정에 반대
명분 없는 졸속적인 강제통합을 멈추지 않는다면 우리의 투쟁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최인수 기자
2026-09-03 오후 8:46:16

▲ 인천항만공사 본사 전경 [출처=인천항만공사]


부산·인천·울산·여수광양항만공사 노동조합은 2026년 9월3이 정부의  일방적인 통합 결정에 깊은 유감과 참담함을 느끼며 이에 강력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9월3일 국무총리 주재로 공공기관 기능개혁 방안을 발표하며 부산·인천·울산·여수광양 4개 항만공사의 통합을 결정했다.  노동조합이 밝힌 반대 논리는 다음과 같다.

그동안 노동조합은 물론 지역사회와 항만·물류업계, 정치권까지 항만공사 통합이 가져올 심각한 문제를 수없이 경고해 왔다. 그러나 정부는 이러한 우려와 반대에도 결국 통합을 강행하면서도 납득할 만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정부와 노동계가 공공기관 기능개혁에 대한 노정(勞政)협의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충분한 협의조차 마무리하지 않은 채 기습적으로 통합방안을 발표한 것은 사회적 대화를 스스로 걷어찬 것이다. 누군가가 정해놓은 답을 위한 요식행위였음을 자인하는 것과 다름없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통합인가.

정부는 항만공사 통합의 필요성으로 지역 항만 연계 강화를 통한 글로벌 항만물류 변화 대응, 수요자 중심 서비스 강화, 개별 항만공사의 기능 통합을 통한 비용절감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내세운 논리 어느 것 하나 4개 항만공사를 물리적으로 통합해야 할 이유가 되지 못한다.

첫째, 정부는 지역 항만 간 연계를 강화해 글로벌 항만물류 변화에 대응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물리적 통합은 지역 항만의 특성을 무시하고 세계적 항만운영 흐름에도 역행하는 발상이다.

부산항, 인천항, 울산항, 여수·광양항은 동일한 시장에서 동일한 기능을 수행하는 항만이 아니다. 각 항만은 도시와 거점경제권을 중심으로 서로 다른 산업과 배후경제권을 형성하고 있으며, 취급하는 화물과 고객, 선사와 물류기업, 항만의 역할과 발전전략까지 모두 다르다.

부산항은 컨테이너와 환적 중심의 글로벌 허브항만, 인천항은 수도권 물류와 대중국 교역, 울산항은 에너지·액체화물 중심 항만, 여수·광양항은 석유화학·제철산업을 기반으로 성장해 왔다.

이처럼 서로 다른 경제권과 산업을 기반으로 성장한 항만을 하나의 조직으로 묶는다고 해서 항만 간 연계가 저절로 강화되는게 아니다.

오히려 물리적 통합은 항만 간 협력을 강화하는 수단이 아니라 의사결정 체계를 복잡하게 만들고, 항만별 이해관계와 투자 우선순위를 둘러싼 내부 갈등만 키울 가능성이 크다.

세계 주요 항만이 각 지역과 배후경제권을 기반으로 독립적인 항만운영체계를 유지하며 자율성과 전문성을 갖고 경쟁하는 이유 역시 항만마다 시장과 고객, 화물과 발전전략이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정부가 정말 통합이 글로벌 항만물류 변화에 대응하는 해법이라고 주장한다면, 국가 단위로 서로 다른 주요 항만을 하나의 중앙조직으로 통합해 경쟁력이 강화된 성공사례부터 제시해야 한다.

지역 항만 간 연계나 협력이 필요하다는 주장과 항만공사를 하나의 법인으로 통합해야 한다는 주장은 전혀 다른 문제다.

둘째, 정부는 통합을 통해 ‘수요자 중심 서비스’를 강화하겠다고 한다. 그렇다면 정부가 말하는 수요자는 도대체 누구인가.

항만의 직접적인 수요자는 선사와 화주, 터미널운영사와 항만물류기업, 배후단지 입주기업 등 실제 항만을 이용하고 항만산업을 구성하는 현장의 주체들이다.

그런데 정작 각 지역의 항만·물류업계와 관련 단체들은 항만공사 통합에 대해 지속적으로 우려와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실제 항만 이용자들이 반대하는 통합을 강행하면서 이를 ‘수요자 중심 서비스’라고 부르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지금까지 지역 항만공사는 현장에서 선사와 화주, 물류기업의 요구를 직접 듣고 항만별 상황에 맞는 투자와 인센티브, 항로유치 전략과 배후단지 정책을 결정해 왔다.

그러나 4개 항만공사를 하나의 조직으로 통합하면 항만별 주요 의사결정은 결국 중앙조직을 거쳐야 한다. 현장에서 해결할 수 있었던 문제가 중앙의 승인과 조정을 거치게 되고, 지역 항만의 자율적인 의사결정 권한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

현장 위에 또 하나의 의사결정 구조인 ‘옥상옥’을 세워 결정단계를 늘리고, 지역항만의 자치권을 빼앗아 중앙에서 통제하는 것이 정부가 말하는 ‘수요자 중심 서비스’인가.

항만의 경쟁력은 조직의 형태나 크기가 아니라 속도와 전문성, 현장 대응력에서 나온다. 세계 항만이 선사와 화물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상황에서 의사결정 권한을 중앙에 집중시키고 항만별 전략과 투자를 하나의 조직에서 결정하게 만드는 것이 어떻게 고객 서비스 개선이고 경쟁력 강화가 될 수 있는가.

셋째, 정부는 개별 항만공사의 공통기능을 통합해 비용을 절감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공통기능의 효율화와 기관의 물리적 통합은 전혀 다른 문제다.

4개 항만공사에 일부 공통업무가 존재한다면 이를 공동화하거나 시스템을 연계하고, 공동구매와 공동사업 등을 통해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공통업무가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네 개 법인을 하나로 합쳐야 한다는 결론은 성립하지 않는다.

더구나 항만공사 통합 문제는 이미 과거에도 검토된 바 있다.

2011년 해양수산부에서 추진한 ‘항만공사 운영개선 검토용역’에서는 물리적 통합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비용절감 효과는 제한적인 반면, 통합법인의 대형화와 의사결정 구조 복잡화 등으로 인한 업무효율 저하와 항만경쟁력 약화 우려가 더 크다는 분석이 제기됐고, 결국 물리적 통합보다 현 체제에서 운영효율을 높이는 방향이 합리적이라는 결론에 이른 바 있다.

그렇다면 묻지 않을 수 없다. 15년 전 이미 검토하고도 추진하지 않았던 물리적 통합을 정부는 왜 지금 다시 꺼내 들었는가.

15년 사이 무엇이 달라졌으며, 당시 제기됐던 문제점은 어떻게 해소됐는가.

정부가 주장하는 중복비용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먼저 어떤 기능이 중복되고 있는지, 매년 얼마의 비용이 발생하고 있는지, 통합하면 얼마의 비용이 절감되는지 객관적인 수치와 근거를 국민과 항만 구성원 앞에 제시하라.

통합에 필요한 조직개편, 인사·보수체계 통합, 정보시스템 개편 등 막대한 전환비용까지 고려한 실질적인 비용·편익 분석도 없이 ‘중복기능 통합을 통한 비용절감’을 주장하는 것은 정책적 근거가 될 수 없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4개 항만공사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각 항만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보장하면서 국가적 관점에서 필요한 기능과 투자를 조정하고, 실제 중복되는 업무가 있다면 기관 간 협업을 통해 효율화하는 것이다.

항만공사 제도는 중앙정부 중심의 획일적인 항만운영에서 벗어나 항만별 특성에 맞는 전문성과 자율성, 책임경영을 구현하기 위해 도입됐다. 그런데 정부는 20년이 지난 지금 다시 4개 항만공사를 하나로 묶어 권한과 의사결정을 중앙으로 가져가려 한다.

중앙집권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만든 항만공사를 다시 중앙집권화하는 것이 어떻게 개혁인가. 이것은 명백한 시대역행이다.

최근 정부가 공공기관 통합의 성공사례로 제시하는 코레일-SRT 통합과도 본질적으로 다르다. 코레일과 SRT는 동일한 철도망에서 동일한 고속철도 여객서비스를 제공하며 직접 경쟁해 왔지만 4개 항만공사는 애초에 서로 다른 지역과 항만을 기반으로 서로 다른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설립된 기관이다.

공공기관 개혁의 목적은 기관의 숫자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국민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어야 한다.

통합 자체를 개혁의 성과로 삼아 항만의 전문성과 자율성을 훼손하고 국가 해양물류 경쟁력을 약화시킨다면 그것은 개혁이 아니라 퇴행이다.

항만 간 연계가 필요하다고 해서 법인을 통합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수요자가 반대하는 통합을 ‘수요자 중심 서비스’라 부를 수도 없다. 중복기능이 있다면 무엇이 중복인지, 얼마의 비용이 발생하는지, 통합하면 어떤 효율을 얻는지부터 밝혀야 한다.

대한민국 항만의 경쟁력과 지난 20여 년간 어렵게 구축한 항만의 전문성·자율성을 지키기 위해 4개 항만공사 노동조합은 정부에 강력히 요구한다.

우리의 요구

하나. 명분도 합의도 없는 4개 항만공사 강제통합을 즉각 철회하라!
하나. 항만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말살하는 중앙집권적 통합을 즉각 중단하라!
하나. 정부는 통합의 객관적 근거를 공개하고 즉각 사회적 논의에 나서라!

정부가 일방적인 통합을 강행한다면 4개 항만공사 노동조합은 상급단체와 항만·물류업계, 시민사회, 지역사회와 강력히 연대하고 향후 국회의 항만공사법 개정 과정까지 모든 조직적 역량과 가능한 수단을 총동원해 항만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파괴하는 물리적 통합을 끝까지 저지할 것이다.

명분 없는 졸속적인 강제통합을 멈추지 않는다면 우리의 투쟁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부산·인천·울산·여수광양항만공사 노동조합
한국노총 전국공공산업노동조합연맹
전국해양수산노동조합연합
공기업정책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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