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내부고발과 경영혁신] 25. 국내 내부고발 사례연구-철도차량 입찰 담합... 현대로템이 업계 리더로 입찰 담합 주도
소수업체가 독과점하는 시장이 담합 유혹 초래하므로 경쟁체제 구축 필요… 국내업체 과도하게 보호하면 피해는 국민 몫
민진규 대기자
2024-10-07
1825년 영국의 조지 스티븐슨이 세계 최초로 여객용 열차를 운행한 이후 열차는 근대화의 상징으로 불렸다. 철도는 제국주의 침략의 발판이자 자원 수탈의 도구로 활용되면서 200년 동안 영욕의 역사를 이어왔다.

동양에서는 서양문물의 도입에 적극적이었던 일본이 처음 철도를 도입하며 근대화에 박차를 가했다. 우리나라는 1899년 한양과 인천을 연결한 경인선이 개통되며 철도가 주요 교통수단으로 떠올랐다.

경인선 이후에도 경부선·경의선·경원선 등이 일제에 의해 부설되며 한반도 동서남북이 철도로 연결됐다. 일반 철도와 함께 대도시 교통망의 주축인 지하철은 1974년 서울특별시에서 1호선이 운영되며 역사가 시작됐다.

2022년 7월 공정거래위원회는 2013년부터 2020년까지 현대로템·우진산전·다원시스가 2조4000억 원 규모의 철도차량 입찰을 담합했다고 발표했다. 현대로템의 자진 신고로 드러난 철도차량 담합 사건 관련 내부고발을 분석해 보자.


▲ 철도차량 입찰 담합 내부고발 진행 내역 [출처=iNIS]


 

◇ 현대로템이 업계 리더로 입찰 담합 주도... 하청을 미끼로 경쟁업체를 유인

현대자동차그룹의 계열사인 현대로템은 1976년 설립된 현대중공업 철도차량사업부가 모태다. 1999년 국제통화기금(IMF) 체제를 벗어나기 위한 정부의 산업재편 정책에 따라 현대정공·대우중공업·한진중공업이 통합해 탄생했다.

국내에서 철도차량을 제작하던 3개사가 1개로 줄어들며 사실상 독점사업자로 군림했다. 하지만 2000년대 중·후반부터 경전철을 생산하는 우진산전, 열차개조사업이 주력인 다원시스가 열차 제조업에 뛰어들며 위기가 닥쳐왔다.

2010년 우진산전이 부산광역시 도시철도 4호선 전동차 입찰에서 승리하자 현대로템은 담합 방안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철도차량 입찰 담합 사건의 진행 과정은 다음과 같다.

우선 현대로템은 2013년 경기도 김포시 도시철도 전동차 입찰을 준비하며 우진산전에 하도급을 주기로 합의하며 담합을 요청했다. 이후 2016년까지 코레일·서울교통공사·부산교통공사 등이 진행한 철도차량 입찰 계약 6건을 수주했다.

현대로템은 경쟁으로 철도차량 1칸의 가격이 평균 11억6000만 원에서 8억 원대로 떨어지자 가격을 올리기 위한 꼼수를 고안한 것이다.

우진산전은 현대로템의 요구에 따라 2회 이상 유찰되면 ‘수의계약’으로 전환되는 입찰은 미응찰, 복수 업체가 필수인 입찰에는 합의된 가격으로 들러리를 서며 호응했다. 우진산전의 입장에서는 전혀 손해볼 일이 없는 협약이다.

다음으로 동맹 관계를 구축했던 현대로템과 우진산전의 합의가 파기된 2017년 6월부터 냉각기가 형성됐다가 다시 복원되는 과정이다. 우진산전이 낙찰받기로 합의한 진접선 50량 입찰을 현대로템이 수주하며 양사의 신뢰가 깨졌다.

1칸당 차량 가격은 2012년 신분당선 입찰에서 14억9000만 원이었지만 2018년 서울지하철 2·3호선 입찰에서 7억2000만 원까지 떨어졌다. 양사는 출혈경쟁을 지양해 수익성을 확보해야 할 처지로 내몰렸다.

2019년 발주된 5건은 현대로템이 3건, 우진산전이 1건, 다원시스가 1건을 각각 할당받는 조건으로 합의했다. 전체 계약금액은 1조8101억 원에 달했다. 3사의 담합은 2019년 12월 진행된 수도권 급행철도(GTX)-A노선까지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담합을 주도했던 현대로템의 경영진이 교체되면서 표면적으로 업계의 밀월관계는 종료됐다. 2020년 1월 교체된 현대로템의 대표이사와 철도사업본부장은 담합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현대로템은 공정위에 담합을 자백해 323억600만 원의 과징금을 면제받았다.

하지만 공정위는 현대로템을 검찰에 고발했으며 조달청은 6개월간 입찰 참가자격 제한조치를 내렸다. 이에 대해 현대로템 등은 입찰 제한조치에 대해 행정소송, 우진산전·다원시스는 과징금 부과에 대해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 텔레그램 등 수사기관 영향력 벗어날 수단 활용... 외국업체 진입 허용해 경쟁체제 구축해야

철도차량의 수요자가 중앙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등이기 때문에 담합으로 인한 피해는 최종적으로 국민에게 돌아간다. 세금으로 더 비싸게 구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대정공·대우중공업·한진중공업은 현대로템으로 통합되기 이전에도 담합으로 입찰가격을 높여 과징금을 여러 차례 부과받았다. 현대로템의 철도차량 입찰 내부고발이 주는 사회적 시사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공정거래법상 담합행위가 불법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담합을 위한 합의서를 체결하는 대범함을 보였다. 공정위 자료에 따르면 현대로템과 우진산전은 2013년 2월7일 ‘김포 경전철 프로젝트 합의서’를 체결했다.

합의서에 ‘전체 프로젝트 수주는 로템이 하고 우진에 하도급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공정위조차도 폐쇄적인 시장이기 때문에 담합 사실을 적발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발주업체가 입찰과정이나 업계 동향에 관한 정보를 파악하려는 노력을 조금만 기울였다면 충분히 적발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아쉽다. 공정위 퇴직자도 다양한 기업이나 단체에 낙하산으로 취업해야 하기 때문에 감독을 소홀히 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둘째, 현대로템이 업계의 선도업체로 담합을 주도하며 텔레그램(Telegram)과 같은 비밀통신 수단을 활용해 국내 수사기관의 취약점이 드러났다. 국내용 메신저인 카톡과는 차이가 크다.

담합에 참여한 관계자들은 업체명도 R(로템)·W(우진)·D(다원)와 같은 이니셜로 지칭하며 보안을 유지했다. 다원시스에서 현대로템의 대외비 문건이 발견됐을 정도로 밀착 관계는 깊었다.

러시아 출신이 개발한 텔레그램은 해외에 서버가 있어 국내 수사기관의 영향력이 미치지 못해 은밀한 대화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이 활용한다.

무차별 수색영장 집행이 일상화되면서 이른바 ‘사이버 망명’의 성지로 부상했다. 정치인뿐만 아니라 검사, 경찰관 등 수사기관 직원조차도 비밀유지를 목적으로 텔레그램을 애용한다.

셋째, 우리나라 공공기관이 가격을 중시하는 입찰시스템을 유지하면서 담합의 유혹을 떨치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철도차량의 수출은 중국의 저가정책과 일본·독일·프랑스의 기술력에 밀려 해외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해 국내시장에 대한 의존도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공공기관 입장에서 저가낙찰은 단기적으로 도입 예산을 줄여주지만 장기적으로 생태계를 파괴시켜 유지·관리비용을 높인다.

고속도로나 일반도로를 불문하고 건설보다 유지·관리에 더 많은 예산이 투입된다. 제조업체의 담합을 방지하려면 가격뿐만 아니라 기술·품질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입찰이 보장돼야 한다.

넷째, 국내시장이 협소하고 독과점이 형성된 산업 전반에 걸쳐 광범위한 암묵적 담합이 일상화돼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동통신·정유·은행·보험·제과·식음료·가전 등은 3~5개 이내의 대기업이 시장을 주도하는 구도가 유지되면서 경쟁이 사라졌다. 시장경제에서 독점의 폐해는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국가철도공단은 철도공단 입찰특별유의서에 따라 약 471억 원의 손해배상액을 징수할 계획이다. 정상 금액의 평균낙착률과 계약서상의 손해배상 규정을 적용할 방침이다.

철도차량 제조업체에 대해 슈퍼 ‘갑’의 지위를 가진 국가철도공단은 손해배상을 받겠지만 정부가 사실상 독과점을 방치한 산업의 소비자는 보호받지 못한다.

다섯째, 국내업체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외국기업의 국내시장 진입을 과도하게 제한하면 결국 피해는 전부 국가와 국민에게 전가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

은행시장도 씨티은행·스탠다드차타드은행 등 외국계 은행이 발을 빼면서 5대 대형 은행의 과도한 예대마진과 고무줄 이자율이 공분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급기야 운석열 대통령까지 나서서 은행의 탐욕스러운 이자 장사를 질타했지만 바뀔 가능성은 낮다. 관치금융이 판치는 국내에 진출할 외국 금융기관이 많지 않아 이미 형성된 시장 구도가 유지될 것이기 때문이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교훈을 얻지 못한 관료가 문제다. 기획재정부나 금융감독원, 금융위원회, 한국은행 등도 관리감독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 민진규 국가정보전략연구소 소장 [출처=iNIS]


*칼럼 내용 문의 : 민진규 국가정보전략연구소 소장(stmin@hotmai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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