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디아스포라] 02. 디아스포라의 개념과 성장과정... 초국가적 네트워크로 영향력 확대 중
고국을 떠난 이유에 따라 정체성 확립하기 위해 노력... 정치적 영향력 확대 및 경제력 독점으로 갈등 유발
민진규 대기자
2026-05-21 오전 11:11:21
2026년 5월22일부터 26일까지 인천광역시에서 제14회 디아스포라 영화제가 진행된다. 전쟁과 갈등 속에서 '공존의 길'을 조명한 74편의 영화가 상영될 예정이다. 인천항은 1902년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으로 이주한 근로자의 출발지다.

농업 근로자로 이민을 갔지만 먼저 온 중국인, 일본인 등과 마찬가지로 노예노동에 시달렸다. 더 나은 삶을 찾아 멕시코, 쿠바 등으로 재이민을 결정한 한인도 적지 않았다.

조선 말 함경도에 살고 있던 한인 중 일부는 탐관오리의 가렴주구를 피해 만주와 연해주로 향했다. 만주와 연해주는 척박한 자연환경으로 현지 거주민이 적어 갈등이 초래될 가능성이 낮았다. 디아스포라의 개념과 성장과정을 살펴보자.


▲ 인천광역시가 주최하는 제14회 디아스포라영화제 홍보 자료 [출처=인천시]


◇ 초국가적 네트워크로 영향력 확대 중... 거주국에서도 모국에도 포함되지 않는 이중성 내포

이민자의 공동체인 디아스포라(Diaspora)는 유기체처럼 탄생과 성장의 단계를 거친다. 일반적으로 디아스포라의 개념은 경계성, 이중성, 혼합성, 다양성, 환대성 등을 포함하고 있다.

경계성은 ‘둘 사이에 있는 존재(being-in-between)로 느끼는 복합적인 감정’을 말한다. 이주민은 모국에도 거주국에서 속하지 않는 이방인으로서 둘 사이에 낀 존재라고 생각한다.

양국의 어디에서 속하지 않는다는 부정성(neither-nor)과 양자의 경계를 넘어서 자유롭게 연결되는 긍정성(both-and)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이주민의 경계성은 긴장과 고통을 초래하지만 자신의 의지와 태도(attitude)에 따라 새로운 문화를 적극 수용하기도 한다.

팔레스타인은 요르단, 레바논 등 주변 국가로 이동했지만 이슬람이라는 동일 종교를 믿기 때문에 거주국에서 자연스럽게 동화되는 편이다.

반면에 유대인, 중국인 등은 거주국의 문화보다는 모국에 대한 충성심을 보이며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한국인도 중국인에 비해 해외 이주 역사는 짧지만 여전히 거주국에서 전통문화를 고수하는 편이다.

이주 역사가 100년이 넘는 중국 동북 3성이나 미국 하와이에 살고 있는 한인 3~4세가 한국어를 배우고 김치와 같은 한국 전통 음식을 고수하는 것이 그 증거다.

12세기 유럽의 사상가 성 빅토르 휴고(Hugo of St. Victor)는 ‘자신의 조국만 좋아하는 사람은 아직 어린아이와 같다. 어디를 가도 자신의 조국처럼 느끼는 사람은 강한 사람이다. 그러나 이 세상 모두가 다 타국처럼 느껴지는 사람이야말로 완성된 사람이다’고 말했다.

이중성은 역사, 언어, 문학, 종교 등에 모두 영향을 미친다. 해외 거주민은 모국과 거주국의 정체성에 대해 혼란을 느끼게 된다.

역사적으로 우호적이거나 갈등 관계에 놓은 경우에도 큰 차이가 없다. 일본이나 중국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이 대표적인 사례다.

동아시아에 위치한 한국, 일본, 중국은 비슷한 문화를 공유하지만 종교, 언어, 음식, 복식 등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예를 들면 한국인과 일본인은 자체 언어를 개발했다.

이들이 사용하는 한국어, 일본어가 중국어로부터 영향을 적지 않게 받았지만 스스로 고유한 언어라는 자부심이 강해 중국어의 아류(亞流)라는 평가를 거부한다.

그렇지만 중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인 조선족(朝鮮族)이나 일본의 한국인인 조선인(朝鮮人) 모두 현지 문화를 배타적으로 대하기보다 어느 정도 수용하며 현지에 적응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한인 디아스포라는 이중성, 혼합성, 다양성, 환대성을 모두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한인 디아스포라 표지 [출처=엠아이앤뉴스]

◇ 고국을 떠난 이유에 따라 정체성 확립하기 위해 노력... 유대인·인도인·중국인이 대표적으로 성공한 사례

디아스포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정립하고 이주국의 문화를 수용하며 거주국의 환경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려는 자세, 소수자와 연대, 보편적 환대성 등을 가진 이주민의 공동체다.

이민자는 모국의 세계관과 거주국의 세계관을 동시에 갖고 있지만 편향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전쟁이나 차별, 갈등 등으로 해외로 이주한 사람은 모국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편이다.

1959년 사회주의 세력이 집권한 쿠바에서 미국으로 망명한 사람들은 공산주의 쿠바에 대해 배타적이며 반공주의자로 변신한다.

일부는 이른바 지주나 부르조아 계층으로 탄압을 받다가 망명해 사회주의 체제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다. 쿠바에서 공산주의의 폐해를 경험하며 미국의 자유민주주의가 우월하다고 믿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독일 나찌의 학살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유대인은 반인종주의자로 사회 운동을 펼쳤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이후 유럽 대륙에서 유행처럼 번지는 극우 정치세력의 부활을 우려하며 비판하는 행위도 반인종주의자의 몫이다.

2000년 동안 세계를 떠돌며 유랑생활을 한 유대인은 종교와 민족을 기반으로 초국가적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영국에 기반을 둔 유대인 디아스포라는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영국을 돕기 위해 적극 참전했다.

영국에서 거주 중이었던 로스차일드 가문은 영국을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대신에 유대 국가의 재건을 위한 기반을 제공하라고 요구했다.

이른바 벨푸어선언(Balfour Declaration)으로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과 팔레스타인 국가를 모두 허용하겠다는 구상이 포함됐다.

유대인 디아스포라는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 국가를 건설한 이후에도 미국, 유럽 등에서 강력한 경제 및 정치력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2023년 10월 가자지구의 정치세력인 하마스(Hamas)가 이스라엘에 대해 기습공격을 가하자 미국이 적극적으로 지원한 것도 미국에 있는 유대인 디아스포라가 노력한 덕분이다.

디아스포라는 고국과 정착 국가와 네트워크를 구축한다. 인도의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은 미국 실리콘밸리와 연결된 인도인 디아스포라에 의해 발전했다.

인도는 광대한 영토와 인구에도 후진적인 경제구조로 발전이 정체되었지만 디아스포라를 활용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았다.

중국은 1978년 개혁개방정책을 도입한 이후 동남아시아 소재 중국인 디아스포라를 적극 활용했다. 서유럽과 미국이 투자를 주저하는 사이에 이들의 투자금이 남부 경제특구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홍콩이라는 국제 금융시장이 중간자 역할을 담당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졌다. 한인 디아스포라(Korean Diaspora)는 2000년대 이후 K-드라마(Drama), K-무비(Movie), K-팝(K-POP), K-음식(K-Food) 등 K-문화(K-culture)인 한류를 글로벌에 확산시키는 첨병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미국, 동남아시아, 중동, 중앙아시아에서 불고 있는 한류 열풍은 100년 이상 인고(忍苦)의 세월을 견디며 형성된 한인 디아스포라의 역량이 입증된 대표적인 사례다. 한류가 지속되려면 이들 네트워크를 잘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 2026 세계한인입양동포대회 단체 사진 [출처=재외동포청]


◇ 정치적 영향력 확대 및 경제력 독점으로 갈등 유발... 중국인은 태국에서 현지인과 적극 혼인하며 정착

과거 태국의 국왕은 해외 거주 중국인을 ‘아시아의 유대인’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유대인은 유럽과 북미 지역에서 막대한 경제력을 자랑한다. 하지만 동남아시아 중국인은 유대인이 유럽에서 차지하고 있는 경제적 비중보다 훨신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1997~98년 아시아 금융위기 이전까지 동남아시아 중국인은 인구의 6% 정도에 불과했지만 경제력의 60% 이상을 통제했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 등 5개국이 중국인이 상권을 장악한 국가다.

특히 인도네시아는 중국인은 인구의 3%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상위 300개 기업의 4분의 3을 100% 혹은 일부 소유하고 있다.

태국의 중국인은 현지인과 혼인하며 민족성이 옅어졌지만 다른 국가는 여전히 중국인끼리 결혼하는 관행을 유지하고 있다.

19세기부터 20세기 초 동남아시아로 이주한 중국인은 중국 남부인 광둥(廣東)성, 푸젠(福建)성, 하이난(海南) 등의 출신이다.

이들은 중국 본토와 동남아시아 다른 국가에 이주한 중국인과 네트워크를 구축해 상권을 장악했다. 같은 고향 출신끼리 조합을 만들고 자금을 융통하는 관습은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다.

특정 디아스포라 집단이 현지 사회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거나 경제력을 독점하면 사회적 갈등이 초래된다.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에 거주하는 중국인 디아스포라는 정치보다는 경제에 활동의 초점을 맞춘다.

이주 초기에는 정치에도 깊게 관여했지만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좌절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특히 필리핀에서는 오랜 기간 동안 정치적 폭력의 희생양으로 전락했다.

중세 유럽에서 유대인에 대한 탄압도 경제력의 집중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됐다. 농업에 기반한 현지인에 비해 상업, 금융업에 종사한 유대인이 부를 축적하기 용이한 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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