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내부고발과 경영혁신] 8. 내부고발자의 운명과 생존전략
부패한 감사·언론·수사기관이 내부고발자 생존 위협… 외부 전문가와 협력해야 생존 가능성 높아져
민진규 대기자
2024-07-24
내부고발이라는 용어로 정착된 ‘딥 스로트(Deep Throat)'를 탄생시킨 미국 FBI 부국장이었던 마크 펠트는 30여년 동안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살았다. 제보를 받았던 워싱턴포스트와 밥 우드워드 기자가 온갖 위협에도 비밀을 철통같이 지켰기 때문이다.

미국과 달리 한국의 언론과 기자는 내부고발자를 보호하기는커녕 신상 털기에 골몰한다. 내부고발자의 입장에서 신원이 밝혀지면 이해관계자로부터 협박을 받을 수 있다. 한국에서 공익제보자라는 단어를 탄생시킨 이문옥 감사관은 1990년 한계레신문의 보도 후 신분이 드러나면서 구속됐다.

내부고발자의 운명은 신원이 드러나는지 혹은 제보 내용의 파급력 등에 따라 달라진다. 사회 부적응자를 넘어 조직의 배신자로 낙인이 찍히기도 하며 정의의 사도로 영웅 대접을 받기도 한다. 내부고발자의 운명과 생존전략에 대해 간략하게 알아보자. 

◇ 내부고발자 운명은 3갈래로 다양하게 펼쳐짐

마크 펠트의 내부고발은 세계 1위 권력자인 미국 대통령이 사임하도록 만들었다. 김용철 변호사의 내부고발은 국내 1위 삼성그룹의 오너인 이건희·이재용 부자의 동반 퇴진을 유도했다.

이지문 중위와 윤석양 이병은 내부고발로 당사자가 사법처벌을 받는 고통을 겪었다. 내부고발자의 운명은 어떻게 귀결되는지 간단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내부고발자가 조직에 현재 근무하고 있는 직원이라면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조직을 떠날 가능성이 높다. 이문옥 감사관, 이지문 중위, 윤석영 이병은 모두 강제로 조직에서 퇴출됐다. 이문옥 감사관은 6년 동안 법정 투쟁을 벌여 복직 판결을 받았지만 감사원 내부의 냉대로 그만뒀다.

내부고발자를 정의로운 사람으로 옹호하는 미국에조차 불이익을 두려워해 퇴직 이후에 내부고발자가 되는 사례가 많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와 국가안보국(NSA)에서 퇴직한 에드워드 스노든은 2013년 NSA의 무차별 개인정보 수집에 관련된 비밀문서를 폭로했다. 스노든은 미국의 적대국인 러시아로 망명한 후 올해 9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으로부터 시민권을 부여받았다.

다음으로 신분이 밝혀지지 않은 내부고발자는 은퇴 후 평온한 삶을 유지할 수 있다. 닉슨 대통령의 사임을 몰고 온 마크 펠트는 자신이 스스로 신분을 드러내기 전까지 평범한 생활을 즐겼다.

아마도 이웃 사람들은 그가 FBI의 부국장임과 동시에 대통령를 사임시킨 장본인이라고 인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2006년 현대자동차의 비리를 폭로한 내부고발자는 공개적으로 신원이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검찰과 보상금 지급 문제로 갈등을 빚는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 위험에 처했었다. 현대차가 적발하지 못했어도 본인 스스로 위험을 느껴 다양한 이유를 제시하며 퇴사했을 가능성이 높다.

마지막으로 내부고발자가 신분이 드러난 후 시민운동가나 정치인으로 변신해 활발하게 사회활동을 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내부고발로 큰 정치적 파장이 형성되면 대외활동이 쉬워진다.

1992년 군 부재자 투표 부정행위를 고발한 이지문 중위는 1995년 서울특별시의원으로 3년간 활동한 후 반부패시민사회운동가로 인생을 살고 있다.

전직 판사로 21대 국회의원인 이탄희는 2017년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가 청와대의 지시에 따라 재판을 진행한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법원을 떠났다.

이탄희는 이른바 사법농단을 고발한 이후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삼성의 내부고발자인 김용철 변호사도 다양한 시민활동을 벌이고 있다. 


▲ 내부고발자의 생존 가능평 평가 모델 [출처=국가정보전략연구소(iNIS)]


◇ 생존 가능성에 따라 위험 관리전략 달라져야 안전

2006년 위키리크스를 창업한 줄리언 어산지는 세계 각국의 국가비밀을 공개했다는 이유로 아직도 도망자의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영국으로 피신한 어산지를 미국으로 송환해 처벌하겠다는 의지를 고수하고 있다. 내부고발자가 생존하기 위해 갖춰야 할 최소한의 조건은 비밀성·합법성·공공성이다.

첫째, 비밀성은 자신의 신분을 노출하지 않고 내부고발을 진행해야 한다는 의미다. 조직계통상에서 내부고발을 전개하는 범위를 넘어 내·외부 감사실로 향할 경우에도 신분을 최대한 숨기는 것이 유리하다. 감사가 대표이사 등 경영진과 담합해 내부고발자의 신상정보를 알려주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감사는 독립적인 기구임에도 한국에서 대표이사의 부하라는 인식이 강하다. 감사에 대한 신뢰도가 낮기 때문에 내부통제시스템 1~2단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부패한 수사기관의 관계자가 직·간접적인 뇌물을 받고 내부고발자의 신원을 피고발인에 넘겨주기도 한다.

둘째, 합법성은 제보내용이 조직의 비밀에 포함되지 않아야 하며 제보행위도 법률을 준수해야 한다는 말이다. 군 부재자 투표의 비리를 폭로한 이지문 중위는 근무지 이탈 혐의로 체포됐다. 2016년 현대자동차의 세타2 엔진에 결함이 있다고 밝힌 김광호 전 부장은 영업비밀을 유출했다는 이유도 해임됐다.

내부고발을 위해 관련 문서나 파일을 임의로 복사하거나 회사 밖으로 유출하는 것도 사내 보안 규정 위반에 포함될 수 있다. 증거를 확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3자의 대화를 무단으로 녹음하거나 CCTV를 몰래 설치하는 행위도 처벌의 대상이다.

셋째, 공공성은 내부고발의 목적이 사익이 아니라 공익을 보호하기 위한다는 것이 명백하게 입증돼야 한다는 요건이다. 승진에 누락됐기 때문에 홧김에 회사의 부정행위를 폭로하거나 상사·동료와 감정 갈등이 증폭돼 내부고발로 이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외부채용이 전무한 공무원 사회는 내부 경쟁자만 제거하면 승진은 따 놓은 당상인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인사철만 되면 음해성 투서가 난무해진다.

이러한 유형의 내부고발은 공공성이 결여됐기 때문에 큰 주목을 받지 못한다. 공공성은 공무원뿐 아니라 일반 기업 직원에게도 해당된다.

결론적으로 내부고발자의 생존 가능성을 평가하려면 비밀성 유지 여부, 합법서 준수 정도, 공공성 확보 노력을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생존 가능성은 위험 없음, 보통 수준의 위험, 높은 수준의 위험, 심각한 수준의 위험 등 4단계로 구분해 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위험 수준에 따라 관리방법도 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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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진규 국가정보전략연구소 소장 [출처=iNIS]


*칼럼 내용 문의 : 민진규 국가정보전략연구소 소장(stmin@hotmai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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