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단체장 선거공약 평가] 31. 토목사업·복지선심 치중… 지역경제는 언제 살리나
재개발·재건축 등 토목사업 ‘경제성 부족’, 천연동 바이오연구단지 신설도 사실상 무산
민진규 대기자
2022-12-09
잔악한 일제의 압제에 맞서 싸운 순국열사가 투옥됐던 서대문형무소를 개조한 역사관은 후손에게 나라 잃은 백성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체험 학습장이다. 충청남도 천안에 있는 독립기념관은 자료가 풍부한 반면 수도권과 멀고 교통이 불편해 쉽게 방문하기 어렵다.

지난달 17일 국가보훈처는 처음으로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제83회 순국선열의 날 기념식’을 거행했다. 국민이 자각해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하고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한다’는 자조 섞인 말이 더 이상 인구에 회자(膾炙)되지 않도록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서대문구는 11월부터 관내 국가보훈대상자에게 전액 구비로 지급하는 보훈예우수당을 월 2만원에서 5만원으로 증액했다. 6·1 지방선거에서 서대문구청장 후보자가 제시한 선거공약을 국가정보전략연구소(국정연)가 개발한 ‘오곡(五穀)밸리혁신(5G Valley Innovation)-선거공약’ 모델을 적용해 평가해 봤다. 

◇ 공무원보다 정치인 출신 구청장 다수

역대 민선 서대문구청장은 이정규·현동훈·문석진·이성헌이다. 민선1·2기 이정규는 서울시 공무원 출신으로 동작구·용산구 부구청장을 거쳐 관선으로 33대 서대문구청장을 지냈다. 3·4기 현동훈은 변호사로 정치에 뛰어들었으며 2010년 2월 제주특별자치도지사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구청장직을 사퇴했다.

5·6·7기 문석진은 공인회계사 출신으로 3·4기 서대문구청장 선거에 출마해 낙선한 이후 내리 3연임에 성공했다. 1기 서울시의원이며 국제연합환경계획·서울시정개혁위원회·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시정개발연구원·국가청렴위원회 등 다양한 단체에서 정치 경력을 쌓았다.

8기 이성헌은 연세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15·16·17·18·19·20·21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16·18대에 당선됐다. 재선 국회의원으로 활동한 후 이번에 구청장으로 변신했다. 6·1 지방선거에서 서대문구청장에 당선된 국민의힘 이성헌은 더불어민주당 박운기와 경쟁해 승리했다. 후보자가 제시한 대표 공약을 간략하게 살펴보자.

당선된 이성헌은 5대 공약으로 △주거혁신 ‘재개발 신속 지원’ △생활혁신 ‘경의선 지하화’ △문화혁신 ‘홍제천과 불광천’ △개발혁신 ‘유진상가 등 거점개발’ △경제혁신 ‘신촌 지역 신대학로’ 등을 제시했다.

낙선한 박운기는 △ESG(교육도시·스마트도시·녹색도시) 명품도시 서대문 △4대 권역별 균형발전 전략 △모든 세대가 행복한 전생애주기별 돌봄정책 △서대문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교통과 혁신 △청년의 행복지수를 2배로 올리는 청년정책 등의 공약을 내걸었다.


▲ 서울시 서대문구의 ‘오곡(五穀)밸리혁신(5G Valley Innovation)-선거공약’ 모델의 평가 결과[출처 = iNIS]


◇ 사회 공약 67% vs 과학기술 공약 0%

8기에 당선된 이성헌 구청장은 취임한 지 5개월로 접어들었으나 아직 홈페이지에 5대 전략과·17개 핵심과제만 공개하고 있다. 따라서 선거공보물에는 제시돼 있는 경제혁신 서울의 중심 서대문(6)·복지혁신 사람중심의 복지 서대문(7) 등 8대 찐 프로젝트 45개 세부과제·지역별 세부공약 58개 등 총 103개의 공약을 살펴봤다. 전체·지역공약 중 23건의 공약이 유사 또는 동일했다.

국정연은 이 구청장이 선거공보물에 제시한 세부 공약 103개를 요소별로 다시 분류했다. 세부과제는 정치(10)·경제(8)·사회(69)·문화(16)·과학기술(0)로 구성됐으며 사회 공약이 67.0%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문화 공약 15.5% △정치 공약 9.7% △경제 공약도 7.8% 순이며 미래 먹거리인 △과학기술 공약은 1개도 없다. 요소별 주요 공약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정치 공약은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 △뉴타운·재건축·공공개발·민간개발 대상지 신속 개발 행정 지원 △공동주택 층간소음 갈등 해소 전담팀 구성·운영 △고도 제한 완화 추진 △균형발전촉진지구 지정 추진 등으로 많지 않다.

둘째, 경제 공약은 △4개 권역별 맞춤 경제정책 수립 △아현역 일대 뷰티·웨딩 등 지역특화산업 활성화 △소상공인 집중 지원 원스톱 서비스 추진 △창업종합지원센터 설치 및 청년일자리·청년창업·상생경제를 만드는 창업메카로 육성 △홍제 균형발전촉진지구 상권 활성화 등을 포함한다.

셋째, 사회 공약은 △연세로 차 없는 거리 상생 개선방안 마련 △공공 산후조리원 주민혜택 및 서비스 확대 △원룸생활자지원센터 설치(택배 보관·공구 대여·방범·프린트 등) △명문고교·유스호스텔·바이오연구단지 신설 △초등돌봄 우리동네 키움센터 서대문구 14개 모든 동에 설치 등으로 다양하다.

넷째, 문화 공약은 △중장년 전용 문화·예술·체육 동아리 등 중장년층의 아름다운 인생 2막을 설계 △서대문 9개 대학 통합 신대학로 조성·대학 도서관 주민에게 개방 추진 △서울 자치구 최고의 교육경비를 지원해 공교육 정상화 △서울시립도서관 분관 조기 착공 등이다.

다섯째, 과학기술 공약은 1개도 없다. 바이오연구단지 신설과 같은 공약은 과학기술로 분류할 수도 있지만 운영계획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가 없어서 시설이라고 판단해 사회 공약에 포함시켰다. 

◇ 웨딩·공공산후조리원 지역 실정과 무관

이 구청장의 공약을 국정연이 개발한 갑옷(ARMOR), 즉 달성 가능성(Achievable)·적절성(Relevant)·측정 가능성(Measurable)·운영성(Operational)·합리성(Rational) 지표를 적용해 평가했다. 간략한 내역과 개선방안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달성 가능성은 50점 만점에 22점으로 낙제점을 벗어나지 못했다. 천연동 군부대 이전 후 바이오연구단지 신설은 달성가능성이 낮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표한 ‘2022 한국바이오 소개와 현황’에 따르면 수도권·강원권·충청권 등 전국 6개 권역별 강점 분야에 특화된 바이오산업단지 메카가 조성·육성되고 있다. 수도권은 서울 홍릉·인천광역시 송도·경기도 광교 및 판교 등으로 서대문구는 포함되지 않았다.

둘째, 적절성은 공약이 서대문구의 다양한 여건에 적합한지 평가하는 지표이며 24점을 획득했다. 아현역 일대 뷰티·웨딩 활성화는 서울시 정책과 관련이 있지만 지역 경제기반이 취약하다. 웨딩 전문업체인 IT웨딩에 따르면 6일 기준 서울시내 웨딩홀은 314개이며 서대문구에 위치한 웨딩홀은 1곳에 불과하다. 인구감소·비혼주의 증가 등으로 결혼식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어 웨딩업 자체가 사양산업으로 전락했다.

공공산후조리원도 서대문구 실정에 적합하지 않은 공약이다. 2021년 기준 서울시 소재 산후조리원은 121개이며 이 중 서대문구에 2개가 있다. 모자보건법에 따라 전국에 설치된 공공산후조리원은 13곳으로 서대문구에는 1개도 없다. 2020년 서대문구 출생아는 1533명으로 연평균 8.5%씩 감소하고 있다. 공공산후조리원을 구청 단위가 아니라 권역별로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셋째, 측정 가능성은 공약의 성과를 측정할 수 있는지 여부를 평가하며 20점을 받았다. 연세로 차 없는 거리 상생 개선방안 마련은 개선방안을 마련한다고 해도 4년 임기 동안 효과가 있을지 측정하기 어렵다. 상인은 차량 통행을 통제한 후에 지역 상권이 몰락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유통전전문가는 홍대나 건대입구와 같은 다른 상권과 경쟁에서 밀렸다고 진단하기 때문이다.

넷째, 운영성은 행정조직과 공무원이 공약을 실천할 역량과 조직체계를 구축·운영했는지 평가하는 지표로 17점을 획득했다. 층간소음은 건설사가 건축비를 줄이기 위해 바닥을 잘못 시공한 것이 근본 원인으로 기존 주택의 소음문제를 해결할 방안은 없다.

환경경공단에 따르면 층간소음 신고는 2012년 8795건에서 2021년 4만6596건으로 10년간 5.3배 증가했다. 8월 정부는 △500세대 이상 아파트단지에 층간소음관리위원회 의무화 △신축 주택 층간소음 성능검사 결과 공개 △공사 품질점검 강화 △층간소음 저감 기술 개발 추진 등을 공동주택 층간소음 개선 방안으로 제시했다.

다섯째, 합리성은 공약이 주민자치를 실현하고 주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데 도움이 되는지 파악하기 위한 목적이며 22점을 받았다. 원룸생활자지원센터의 공구 대여도 공구만 빌려준다고 원룸생활자가 스스로 고장난 시설을 고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강서구는 비슷한 정책으로 구민생활시설의 관리를 담당할 ‘OK 홍반장’을 도입할 계획이다.

종합적으로 이 구청장의 선거공약은 4년 동안 103개를 충실하게 이행해도 250점 만점에 105점으로 달성률은 42.0%에 불과하다. 재선 국회의원 출신으로 지역 실정을 잘 파악해 선거공약을 수립했지만 낙후된 경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오곡(五穀)밸리혁신(5G Valley Innovation)-선거공약=국가정보전략연구소가 중앙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선거공약을 평가하기 위해 국내외 전문가들과 협력해 개발한 모델이다. 5G는 오곡(五穀·다섯 가지 곡식), 밸리(Valley)는 계곡을 의미한다. 문명은 ‘오곡백과’가 풍성한 계곡에서 탄생해 발전했기 때문에 국가·지자체가 번성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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