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문화] 1편 대기업 21. 한라 기업문화 (3) 사업-제품과 시장... 중공업에서 시작해 자동차 부품전문기업으로 사업전환
조선과 플랜트 사업으로의 확장은 패착... 건설업을 살리겠다는 의지는 좋지만 가능성은 낮아
민진규 대기자
2014-01-20
한라의 창업자인 정인영 회장은 일제시대에 영어를 배웠고, 6∙25동란 때는 통역을 할 정도로 새로운 학문과 지식을 빨리 받아 들였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이 현대적 의미의 자본주의를 받아들이면서 이들 양국의 영향을 크게 받았기 때문에 정인영 회장이 영어로 된 책을 읽고, 대화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은 큰 행운이었다고 볼 수 있다. 다른 대기업 오너들과는 달리 1960년대 초에 중공업이 경공업을 대체할 것이고, 1980년대 자동차가 미래산업이라고 파악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보인다.

한라의 기업문화를 진단하기 위해 국가정보전략연구소가 개발한 SWEAT Model의 두 번째 DNA인 사업(Business)을 제품(product)와 시장(market) 측면에서 평가해 보자.


◇ 중공업에서 시작해 자동차 부품전문기업으로 사업전환

정인영 회장이 현대양행을 설립하면서 경공업에 치중된 한국경제의 미래가 중공업에 있다고 확신한 것은 적절했다. 선진국의 사례를 보면서 국가의 산업발전단계가 저가의 노동력에 기반한 경공업이 발전하게 되면, 경공업으로 축적한 기술과 자본을 바탕으로 중공업이 발전한다는 논리를 파악한 것이다.

그러나 중공업이 한국경제의 주력산업으로 부상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시장이 형성되기 이전에 너무 일찍 뛰어 들었다. 중공업은 단순히 원료를 수입해 가공해 수출하는 경공업과는 달리 기술력이 필요한 산업이다. 


한라가 현대양행의 창원공장을 국가에 빼앗겼다고 억울해 하지만, 당시의 신군부는 대기업들이 빚으로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해 국가경제에 부담을 지우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신군부의 산업합리화 조치가 강압적인 형태로 띄어 문제가 있었지만 나름 합리적인 의사결정이라는 평가도 받았다.

5공화국 정부가 산업의 강제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국가자원의 합리적인 배분을 유도했고, 결과적으로 1980년대 중∙후반 이후 한국경제는 고도성장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한국중공업이 담수화설비, 발전설비 등 플랜트 사업부문에서 호실적을 내면서 한라가 내내 아쉬워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현대양행을 국가에 빼앗기고 나서 1980년 만도기계와 한라건설을 세워 자동차부품과 건설을 그룹의 양대 산업으로 키우기 시작했다. 자동차부품사업을 시작한 것도 현대자동차와의 특수성을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아주 적절한 선택이었다.

당시 수입에 의존하던 자동차부품의 국산화는 매력적인 사업이었다. 현대자동차가 1980년대, 1990년대 급성장하면서 만도기계의 실적도 덩달아 좋아졌다.

한라가 자동차부품사업을 하지 않았다면 건설이나 시멘트 등 사업만으로 그룹을 유지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본다. 물론 건설사업이 한라가 IMF외환위기로 해체된 이후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 줬다는 측면에서는 희망의 씨앗이 되기는 했다. 


한라는 만도를 50대 글로벌 자동차 부품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그룹차원의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자동차부품회사의 경쟁력은 품질이라는 점을 강조해 R&D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으며, 외국의 기술보유기업과 협력도 강화하고 있다.

만도는 주요 고객인 현대∙기아자동차가 글로벌 시장에 주력함으로써 중국, 미국, 인도, 브라질 등에 동반 진출하는 방법으로 글로벌 기업을 지향하고 있다. 조향 및 제동장치 등 일부 부품의 경우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는 평가도 받고 있어 자동차 부품기업으로서 만도의 미래는 밝은 편이다. 


◇ 조선과 플랜트 사업으로의 확장은 패착

한라는 조선산업의 미래를 너무 밝게 본 나머지 한라중공업에 그룹의 전 역량을 쏟아 부었다. 자동차부품사업에서 자신감을 회복한 이후 중공업에 다시 뛰어 들었다.

삼호공단 조성, 조선소건설, 플랜트공장 건설 등을 하면서 한라뿐만 아니라 현대그룹에도 손을 벌려 투자를 늘렸다. 조선과 플랜트사업이 국내에서 포화상태라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추진했고, 공장입지도 기존의 업체들과 다른 선택을 하면서 어려움이 가중되었다. 


조선과 플랜트공장의 대부분은 부품조달이나 노동력 확보가 유리한 포항, 울산, 부산, 진해, 창원, 거제 등에 동해안 남부와 남해안에 위치해 있는데 반해 한라중공업은 서해안의 전남 영암에 공장을 세웠다.

서해안은 조수간만의 차이가 심하고, 갯벌이 많아 대형선박의 입∙출항에 불리해 조선소나 플랜트 공장의 입지로서는 불리하다. 한라가 입지가 불리한 영암에 공장을 세우면서 얼마나 남은 초과비용이 투입되었는지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지만, 좋은 입지보다 더 많은 돈이 투자되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이미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중공업 등의 대형 조선사들이 즐비한 시장에서 한라중공업이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상식적인 판단기준에 맞지 않는 사업을 벌이다가 망한 그룹은 한라 외에도 한보그룹, 웅진그룹도 있다.

한보그룹도 철강, 웅진그룹은 태양광에 그룹의 규모나 역량을 고려하지 않고 무리하게 투자하다가 무너졌다. 한라중공업처럼 삼성자동차의 경우 허가를 얻기 위해 입지조건이 나쁜 부산에 공장을 세우면서 망한 사례로 꼽힌다. 


국내 최고의 그룹으로 꼽히는 삼성그룹도 이건희 회장의 개인적인 욕심을 바탕으로 자동차산업에 무리하게 진출했었다. 김영삼 정부는 섬유와 신발산업의 부진으로 어려워진 부산지역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 부산에 공장을 세우는 조건으로 자동차사업을 허가했다.

삼성자동차는 지반이 약한 모래밭인 녹산공단의 기초공사에 너무 많은 돈을 투자하면서 정상적인 가동조차 못하고 무너졌다. 자동차사업은 하는 사업마다 성공하던 삼성그룹이 철저하게 실패한 사업으로 기록되었다. 


당시로서는 천문학적인 투자규모인 8000억 원 이상을 투자했지만 투자비를 회수하지 못하고, 이자도 제대로 갚지 못하던 와중에 IMF외환위기로 한라는 한라중공업을 포기해야 했다. 한라중공업은 현대중공업그룹에 인수된 후 현대삼호중공업으로 이름을 바꿨지만, 현대중공업에서 처리하지 못하는 수주물량의 일부를 담당하는 보조역할에 머물고 있다.

2000년대 초∙중반 조선업과 플랜트제조가 활황세를 보이면서 잠깐 정상적인 가동이 이뤄졌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내 조선산업이 기술적인 측면에서 확실한 경쟁력을 보유하지 못하면서 미래가 불투명하다. 


◇ 건설업을 살리겠다는 의지는 좋지만 가능성은 낮아

한라가 모기업인 한라를 살리기 위해 우량계열사인 만도를 동원하면서 투자자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고 있다. 한라의 입장에서 모기업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지만, 과연 한라가 살아남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일고 있다.

정몽원 회장은 
2012년부터 그룹의 근간인 한라건설을 살리기 위해 전방위 지원을 시작했다. 2012년 12월 한라엠켐주식 510만주를 무상으로 한라건설에 증여했고, 2013년 4월 만도는 100%자회사인 마이스터를 통해 한라건설의 유상증자에 3435억 원 참여했다. 

2013년 9월 한라건설은 사명을 한라로 변경했다. 전통적인 토건만으로 기업을 살리기 어렵다고 판단해 사업분야를 환경과 에너지, 발전, 산업플랜트, IT, 자원개발, 물류 등으로 확장했다.

사업영역도 그동안 국내사업에 한정했던 것도 중동, 동남아시아, 중국,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유럽, 북남미 등으로 넓히기로 했다. 해외사업 추진하는 원칙을 need, solution, visualization, action plan 등 4가지로 정했다. 임직원이 해외진출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해 새롭게 노력하며, 성과를 내고,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실천하겠다는 의미라고 한다. 


올해도 미래사업본부를 신설해 환경, 에너지, 해외 플랜트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해외사업의 비중을 높이고, 국내사업도 주택사업보다는 상하수도 등 환경기초시설의 유지관리사업에 집중하기로 했다. 지난해부터 강원도 평창에서 지하수를 개발해 생수사업을 하기 위한 준비도 하고 있다.

주택과 공공사업에 치중된 사업구조를 재편하고, 돈이 되는 사업이라면 무엇이든지 하겠다는 발상은 좋지만 
한라의 정체성(identity)를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 아직도 매출의 대부분이 건설부문에서 나오고 있는데, 건설회사가 건설이라는 이름을 없애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고, 경험도 없이 무차별적으로 새로운 사업분야에 뛰어드는 것도 위험하다. 

2014년은 경기불황, 자금난, 불확실성 등 건설업계 전체가 3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MB정부가 건설업계를 살리기 위해 4대강 사업을 무리하게 펼쳐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4대강 사업 자체가 가격담합, 부실공사, 뇌물 등으로 얼룩지면서 건설업계 전체가 부도덕한 집단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가뜩이나 어려운 건설업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해외에서 돌파구를 찾던 국내 건설업체들이 과잉경쟁으로 저가수주를 하면서 대규모 손실을 내고 있는 것도 건설업체들의 숨통이 조이는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사업만 하던 한라가 해외 건설시장을 돌파구로 삼겠다는 구상은 설득력이 약하다. 정몽원 회장이 지난해부터 한라의 대표를 맡아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특별한 성과는 나지 않고 있다.

해외사업 추진 4대 원칙이라는 것도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해외사업만이 
한라의 유일한 희망이고, 해외사업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한라의 미래가 어둡다는 인식을 임직원이 공유하겠다는 것은 좋은데, 그것이 해외사업이 성공할 수 있는 핵심경쟁력(core competency)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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