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정보기관 개혁] 10. 외교부의 인식 전환과 빅데이터 구축 전략... 바람직한 공직관 갖고 살아야 성공한 외교관 인생 가능
영어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낙하산 인사에 사기 저하... 퇴직 이후에도 브로커보다 전문가 길을 걸어 가야
15세기 이탈리아에서 도입된 상주공관 제도는 주재국에서 거주하며 합법적으로 정보활동을 수행할 기반을 제공했다. 주기적인 외교관 파견이나 비공식적인 간첩의 파견만으로 주변국에 대한 정책변화에 완벽하게 대응하기 어렵다.
한반도에서 국가체제를 정립한 고조선, 고구려, 백제, 신라, 통일신라, 고려, 조선 등은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의 정치적 변화를 염탐하기 위해 사신을 파견했다.
특히 중국 대륙은 이민족의 침입으로 왕조의 부침이 심했으며 광대한 영토, 풍부한 물산, 선진 문물 등이 있어 정보활동에 대한 보상은 충분했다.
일본과 외교는 임진왜란 이전까지는 문명의 전수와 교역으로 노략질과 같은 일탈행위를 막는 데 초점을 뒀다. 500년 동안 이어진 조선은 개국 초기부터 사대선린(事大善隣) 외교로 대륙과 해양의 중간자 역할을 자임했다.
양반을 중심으로 전문 외교관을 양성하지 않고 그때그때 정치적 고려에 따라 사신을 선발해 파견했다. 외교관의 역량을 개발하거나 전문성을 키워야 겠다는 생각조차 없었다.
문제는 사신이 국가안보와 국가이익을 극대화 목표를 갖고 외교활동을 수행한 것이 아니라 당파 싸움에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는 데 도움이 되는 처세를 일삼았다는 데 있다.
사신이 귀국해 보고한 정보도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판단하지 않은 주관적 의견에 불과했다. 사신이 외교활동보다는 여비 마련을 위해 허용된 조공무역으로 치부(致富)에 집중하는 폐단도 적지 않았다. 제사보다 젯밥에 관심을 더 가졌다는 의미다.
조선시대의 직업외교관은 통역을 주임무로 하는 역관이 중심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들은 중인(中人) 신분이었다. 역관은 권력의 주변부에 기웃거려도 신분적 한계로 출세할 가능성은 낮아 자기계발 유인이 없었다.
▲ 국가정보기관의 이해 - 활동영역과 개혁과제 표지 by 민진규 [출처=엠아이앤뉴스]
◇ 영어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낙하산 인사에 사기 저하... 재외 공관이나 외교관의 도움 기대하는 국민 적어
1980년대 지인 중 한 명이 외교관으로 중동 지역에 파견을 갔다. 중동 국가는 막대한 석유 자원 덕분에 돈이 넘쳐나는 부국이었지만 빈부의 격차는 상상을 초월했다.
지인의 주요 임무 중 하나가 대사가 외교사절 행사에 참여하는 동안 운전수와 같이 도로에 주차된 자동차를 지키는 일이었다. 가난한 사람들이 주차된 차량의 타이어를 빼가는 절도가 유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려운 시험에 합격해 직업 외교관이 되었는데 수행하는 일은 고위직의 행사 뒤치닥꺼리, 본국에서 출장 나온 고위 공무원의 일정 파악 및 수행, 국회의원과 같은 정치인의 해외연수 안내 등의 잡무에 동원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소연했다.
요즘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1980년대만 하더라도 대사나 영사와 같은 공관장의 낙하산 인사가 비일비재(非一非再)했다. 영어 한마디조차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대사가 외교 책임자라는 현실 자체가 황당하지만 받아들이지 않을 없었다.
주재국의 현지어를 능숙하게 구사하지는 못해도 만국공통어라고 불리는 영어로 의사소통은 가능해야 주재국 공무원이나 정치인, 타국 외교관을 만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최소한의 생활 회화조차 되지 않는 공관장도 많았다. 기초적인 대화마저 불가능한 공관장은 외교 행사에 참가하는 것을 싫어할 뿐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가도 눈도장만 찍고 중간에 서둘러 나오게 된다.
당시 지인의 표현에 따르면 ’시간은 많고 할 일이 없는‘ 공관장은 산적한 업무로 바쁜 직원을 괴롭히거나 현지 교민, 상사 주재원 등과 어울리며 음주가무(飮酒歌舞)에 전념하게 된다.
여권 연장이나 비자 발급, 현지 정부와 행정 처리 등 교민이나 기업가들이 골치 아파하는 일을 처리해줄 권한과 여력은 충분하기 때문이다.
유학생이나 여행객을 보호하는 일은 이권이 생기지도 않고 출세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외면한다. 인간적으로 보면 당연한 처신이지만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외교관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파면감이다.
1990년대 이후 필자가 해외 유학 생활, 직장생활, 업무상 여행 등을 통해 축적한 경험을 반추(反芻)해보면 지인이 해준 얘기가 거의 틀리지 않았다.
해외에서 여권 연장이나 재발급, 현지인과의 갈등, 범죄 희생자로 조력 필요성 등과 같은 상황이 많았지만 재외 공관의 도움을 받은 기억은 전혀 없다.
공관에 전화를 하면 불친절하게 전화를 받는 것은 일상화되어 있고 국내에서 조용하게 살지 왜 해외에 나와서 외교관을 골치 아프게 만드느냐 등의 태도 윽박지른다.
언어만 잘 구사하면 우리나라 공관보다 현지 관공서로부터 도움을 받기가 더 수월했다. 지금도 해외에 나가 어려움이 처해도 외교관의 도움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
국민 중 해외 경험이 많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비슷할 것이라고 추정된다. 2025년 10월 기준 재외 공관에 파견된 외교관의 수준이나 공관 운영 실태에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 바람직한 공직관 갖고 살아야 성공한 외교관 인생 가능... 퇴직 이후에도 브로커보다 전문가 길을 걸어 가야
국가의 외교 협상력을 강화하고 재외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임무를 수행하는 외교부의 개혁 과제는 전문 외교관의 바람직한 정신 자세 수립, 빅데이터(Big data) 구축 및 운영, 업무에 필요한 역량의 강화로 구성된다.
첫째, 전문 외교관의 바람직한 정신 자세를 수립하고 행동해야 조직이 발전하고 자신의 인생도 행복해진다. 외교관은 국가안보와 국가이익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경험을 기반으로 통찰력과 직관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외교관은 국제정세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 국가의 협상력을 강화해 국가안보와 국가이익을 극대화하는데 기여해야 한다. 일상적인 공무 활동도 중요하지만 재외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 주는 업무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일부 외교관은 비뚤어진 엘리트 의식에 젖어서 민원인이나 교민을 무시하는 편이다. 설사 외교관이 민원인과 비교해 학벌이 좋고 어학 실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국민에게 외교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공복(公僕)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재외공관에 낙하산으로 내려온 무능한 공관장 뿐 아니라 시험에 합격한 전문 외교관의 ’갑‘질과 ’적폐‘도 상상을 초월한다. 퇴직한 외교관이 산하 기관에 재취업하거나 유관기관에서 ’브로커‘로 활약해 밥벌이를 하는 현상도 바람직하지 않다.
퇴직 외교관이 해외에서 축적한 양질의 경험과 지식을 활용해 기업에 취직하는 것은 적극 추천한다. 현지에서 구축한 인맥 네트워크와 언어 능력은 기업의 입장에서도 꼭 필요한 역량이기 때문이다.
’인생은 끝이 좋아야 다 좋다‘는 말이 있다. 퇴직 이후 사건 해결 브로커가 아니라 국가의 미래 전략 수립과 기업 경쟁력 제고에 헌신하는 삶을 사는 선배들이 많아야 후배들이 소신을 지키려는 용기를 포기하지 않고 업무를 추진함에 있어 자신감을 잃지 않게 된다.
둘째, 빅데이터(Big data) 구축 및 운영은 정부 수립 이후 공식 기록된 자료 뿐 아니라 다양한 연구활동을 통해 확보한 지식을 포함해야 효용(utility)이 높아진다,
미국, 영국, 독일, 러시아, 일본 등의 국가는 전 세계 공관에서 보고한 전문이나 보고서를 취합하는 시스템을 운영한다. 특정 인사에게만 보고해야 하는 비밀이 아니라면 전부 상호 공유해 업무에 활용한다.
우리나라는 외교 자체에 대한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하고 외교 전반에 걸친 전략(strategy)·전술(tactic) 연구가 미진하다. 국제협상에서도 과거의 사례연구를 통해 교훈을 얻으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특히 외교조차도 정치적 편향성을 갖고 임하는 편이다. 보수와 진보 정부 이러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어 안타깝다. 노무현정부가 미국과 한미자유무역협정(FTA)에 성공한 노하우를 사장(死藏)시키고 쇠고기 협상을 진행한 이명박정부는 국가위기를 자초했다.
북한과 외교협상도 진보 정부와 보수 정부가 확고한 신념도 없이 우왕좌왕(右往左往)하며 허송 세월만 보냈다. 한심한 노릇이지만 가장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남북대화조차도 유의미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면 다른 국가와의 외교협상 성과는 처참한 수준이라고 봐야 한다.
아직도 일반 국민이나 정치인 모두 ’해외에 문외한이라 잘 모르겠지‘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誤算)이다. 직업 외교관보다 더 뛰어난 언어 실력과 외교 관련 지식이 풍부한 일반인도 적지 않으므로 더 많은 공부가 가능하도록 빅데이터를 구축하는 것이 좋다.
셋째, 업무에 필요한 역량은 언어 구사 능력, 외교 역사나 협상력에 관한 지식, 문화 상대주의 태도, 원활한 대화와 소통, 메모와 암기 능력, 직관력과 통찰력 등으로 다양하다.
청년이나 주변인이 필자에게 많이 묻는 질문 중 하나가 영어와 같은 외국어 학습법이다. ’어떻게 노력하면 단기간에 영어를 마스터할 수 있느냐‘가 대표적인 질문이다.
간단하게 대답하기 쉽지 않지만 명확하게 ’해외에서 오래 생활한다고 영어를 잘 구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고 말한다. 외국에서 10년 혹은 20년, 30년 살아도 단순 생활 회화 수준의 대화에 익숙한 것이지 고차원적인 설득이나 협상, 학문 습득에 필요한 외국어 능력을 갖추기는 어렵다.
외교관도 비슷한 관점에서 접근하면 좋다. 해외에서 오래 근무하고 공무를 처리하며 외국어를 활용했다고 해도 원어민 수준까지 도달하기는 어렵다. 특히 석박사 학위를 가진 원어민 지식인과의 교류는 쉽지 않다.
문화 상대주의는 편협한 문화 사대주의를 가진 우리나라 사람이 간과하기 쉬운 태도다, 경제력에 따라 사람, 기업, 국가를 판단하고 대하는 것이 일상화된 사람이 의외로 많다.
일반인이라면 큰 문제가 없지만 공무원 특히 외교관이 이러한 인식을 갖고 외교활동을 한다는 것은 국가 차원에서 끔찍한 ’참사‘를 초래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만난 전·현직 외교관 중에서 올바른 문화적 태도를 가진 사람도 많지 않았다.
메모와 암기 능력도 초중고 혹은 대학에서 학과 성적이 좋았다고 평생 동안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직관력과 통찰력은 용어 정의조차 어렵고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 어느 국가에도 육성할 방법을 찾아 가르치는 교육기관은 전무하다.
공무원은 돈을 벌기 보다는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과 명예를 추구하는 직업이라 자기만족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존중과 존경을 받아야 성공한 인생을 살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필자는 35년 이상 다양한 직장에서 퇴직한 은퇴자의 삶을 관찰하기 위해 노력했다. 현직에 있을 때보다 퇴직 이후의 인생 행로가 행복한 삶을 평가하는 척도로 더 중요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퇴직 이후의 삶이 모범적이어야 존경을 받는 데 유리하다. 다수 고위 공무원 퇴직자의 일탈행위가 심각한 상황이라 존경할 선배나 사회 지도자가 없다고 말하는 일반인과 청년이 대다수다. 한심한 상황이지만 현실이다.
요약하자면 외교부는 현재의 기업문화와 업무 태도로 21세기 디지털 사회에서 역량을 발휘하기 어렵기 때문에 자체 변화 동력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
외교는 단순한 업무 용어가 아니라 세상의 모든 문제는 협상을 통해 해결이 가능하고 사람과의 관계는 전부 외교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단어다.
모든 외교관은 훌륭한 삶을 살 수 있는 직업을 선택했으므로 절반은 성공한 셈이다. 나머지 절반을 잘 채우려면 고정관념(固定觀念)을 타파하고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워야 한다.
- 계속 -
한반도에서 국가체제를 정립한 고조선, 고구려, 백제, 신라, 통일신라, 고려, 조선 등은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의 정치적 변화를 염탐하기 위해 사신을 파견했다.
특히 중국 대륙은 이민족의 침입으로 왕조의 부침이 심했으며 광대한 영토, 풍부한 물산, 선진 문물 등이 있어 정보활동에 대한 보상은 충분했다.
일본과 외교는 임진왜란 이전까지는 문명의 전수와 교역으로 노략질과 같은 일탈행위를 막는 데 초점을 뒀다. 500년 동안 이어진 조선은 개국 초기부터 사대선린(事大善隣) 외교로 대륙과 해양의 중간자 역할을 자임했다.
양반을 중심으로 전문 외교관을 양성하지 않고 그때그때 정치적 고려에 따라 사신을 선발해 파견했다. 외교관의 역량을 개발하거나 전문성을 키워야 겠다는 생각조차 없었다.
문제는 사신이 국가안보와 국가이익을 극대화 목표를 갖고 외교활동을 수행한 것이 아니라 당파 싸움에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는 데 도움이 되는 처세를 일삼았다는 데 있다.
사신이 귀국해 보고한 정보도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판단하지 않은 주관적 의견에 불과했다. 사신이 외교활동보다는 여비 마련을 위해 허용된 조공무역으로 치부(致富)에 집중하는 폐단도 적지 않았다. 제사보다 젯밥에 관심을 더 가졌다는 의미다.
조선시대의 직업외교관은 통역을 주임무로 하는 역관이 중심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들은 중인(中人) 신분이었다. 역관은 권력의 주변부에 기웃거려도 신분적 한계로 출세할 가능성은 낮아 자기계발 유인이 없었다.
▲ 국가정보기관의 이해 - 활동영역과 개혁과제 표지 by 민진규 [출처=엠아이앤뉴스]
◇ 영어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낙하산 인사에 사기 저하... 재외 공관이나 외교관의 도움 기대하는 국민 적어
1980년대 지인 중 한 명이 외교관으로 중동 지역에 파견을 갔다. 중동 국가는 막대한 석유 자원 덕분에 돈이 넘쳐나는 부국이었지만 빈부의 격차는 상상을 초월했다.
지인의 주요 임무 중 하나가 대사가 외교사절 행사에 참여하는 동안 운전수와 같이 도로에 주차된 자동차를 지키는 일이었다. 가난한 사람들이 주차된 차량의 타이어를 빼가는 절도가 유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려운 시험에 합격해 직업 외교관이 되었는데 수행하는 일은 고위직의 행사 뒤치닥꺼리, 본국에서 출장 나온 고위 공무원의 일정 파악 및 수행, 국회의원과 같은 정치인의 해외연수 안내 등의 잡무에 동원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소연했다.
요즘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1980년대만 하더라도 대사나 영사와 같은 공관장의 낙하산 인사가 비일비재(非一非再)했다. 영어 한마디조차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대사가 외교 책임자라는 현실 자체가 황당하지만 받아들이지 않을 없었다.
주재국의 현지어를 능숙하게 구사하지는 못해도 만국공통어라고 불리는 영어로 의사소통은 가능해야 주재국 공무원이나 정치인, 타국 외교관을 만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최소한의 생활 회화조차 되지 않는 공관장도 많았다. 기초적인 대화마저 불가능한 공관장은 외교 행사에 참가하는 것을 싫어할 뿐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가도 눈도장만 찍고 중간에 서둘러 나오게 된다.
당시 지인의 표현에 따르면 ’시간은 많고 할 일이 없는‘ 공관장은 산적한 업무로 바쁜 직원을 괴롭히거나 현지 교민, 상사 주재원 등과 어울리며 음주가무(飮酒歌舞)에 전념하게 된다.
여권 연장이나 비자 발급, 현지 정부와 행정 처리 등 교민이나 기업가들이 골치 아파하는 일을 처리해줄 권한과 여력은 충분하기 때문이다.
유학생이나 여행객을 보호하는 일은 이권이 생기지도 않고 출세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외면한다. 인간적으로 보면 당연한 처신이지만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외교관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파면감이다.
1990년대 이후 필자가 해외 유학 생활, 직장생활, 업무상 여행 등을 통해 축적한 경험을 반추(反芻)해보면 지인이 해준 얘기가 거의 틀리지 않았다.
해외에서 여권 연장이나 재발급, 현지인과의 갈등, 범죄 희생자로 조력 필요성 등과 같은 상황이 많았지만 재외 공관의 도움을 받은 기억은 전혀 없다.
공관에 전화를 하면 불친절하게 전화를 받는 것은 일상화되어 있고 국내에서 조용하게 살지 왜 해외에 나와서 외교관을 골치 아프게 만드느냐 등의 태도 윽박지른다.
언어만 잘 구사하면 우리나라 공관보다 현지 관공서로부터 도움을 받기가 더 수월했다. 지금도 해외에 나가 어려움이 처해도 외교관의 도움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
국민 중 해외 경험이 많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비슷할 것이라고 추정된다. 2025년 10월 기준 재외 공관에 파견된 외교관의 수준이나 공관 운영 실태에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 바람직한 공직관 갖고 살아야 성공한 외교관 인생 가능... 퇴직 이후에도 브로커보다 전문가 길을 걸어 가야
국가의 외교 협상력을 강화하고 재외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임무를 수행하는 외교부의 개혁 과제는 전문 외교관의 바람직한 정신 자세 수립, 빅데이터(Big data) 구축 및 운영, 업무에 필요한 역량의 강화로 구성된다.
첫째, 전문 외교관의 바람직한 정신 자세를 수립하고 행동해야 조직이 발전하고 자신의 인생도 행복해진다. 외교관은 국가안보와 국가이익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경험을 기반으로 통찰력과 직관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외교관은 국제정세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 국가의 협상력을 강화해 국가안보와 국가이익을 극대화하는데 기여해야 한다. 일상적인 공무 활동도 중요하지만 재외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 주는 업무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일부 외교관은 비뚤어진 엘리트 의식에 젖어서 민원인이나 교민을 무시하는 편이다. 설사 외교관이 민원인과 비교해 학벌이 좋고 어학 실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국민에게 외교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공복(公僕)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재외공관에 낙하산으로 내려온 무능한 공관장 뿐 아니라 시험에 합격한 전문 외교관의 ’갑‘질과 ’적폐‘도 상상을 초월한다. 퇴직한 외교관이 산하 기관에 재취업하거나 유관기관에서 ’브로커‘로 활약해 밥벌이를 하는 현상도 바람직하지 않다.
퇴직 외교관이 해외에서 축적한 양질의 경험과 지식을 활용해 기업에 취직하는 것은 적극 추천한다. 현지에서 구축한 인맥 네트워크와 언어 능력은 기업의 입장에서도 꼭 필요한 역량이기 때문이다.
’인생은 끝이 좋아야 다 좋다‘는 말이 있다. 퇴직 이후 사건 해결 브로커가 아니라 국가의 미래 전략 수립과 기업 경쟁력 제고에 헌신하는 삶을 사는 선배들이 많아야 후배들이 소신을 지키려는 용기를 포기하지 않고 업무를 추진함에 있어 자신감을 잃지 않게 된다.
둘째, 빅데이터(Big data) 구축 및 운영은 정부 수립 이후 공식 기록된 자료 뿐 아니라 다양한 연구활동을 통해 확보한 지식을 포함해야 효용(utility)이 높아진다,
미국, 영국, 독일, 러시아, 일본 등의 국가는 전 세계 공관에서 보고한 전문이나 보고서를 취합하는 시스템을 운영한다. 특정 인사에게만 보고해야 하는 비밀이 아니라면 전부 상호 공유해 업무에 활용한다.
우리나라는 외교 자체에 대한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하고 외교 전반에 걸친 전략(strategy)·전술(tactic) 연구가 미진하다. 국제협상에서도 과거의 사례연구를 통해 교훈을 얻으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특히 외교조차도 정치적 편향성을 갖고 임하는 편이다. 보수와 진보 정부 이러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어 안타깝다. 노무현정부가 미국과 한미자유무역협정(FTA)에 성공한 노하우를 사장(死藏)시키고 쇠고기 협상을 진행한 이명박정부는 국가위기를 자초했다.
북한과 외교협상도 진보 정부와 보수 정부가 확고한 신념도 없이 우왕좌왕(右往左往)하며 허송 세월만 보냈다. 한심한 노릇이지만 가장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남북대화조차도 유의미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면 다른 국가와의 외교협상 성과는 처참한 수준이라고 봐야 한다.
아직도 일반 국민이나 정치인 모두 ’해외에 문외한이라 잘 모르겠지‘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誤算)이다. 직업 외교관보다 더 뛰어난 언어 실력과 외교 관련 지식이 풍부한 일반인도 적지 않으므로 더 많은 공부가 가능하도록 빅데이터를 구축하는 것이 좋다.
셋째, 업무에 필요한 역량은 언어 구사 능력, 외교 역사나 협상력에 관한 지식, 문화 상대주의 태도, 원활한 대화와 소통, 메모와 암기 능력, 직관력과 통찰력 등으로 다양하다.
청년이나 주변인이 필자에게 많이 묻는 질문 중 하나가 영어와 같은 외국어 학습법이다. ’어떻게 노력하면 단기간에 영어를 마스터할 수 있느냐‘가 대표적인 질문이다.
간단하게 대답하기 쉽지 않지만 명확하게 ’해외에서 오래 생활한다고 영어를 잘 구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고 말한다. 외국에서 10년 혹은 20년, 30년 살아도 단순 생활 회화 수준의 대화에 익숙한 것이지 고차원적인 설득이나 협상, 학문 습득에 필요한 외국어 능력을 갖추기는 어렵다.
외교관도 비슷한 관점에서 접근하면 좋다. 해외에서 오래 근무하고 공무를 처리하며 외국어를 활용했다고 해도 원어민 수준까지 도달하기는 어렵다. 특히 석박사 학위를 가진 원어민 지식인과의 교류는 쉽지 않다.
문화 상대주의는 편협한 문화 사대주의를 가진 우리나라 사람이 간과하기 쉬운 태도다, 경제력에 따라 사람, 기업, 국가를 판단하고 대하는 것이 일상화된 사람이 의외로 많다.
일반인이라면 큰 문제가 없지만 공무원 특히 외교관이 이러한 인식을 갖고 외교활동을 한다는 것은 국가 차원에서 끔찍한 ’참사‘를 초래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만난 전·현직 외교관 중에서 올바른 문화적 태도를 가진 사람도 많지 않았다.
메모와 암기 능력도 초중고 혹은 대학에서 학과 성적이 좋았다고 평생 동안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직관력과 통찰력은 용어 정의조차 어렵고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 어느 국가에도 육성할 방법을 찾아 가르치는 교육기관은 전무하다.
공무원은 돈을 벌기 보다는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과 명예를 추구하는 직업이라 자기만족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존중과 존경을 받아야 성공한 인생을 살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필자는 35년 이상 다양한 직장에서 퇴직한 은퇴자의 삶을 관찰하기 위해 노력했다. 현직에 있을 때보다 퇴직 이후의 인생 행로가 행복한 삶을 평가하는 척도로 더 중요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퇴직 이후의 삶이 모범적이어야 존경을 받는 데 유리하다. 다수 고위 공무원 퇴직자의 일탈행위가 심각한 상황이라 존경할 선배나 사회 지도자가 없다고 말하는 일반인과 청년이 대다수다. 한심한 상황이지만 현실이다.
요약하자면 외교부는 현재의 기업문화와 업무 태도로 21세기 디지털 사회에서 역량을 발휘하기 어렵기 때문에 자체 변화 동력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
외교는 단순한 업무 용어가 아니라 세상의 모든 문제는 협상을 통해 해결이 가능하고 사람과의 관계는 전부 외교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단어다.
모든 외교관은 훌륭한 삶을 살 수 있는 직업을 선택했으므로 절반은 성공한 셈이다. 나머지 절반을 잘 채우려면 고정관념(固定觀念)을 타파하고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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