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K-안전운동] 2. 안전불감증공화국을 멸망시키기 위한 안전 강화 운동
안전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진단모델도 없어 국가 차원의 대책 필요
▲ 스마트 모빌리티 안전 표지 [출처=배움]
국가란 무엇인가? 국가의 기본적인 책무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다. 국민은 국가와 공무원이 자신의 기본적인 권리를 보호해 줄 것이라는 믿음 하에 납세의 의무 등 4대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국가권력에 복종한다. 하지만 이러한 믿음이 무너진다면 국가는 더 이상 필요가 없게 된다.
대한민국은 사람답게 살기에 충분한 국가라는 인식이 사라진 지 오래다. 천재지변이 아니라 각종 인재가 끊이지 않고 일어나 불안한 국민 중에는 국가를 버리고 떠나는 이민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던 사건으로 소중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끓어 오르는 분노를 억제하지 못하고 국가와 사회를 원망한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라는 선박이 침몰해 304명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목숨을 걸고 승객의 탈출을 도와야 하는 선장은 먼저 탈출했고, 안내 방송에 따라 객실 내에서 침착하게 구조를 기다리던 학생들은 대규모 희생을 피하지 못했다. 과적과 정원 초과로 배가 침몰하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선박 관계자와 정부의 대응은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결국 분노한 국민들은 촛불집회를 이어갔고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으로 결말을 맺었지만 여전히 정부의 대응조치 수준은 나아지지 않았다. 2017년 5월 적폐를 청산하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하라는 국민적 소명을 안고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지만 대형 안전사고는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다.
불안한 국민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하늘의 운에 맡기고 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대한민국을 안전한 사회로 만들기 위해 수립하고 실천해야 할 안전정책을 ‘K-안전(safety)’으로 명명했다.
불안한 한국, 안전 불감증에 취한 한국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혁신하기 위한 염원을 담아 안전도 한국의 대표 브랜드인 K-팝, K-드라마, K-뮤직, K-푸드 등과 같이 육성해 해외로 수출할 수 있는 자랑스러운 대표 서비스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제언할 방침이다.
◇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안고 사는 것과 같아
지난 수만 년 동안 인류는 빙하기와 같은 기상이변으로 인해 몇 번의 종말을 맞이했지만 변화에 적응해 살아남았다. 천재지변은 막을 수 없었지만 피해는 최소화할 수 있다. 지난 10여년 동안 국내외에서 발생한 대참사를 간략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해외에서는 2004년 12월 26일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에서 발생한 해저지진으로 촉발된 쓰나미(tsunami)가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지역을 휩쓸었다. 14개 국가에서 23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쓰나미는 바다 밑에서 발생한 지진이 작용해 발생한 해일을 말한다.
2011년 3월 11일 일본 동북부 지역을 강타한 쓰나미로 1만5000명 이상이 사망하거나 실종됐다. 각종 지진, 화산폭발, 풍수해 등에 대처를 잘해 안전 신화를 자랑하던 일본정부조차도 무지막지한 재난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국내에서도 각종 사고로 인한 대형 참사는 끊이지 않고 발생했다. 1993년 10월 10일 전북 부안군 위도에서 서해훼리호가 침몰해 292명, 1994년 10월 21일 서울성수대교가 붕괴해 32명이 각각 사망했다. 1995년에는 서울 삼풍백화점이 붕괴해 502명이 목숨을 잃었다. 1993년 문민정부의 출범으로 정치적 민주화는 이뤘지만 정작 국민의 안전은 더 크게 위협을 받았다.
2014년 세월호 침몰은 안전한 사회에 대한 믿음을 산산이 부셔버린 사건이었다. 세월호 침몰 당시 구조조치에 실패한 박근혜 정부는 몰락했고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지만 안전 수준이 개선됐거나 될 것이라는 징후를 찾아보기 어렵다.
2017년 12월 충북 제천의 스포츠센터에서 화재가 발생해 29명이 숨졌다. 정부 차원에서 모든 시설물에 대한 안전진단을 강화했지만 충격이 사라지기도 전인 2018년 1월 밀양 요양병원에서 37명이 화재로 유명을 달리했다. 2018년 11월 9일에는 서울 한복판인 종로의 고시원에서 불이나 7명이 사망했다.
스포츠센터, 요양병원, 고시원 등은 다수의 사람들이 방문하거나 거주하는 공간이었지만 최소한의 안전장치나 대피로조차 없었다. 제천에서는 화재진압 부실, 밀양에서는 환자들의 인권침해, 종로에서는 화재시설 미비 등에 대한 논란이 제기됐다. 특히 서울 한복판인 종로의 고시원은 스프링클러도 설치돼 있지 않았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이 모든 고시원과 원룸형 주거시설에 화재경보기를 설치하겠다고 호들갑을 떨고 있지만 실효성은 의문이다. 종로 화재에서도 대피 안내가 있었지만 깊은 잠에 빠졌다가 탈출하지 못해 희생된 사람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스프링클러가 있었다면 화재 초기에 진압도 가능했을 수도 있다.
화재뿐만 아니라 각종 안전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대통령은 책임자를 엄벌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수립하겠다며 공언했지만 대부분의 대책은‘언 발에 오줌 누기’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사고가 나면 그때뿐이다. 죽은 사람만 불쌍하고 모두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마음 졸이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 작금의 한국사회 현실이다.
◇ 안전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진단모델도 없어
국내에서 발생하고 있는 안전사고를 근절하거나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그냥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살아야만 할까? K-안전에 대한 글을 준비하면서 군대 시절이 떠올랐다.
당시 군대에서 사용하는 장비 일부는 가용수명이 지나 폐품으로 처리해야 하는 수준이었지만 꾸준하게 정비해 사용했다. 언제 고장 날지 몰랐지만 내가 근무할 때만 피하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매일 기도하는 심정으로 가슴 졸이며 넘겼다.
아마도 한국에서 안전에 관련된 일을 하는 공무원이나 각종 시설을 관리하거나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당시 필자와 같은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아니면 ‘설마 사고가 발생하겠어’하는 심정으로 안일하게 생각하고 지낼 수도 있다.
2018년도 저물어 가는 시점에서 ‘K-안전 운동’을 벌이는 이유는 안전을 시스템적 관점에서 접근하기 위한 목적이다. 한국에서 안전사고를 예방하거나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다음과 같은 발생이유를 세부적으로 파악해 대처해야 한다.
첫째, 한국사람들은 새로 만드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시설을 유지 및 보수하는 데는 게을리한다는 점을 중시해야 한다. 대부분의 공공기관이나 민간기업, 일반인도 시설을 건설하는 데는 비용을 투입하지만 건설한 이후 관리하는 비용은 충분하게 책정하지 않는다. 작은 흠이나 고장을 수리하는 비용은 어떻게 해서든 아끼려고 노력한다.
공공기관도 도로를 포장하고 건물을 짓는 전시성 이벤트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도로에 작은 금이 가고 구명이 생길 때 수리하면 되는데 더 크게 부서질 때까지 그냥 방치한다. 공사가 클 경우에 고친 표시도 나고, 콩고물(?)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호미로 막을 수 있지만 어차피 세금으로 때울 것이기 때문에 가래로 막아야 하는 상태까지 두는 것이다.
서양국가 정부는 새로운 건물을 짓는 것보다는 있는 건물을 어떻게 잘 유지해 사용할 것인지에 건설정책의 초점을 맞춘다. 민간기업도 무조건 헌 건물을 부수고 새로 짓기보다는 평상시 관리를 통해 안전한 사용방법을 강구해 실천한다. 도로로 포장공사가 끝나자 마자 예산을 배정해 최상의 품질로 관리한다.
둘째, 국내에서 건설된 대부분의 건물이나 설비는 가용수명이 이미 지나서 교체가 필요한 실정을 감안해야 한다. 과학적으로 인간의 수명은 120살까지라고 하지만 대부분 80세 전후해서 사망한다. 건물이나 장비도 외관상 멀쩡해 보여도 모두 가용수명이 있기 때문에 부품이나 소재의 한계수명이 지나면 교체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주인이나 관리인들은 비용을 아끼려고 사고가 날 때까지 기다린다. 사고가 나기 전에 미리 부품을 교체하고 보수하는 것을 낭비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100년을 사용할 수 있다는 콘크리트 건물도 날림으로 건축할 뿐만 아니라 관리도 제대로 하지 않아 30년도 사용하지 못한다. 서양처럼 꾸준하게 수리하고 관리하면 50년, 70년 이상 사용할 수 있어 국가차원에서도 자원낭비를 막을 수 있다.
군대에서 생활할 때 2차 대전 당시에 미군이 사용했던 물품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닦고 조이고 기름치자’는 구호가 적힌 수송부대에서는 한계 수명이 지난 차량을 사용하는 것을 훈장처럼 자랑스러워했다.
한국 공군은 2차대전 미군이 사용하던 F-4 팬덤 전투기를 2010년까지 운용했다. 공군의 정비능력이 뛰어났다는 칭찬도 있었지만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아 젊은 조종사들이 안타깝게 산화한 사례도 많았다.
셋째, 안전 관련 공무원이나 관리자가 안전을 진단해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모델도 없고 평가훈련도 부족한 실정이다.
안전사고를 예방하는데 드는 비용, 안전사고가 발생할 확률, 안전사고가 발생할 경우에 초래될 비용 등을 객관적이며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기초자료도 없다. 대부분 자신의 과거 직관과 경험에 비춰 주관적이며 낙관적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1986년 미국 나사(NASA)가 발사한 챌린저호는 발사 후 73초만에 폭발했다. 로켓의 추진장치에 장착된 부품 하나가 잘못돼서 고쳐야 한다는 지적이 수없이 제기됐지만 작은 부품 하나 때문에 발사를 연기할 수 없다는 논리에 묻혔다.
안전에 완벽한 신화를 자랑하는 나사에서 부품불량은 있을 수 없다는 자만도 한 몫 했다. 대참사를 겪고 난 후 안전에 대한 경각심이 강화돼 3년 동안 안전테스트를 진행한 1988년에야 디스커버리호를 발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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