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문화] 1편 대기업 22. KCC 기업문화 (1) 역사와 이슈... 건설, 조선, 자동차 등 3대 전방산업에 의존도 너무 높아
스레트로 시작해 도료, 유리 등 종합화학그룹으로 성장 중... 정상영 회장, 현대그룹 인수논란으로 자존심에 상처 입어
민진규 대기자
2014-02-10
한국 기업역사에서 현대그룹의 창업주인 정주영 회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상을 초월한다. 일제가 버리고 간 식산재산을 불하 받거나, 공기업을 인수해 대기업으로 성장시킨 다른 대기업 오너들과는 달리 정주영 회장은 기초부터 직접 사업을 일궜다.

KCC그룹(이하 KCC)의 창업자인 정상영 회장의 경우에도 형인 정주영 회장의 도움을 받기 보다는 자신이 직접 1958년 금강스레트공업을 창업해 KCC의 기반을 닦았다.

2013년 
 기준 KCC는 도료, 건자재, 건설 등을 하는 기업집단으로 공기업을 제외하고 재계서열 32위이다. 정상영 명예회장은 2005년부터 경영을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경영일선에서 물러나 고문역할만 하고 있다. 


◇ 스레트로 시작해 도료, 유리 등 종합화학그룹으로 성장 중

정상영 회장이 1958년 세운 금강스레트공업은 1960년대 새마을운동으로 급성장하게 된다. 박정희 정부가 새마을운동의 기치를 내 걸면서 주택개선사업이 국가주도로 이뤄졌다.

전국적으로 초가지붕이 스레트지붕으로 바뀌게 되었고, 금강스레트공업의 스레트는 생산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스레트가 보급되기 이전에 초가지붕은 몇 년에 한 번씩 교체해 줘야 했고, 가난한 사람들은 돈이 없어 제때 지붕교체 작업을 하지 못해 비가 오면 지붕이 새는 등 생활에 어려움을 겪었다.

스레트는 초가집을 덮는 짚보다도 더 가격도 저렴했고, 한번 교체하면 수십 년 동안 사용할 수 있어 혁명적인 건축자재로 불렸다. 정부가 지붕개량사업을 농촌근대화의 지표로 판단해 역점사업으로 추진한 것도 한 몫을 했다. 


아주 단순한 건축자재를 만들던 KCC는 1974년 도료, 1987년 유리, 2003년 실리콘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했다.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던 선진국 기업들이 장악한 건축자재 시장에 저돌적으로 진출함으로써 KCC는 종합 건자재업체로 성장할 수 있었다.

정상영 회장은 범 현대가의 트레이드 마크인 강력한 추진력을 갖고 있다. 전주의 실리콘 공장은 무리한 투자라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13년이나 걸려 결국 완성했다. KCC는 건축자재 중 시멘트와 철골을 뺀 유리, 창호재, 바닥재, 벽면, 페인트 등을 생산하는 종합 건자재 기업이라고 볼 수 있다. 


KCC가 건자재사업에서 두각을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은 혁신적인 제품개발이나 원가절감노력보다는 현대그룹의 전폭적인 지원 덕분이다. 건자재가 일반 유통대리점보다는 주거용 아파트와 상업용 건물을 짓는 건설업체가 주요 구매자이고, 현대그룹의 간판기업인 현대건설이 국내 최대 건설회사였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현재 KCC 사업의 80%을 차지하고 있는 도료업도 현대자동차그룹, 현대중공업그룹, 현대건설 등이 주요 고객이다. KCC가 자동차나 선박도료 부문에서 시장점유율이 높은 이유다. 


2008년 KCC는 창립 50주년을 맞이해 기술리더십에 기초해 종합 건축자재, 도료 전문기업에서 명실상부한 세계적 정밀화학 기업으로 변신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미래성장동력으로 폴리실리콘 사업을 선택해 현대중공업과 수천억 원의 투자를 단행했다.

태양광발전산업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침체기에 접어 들면서 폴리실리콘 사업은 좌초됐고, 폴리실리콘 사업 대신 화장품 사업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화장품 사업의 실적은 아직 나오지 않아 정밀화학기업으로 변신은 진행 중이다. 


KCC는 사업적 유대관계를 강화한다는 명분으로 범 현대가 관련 기업의 주식에 대한 투자를 늘려 막대한 시세차익을 얻었다.

2012년부터 주식처분으로 막대한 현금을 보유해 미래성장 동력확보를 위한 M&A에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구체적인 진전은 없다. 주력사업인 건자재와 도료사업은 전방산업인 건설, 조선, 자동차 산업의 업황에 지나치게 종속되기 때문에 새로운 먹거리를 확보해야 한다.

정상영 회장이 2선으로 물러난 후 정몽진 회장과 정몽익 사장이 경영을 책임지고 있지만 돌파구 확보에 애로를 겪고 있다. 종합화학그룹으로 성장은 진행 중이라고 볼 수 있다. 


◇ 정상영 회장, 현대그룹 인수논란으로 자존심에 상처 입어

현대그룹은 정주영 회장이 차남인 정몽구 대신 4남인 정몽헌을 후계자로 내 세우며 경영권 분쟁을 초래한다. 2000년 발생한 형제간의 경영권분쟁은 왕자의 난으로 불리는데, 그룹의 위상을 위축시켰다.

2003년 현대그룹의 정통성을 물려 받은 정몽헌 회장이 사망하면서 정몽헌 회장의 부인 현정은과 정상영 회장은 현대그룹 경영권을 두고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소위 말하는 
시숙의 난이다. 

2014년 2월 현재 현대그룹의 회장으로 재임하고 있는 현정은과 그녀의 모친인 김문희가 현대그룹의 경영권을 전횡한다고 판단한 정상영 회장은 형인 정주영 회장이 일군 현대그룹을 현정은 모녀에게 줄 수 없다며 경영권 확보차원에서 현대그룹의 지주회사역할을 하던 현대엘리베이터 주식을 매입하게 된다.

시장에서는 정상영 회장이 현대그룹을 삼켰다며 호들갑을 떨었고, KCC는 2003년 11월 현대그룹인수를 선언하고, 현대그룹 경영정상화팀까지 꾸려 현대그룹을 접수할 준비까지 마쳤다. 2004년 2월 증권선물위원회가 KCC에게 현대엘리베이터지분을 매각하라고 결정하면서 양측의 공방은 종료됐다. 


아직도 경영상의 어려움으로 인해 해체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현대그룹은 범 현대가의 상징적 존재라는 점에서 관련 그룹들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것이다.

당시 현대그룹을 적대적으로 인수하려는 정상영 회장에 대해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한 조카의 재산을 삼촌이 탐내는 것은 도덕적으로 용납하기 어렵다는 비난이 거세게 일었다.

하지만 정상영 회장은 자신의 형이 평생을 거쳐 일군 회사를 정씨가 아닌 현씨가 좌지우지한다는 것은 용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또한 현대그룹의 경영이 개선되지 않으면 제 3의 세력이 현대그룹의 경영권을 가져갈 수 있다는 것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대기업 자손들의 경영권분쟁이나 상속분쟁을 대하는 사람들은돈은 피보다 진하다는 말로 설명한다. 정상영 회장이 현대그룹을 대상으로 적대적 M&A를 시도한 것이 경제적 이익이 우선이었는지, 자신의 주장대로 정씨 가문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인지는 알 수 없다.

어찌되었건 정상영 회장은 이 사건으로 인해 범 현대가의 어른으로서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고, 관계사들의 경영권을 방어해 가문의 이익을 보호하려는 역할을 충분하게 수행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 건설, 조선, 자동차 등 3대 전방산업에 의존도 너무 높아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KCC라는 기업에 대해 건자재와 도료업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실제 매출측면에서 보면 KCC의 사업 대부분은 도료이고, 건자재사업이 일부를 점유하고 건설과 기타사업은 미미한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KCC의 사업구조로 보면 전방산업은 건설, 조선, 자동차이다. 건설은 건자재의 수요처이고, 조선과 자동차는 도료의 주요 구매처이다. 문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3대 전방산업이 경기위축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는 것이다. 


먼저 건설의 경우, 국내 아파트건설 시장이 급격하게 위축되고 있어 건자재판매가 늘어나기 어렵다. 2010년경부터 분양시장이 침체되면서 건설시장은 빈사상태에 빠져 있는 상태다.

지난해부터 무분별하게 펼친 PF(프로젝트 파이낸싱)사업들이 줄줄이 좌초하면서 건설업체들의 도산이 줄을 잇고 있다.

지난해부터 KCC가 재건축, 리모델링 시장을 집중 공략해 신규 건설시장의 매출감소를 보전 받겠다고 주장했지만, 올해도 주택가격이 약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1000조원이 넘는 가계부채로 인해 재건축 시장이 살아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다음으로 조선도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기는 어렵다. KCC의 주요 고객인 현대중공업은 컨테이너선 등 상선을 위주로 건조하는데, 글로벌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물동량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선박의 발주량이 늘어나기 보다는 감소하고 있다.

KCC가 삼성 에버랜드의 주식을 매입하면서 삼성중공업의 선박도료시장에도 진입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됐지만, KCC의 도료가 일반선박용이라 삼성중공업의 특수선박에도 적용할 수 없어 매출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기술개발이 아쉬운 대목이다. 


마지막으로 자동차의 경우 현대차그룹이 성장이 정체되면서 덩달아 KCC의 자동차용 도료매출도 정체될 수 밖에 없다.

현대차그룹이 미국, 중국, 인도 등에서 품질문제로 리콜이 빈번해지면서 판매량이 늘어나지 않고 있다. 일부 국가에서는 오히려 매출이 줄어들고 있는 형편이다.

철옹성처럼 여기던 국내시장도 외국 자동차회사의 공격적인 마케팅, 현대차그룹의 국내소비자 역차별논란이 불거지면서 흔들리고 있는 중이다. 현대차그룹의 성장이 한계에 도달하면서 KCC의 자동차도료매출도 증가하기는 어렵다.


기업의 신성장 동력을 찾기란 매우 어렵다. KCC도 개발경제 환경에서 범 현대가 기업들을 고객으로 쉽게 확보해 안정적으로 사업을 영위했지만, 국내시장에 안주하면서 새로운 고객발굴에도 성공하지 못했다.

해외 선박용 도료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시장점유율은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 너무 오랫동안 편안하게 사업을 한 결과, 기술개발이나 조직혁신에는 소홀했다.

정몽진 회장과 정몽익 사장 형제가 신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국내외 M&A시장동향을 면밀하게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 성과는 없다. 새로운 아이템과 시장을 찾지 못하고, 전방산업의 호전만 기다리면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고 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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