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내부고발과 경영혁신] 19. 테라노스... 전문가보다 정치인의 평판으로 기술 허점 방어
언론의 부실 검증으로 희대의 사기극 성공… 내부고발자에 비밀유지서약서로 협박하며 입막음 시도
민진규 대기자
2024-08-19
세계 최대 제약회사 중 하나인 화이자의 2022년 매출액은 1003억3000만달러(약 125조3800억원)로 전년 대비 23% 증가하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코로나19 백신인 코미나티(Cominaty)와 치료제인 팍스로비드(Paxlovid)의 매출이 호실적을 견인했다. 1894년 설립된 화이자는 식품첨가물을 제조하다가 2차 세계대전 때 페니실린을 대량으로 생산하며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글로벌 제약산업은 존슨앤드존슨, 화이자. 머크 등이 주도하고 있으며 이들 기업은 신약 개발에 막대한 규모의 연구개발(R&D)비를 투자한다.

인간이 지구에 살기 시작한 이후 가장 화려한 호황기를 누리고 있는 인류가 질병을 치료하고 생명을 연장하는 약품을 구입하는데 돈을 아까지 않기 때문이다.

피 한 방울로 수십 종의 질병을 진단할 기술을 개발했다고 주장한 미국 바이오기업 테라노스(Teranos)는 실리콘밸리의 초혁신 기업으로 꼽혔다.

창업자인 엘리자베스 홈즈는 2003년 테라노스를 설립한 이후 기업 가치를 90억달러에 달할 정도로 키웠다가 범죄자로 전락했다. 테라노스의 흥망과 내부고발을 분석해 보자.


▲ 테라노스의 내부고발 진행 내역 [출처=국가정보전략연구소(iNIS)]
 

◇ 언론의 우호적 보도로 막대한 투자금 유치해 고속 성장

‘여자 스티브 잡스’라는 별칭으로 실리콘밸리의 가장 성공한 여성 억만장자로 꼽히던 홈즈는 2015년 10월 월스트리트 저널(WSJ)의 존 캐리루(John Carreyrou)가 취재를 시작하며 추악한 거짓말의 전모가 낱낱이 드러났다. 내부고발자는 타일러 슐츠(Tyler Shultz)와 에리카 정(Erika Cheung) 2명이다.

먼저 홈즈가 기술을 개발했다고 주장하는 과정을 살펴보자. 홈즈는 2003년 실리콘밸리의 무수한 최고경영자(CEO)를 배출한 스탠포드대 화학과에 입학한 후 곧바로 자퇴한다. 학교를 그만둔 후 2004년 테라노스를 창업하며 본격적으로 사업가로 변신했다.

많은 비용이 소요되고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는 혈액 테스트를 저렴하고 편리하게 하는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회사를 설립했다.

회사 명칭인 테라노스는 치료(therapy)와 진단(diagnosis)의 합성어다. 초기 회사 이름은 '실시간 치료(Real-Time Cures)'였지만 혈액 테스트기의 개발이 치료 목적이 아니라는 이유로 바꿨다.

테라노스는 자체 개발한 혈액 테스트기의 이름을 ‘에디슨’으로 정했다. 2012년 슈퍼마켓 체인인 세이프웨이는 800개 점포 내에 에디슨을 비치하려고 3억5000만 달러를 투자했다. 2013년 다른 슈퍼마켓 체인인 월그린도 동일한 목적을 갖고 테라노스와 협력 계약을 체결했다.

2015년 3월 클리블랜드병원은 자사의 기술을 테스트하고 테스트 비용을 줄이기 위해 테라노스와 협력한다고 발표했다. 2015년 7월 펜실베니아 보험회사인 아메리헬스 카리타스와 캐피털 블루크로스를 위한 연구를 제공하는 회사로 계약을 체결했다.

2015년 7월 미국 식품의약국(FDA)는 테라노스의 핑거스틱 혈액 테스트기를 병원 실험실 밖에서 재발성 헤르페스(HSV-1)를 진단하는 것을 허용했다. 2015년 테라노스는 애리조자바이오산업협회(AzBio)가 선정한 올해의 바이오과학회사로 선정됐다.

테라노스가 자사의 혈액 테스트가 글로벌 제약회사인 글락소스미스클라인과 화이자의 약을 복용하는 환자를 위한다고 주장했지만 양사는 2015년 10월 이러한 사실을 부인했다. 월그린은 2016년 6월 테라노스와 파트너십을 종료하고 동년 11월 소송을 제기했다.

다음으로 과학자들이 테라노스의 기술력에 의문을 품으면서 실체가 드러나는 과정이다. 2015년 2월 스탠포드대 존 이오어니디스(John Ioannidis) 교수가 미국의학협회저널에 동료 심사를 받은 테라노스의 연구결과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같은 해 5월 토론토대 엘레프테리오스 디아만디스( Eleftherios Diamandis) 교수는 테라노스의 기술을 분석한 후 회사가 주장하는 내용 대부분은 과장됐다고 강조했다.

과학자들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홈즈는 정치인을 끌어들였다. 당시 미국 부통령이었던 조 바이든을 초청해 회사 시설을 소개했다.

바이든은 자신이 본 것에 대해 칭찬했다. 하지만 홈즈가 부통령의 방문을 대비해 가짜 실험실을 만들었다는 것이 후에 밝혀졌다.

결국 2015년 10월 WSJ 캐리루 기자는 테라노스가 혈액 테스트를 위해 자체 개발한 에디슨이 아니라 전통적인 혈액 테스트 기기를 사용했으며 에디슨은 부정확한 결과를 도출했다고 보도했다. 캐리루는 내부고발자인 타일러 슐츠로부터 핵심 정보를 제공받았다.

특히 테라노스의 이사진 중 1명인 조오지 슐츠 전 국무부 장관의 손자인 타일러 슐츠는 경영진에게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무시당했다고 주장했다.

회사가 자신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자 캐리루에게 제보했을 뿐만 아니라 뉴욕 보건부에도 알렸다. 이후 FDA가 공식적으로 조사에 개입했다.

마지막으로 테라노스에 대한 처벌과 소송이 잇따르며 파산한 이력을 살펴보자. 2016년 4월 미국 증권거래위원(SEC)는 테라노스가 투자자와 정부 관계자에게 기술 관련 정보를 잘못 전달했을 가능성에 대해 조사를 진행했다. 2016년 6월 테라노스는 에디슨의 검사 결과의 약 1%만 유효하거나 정확하다고 실토했다.

2017년 1월 정부에 의해 테라노스가 운영하던 모든 연구소는 폐쇄됐다. 2017년 4월 투자자인 파트너 인베스트먼트와 다른 2개 펀드가 투자금 반환 소송을 제기했다.

2018년 3월 SEC는 창업주인 홈즈의 의결권을 박탈하고 향후 10년간 어떤 상장사의 관리자도 될 수 없다는 중징계를 내렸다.

2018년 6월15일 홈즈는 기소됐으며 2020년 7월 28일 재판이 시작됐다. 당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재판은 1년 후인 2021년 8월31일에서야 재개됐다.

2022년 1월3일 홈즈는 11년3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홈즈가 기소된 후인 2018년 9월4일 테라노스는 투자자에게 이메일을 보대 사업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 전문가보다 정치인의 평판으로 기술 허점 방어

테라노스는 검증되지 않은 기술로 막대한 투자금을 유치했으며 한 때 시가총액이 90억달러에 달할 정도로 총망을 받던 유니콘이었다.

하지만 실험결과를 조작해 덩치를 키운 기업은 철옹성이 아니라 모래성에 불과했다. 테라노스 내부고발이 주는 사회적 시사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영웅 만들기’에 급급한 언론보도와 허술한 검증시스템이 대참사를 초래했다. 미국인은 불의와 고난을 피하지 않고 부딪히는 사람을 영웅으로 받드는 경향이 있다. 홈즈는 회사 창업 당시 19세로 젊었고 명문 스탠포드 화학과 중퇴생이었다.

스탠포드대는 실리콘밸리의 유명 CEO를 다수 배출한 대학이며 중퇴라는 프리미엄도 컸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는 하버드대를 중퇴했고 애플의 스티브잡스도 리드 칼리지는 중도에 그만두고 대성공을 거뒀기 때문에 중퇴자에 대해 환상을 갖고 있다. 졸업할 때까지 시간이 아까워 기다리기지 못했다는 설명도 빠지지 않는다.

또한 실리콘밸리의 창업자가 대부분 남성인데 반해 여성일 뿐만 아니라 백인이라는 점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외모를 평가해 투자를 결정하는 것은 올바른 방식은 아니지만 준수한 외모와 지적인 인상은 투자자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둘째, 테라노스는 타일러 슐츠가 1단계 내부고발을 제기했을 때 수습방안을 찾기 위해 노력했어야 했지만 오히려 비밀유지서약서(NDA)로 협박했다.

에디슨은 미국의 비싼 의료시스템을 보완할 수 있는 의료기기임에는 틀림없기 때문에 실현 가능한 수준의 기능으로 시장을 개척할 여지는 있었다.

피 한 방울로 250가지 질병을 진단하기는 어렵지만 몇 가지는 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 에디슨은 10여개 이상의 질병을 진단할 수 있었다. 막대한 투자금으로 다른 대기업이 개발한 진단기를 벤치마킹하는 R&D를 진행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또한 현장에서 기초적인 진단을 시행하고 정밀진단은 의료기관을 방문해 처리하는 방식의 서비스 모델을 제시하는 것도 가능했다.

내부 R&D를 수행하는 직원에게조차도 문제를 정확하게 알리지 않았다. 에리카 정도 연구원으로 부실을 적나라하게 파악해 내부고발자가 됐다.

미국의 병원 치료비가 비싸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에 진단과 치료가 늦어 100만명 이상이 사망했을 정도다. 미국이 아니더라고 의료 후진국에서는 숙련된 의료진이 부족해 간단한 혈액진단키트에 대한 수요가 높다. R&D는 화려한 말보다는 지치지 않는 열정과 오랜 시간을 투입해야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셋째, 의학계와 생명공학계 관련자가 아니라 일반 유명인이 테라노스의 기술력을 신뢰하는 어처구니없는 검증시스템이 부실을 키웠다.

홈즈는 기술력을 증명할 실험 결과를 전혀 공개하지 않았다. 에디슨 혈액진단키트에 적용된 기술은 영업비밀로 공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기술력에 대한 논란이 제기될 때마다 홈즈는 유명 인사와 투자자의 후광으로 무마했다. 유명인은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 조지 슐츠 전 국방장관이 대표적이며 언론 재벌인 루퍼트 머독도 투자자 대열에 동참했다. 버락 오마바 대통령은 홈즈를 백악관으로 초청했고 조 바이든 당시 부통령은 테라노스를 직접 방문했다.

투자자 중 의학계와 관련된 인사는 한 명도 없었으며 실험 데이터로 기술력을 입증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WSJ의 캐리루 기자가 아니었다면 테라노스의 진실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일각에서는 테라노스라는 언론이 키웠고 테라노스를 망하게 만든 것도 언론이라는 자조 섞인 비판을 제기한다.

마지막으로 내부고발자인 타일러 슐츠와 에리카 정은 ‘Ethics In Entrepreneurship'이라는 비영리 단체를 발족해 운영하고 있다.

이 단체는 스타트업을 창업한 기업가에게 윤리경영을 우선적으로 실천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목적이다. 교육과 전문가의 자문을 제공하고 있다. 

- 계속 -

▲ 민진규 국가정보전략연구소 소장 [출처=iNIS]
 


*칼럼 내용 문의 : 민진규 국가정보전략연구소 소장(stmi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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