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문화] 1편 대기업 22. KCC 기업문화 (8) 기업문화 진단후기... 건설업과 유통업으로 진출은 신중했어야 했다
유리도 고기능성 시장을 개척해야 승산이 있다
민진규 대기자
2014-03-03
금강고려화학이라는 이름으로 덜 잘 알려져 있던 KCC는 국내 건자재시장의 강자로 자리매김하고 있지만, 전방산업이 부진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다른 대기업들과 마찬가지로 무리하게 건설업에 진출했고, 부동산거품에 맹목적으로 뛰어 들었다가 우량계열사마저 부실화시키고 있다.

신성장동력으로 유통업을 선정해 유통시장에도 과감하게 도전하고 있지만 현재까지의 결과는 보면 성공과는 거리가 멀다. 과도기에 기존의 질서가 바뀌는 것을 
패러다임 시프트(paradigm shift)라고 표현하는데, KCC의 경영진들이 시대변화의 바람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건설업과 유통업으로 진출은 신중했어야 했다

현재 건자재 시장은 신규 주택건설이 급감하면서 위기에 직면해 있다. 정상적이라면 1998년 아시아금융위기로 한국 건설시장이 침체되었어야 했는데, 정부가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경기부양정책을 수단으로 부동산을 선택하면서 부동산시장에 거품이 생기기 시작했다.

정부는 건설시장의 각종 규제를 풀어 기업이 막대한 이윤을 남겨 재무구조를 개선하도록 배려했다. 분양가 자유화로 건설회사들은 사회적 비난을 받지 않고, 합법적으로 막대한 개발차익을 얻을 수 있었다. 


주요 선진국은 2000년대 초반부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부동산 거품이 형성됐다가 이후로 빠졌는데, 유독 한국만 거품이 더 커졌다. 정부는 거품이 붕괴될 경우 경기침체가 가속화될 것을 두려워해 시장에 자금을 더 풀었다.

결국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시장의 니즈(needs)라고 판단한 중견 건설회사들도 부동산시장에 뛰어 들었다. 하지만 오를 대로 오른부동산 가격과 너무 커진 가계부채로 인해 부동산 시장은 침체기에 돌입했고 무리한 투자에 열중한 건설회사들은 유동성 위기에 직면했다. 


거품팽창 시기에 중견 건설회사를 인수했던 대기업도 2010년 이후 침체된 건설시장의 파고를 넘지 못하고 주저 앉았다. 극동건설을 인수했던 웅진그룹은 그룹 자체가 공중 분해되었고, 혜성처럼 나타나 10대 그룹에 진입했던 STX그룹도 조선업의 불황에 겹친 STX건설의 부진으로 수 차례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무너졌다.

두산그룹도 두산건설을 살리기 위해 초우량 기업인 두산중공업의 이익을 끌어다 사용했고, 한라그룹도 한라건설의 부실을 메우기 위해 주주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만도를 흑기사로 변신시켰다.

LG그룹에서 분가한 GS그룹도 GS건설이 지난해 어닝쇼크를 기록하면서 위기에 직면해 있다. 다른 그룹들도 건설계열사로 인해 유동성 위기에 빠져 있다. 


정부의 잘못된 부동산 정책이 초우량 기업들마저 부실화시키고, 건설시장에 부실기업들을 양산하게 된 것이다. KCC도 건자재 사업에만 열중해야 하는데, 건설사업에 무리하게 진입했다가 곤욕을 치르고 있다.

건설경기가 너무 좋아 쉽게 이익을 남길 수 있다고 판단해 진입했겠지만, 특별한 기술력이 없는 회사가 쉽게 큰 돈을 장기간 벌 수 있는 시장은 많지 않다. 건설업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사업이지만, 기술력을 축적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KCC가 건설시장에 뛰어든 이유 중 하나는 자신들이 생산한 건자재의 안정적인 수요처를 발굴하겠다는 목표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KCC가 현대그룹이라는 국내 최고 그룹의 관련 그룹이지만 시장에서 인 건설사를 상대로로 사업하는 것에 대해 불안감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다른 이유는 건자재 시장이 기술력보다는 연고에 의한 영업이나 단가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KCC의 대표제품인 유리, 석고보드, 페인트 등이 기술력을 많이 필요하지 않아 언제, 어디서 경쟁자가 나올 지 몰라 불안했을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KCC가 건자재 사업에 올인하지 않고, 건설업이나 기타 사업까지 확장한 것은 현명한 결정은 아니었다. KCC의 건자재를 사용하는 건설회사들과 경쟁도 불가피했고, 다른 건자재업체가 끼어들 여지를 만들어진 것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건자재 유통전문점인 홈씨씨사업도 기존의 중소 대리점과의 마찰을 일으켰고 거창한 사업계획과 달리 성과는 미미하다. 홈씨씨도 유통시장에 진입하지 못하면 단순 제조업체에 머물 수 밖에 없다는 절박감에서 시작했지만 접근방법과 전략에 문제가 있었지 않나 판단된다. 


그리고 사업이라는 것이 한번 시작하면 다양한 이유로 인해 출구(exit)전략을 선택하기 쉽지 않고, 출구전략을 선택해도 큰 손실을 내지 않고 안전하게 마무리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는 단순한 사실을 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기업이 지속가능성장을 유지하기 위해서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장하는 것은 불가피하지만 건설업이나 유통업으로 진출결정은 신중했어야 했다. KCC가 건설업과 유통업을 시작한 것은 현명한 결정이 아니었다는 점은 명백하다. 차라리 기존의 제품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기술력 개발에 투자를 했더라면 최근 경험하고 있는 위기는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 유리도 고기능성 시장을 개척해야 승산이 있다

건축기술이 고도로 발달하면서 건자재시장도 변하고 있다. 건물을 시멘트가 아니라 H빔과 같은 철골로 기둥을 세우면서 시멘트업체들은 수요감소로 영업에 타격을 입고 있다.

건물의 벽면이 사라지면서 KCC가 생산하고 있는 석고보드의 수요도 줄어 들고 있다. 건물의 천장도 보드로 마감하지 않고, 그대로 두는 경우도 많다.

건물의 외벽에 유리를 붙이기 때문에 타일이나 외벽용 화강암의 수요도 사라지고 있다. 외벽을 유리로 완성한 건물들은 페인트를 칠할 필요도 없어 페인트를 팔기도 어려워졌다. 


2000년대 이후 주택이나 상업용 건물, 공공건물 할 것 없이 모두 위와 같은 변화에 노출되었다. KCC의 입장에서 기업의 존폐가 달린 위기감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판단된다. 유리로 외벽을 막는 고층빌딩이나 상업용 건물에는 국내 업체들이 생산하는 단순 판유리가 아닌 고기능성 유리가 사용된다.

고기능성 유리는 외국업체들이 생산해 수입하므로 상당히 비싼 가격이지만 햇볕이나 외부기온에 영향을 덜 받고, 냉난방 비용을 절감할 수 있어 많이 선택된다. 국내기업들은 고층건물에 사용되는 고기능성 유리를 생산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지만 관련 시장은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다. 


KCC도 판유리 생산에 목을 매기 보다는 고기능성 유리개발에 R&D투자를 늘려야 한다. 고기능성 유리도 아주 특별한 것이 아니라 기존의 유리에 기능성 필름을 입힌 것에 불과하다.

기능성 필름을 개발하는 것은 정밀화학산업에 속해 쉽지는 않겠지만 불가능한 영역도 아니라고 판단된다. KCC의 계열사인 코리아오토글라스도 자동차유리를 제조하고 있는데, 단순한 유리가 아니라 차량용 방탄유리까지 개발한다면 시장을 확대할 수 있다.

정세가 불안정한 중동, 북아프리카, 남미 등의 지역에서 차량용 방탄유리 수요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서유럽이나 미국에서도 각종 폭력적인 범죄와 총기사용이 늘어나면서 방탄유리가 많이 팔리고 있다. 


국내 유리시장을 독과점하고 있는 KCC가 건축용 판유리시장의 이익을 향유하면서 혁신의 기회를 놓친 것이다. 물이 끓고 있는 냄비 속의 개구리처럼 현실에 안주하다가 세상의 변화에 둔감했던 것이다.

하지만 아직 늦지는 않았다. 고기능성 유리시장도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어 기술개발만 한다면 진입할 여지는 여전히 많다. 세계 4대 실리콘 기업으로 도약한다며 막대한 투자를 했지만 실패한 폴리실리콘 사업보다도 전망이 밝은 분야다. 


폴리실리콘사업은 명확한 시장이 없는 뜬 구름 잡는 사업이었지만 고기능성 유리사업은 이미 있는 시장이고, 수요도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KCC가 고기능성 유리분야에서 경쟁력을 확보한다면 좁고도 경기변동에 민감한 국내시장에 머물지 않고,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기도 쉽다.

이제 단순한 제조기법으로 해외시장을 개척하고,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기술력만이 기업의 미래를 담보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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