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내부고발과 경영혁신] 23. 국내 내부고발 사례연구-주한미군 유류담합... 한미 안보협력을 해칠 수 있는 매국 행위 발본색원 필요
국내 실정에 어두운 美국방조달본부 기만해 죄질 나빠… 공정위 전속고발권 폐지 및 징벌적 손해배상금 부과해야 근절 가능
민진규 대기자
2024-09-23
2022년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내세운 전쟁의 명분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가입하는 것을 막는다는 논리였다.

1991년 소비에트연방공화국이 붕괴된 직후 동유럽 공산권 국가와 결성한 바르샤바조약기구가 해체되며 동유럽에서 힘의 공백이 생겼다. 엄밀하게 살펴 보면 나토의 동진이 러-우 전쟁의 단초를 제공한 셈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하며 한반도에 진주한 미군은 군정기와 6·25 전쟁이 종료된 후에도 계속 주둔하고 있다. 1953년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법적인 근거다.

70년 전인 1953년이나 2024년 현재에도 러시아의 극동 군사력 증강, 중국의 한반도 영향력 확대, 일본의 군사 재무장 등 한반도 안보를 위협하는 요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국내 정유사들이 2005년 4월부터 2016년 7월까지 주한미군이 사용하는 유류를 공급하면서 담합한 사례가 내부고발로 드러났다.

낙찰 예정자와 투찰 가격을 사전에 합의하는 방식이 동원됐다. 주한미군에 유류를 공급하는 입찰에서 국내 4대 정유사가 담합한 사건을 분석해 보자. 


▲ 주한미군 유류입찰 담합에 대한 내부고발 진행 내역 [출처=iNIS]


◇ 10년간 담합해 1000억 원 이익 실현... GS 칼텍스 직원이 내부 고발자로 밝혀져

2020년 12월 공정거래위원회는 주한미군용 유류공급을 담합한 SK에너지,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에쓰오일, 지어신코리아, ㈜한진 등 6개 업체에 시정명령을 내렸다.

미국 법무부가 이들 업체에 민사 배상금 2300억 원, 형사벌금 1700억 원을 부과한 것에 대한 사후 조치다. 주한미군 유류 납품 담합에 관한 내부고발의 진행 과정을 정리해 보자.

우선 남품업자의 담합은 주한미군이 2005년부터 유류공급 입찰에서 납품 지역 유류탱크의 잔고를 40% 이상으로 유지 및 관리하라는 의무를 도입하며 시작됐다.

다수 지역에 위치한 유류탱크의 잔고를 수시로 확인하고 충전하기 위해서는 계약기간 동안 소요되는 유지관리비를 추정해야 하지만 쉽지 않다.

납품업체들이 입찰 시점에 유지관리비를 산정하고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지역을 배분하기로 합의한 이유다. 업체 담당자들이 모여 공급가격과 계약이행 방안을 논의했다. 미국 국방부 산하 국방조달본부가 입찰을 진행하기 때문에 국내 사정을 파악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도 작용했다.

다음으로 미국 국방조달본부가 진행한 3차례 정기입찰과 추가입찰에서 담합이 실행됐다. 정기 입찰은 2005·2008·2013년 3회, 추가 입찰은 2006·2011년 2회가 진행됐다. 입찰 과정에서 공급 물량과 납품 지역은 내수시장 점유율 등을 고려해 균등하게 배분했다.

업체들은 사전에 합의한 내용대로 입찰에 참여해 원하는 결과를 얻었다. 계약기간은 3~4년으로 길어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미국 법무부는 한국 업체들이 담합해 주한미군이 10여 년 동안 US$ 1억 달러 이상의 비용을 추가 지급했다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2014년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한국 국적의 내부고발자의 제보를 토대로 법무부와 연방수사국(FBI)이 수사를 진행해 진실을 밝히는 과정이다.

FBI는 미국 정부와 거래하는 전 세계 모든 기업과 개인을 대상으로 부정행위를 조사하며 주한미군 유류 입찰 담합 사건도 담당했다.

미국 연방 검찰에 따르면 내부고발자는 GS칼텍스 직원이며 GS칼텍스는 내부고발 사실을 파악해 담합 증거를 은폐하려 시도했다.

또한 GS칼텍스는 제보자가 미국 검찰에 증언하지 못하도록 협박했으며 돈으로 회유하려 시도했다. 법무부가 GS칼텍스에게 형사 벌금을 가장 많이 부과한 이유다.

내부고발자의 제보를 기반으로 조사를 진행한 결과 모두 사실로 드러났다. 담당자의 모임 일시 및 장소, 참석자, 토의 내용 등 내부자가 아니면 파악하기 어려운 사실이 포함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법무부가 처음 조사결과를 발표했을 때 SK에너지·GS칼텍스·현대오일뱅크·에스오일 등이 반발했다가 수긍한 것도 발뺌하기 어려운 증거가 많았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 담합행위로 이익금보다 4배 이상 손실액 발생... 공정위 전속고발권 폐지 및 징벌적 손해배상금 부과 필요

미국 법무부가 국내 정유업체의 담합 사실을 발표한 2018년 11월은 미국 정부와 우리나라 정부가 주한미군 주둔비용에 대해 협상을 진행하고 있던 시기였다.

미국 트럼프 전 대통령은 주한미군 철수를 거론하며 분담금을 대폭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한미군 유류 담합 사건의 내부고발이 주는 사회적 시사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미국은 한국과 달리 담합에 대해 엄격하게 처벌한다는 점이다. 담합에 참여한 6개 업체가 10년간 올린 매출액은 약 7500억 원인데 벌금과 민사합의금으로 4000억 원 이상 냈다.

미국은 담합한 회사가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면 처벌을 합의해주는 플리바게닝 제도를 운영하지만 벌금은 담합해 올린 매출액의 20%를 넘는다.

반면에 2018년 당시 한국은 공정거래법에서 담합 과징금의 한도를 관련 매출의 10%로 정해 최대 750억 원 정도만 내면 해결할 수 있다.

담합에 따른 피해 범위, 부당이득의 규모, 담합에 이르게 된 사유 등을 고려하지만 10%보다 낮은 3~5% 정도로 결정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2021년 담합 과징금은 매출액의 20%로 상향 조정됐다.

둘째, 미국 정부와 합의한 형사 벌금은 1700억 원인데 민사배상금은 2300억 원으로 더 많아 담합으로 얻은 이익금을 전부 토해내도 충당이 불가능하다. 법무부가 형사소송을 시작하면 피해자도 민사소송으로 피해복구를 위한 노력을 진행한다.

미국은 기업의 반독점 행위를 제재하기 위해 1890년 셔먼법(Sherman Act)과 1914년 클레이튼법(Clayton Act)을 제정했다.

클레이튼법에 따르면 반독점 행위로 입은 피해의 손해배상 한도가 3배에 달한다. 민사배상금이 이익보다 2배 이상 많았던 이유다. 한국은 민사배상금도 미국에 비하면 쥐꼬리 수준에 불과하다.

셋째, 미국은 법무부가 직접 기소를 결정하고 벌금도 부과하지만 한국은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행정적 제재인 과징금을 산정한다.

미국의 법무부는 기업의 담합 사건을 직접 수사해 기소한다. 유류 담합 사건에서 피해자가 미국 정부였기 때문에 법무부가 민사와 형사소송을 모두 담당했다.

1980년 제정된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담합을 적발했다고 하더라도 공정위의 고발이 있어야만 검찰이 공소를 제기할 수 있다.

이른바 전속고발권인데 2018년 사회적 비난이 큰 가격담합입찰담합 등 부당한 공동행위(경성담합)에 한해 폐지할 계획이었지만 무산됐다.

수사능력이 부족한 공정위가 암묵적으로 행해진 담합까지 밝혀내지 못하면서 전속고발권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담합은 형사 처벌보다 과징금을 높이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공정위가 정권의 눈치를 보고 재벌의 비위나 맞추며 처벌 수위를 낮춘다면 담합과 같은 불공정행위가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 민진규 국가정보전략연구소 소장 [출처=iNIS]


*칼럼 내용 문의 : 민진규 국가정보전략연구소 소장(stmin@hotmail.com )
저작권자 © 엠아이앤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 기사
산업 분류 내의 이전기사